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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22화 (122/180)

122화

가슴에 검이 꽂힌 채 바닥에 낙하한 제논 룬델.

테레사는 멍한 얼굴로 검은 피를 뿜어내는 자신의 숙부와 그의 가슴팍을 꿰뚫고 있는 자신의 검을 번갈아 바라봤다.

“…….”

“쿨럭.”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네가 감히…….”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깨달았다는 듯 점점 커지는 그녀의 눈동자.

“숙부……. 정말 저를 죽이려 하셨던 겁니까? 어째서 저를…….”

“어째서……? 그야 당연한 것 아니더냐. 나는 평생 형님의 그림자로 살았다. 단순히 그보다 강하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지. 너도 알지 않는가? 가주 경쟁에서 도태된 패배자가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지. 나는 살기 위해서 형님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평생 그를 위해 살았지. 내 삶이 아닌, 다곤 룬델의 꼭두각시로서 살아왔단 말이다. 네가 보기에도 내 재능이 부족하다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닌 그가 너무 뛰어났을 뿐이다.”

테레사는 침묵했다.

“…….”

피를 토해내면서도 제논 룬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나 또한 가주가 되고 싶었다. 허나 그가 있는 한 불가능했지. 그렇기에 그 이후를 노렸다. 그가 죽고 난 뒤라면 나도 가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 내 계획에 가장 거추장스러운 것이 바로 너와 사딘이었다. 네년이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동생을 가주로 만들려 할 것이 아니냐.”

“……꼭 죽이지 않아도 대화로서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화? 풉. 웃기지도 않는군. 룬델 가의 인간이 대화를 논하느냐? 여전하구나. 그 빌어먹을 정의감은. 이쯤 되면 너도 알지 않느냐? 너의 그 위선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량한 정의감, 이기적 선함, 그것들은 전부 네가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 그로부터 피어난 결핍에서 형성된 것이다. 테레사.”

“숙부…….”

그때 품속에서 검은 액체가 든 병 하나를 꺼내든 제논 룬델이 순식간에 입안으로 부어넣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동시에 울려 퍼지는 괴성과 폭발적인 마기(魔氣).

“크아아아아아악!!!!”

전신을 휘감은 마기. 뒤이어 관절이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전신이 엄청난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설마, 폭주……?’

저 약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말도 안 되는 재생력.

저 정체모를 약을 한 번 들이킨 것만으로 전신에 새겨진 상처들이 순식간에 수복된 것이다.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반드시 가주가 될 것…….”

푹!

그러나 그걸 지켜보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내가 던진 마기의 창이 그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가주…가 될….”

머리통의 절반이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붙어있었다.

반쯤 갈라진 머리 사이로 분홍빛의 내장 같은 것들이 보였다.

‘씨발. 설마 저게 뇌인가?’

위치 상 맞는 것 같았다.

“아그니!”

이번에는 순수하게 마력만을 이용하여 만든 창의 아그니에 불꽃을 융화했다.

치이익!

창이 나머지 머리통을 꿰뚫자 그의 전신을 타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전신이 불로 뒤덮인 그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아그니의 힘을 빌려 화(火)속성 불 마법 중 하나인 불기둥을 사용했다.

확실하게 지져 버릴 생각이었다.

지금껏 이블을 상대하면서 얻게 된 경험 중 하나는 뒤졌다고 생각했을 때 망설이지 말고 한 번 더 죽여라 였다.

‘저 검은 물약은……. 설마 룬델 가도 그놈들과 엮여 있는 것인가….’

그가 딛고 있는 지면에서 강렬한 열기를 품고 있는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소년만화 속 주인공이라면 악역이 변신하거나 혹은 반대로 악역이 주인공이 각성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겠지만, 이곳은 나에게 목숨이 달린 현실 그 자체.

변수란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게 모두를 위해 옳았다.

공중에 손을 뻗은 나는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마기를 한 곳에 응축시켰다.

“먹어.”

허공에서 나타난 무엇인가가 그것을 꿀꺽 삼켰다.

【맛… 없다….】

‘곧 맛있는 걸 먹게 될 거야. 기다려.’

【알…았다…….】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린 제논 룬델을 바라보던 나는 테레사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어깨가 가파르게 떨렸다.

아마 첫 살인을 저지른 것과 그 대상이 자신의 혈육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달콤함을 속삭이는 악마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잘했다. 테레사. 저것은 너의 혈육 따위가 아니다. 백성들의 생명력을 양식 삼아 힘을 갈망하는 악마지. 너는 악마를 죽인 것이다. 테레사. 네가 지금 너의 영지민들을 구한 것이야. 너로 인해서 이 마을 사람들이 해방됐다.”

“……정말 그런… 것인가. 이로써 나는 영웅에 한 걸음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인가?”

“그래. 허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곳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악(巨惡)이 남아있으니까.”

“거악(巨惡)…….”

“그래. 이 모든 사태의 장본인이자 원흉. 그리고 너의 아비인 다곤 룬델 말이다.”

그녀의 상태가 많이 불안정해보였기에 나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이 이상 말을 걸었다가는 그녀의 정신이 붕괴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진 무력과는 반대로 가진 바 멘탈은 쓰레기와도 다름없는 인간이다.

