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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23화 (123/180)

123화

아이리와 토미는 룬델 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영지와 근접한 이름 없는 산 속.

“씨발. 아주 지랄 났군, 지랄 났어. 이게 나라야? 어? 개국공신이면 뭐해, 소드마스터면 뭐하냐고. 하나 같이 마신들이랑 들러붙어가지고 이 씨발 새끼들. 이게 말이나 된다 생각 하냐? 제국에서 가장 힘이 센 권력 가문이면 우리랑 함께 이교도놈들을 처치해도 모자를 판에 우리가 그 놈들 모가지를 따러 가는 게 맞냐고!”

그들과 함께 오던 이단심문관 두 명은 인근에 있는 라파엘 교단에 넘긴 상태였다.

그들을 넘기면서도 아이리는 이 새끼들도 이교도놈들이랑 다를 바 없는 새끼들이니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토미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 저희들이 필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자매님. 이 세상에 악이 사라질 때까지 저희가 열심히 뛰어다녀야죠.”

“하여튼. 너는 옳은 말만 해서 탈이야. 그냥 나한테 공감해주면 안 되냐?”

“이 또한 공감의 일종 아니겠습니까.”

“말은……. 다른 애들은 뭐래? 다 오고 있대?”

“예. 대부분의 형제님들도 영지 근처에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주변 경계가 삼엄한지라 아무래도 애를 먹고 있는 것 같군요.”

“애를 먹어? 누가? 걔네가? 푸핫! 무턱대고 죽일 수 없어서 애를 먹는 거겠지.”

“모두가 자매님처럼 막 나가지는 않습니다.”

아이리가 자신의 가슴팍 밖에 오지 않는 토미의 어깨에 손을 털썩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필요한 거야. 우리 귀여운 토~미~”

“저 또한 자매님의 그런 부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귀여워.”

그녀가 토미의 볼을 잡아당기자 그의 볼이 마시멜로처럼 쭈욱 늘어졌다.

“회주는?”

“자매님도 아시다시피 아마 회주님은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틀란 왕국에 등장한 대재앙급 마물 때문에…….”

그 말을 들은 아이리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틀란 왕국에 등장한 대재앙급 마물은 본래, 왕국에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소드 마스터였던 것이다.

그런 인물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이블이 되었고, 그로 인해 오틀란 왕국은 멸망에 위기에 쳐했다.

단 한 명의 이블로 인해 나라 전체가 무너질 뻔 한 것이다.

이블의 강함은 생전에 강함과 비례한다.

그렇기에 초월자이자 청십자회의 회주, 라파엘 교단의 성검(聖劍)이 직접 왕국에 파견을 나간 상태.

“뭐 그 괴물 같은 양반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럼요. 저희가 회주님을 걱정할 시간에 저희 목숨 한 번 생각해보는 게 나을 겁니다.”

“단장은? 단장도 오고 있대?”

“아마 가장 먼저 도착하셨을 겁니다. 원체 종잡을 수 없는 분이니까요.”

“이왕이면 단장이랑 먼저 합류하고 싶은데 말이지.”

“어째서입니까?”

“첫 번째로 안전한 건 회주 옆이고, 두 번째로 안전한 건 단장이니까. 옆에 있으면 든든하잖아?”

“하하. 맞는 말씀이십…….”

그때였다.

“──토미!”

상공에서 떨어진 거대한 흑검(黑劍).

콰앙!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주변 일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기치 못한 급습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토미였다.

찰나에 순간, 신성력을 끌어올린 토미가 검을 뽑아들어 일행들을 지킨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심각했다.

흑검의 위력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

칠흑 같은 오러가 형상화 된 흑검.

오러의 발현으로 인해 만들어진 무투기의 위력은 산 일부분을 소멸시킬 정도였다.

한쪽 팔이 잘려나간 토미가 평소와 같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리를 바라봤다.

“자매님. 괜찮으십니까?”

“토미……. 왜 굳이 그런 행동을 한 거야. 어차피 나는…….”

“어차피 재생된다고 하지만 자매님도 통증은 느끼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매님만큼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이 정도 상처쯤은 별 거 아닙니다.”

“그래도 무엇하러 그런 짓을 하냐고!”

바닥에 떨어진 팔을 주운 토미가 상처부위에 팔을 갖다 대며 신성력을 끌어올리자 팔이 붙기 시작했다.

“그거야 하고 싶은 사람 마음이지 않습니까? 그보다 근처에 적이 있는 거 같습니다. 기척은 느껴지지 않지만 최소한 저 정도 무투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겁니다.”

“하여간 이 멍청한…….”

서걱!

“……자.”

툭.

데구르르르.

“…자매님?”

토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이리의 머리통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본다.

분명 주변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녀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어떻게 된 것일까.

다시 한 번.

서걱!

이번에도 어떠한 전조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검은 칼날이 토미의 오른쪽 발목을 베었다.

그의 상처부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발목이 잘려나간 토미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

세 명의 흑기사.

그 중에 한 명은 붉은 문양이 그려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미 룬델.

흑기사단의 단장이자, 룬델 가(家)의 사냥개.

