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47화 (147/180)

147화

나조차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나의 기억.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긴장감? 아니. 불안감에 가깝다.

내가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 만약 그것이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느낀 위화감이라면?

머지않아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

“자일 지그하르트!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인가!”

하르만 백작에 저택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빠져 나오는 자일.

그의 머릿속에 들린 음성을 나 또한 들을 수 있었다.

【프레이 칼리고가 지금 라파엘 교단으로 이송됐다.】

두근. 두근.

얼핏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다 이질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화감이 드는 것은 바로 자일이 내게 추기경의 성물을 건네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의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게 증명된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뛴다. 불길한 생각이 든다.

“설마…….”

나는 잠자코 자일의 다음 행보를 지켜봤다.

가속 마법을 극한으로 다루는 그의 전신은 강렬한 보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순식간에 기숙사에 도착한 그 앞에 사감 선생인 벨라 트레이가 나타났지만 그녀는 자일에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딘가를 급하게 걸어갔다.

그녀의 주변에서 강렬한 화기가 일렁이는 것을 보며 그녀 또한 상당히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이 모든 게 정말 나 때문에?’

자일이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개X끼들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이거 놔!!!!”

“샬럿! 제발 좀 진정하십시오!”

가슴이 뭉클해지는 목소리.

샬럿이었다.

오랜 시간 그녀를 보아온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고압적인 그녀지만 지금의 그녀는 정말 진심을 다해 화를 내고 있었다.

이쯤 되니 불길한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이곳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이곳에서 나는 아마 라파엘 교단으로 이송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래도 한 가지 기분이 좋은 것은 나 한 명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화를 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나를 소중히 여겨준다는 것이 내심 기쁠 수밖에 없었다.

샬럿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자일에게 소리친다. 그 자존심 강하고, 고압적인 샬럿이 말이다.

특히나 자일에게 열등감과 승부욕을 느끼는 그녀가 자일의 옷깃을 붙잡고 부탁한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 따위를 과감히 버리고 행동하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리고 고맙다.

이든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자일은 침착한 듯 보였으나 손바닥에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강하게 움켜쥐어 상처가 생긴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주변 풍경이 뒤바뀌었다.

“이곳은…….”

눈앞에 있는 것은 자일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이 또한 자일의 무의식이 원하는 것일까.

라파엘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에게 전신을 구속당한 채 숲을 걸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

축 처진 고개 사이로 죽은 눈동자가 보였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눈동자.

이미 희망 따위는 없는 얼굴.

저게 나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다.

“……아버지에게 가야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내가 말을 내뱉자, 이단심문관들이 뺨을 후려갈겼다.

이후에도 계속 같은 일들이 반복됐고, 나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계속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사딘 룬델이 창고로 나를 불렀던 일.

그곳에서 나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동급생을 죽이게 되었고, 사딘의 함정에 빠져 흑마술사로 몰리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현실의 나는 청십자회에 도움으로 누명에서 벗어났지만 이 세계의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사딘의 함정에 빠진 채 아버지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듣고 어떻게든 빠져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일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런 운명을 맞이했다는 얘기인가…….’

으득.

이가 갈렸다.

사딘 룬델.

이미 죽어 없어진 쓰레기지만 이렇게 다시 그를 마주하니 너무 쉽게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쓰레기는 지옥에서도 끝나지 않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

그때.

누군가 나타났다.

라파엘 교단의 행렬을 가로 막는 미치광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그 사내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교수님?”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저 사람이 이곳에 온 것일까.

설마 나를 구하려고?

갑자기 머릿속에 드는 또 다른 생각.

그가 하르만 저택에 온 이유가 계속 의아했었는데…….

정말 나를 구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자신의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그가 그토록 정의롭고, 제자들을 위하는 인물이었느냐고 물으면 사실 곧장 대답을 할 수는 없다.

허나 이것 말고는 마땅한 질문도 대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 제자를 이교도라고 부르지 마라.”

충격적인 광경.

요한 교수는 단신으로 라파엘 교단의 성직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싸운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웃겼다.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

아카데미 교수가 대단한 자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가 정말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무수한 소문을 통해 명성이 자자하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살점이 튀고, 팔과 다리가 썰려 나가고, 인간들이 가축처럼 죽어 나가는 광경.

