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21화 (121/180)

121화

휘이이잉!

얼음 속성 오러가 깃든 검날이 벼락처럼 내려친다.

어마어마한 냉기.

‘드디어 본인이 직접 나섰나.’

느껴지는 마나의 농도부터가 다른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네놈의 주제를 알게 해주마. 얼어붙어라!”

맹렬한 기세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얼음의 정령을 불렀다.

“르네.”

[네, 주인님.]

부름에 응답한 르네가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 친화력이 있지 않은 이상 르네를 볼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소녀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정령.

그녀가 차가운 눈초리로 공중에서 내려치는 검을 바라보자 검신을 뒤덮고 있는 냉기가 그녀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촤르르르륵!

당황한 제논 룬델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다시 한 번 르네가 손짓을 하자,

그가 딛고 있던 바닥 위로 새하얀 서리가 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발목까지 얼어붙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냐!”

그의 입장에서는 영창도 없이 마구잡이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몰랐나? 나는 얼음의 신에게 가호를 받았다.”

얼어붙은 다리를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제논 룬델.

“얼음의 신에게 가호를 받았다고? 그런 신이 있단 말인가?”

물론 없다.

“정정하지. 사실 나는 불의 신에게 가호를 받았다.”

‘아그니. 태워버려.’

[응!]

르네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아그니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제논 룬델을 향해 강렬한 불줄기를 뿜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어마어마한 열기.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화끈할 정도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논 룬델은 너무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약간에 그을림 정도가 고작.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경지에 이른 기사라 그런지 신체 강도 자체가 남달랐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감히 나를 상대로 장난질을…….”

어느새 발목을 감싸고 있던 얼음도 전부 녹아내려 자유의 몸이 된 제논 룬델이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내 가슴팍을 향해 검을 뻗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자칫하면 흑마술도 발동하지 못한 채 그대로 꼬챙이가 될 뻔했다.

“다시 정정하지. 사실 나는…….”

그의 검이 내 가슴팍에 닿기 직전에.

“마신의 사도다.”

지면에서 솟아오른 수 십 개의 쇠사슬이 그의 몸을 옥죄었다.

마기가 강해진 만큼 내가 사용하는 흑마술들 또한 전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

내가 자주 애용하는 흑마술 중 하나인 부패의 사슬 또한 웬만한 기사들은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걸 뜯어내?”

덜그럭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사슬들이 하나, 둘 씩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한다.

전신에 마나를 끌어올려 오로지 완력만으로 사슬들을 뜯어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슬들을 불러내고 있었지만, 그는 보이는 족족 뜯어내며 나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네놈 마기를 다루다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말했잖아. 마신의 사도라고.”

“내가 또 그 간사한 혓바닥에 넘어갈 것 같더냐!”

콰앙!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그의 전신을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들이 일제히 튕겨져 나오며 어마어마한 바람이 주변을 뒤덮었다.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푸른 오러.

그의 몸을 뒤덮고 있는 오러 또한 흡사 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절기(絶技).”

공중에 떠 있는 십자가 형태의 거대한 검.

검신부터, 검날까지 전부 오러로 이루어진 형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크기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십자검(十字검).”

‘저건 발현(發現)……!’

저 모습을 보아하니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 쪽 인원들이 무수히 쓸려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러를 다룰 줄 알았다면 나 또한 발현을 사용할 수 있었을 터지만 그건 개인적인 바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엇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었다.

“초강화(超强化).”

평소 내가 사용하던 강화 마법을 개량하여 극한으로 압축한 나만의 술식.

능력도 그렇고, 형태도 그렇고 겉으로 보았을 때는 오러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폭발적인 기운.

자색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며 주변 일대에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은 제논 룬델이 가로로 검을 휘두른다.

“서리 베기.”

허공을 가르는 푸른색 검.

그 검의 궤적을 따라 생겨난 반원의 검격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변 전체에 퍼진다.

‘…저건 위험하겠어.’

이대로라면 주변에 있던 동료들까지 모두 몸이 이등분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나는 마창 악시온을 소환하여 그가 쏘아낸 검격을 향해 돌진했다.

쩌정──!

마나를 집중시킨 창끝과 오러를 담고 있는 검격이 격돌하며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동굴 전체가 진동을 하고, 바닥이 갈라지며 거센 돌풍이 불어 닥쳤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어찌어찌 상쇄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그의 머리에 떠 있던 거대한 검이 지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내가 예전에 보았던 자유의 여신상만 했다.

한 마디로 검 모양을 한 자유의 여신상이 내 머리위로 낙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네놈이 마신의 사도건 뭐건 통째로 지워 버려주마.”

자신의 부하들이 휘말리는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오러의 발현을 통해 만들어진 무투기.

저만한 게 이곳에 떨어지면 나는 둘째 치고 나머지 인원들은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미친놈이군.”