그리고 가주인 다곤 룬델의 배 다른 여동생이었다.

룬델 가의 사생아로서 오로지 철저히 살인도구로서 키워진 인물.

방금 전 그들에게 무투기를 사용하고, 아이리의 목을 자르고, 토미의 발목을 자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원천 속성은 그림자.

어둠의 하위속성으로서 10만 명 중에 1명 나올까 말까한 희귀한 속성이다.

가주인 다곤 룬델을 제외하고는 가히 룬델 가(家) 최강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지금 이곳에 나타났다.

바로 자신의 조카인 사딘 룬델을 구해내기 위해.

정확히는 자신의 아들을 데려오라는 가주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룬델 공작가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

당연하게도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교도놈들.”

토미의 전신에서 한줄기 빛기둥이 솟아오르며 그의 이마에 깃든 성흔이 밝은 빛을 뿜어냈다.

촤아아아악!

신성한 빛줄기가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빛기둥 속에서 걸어 나오는 토미.

평소에 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본래의 그는 소년에 가까운 이미지였지만 지금의 그는 소년이라기보다는 청년에 가까웠다.

훨씬 더 커진 키, 넓어진 어깨, 그리고 사나운 눈매.

목 정도 오던 머리칼은 어느새 허리를 뒤덮을 정도로 길어졌다.

평소 둥글둥글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빛기둥 속에서 걸어 나온 그의 모습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신성기(神聖技).”

그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백색 검을 치켜들었다.

응축된 신성력(神聖力)이 검 끝에 모여들었다. 주변 일대의 공기가 거칠게 요동치며 그의 입에서 거룩한 음성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적멸(寂滅).”

그가 딛고 있는 공간 전체가 백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수 천, 수 만 개의 선들이 일제히 수놓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선들은 면이 되었고, 뒤이어 갈라지기 시작했다.

오러와는 다른 성질의 검격.

신성력이 가득 담긴 검술이 공간 전체에 휘날렸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잘려나가기 시작했으나 단 한 명.

붉은 문양이 그려진 흑기사만큼은 그 어떤 동요도 없이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선들이 그녀의 몸을 수놓았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칼날들이 그녀를 수놓은 선들을 베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토미가 서늘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 쓰레기가…….”

후웅!

순식간에 사라진 토미의 신형.

이내 다시 몸을 드러낸 것은 적기사의 뒤편이었다.

토미가 휘두른 백색의 검날이 적기사의 목덜미를 향했다.

허나 적기사는 그 찰나에 순간 그것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검을 받아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반격을 이어가나가는 적기사.

범인의 눈으로는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수 백, 수 천의 검합이 오고갔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처가 많아지는 것은 토미 쪽이었지만 특유의 재생력으로 그것들을 극복해내며 더욱 더 몰아붙였다.

그러던 도중 갑작스럽게 검을 집어넣는 아르미 룬델.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몸을 뒤덮더니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늦게 신성력을 거두어들인 토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시 소년이 된 토미가 아이리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머리가 돌아온 아이리가 방향이 조금 뒤틀린 것인지 자신의 머리통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중얼거렸다.

“이건 좀 변순데 말이지…….”

“괜찮으십니까, 자매님?”

익숙한 솜씨로 머리 조정을 맞춘 아이리가 몸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말했다.

“어. 이 정도야 뭐 괜찮지. 근데 좀 열 받네?”

“반응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머리가 잘려서 그러시는 겁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자매님 특징이 원래 그런…….”

토미의 이마를 콩하고 때린 아이리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좀 봐봐.”

“…….”

그녀가 가리킨 곳은 사딘이 있던 자리.

허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없어졌군요.”

“그래. 사딘 룬델을 빼앗겼다.”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인물인가 봐요? 저번에는 그냥 버리고 가더니.”

“그만큼 켕기는 게 있다는 거겠지.”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뭘 어째. 찾으러 가야지.”

* * *

분명 있을 것이다.

가문의 직계 혈족들만이 아는 비밀 통로가.

역사가 길고,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가문이라면 더더욱.

그런 가문일수록 혹시 모를 위기 상황을 대비해 어떤 식으로든 도망갈 장소를 마련하기 마련이었다.

“…….”

“역시 짚이는 데가 있나 보지?”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다. 테레사. 지금 당장 안내해.”

순간적으로 고민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그녀가 발을 내딛었다. 나와 일행들 또한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그녀가 말하는 비밀 통로는 이곳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만, 72교단처럼 공간전이 마법이 설치된 장소를 이용하여 가야 했다.

그것도 세 번 정도를 사용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에는 문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거대한 입구와 그 옆을 지키는 두 개의 석상이 있었는데 그들이 입구를 가로 막고 있어 지나갈 수가 없었다.

투구와 갑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기사를 본떠 만든 석상 같았다.

마법적인 장치가 걸려 있는 것인지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단 하나.

룬델 가문 직계 혈족의 피.

나는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생성한 뒤 테레사의 살갗을 베었고,

흘러내린 핏물이 석상에 닿자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입구를 가로 막은 석상이 움직이며 그제야 통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드디어 룬델 가의 저택 안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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