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미, 미친 새끼……. 저거 진짜 인간 맞아……? 몸 절반이 사라졌는데 대체 어떻게 멀쩡한 거지?’
눈앞에서 펼쳐진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나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레비아탄에 의해 몸 절반이 찢겨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결코 살아있을 수 없는 상처.
뜯겨져 나간 몸의 단면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였는데 핏줄과 근육 조직 사이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마기가 그의 몸을 지탱해주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이미 인간이 아닌, 마인(魔人)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옳을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인간과는 조금 다르니까.
“어떠한 전조도 없이 물질계 자체에 간섭하는 이능(異能)……. 네놈 권능을 다루는 구나!”
벌써 두 번.
연달아 권능을 사용한 까닭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체내에 깃든 마기가 비명을 지르며 발악한다.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어지럼증이 몸을 덮친다.
두 다리를 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계다.
다곤 룬델의 목소리와 머릿속 악마들의 음성이 겹쳐 들린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해!’
이대로라면 그의 검날이 내 목덜미를 뚫을 것이다.
쇄에에엥!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 검에 파공음이 고막을 강타한다.
3초.
2초.
1초.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행동은 체내에 마기를 통제하여 갑옷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마갑(魔鉀).
단순히 전신에 마기를 두르는 것이 아닌 현대의 지식을 토대로 그물 형태로 촘촘히, 그리고 겹겹이 덧대어 만들었다.
마기의 질과 농도는 어떠한 마신과 계약을 맺었느냐에 따라 나뉘고 또한 그 계약의 형태에 따라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니고 있는 마기는 최상급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최초의 초월자이자, 최초의 흑마술사였던 살로몬의 정수 일부분을 얻었기에 여타 흑마술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기를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발!’
다곤 룬델의 검날이 마기로 만든 결계를 두부처럼 썰어버린 뒤 계속해서 전진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허무할 정도로 쉽게 베었다.
이윽고 도달한 검날.
검은 오러가 엉겨 붙어 있는 검끝이 마갑과 격돌했다.
“큭.”
부위는 어깨.
강력한 충격이 전신에 엄습한다.
“크으윽!”
충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깨 부위 쪽에 더욱 많은 마기를 집중시켰다. 허나 내 예상보다도 연달아 권능을 사용한 후유증은 컸고, 그로 인해 마기의 컨트롤이 일시적으로 흔들렸다.
다곤 룬델의 검 또한 내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크아아아악!”
스스스스슥.
결국 견뎌내지 못한 마갑의 표피가 갈라지고, 그의 검날이 내 어깻죽지를 그대로 베어냈다.
툭.
검의 깃든 마기 때문일까.
단순한 상처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의 검날에 깃든 마기가 그대로 내 몸에 침투하며 상처부위를 갉아먹는다.
그러나 나는 마신숭배자.
그것도 최상위 마신의 사도다.
몸 내부에 침입하는 마기를 다시 내 통제 하에 놓는다.
‘…개 씨발.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두통과 마성(魔性)을 이겨내고, 최대한 빠르게 내 몸 속에 침입한 마기를 컨트롤한다.
잘려나간 어깻죽지에 마기를 이용하여 임시로 팔을 생성.
그리고는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소환한다.
“악시온(axion)."
이어서 창끝에 마기를 응축(凝縮).
결집(結集).
거기에 마나를 섞어 절삭력(切削力)을 강화(强化).
그리고 있는 힘껏 내지른다.
퍼엉──!
공기를 가르고 나아간 창날이 섬광처럼 쇄도한다.
“이제 좀 죽어라. 이 괴물 같은 새끼야!”
혼신을 담은 일격.
그러나 이번에도 이 미래를 예측이라도 한 것인지 다곤 룬델은 너무도 쉽게 내 공격을 회피해버렸다.
“참 아까운 인재란 말이야. 너 같은 인간이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군.”
그리고 또다시 휘두르는 손날.
서걱!
허공을 갈랐음에도 불구하고, 내 왼쪽 발목이 허무하게 썰려나갔다.
‘괴물 같은 자식……. 무슨 손짓 한 번에…….’
중심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머릿속에서 퍼붓는 저주의 음성이 더욱 커졌다.
-봐봐! 깔깔깔. 역시 너 같은 놈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가 없다니까? 애초에 말이나 되기는 해? 너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대단한 것도 없고, 그냥 혓바닥 조금 놀리는 걸로 마신이랑 계약을 맺은 게 네가 가진 전부잖아? 그런 네가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겠다고? 프레이를 구할 수 있겠다고? 그게 가능할 거 같아? 아니.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이 병~신아~! 낄낄낄낄낄.