나는 마기를 끌어올려 공중으로 흩뿌렸다. 그리고는 형태를 변환시킨 뒤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본 제논 룬델이 놀랍다는 듯 소리쳤다.

“그만한 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보니 사도급이 틀림없구나. 언제냐! 대체 언제부터 마신을 숭배한 것이냐! 영웅이라 불리던 지그하르트 가문의 일족이 마신숭배자라니! 이거 참으로 재미있구나!”

“낯짝 두꺼운 것 봐라. 네 입으로 그딴 말을 하고 싶냐? 만년 2인자 새끼가 아까부터 잘난 척은 뒤지게 하네.”

악귀 같은 얼굴로 괴성을 지리는 제논 룬델.

“──이 버러지 같은 놈이이!!!”

콰앙!

십자 형태의 검과 내가 만들어낸 마기의 방패가 격돌했다.

마기의 양은 충분했으나 충격의 여파로 잠시 머리가 띵했다.

귀에서 삐-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 주변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다급히 정신을 붙잡고 마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쯤이면 됐다 싶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십자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맹렬한 기세로 방패를 꿰뚫기 위해 발버둥 쳤다.

‘…젠장. 점점 더 강해지잖아.’

제논 룬델의 괴성과 함께 거대한 십자가 형태의 검에서 강력한 냉기가 피어올랐다.

“죽어라아아아!!!”

단 시간에 마기를 사용한 영향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아직 그걸 사용하기에는 이르다. 상당히 강력한 기사인 건 맞지만 그걸 사용할 정도는 아니야.’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강력한 아군임에도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만히 있는 인물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테레사!”

모두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와중에도 테레사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연신 바닥을 바라보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테레사!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지? 저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저게 네 숙부의, 너희 가문의 실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문의 기사들마저 망설임 없이 희생시키려는 저 모습이 바로 너희 가문의 민낯이라는 것이다! 영웅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네 눈앞에 저 괴물이 아직도 너의 숙부로 보이는가? 보아라! 테레사! 저것은 괴물이다! 일어나라! 일어나서 괴물을 처치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태어나란 말이다!”

내 말을 들은 테레사가 멍한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영웅.”

그녀의 정신 상태는 지금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 가문의 추악한 모습과 핏줄인 숙부의 입에서 자신을 죽이겠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당연하게도 커다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과거 그녀에게 걸어두었던 암시에 효과가 다시금 발휘되고 있었다.

“일어나라! 테레사! 눈앞에 적을 베어 동료들을 구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검을 휘둘러라! 그러기 위한 검이 아니더냐!”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녀가 검을 뽑으며 일어섰다.

“영웅……. 그래…… 나는 영웅이 되어야 해……. 악은 베고, 백성들을 수호하는 영웅…….”

나는 방패를 유지하면서도 테레사를 향해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만으로 전신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래! 저 괴물을 죽여! 저 자는 너 뿐만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가문의 기사들 또한 함께 죽이려고 하고 있다! 저 자가 모든 만악의 근원이다. 테레사!”

“만악의 근원…… 제거 한다…….”

탁탁탁.

지면을 박차고 달려간 테레사가 검을 뽑아들며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용사 파티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타이밍에 맞춰 그녀에게 강화 마법을 부여했다.

“근력강화(筋力强化). 내구력강화(耐久力强化). 절삭력강화(切削力强化). 속도강화(速度强化). 재생력강화(再生力强化). 지구력강화(持久力强化). 다중복합강화(多衆複合强化).”

십 여 개의 강화 마법이 그녀의 몸을 뒤덮는다.

그녀 또한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검에 오러를 응축한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오러가 검날에 깃든다.

강렬한 빛.

이윽고 공중에서 자세를 잡은 그녀가 한 번의 흔들림도 없는 완벽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른다.

올곧은 직선.

그녀가 자주 애용하는 올려 베기.

검의 궤적을 따라 뻗어나간 백색 섬광이 상공을 뒤덮었던 십자검을 양단한다.

“테레사. 네년이 결국……!”

분노한 제논 룬델의 외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는 공중에서 한 번 더 도약하며 그를 향해 쇄도했다.

물론, 그 발판은 내가 제공했다.

타이밍에 맞게 마기를 이용하여 그녀가 도약할 수 있도록 공중에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테레사의 검이 제논 룬델의 가슴팍으로 향한다. 그러나 제논 룬델은 쉽사리 그녀의 검을 쳐낸 뒤 오히려 그녀를 몰아붙였다.

공중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진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목숨을 건 혈전. 숙부와 조카의 싸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다.

허나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비겁하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이기면 장땡이니까.

때마침 제논 룬델이 테레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그 순간.

내가 쏘아낸 마기의 창들이 그의 어깨와 다리를 꿰뚫었고.

그로 인해 중심이 무너진 제논 룬델의 가슴팍에 테레사의 검이 박혔다.

“숙부……. 저는 숙부를 죽인 뒤 영웅이 되겠습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살인을 해보지 않는 그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죽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숙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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