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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32화 (132/180)

132화

저택 전체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독한 마기.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만큼 독한 종류의 것이었지만 프레이 일행은 멀쩡했다.

애초에 마기로 이루어진 로만은 논외고, 요한은 몸 전체에 미세하게 두른 마나로 인해 자신의 몸을 보호했고, 프레이는 자일 지그하르트에게 건네받은 성물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교수님. 진짜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제 생각에는 그럴 거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저택의 몰골은 지옥과 다름이 없었다.

택 전체에 퍼져 있는 마기로 인해 시체가 된 기사들이 성불하지 못해 배회하고,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마물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서걱!

프레이가 검을 휘두르자 시체들의 머리통이 일제히 잘려나갔다.

그 옆에 있던 로만의 신형이 사라지고 1초가 지난 뒤에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넝마가 되어버린 시체들이 산처럼 쌓였다.

저택 전체가 마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처참한 상황.

그나마 요한과 로만이 있어서 이 정도로 온 것이지, 다른 이들이었다면 진즉에 사망했을 것이었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요한을 바라보며 프레이는 그간 들어왔던 그에 대한 소문들이 전부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직접 목격하니 오히려 소문들이 과소평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간 힘을 숨겼던 것일까.

아니면 본인이 나서서 소문을 통제했던 것일까.

뭐가 되었든 그는 단순히 살로몬 아카데미의 문제아들을 담당하는 교수로 있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요한은 프레이가 마주한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었으니까.

실제로 그의 무위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감추고 있는 진정한 힘이 어디까지인지.

그 심연의 끝을 알 수가 없었다.

“그쪽 주인이 이쪽에 있는 게 확실합니까?”

“그렇습니다. 이 아래 쪽에서 주인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아……. 자일 군이 사고뭉치라는 사실은 익히 알았지만, 막상 마주하니 그 스케일이 다르다는 게 실감이 나는 군요. 어지간히 정신이 나가지 않는 이상 이 제국 내에서 룬델 공작가를 상대로 이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자가 또 있을까요. 건드려도 하필 소드마스터를 건드리다니…….”

그 순간.

저택에서 느낀 마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이 그들의 전신을 엄습했다.

다곤 룬델을 화신체 삼아 강림한 단탈리온의 기운이었다.

인간인 이상 실감할 수밖에 없는 격의 차이.

종의 한계를 넘어 꾸준히 성장하였다고는 하나 멀리서라도 ‘신(神)’이라는 존재를 목도하게 된다면 본인이 먼지만큼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기운을 눈치 챈 요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건…….”

엄밀히 따지면 마물에 가까운 로만 또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주인…….”

“다곤 룬델…… 그 자가 결국 일을 저지른 것 같군요. 빨리 가야할 것 같습니다. 프레이 군.”

“……이, 이 기운 대체 뭐죠? 인간이 이런 기운을 지닐 수가 있는 건가요?”

공포에 질린 프레이의 질문에 요한이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초월자들이 자신의 격을 진심으로 내뿜으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직접 느껴본 적은 없기 때문에 확답은 모르겠네요. 허나 제 개인적인 감상을 들려주자면 결코 인간의 것은 아닌 듯 하군요.”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이죠?”

“음……, 마신이 아닐까요?”

“마신……이요?”

“뭐, 그냥 제 추측일 뿐입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저희 눈으로 직접 보면 알게 되겠죠.”

“……네.”

‘자일…….’

프레이 본인 또한 아마 자신이 몸에 차고 있는 이 성물이 아니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神聖力)이 모든 해로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성물의 효과는 대단했다.

그녀의 원천속성은 번개와 생명.

두 가지 모두 아직 제대로 개화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성물과는 궁합이 좋았다.

그렇기에 두 기운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선천적 방어력이 굉장히 높아진 상태였다.

정신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도 지금껏 꾸준히 버티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럼 어서……. 잠깐.”

“왜 그러시죠?”

프레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흑기사.

갑옷에 새겨진 붉은 문양.

흑기사단의 단장이자, 가주인 다곤 룬델의 여동생인 아르미 룬델이었다.

그녀를 본 요한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아무래도 프레이 군 먼저 가야 할 것 같군요.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이 자를 처리하고 뒤따라 갈 테니 지금은 먼저 가시죠.”

프레이 또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군말 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몸 조심 하세요.”

“걱정 마시죠.”

그래.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누굴 걱정하냐.

라고 생각하는 프레이였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붉은 문양이 새겨진 칠흑의 갑옷을 입은 인물에게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직접 요한의 무력을 목격한 그녀였기에 자신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직감은 또 다른 문제였다.

허나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요한을 믿고서 앞으로 나아갈 뿐.

로만과 프레이는 그를 두고서 자일 지그하르트가 있는 지하를 향해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 * *

이질적인 기운.

몸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뇌리를 스치는 음성.

귀에서 솟구치는 핏물.

‘……단탈리온.’

과거, 안드로말리우스의 화신체와 조우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안드로말리우스가 완벽한 화신체로 강림한 게 아니었던 건가?’