흡사 지옥을 보는 듯 했다.

시산혈해.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바다처럼 흩뿌려져 있다.

그 덕분에 나는 탈출할 수 있었고, 그대로 저택으로 향했다.

아마 아버지를 만나기 위함일 것이다.

저택으로 향한 나는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를 보며 울부짖었다.

칼리고 가문의 장녀로서, 차후 가문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가문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비통함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서러움이 섞여 있었다.

짐승처럼 비명을 토했고, 울부짖었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아버지를 찾아야만 했기에.

그렇게 발을 내딛었다.

계단을 올라 가주의 집무실로 들어선 나.

그곳에는 자일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오로지 천장에 목을 매달고 있는 아버지.

그 사내 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믿을 수 없다.

이것을 보고 있는 지금의 나조차도 믿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나고 자란 저택이며, 내가 사랑하는 가문의 모습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아버지.”

아버지가 정녕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인가?

아니. 아니. 절대 그럴 일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전부 그 쓰레기 같은 룬델 가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시체를 품에 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자일을 바라본다.

현실을 부정한다.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자일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아무것도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

옆에 있던 쪽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손을 뻗어 쪽지를 읽기 시작한다.

쪽지의 정체는 유서였다.

저쪽의 ‘나’와 이쪽의 ‘나’ 둘 다 처음 보는 내용.

살의가 끓어오른다.

글자를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감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가족들, 부모들, 자식들, 나아가 가문 전체를 멸문시키고 사지를 찢어발기고 싶다.

온갖 악의로 점철된 유서.

평생 제국을 위해 검을 휘두른 사내의 말로를 끝까지 쓰레기로 만든 그들을 증오한다.

그저 무의식 속에 방관자인 나조차도 이럴 지언데 당사자인 또 다른 ‘나’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자?마 숭¿신…배…, 제단……. 지버▒가아……? 사여¿을 죽람¿ 우…리 아…버지가……? 사였인?들고… 죽용¿다을”

알고 있다.

저 말투가 무엇인지.

저 상태가 무엇인지.

저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의문점들이 해결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이블(EVIL)이 되었던 것이다.

“하하. 내가 이블이 되다니…….”

또 다른 나의 입에서 소름끼치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악고¿라마¿ 괴▒이라¿고? 제국6을? 평?@$생 위해 휘두…른? 검을 사람6을? 그 누구$%^보다 백$*을 아…낀 사¿람을? 그런 사¿람?을 죽¿어?서 까지 모¿욕6하는 거야¿ 거야¿ 거야¿ 거야¿ 거야¿거야¿ 죽인 걸로9도 모자라 그 사6람의 한 평6생을 부¿정?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

완전히 이블로 변모한 나.

그러나 자일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그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

그의 머릿속에서 아스모데우스가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지만 자일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곧이어 들이닥치는 라파엘 교단의 이단심문관들.

거기에는 맥도웰 교수와 청십자회 소속의 크리스 발렌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내 예상을 맞추듯, 이블이 된 나는 그녀를 향해 돌진했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녀의 검에 썰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절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자일.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말 미친 생각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가 나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족감이 차오른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자신의 마기를 전부 드러낼 만큼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 수 있다는 사실이니까.

그렇게 자일은 자신의 목숨을 불태우며 죽었다.

청십자회를 거의 괴멸로 몰아 넣을 정도의 피해를 입히며 사망했다.

나를 위해.

이것이 내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세계, 정확히는 회귀 전의 세계였다.

나를, 가문을, 아버지를, 내 모든 것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자일 지그하르트였다.

그가 마신이든, 마신의 숭배자든, 흑마술사든 무엇이든 간에 결국 내 모든 것을 구원해준 것은 바로 그였단 말이다.

내 인생은 그의 희생으로서 피어난 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제는 됐다는 듯 주변 풍경이 다시금 뒤바뀌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그의 무의식이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며, 이 끝에는 자일 지그하르트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도 살기 위해 그런 겁니다.”

익숙한 얼굴들의 시체.

그들은 모두 지금껏 자일 지그하르트가 죽였던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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