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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55화 (155/180)

155화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라스.

턱을 붙잡혀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눈동자만 봐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네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그래. 그래. 이해해. 갑자기 이런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못 믿겠지. 나라도 못 믿을 것 같아. 근데 말이지. 안타깝게도 전부 진짜야.”

격하게 발버둥을 치는 라스.

-지랄하지 마 이 개새끼야!

“믿고 싶지 않겠지. 어떻게 너를 해야 네가 믿음이 생길까. 으음……. 그래! 내 목숨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는 맹약을 해줄게.”

어려울 거 없었다.

나는 서서히 마나를 끌어올린 뒤 허공에 글씨를 새겼다.

내 손끝을 따라 보랏빛 글씨들이 정갈하게 움직였다.

“나 자일 지그하르트는 지금부터 내 마나에 걸고 맹세를 하겠다. 지금부터 내가 뱉는 말이 거짓일 경우 모든 마나와 함께 생명 또한 잃게 될 것을 지금 여기서 맹세한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새겨놓은 글씨들이 광채를 뽐냈다. 이로서 맹세가 성립되었다.

“라파엘 교단의 성녀 리아는 남성이다.”

허공을 바라보던 라스의 두 눈이 서서히 커졌다.

그것을 본 나는 끓어오르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 그, 그럴 리가…….”

“자. 맞지? 이래도 아니라고 할 거야? 내가 말했잖아. 걔 남자 맞다니까?”

상당히 혼란스러운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라스.

“저, 정말 남…자라고? 아니 그럴 수가 없는데……. 부, 분명 내가 확인했는데…아무것도 없었단 말이다. 착각이 아니야…. 분명 여성이었는데…….”

원래부터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행복하다.’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저 고추의 숙주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렇기에 언제고 이 날을 고대해 왔다.

내 입으로 숨겨진 진실을 알려줄 그 날을.

“정확히는 성녀(聖女)가 아니라 성남(聖男)이라고 해야겠지? 라파엘 교단의 성녀는 지금껏 전부 대대로 ‘남자’였다.”

“……씨발.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분명 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심지어 관계까지 맺었단 말이다! 리아는 명백히 여성이다. 근데 어떻게 남자라는 거냐!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거짓말을 했는데도 맹세가 반응하지 않는 거야!”

“당연히 내가 거짓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

말 그대로다.

나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라파엘 교단의 성녀 리아 테일의 성별은 남성이다.

방금 얘기했던 것처럼 라파엘 교단의 성녀들, 그리고 성녀 후보들은 전부 남성이었다.

이게 뭔 개소리냐고?

안타깝지만 전부 진짜다. 이 모든 게 다 내가 짠 설정이니까.

어째서 이딴 병신 같은 설정을 짰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유추해보았을 때 어떠한 반발심리가 섞여있었던 거 같다.

허나 이제 와서 그딴 걸 생각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약한 의미라고는 진실을 알게 되어 표정이 썩어 문드러진 용사 라스님을 보는 것 정도일 것이다.

라스가 날 바라보는 눈빛에서 어쩐지 간절함이 느껴진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아벨 크로이.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제발 내게 진실을 말해줘. 리아 테일이 정말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거냐?”

“…남자면서 여자라고 할 수 있지.”

“말장난 하지마라!”

“하아……. 라파엘 교단은 주신 라파엘을 필두로 12명의 신을 섬기지.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라파엘은 인간들의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성녀를 선택하는 신 또한 라파엘이 아니지. 그 신이 누군지는 나도 몰라. 허나 그 신이 남자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남자아이를 좋아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라스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말 그대로다. 성녀를 선택하는 정체불명의 신은 남자아이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남자에서 여자가 된 아이를 좋아하지. 그게 본인의 취향인지, 아니면 어떠한 이유가 있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허나 아까도 말했듯 지금까지 선택된 모든 성녀들은 전부 과거의 남자였다. 애초에 여자아이는 성녀가 될 수 없어. 라파엘 교단 또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성녀가 될 자질을 지닌 후보들은 전부 남자아이 밖에 없다.”

“…….”

“후보가 된 아이들은 모두 성녀가 될 준비를 하지. 고환을 잘라 남성성을 거세하고, 머리칼을 제외한 전신의 모든 털들을 깔끔하게 민다. 그리고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같이 몸을 닦지. 물론, 평범한 물이 아닌 성수(聖水)다. 그렇게 자격을 갖춘 아이들 중 가장 그 빌어먹을 신의 마음에 든 아이가 성녀가 된다.”

“……그, 그게 리아라고?”

“그렇지. 성녀로 선택 받은 아이는 성녀가 되었다는 증표로 신의 성흔을 받아들이게 되는 데 그걸 받는 순간, 육체 또한 완전히 여인의 것으로 변모하게 되지. 그렇기에 생물학적으로도 완벽한 여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성흔이 사라지게 되면 다시 남성으로 돌아온다더군.”