서열 71위와 72위. 그들이 지닌 무력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마 화신체의 차이일 것이다.

그 당시 72교단에서 안드로말리우스를 소환하기 위해 펼쳤던 의식보다 그동안 다곤 룬델이 받쳤던 제물들이 더욱 뛰어났던 것.

다곤 룬델의 몸을 빌려 화신체로 강림한 단탈리온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아스모데우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오. 단탈리온 그 뺀질이 놈이 강림을 하다니… 이만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니 화신체와의 동화율이 높은가보군.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계약자여. 이제 어떻게 할 것이지? 네가 나와 레비타안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완벽한 화신체로서 강림한 마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녀의 말이 맞다.

저것은 인간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본능이 소리친다.

죽음이 다가온다.

양쪽 귀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마주했다. 시야가 붉게 물든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다곤 룬델, 아니 그의 몸을 빌려 현신한 단탈리온이 나를 바라본다.

그의 이마에 새겨진 세 번째 눈동자가 눈을 뜬다.

호기심과 탐욕이 가득 담긴 눈동자.

【고작 인간 하나 때문에 강림까지 하게 만든 건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굴러가는 눈동자가 다시금 나를 향한다.

【보통 인간은 아니군……. 이 기운…….】

이마 위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인다.

【아스모데우스(Asmodeus)와 레비아탄(Leviathan)인가……!】

짧은 순간.

나는 느꼈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공포의 감정을.

이 무지막지한 신도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자 놀랍게도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공포가 눈 녹듯 사그라 들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인간을 사도로 삼았다는 얘긴가 진정 사실이었나……. 거기에 레비아탄의 힘까지 지니고 있다니……. 어떻게 한낱 인간 따위가 최고위 마신을 두 명이나……. 그래. 이건 오히려 기회다. 두 마신의 힘을 지니고 있는 인간을 집어삼킨다면 내 격은 한 단계 더 상승할 수 있겠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 같은 것 따위는 손짓 한 번만으로도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스모데우스….’

【결국 그 선택을 한 것이냐? 저번에도 말했지만 지금 네놈의 정신은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권능을 남용한 대가인 셈이지. 또한 이블이 되어 소멸하게 될 경우 내 권능인 원시회귀가 발휘하게 될 지는 나조차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가 없다. 네가 지금 하려는 것은 권능과는 그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할 것이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마신에는 마신.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다. 지금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치가 어느 정도지?’

【10프로. 그 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아마 강림을 사용하게 된다면 십중팔구(十中八九) 마성에 사로잡혀 이블(evil)이 될 것이다.】

‘그 정도면 단탈리온을 제압하기에 충분한가?’

【제압? 충분? 하하하하하! 계약자여. 내가 누군지 잊었는가? 마신들의 왕인 바알에게 1000번 이상을 도전한 나 아스모데우스가, 7대 죄악을 담당하는 지옥의 일곱 마신 중 하나인 이 몸이 고작 단탈리온 따위를 제압하는데 충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은가!】

그 오만하고도 당당한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부탁한다. 아스모데우스.’

【그래. 계약자여. 그것이 네놈의 선택이라면 나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겠다. 네놈이라면 또 새로운 변수를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결정은 끝났다.

나는 지니고 있는 모든 마기를 끌어올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신강림(魔神降臨).”

그 말을 들은 단탈리온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머릿속에 깃든 마신서의 사본.

촤르르르륵.

저절로 넘어가던 페이지가 한 곳에서 멈춘다.

그곳에 새겨진 마신의 이름.

“아스모데우스(Asmodeus).”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자, 내 몸에 그녀의 진체(眞體) 일부분이 깃들기 시작한다.

신(神)의 강림(降臨).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체로서 그녀와 내가 동화되는 과정.

그녀가 내게 얘기했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10 퍼센트 정도가 한계다.

1 퍼센트….

2 퍼센트….

3 퍼센트…….

‘이것이 아스모데우스의 격(格)…….’

화신체로서 그녀의 극히 일부분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이 세계에 온 뒤로 다양한 형태의 고통들을 느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도 끔찍한 고통이 세포 단위로 퍼진다.

허나 더 이상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초월(超越).

인간을 넘어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등에 날개가 돋아난다.

칠흑처럼 검게 물든 두 쌍의 날개.

그 크기는 거대한 새를 연상케 한다.

또 하나의 감각이 개화된 듯 시야가 넓어진다.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는 곳까지 전부 눈에 훤하다.

하루 종일 떠들어대던 머릿속 음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잔잔한 호수처럼 정신은 맑고 고요하다.

머리 위에 떠 있는 검게 물든 원 형태의 고리.

타천(墮天)을 상징하는 증표였다.

자일 지그하르트이자, 아스모데우스인 존재가 다곤 룬델이자, 단탈리온을 바라본다.

자수정을 닮은 보랏빛 눈동자는 검게 물든 역십자의 형태가 되었다.

그의 입에서 남성과 여성의 것이 섞인 기이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오랜만이다. 단탈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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