순수한 재능충.

룬델 가(家)의 핏줄이라는 재능과 배경이 없었다면 기사가 될 수도 없을 만큼 나약한 멘탈을 지닌 그녀였다.

나는 마력을 끌어 올린 뒤 동굴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룬델 가의 기사들은 들어라──!”

사자후(獅子吼).

천둥번개가 치는 것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동굴 전체에 퍼졌다.

“너희들의 수장인 제논 룬델은 지금 여기서 쓰러졌다. 목숨이 아깝다면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반항하는 자들은 즉결 처형하겠다. 이 쓰레기들아!”

나름 내 방식대로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저들 중 마기를 사용하는 이들 또한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 알바가 아니었고, 어찌됐건 저들 대부분이 그저 쓰다버리는 체스말 같은 존재였다.

본인들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제논 룬델의 명령으로 인해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황은 비등비등했다.

처음에는 룬델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나 내가 불러들인 72교단의 교인들로 인해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춰졌다.

흑기사라는 괴물들로 인해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것 뿐.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건 우리 쪽이었다.

흑마술사라는 족속들이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은 대규모 전투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마기만 충분하다면 죽은 자들을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었고, 그 말은 뛰어난 흑마술사 한 명으로 인해 전투의 양상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절그럭. 절그럭.

내 말들은 들은 룬델 가의 기사들이 하나 둘 씩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라다무스가 눈앞에 흑기사 한 명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계속 할 텐가?”

흑기사의 표정은 투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라다무스는 어쩐지 그가 입술을 질근 깨물고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덜그럭.

그 또한 칠흑 같은 대검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서 항복한다면 우리들의 목숨은 살려주시는 것이오?”

“나야 모르지. 나는 여기 있는 수많은 쫄따구들 중 하나일 뿐이야. 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우리 대장이지.”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여기서 죽어 버린 다음 사역마로 삼으면 꽤 강력한 전력이 될 텐데…….’

그대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제 아무리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지켜야 한다.

어쩐지 흑마술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인간성이 옅어지는 기분이다.

‘지금쯤이면…… 청십자회에 일원들도 룬델의 영지에 도착했겠지.’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제국 최고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룬델가.

그리고 명실상부 악마 사냥의 스페셜리스트인 청십자회.

그 둘이 부딪친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어쩌면 황실에서 직접 나설지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더욱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끝내야 했다.

내가 허공에 손짓을 하자 뿜어져 나온 마기가 그물망처럼 넓게 퍼졌다.

그리고는 룬델가의 기사들 전부에게 주박을 새겼다.

흑기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은 낙인(烙印).

나에게 살의를 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심장이 터져 죽게 되는 저주였다.

“방금 너희들의 심장에 저주를 새겼다. 나에게 반항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심장이 터져 죽게 된다. 시험해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단 그 이후에 일어나게 될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가 침묵했다.

“…….”

흑기사가 내게 물었다.

“반대로 그대에게 복종한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허나 난 너희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피칠갑을 한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든.”

“네. 교주.”

“이곳을 정리한 뒤 저들을 교단으로 끌고 가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그에 관한 모든 권한은 네게 일임하겠다. 아, 그리고 이 마을에 사는 노파가 한 명 있을 것이다.”

나는 제단으로 향한 뒤 그 위에 놓아져 있던 어린 소년의 시체를 품에 안은 뒤 이든에게 건넸다.

“……그녀에게 이 아이를 건네주고, 이곳에서 있던 일들을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전해주도록.”

“분부대로 하지요.”

“나머지 교인들은 나를 따라와라. 지금부터 룬델 가의 수장인 다곤 룬델의 목을 따러 가겠다. 뢴달. 지금이라도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된다. 너도 알다시피 상대는 제국을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 심지어 마신의 힘까지 지니고 있을 것이다.”

뢴달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와 돌아가라는 건가? 헛소리 하지 마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끝을 보겠다. 네놈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든든하군. 영감님은 어찌 하겠습니까?”

라다무스 또한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대가 구해준 목숨의 은혜. 아직은 다 갚지 못했네.”

“영감님도 아시겠지만, 지금부터는 저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가 본 미래를 바꾼 것은 자네가 유일했네. 내가 도박사라면 자네에게 전 재산을 걸 테야.”

“그럼 그 돈을 잃지 않게 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겠군요. 또 돈이 떨어지면 어디 이상한 곳에서 노점상 하나 차려놓고 애꿎은 시민들 등골이나 빨아먹을 테니까요.”

“끌끌. 그렇지.”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테레사를 이용할 차례다.

내가 그녀를 부른 이유 중 하나.

“테레사.”

“…….”

“정신 차려라. 테레사. 이번에도 실패를 맞이할 것인가? 아직도 가짜 용사가 되고 싶은가? 언제까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갈 것이지? 진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가 너의 혈육이든, 뭐든 앞으로 네가 걸어가야 할 길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가차 없이 처단해야 한다.”

“…….”

“그것이 제국을, 나아가 이 제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한 길이다.”

천천히 고개를 든 테레사가 멍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무얼 해야 하지?”

“룬델 가(家)의 직계들만 아는 비밀 통로. 그곳으로 나를 안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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