“신이 내린 성흔이 사라질 수가 있다고?”

“왜 불가능 할 거라 생각하지? 용사인 너도 신의 가호를 두 개나 회수당하지 않았나? 같은 이치인 거지. 새로운 성녀가 생기거나 혹은 신 본인의 변심으로 인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허공에 새겨진 글자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나는 여전히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라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의 얼굴은 처참한 상태였다.

본인이 나름대로 사랑했던 상대가 사실 남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충격은 아마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켜본바 그는 그 누구보다 여자에 환장한 철저한 이성애자니까.

뭐 어차피 지금 몸은 여자니까 사랑만 있다면 전부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뭐든 이해해줄 수 있는 거잖아?

아님 말고.

뭐, 어차피 리아한테도 버려진 거 같긴 하지만.

“……미쳤어. 신들도 라파엘 교단도, 너도 전부 다 미쳤어.”

“그걸 이제 알았냐?”

들을 만한 얘기는 다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죽여 버릴까 했지만 아직은 좀 더 이용가치가 있을 거 같았다.

거기에 나름대로 관찰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그렇기에 죽이지는 않고 대신 종으로 부려 먹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의 목뒤를 붙잡고 책상에 머리를 강제로 젖혔다.

그리고는 마기를 끌어올린 뒤 그의 머릿속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끅!”

정신을 조종하는 간단한 흑마술.

머릿속에 스며든 마기가 각인이 되어 내 명령에 강제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

성직자를 찾아가면 해주를 할 수 있겠지만…….

“너는 방금 나와 했던 대화를 전부 잊는다.”

아마 자신의 머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라스가 멍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나는 품에 있던 주머니를 책상 위에 던졌다.

“이건…….”

“당분간 그걸로 생활해라. 또 도박하다가 전부 잃지 말고.”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여관 밖으로 나갔다.

뒤쪽에서 ‘고, 고맙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에게 펼쳐질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옥 같을 텐데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은 어쩐지 미안하지 않은가.

* * *

여관을 나온 나는 하르만 저택에 도착했다.

로즈의 안내를 받아 가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 뢴달 하르만이 상당히 피곤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왔나.”

“그래.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누구 때문에 말이지.”

“이번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고맙다. 네가 힘을 써준 덕분에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어.”

“……됐다. 잔금이나 치러라.”

“하여간 돈 귀신이라니까.”

서로를 마주본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원수와도 같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해서 그런지 전우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내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맥도웰 학장에 대한 정보는 좀 찾았나?”

뢴달 하르만이 고개를 저었다.

“학장의 수색에만 푸른달의 인원 3할 이상을 투자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정보가 없군. 아무리 철두철미한 인간들이라 해도 살수 출신이 아닌 이상 아주 미세한 흔적이라도 남기는 법인데……. 이 늙은이는 그 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애초에 그런 인간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지. 아마 그의 뒤를 봐주는 조직이 있을 것이다.”

“마신숭배자들의 연합. 게티아 말인가?”

“그래.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지. 어쨌든 조금이라도 단서를 찾으면 곧장 보고해주길 바란다.”

“알겠다.”

내가 이토록 맥도웰을 애타게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개새끼를 찢어 죽이기 위해서.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회귀 전에 그 개자식이 나와 프레이에게 했던 짓들을.

또한 프레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번 회차에서도 그가 프레이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처음부터 아카데미의 학생인 우리를 보호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을 테지. 기다려라, 맥도웰.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고문해주마.’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뢴달이 나를 불렀다.

“아 잠깐. 그러고 보니 아직 하지 않은 얘기가 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 않은 얘기? 뭐지?”

뢴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하는 그였기에 더욱 흥미가 갔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 거지?’

“네가 들으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은 얘기다. 요한 크루이프 교수가 이번 일로 인해 근신을 받았다지?”

“……그래. 나를 돕다가 의도치 않은 징계를 받으셨으니 그에 마땅한 보상을 해드려야겠지.”

“그건 뭐 네가 알아서 하시고 어쨌든 그의 부재로 인해서 너희를 담당하게 될 임시교수가 새로 온다고 하지 않던가?”

분명 그런 애기를 들은 적이 있던 거 같다.

“그랬던 거 같다. 그게 뭐 어쨌다고 호들갑이지?”

“그 임시교수라는 인물이 누굴 거 같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로만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 따졌다.

“대체 뭐가 그리 웃긴 건데. 혼자만 히죽거리지 말고 나도 좀 알자.”

“누군지 알게 되면 너도 웃게 될 거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해라.”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온다.

“린 메이지.”

잠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누구라고?”

어이가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린. 메. 이. 지.”

“린 메이지…? 용사 파티의 마법사…? 메이지 공작가의 장녀…? 붉은 머리 미친년…?”

“그래. 그 린 메이지다. 너의 옛 동료이자 메이지 공작가의 장녀인 그 린 메이지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썅…년…. 아니, 린 메이지가 임시 교수로 온단 말이지?”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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