-너는 네가 원하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 세계에 갇혀서 영원히 고통받고, 괴로워하며 죽을 거야.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인물들, 너로 인해 인생이 바뀐 인물들 또한 전부 지옥보다 더 끔찍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누구 때문에? 바로~ 너~ 때문에! 너! 너! 너! 너! 너! 너! 자일 지그하르트! 아벨 크로이! 그리고 김한일! 바로 너 때문이라고 이 병신 새끼야~ 깔깔깔깔깔!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벌써 팔과 다리가 잘렸네? 그런 몸으로 이길 수 있겠어? 지금도 네 동료들은 너를 위해서 희생하고 있을 텐데, 너는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이제는 너도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몰골인데? 사람을 죽이는 거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죄악감도 느끼지 못하는 너 같은 놈이 본래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일반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다 편해질 거야. 그러면 다 행복해질 수 있어. 내게 몸을 맡겨. 내가 다 해줄게.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강하고,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거든.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흐린 안개 속에서 다곤 룬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진다.
“이대로 죽이기에는 아깝단 말이지. 아까 보여주었던 그 권능……. 인간이 다루기에는 분수가 넘칠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무려 이 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지. 네놈 정도라면 게티아의 간부들보다도 더 쓸만하겠지. 어때, 나와 함께 일할 생각이 없나? 그렇다면 네놈이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지. 네 권능을 나를 위해 쓰거라.”
“…개소리하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참 한결 같은 사내로군. 그런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것 참 안타깝게 됐어.”
바닥에 엎드린 나를 바라보며 그가 천천히 손을 올린다.
“……시체를 써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 깔끔하게 죽여주마.”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지금 이 시점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살기 위한 수십 가지의 방법들이 도출되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저절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아르스 게티아의 사본.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흑마술.
“그럼 잘가라.”
……서걱!
“야타의 거울.”
거의 모든 마기를 쥐어짜내 사용한 고대의 흑마술.
그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단순히 마기를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전자의 생명력까지 받쳐야 하는, 가히 권능에 가까운 흑마술이었다.
이것을 가장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또 애용하던 인물이 바로 살몬.
“……어?”
다곤 룬델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몸으로 향했다. 몸의 절반이 찢겨져 나가있고, 목 위로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 반송장을.
머리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그의 생명은 아직까지 붙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걸까.
이 또한 마기 때문일까.
“……내가 베인 건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자신의 몸을 보며 중얼거리는 광경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쿨럭.”
나는 몸 안에 살점을 토해냈다.
야타의 거울을 시전한 대가로 생명력을 소모했고, 그 여파로 인해 몸 안의 장기들이 뜯겨져 나온 것이다.
“……신기한 흑마술이군. 이런 건 본적이 없어. 이게 내 최후란 말인가……?”
허무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다곤 룬델.
머리가 떨어졌음에도 지금까지 입을 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나 본인도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 듯 했다.
간단한 능력과 간단한 대가.
그러나 너무도 간단한 능력이기에 최고의 효율을 지니고 있는 흑마술이었다.
바로 거울이 받은 모든 상처를 그대로 반사하는 능력.
그것을 사용하여 나는 내 몸을 일순, 거울로 만들었고 다곤 룬델은 자신의 검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을 돌려 받은 것이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명실상부 최강의 검을 죽이려면, 당연하게도 최강의 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은 결국 본인이었던 셈.
나는 더 이상 떠들어대지 않는 다곤 룬델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말을 내뱉을 때마다 폐에서 쇳소리 같은 것이 함께 새어나왔다.
“하아… 하아… 이제 끝인가?”
나도 모르게 내뱉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을 내뱉었지만 솔직히 여기서 다시 한 번 살아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라고 해도, 아니 마인이라고 해도 이쯤되면 죽어주는 게 예의였다.
몸 절반이 찢겨져 나가고, 머리통이 베어나갔음에도 살아나면 그것은 마족도 마인도 아닌…….
“……마신(魔神).”
마신(魔神)?
덩그러니 서있는 다곤 룬델의 시체.
아직까지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마기.
절단면에서 붉은색 촉수 같은 것들이 자라나더니 그의 몸이 재생되기 시작했고, 이내 등 뒤에 거대한 날개가 솟아올랐다.
이윽고 들려오는 다곤 룬델의 목소리.
감고 있던 그의 눈꺼풀이 열리며,
“마신(魔神).”
소름끼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강림(降臨).”
지옥의 71계위(階位), 마신(魔神) 단탈리온의 현현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것이 등장하면 안 될 것이 오려고 하고 있다.
과거, 찬란했던 영광의 시대 살몬과의 맹약으로 인해 마신들은 본인들의 진체를 이곳으로 끌고 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초월자인 아슈타르도 이런 분위기를 풍기지 못했다.
마신을 숭배하는 나이기에, 아스모데우스와 연결된 나이기에 똑바로 알 수 있었다.
마신이 직접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다곤 룬델이라는 인간을 화신체로 삼아.
그저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존재가 이 세상에 현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마신(魔神).
그 두 글자가 가지는 무게가 한낱 인간 따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오랜만이군. 인간계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양쪽 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