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새들은 비틀린 폐곡선으로
(*2/3 연참)
21
흰 수염 해적단 1번대 대장 무단이탈 열흘 째.
마술사의 공방이 닫힌 지도 그쯤 됐다. 바깥에선 마지막 겨울바람이 불었다. 만물에게 깨어나라 독촉하는 삭풍이었다.
실내 공기가 텁텁하다. 마르코는 일어나 환기했다. 옆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은 이 대해적의 무표정이 상대를 긴장시킨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그 평은 좀 달랐을 것이다.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마르코가 잠든 손끝마다 입을 맞췄다. 투쟁이 곧 삶인 자라 믿기지 않을 만큼 경건했다.
적어도 표면상으론 문제없던 며칠.
자다 깨는 일이 잦지만, 테사는 점점 안정되어갔다. 그들은 이마를 맞댄 채 느린 대화를 나누고, 체온에 기대 책을 읽고, 서로가 해준 요리를 먹으며, 같은 욕조에 들어가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다.
몇 시간이고 키스만 나눌 때도 있었고, 날이 샐 때까지 열락에 젖은 새벽도 있었다. 개인이 사라지고 우리만 남은 나날. 행복했고…… 딱 그만큼 위태로웠다.
계속 이럴 수 없음을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 잘 알기에.
마르코가 잠자코 테사를 내려다본다. 큰 손이 살결을 쓸었다. 근육 하나 없는 팔, 굳은살 없는 손.
이 해적은 오라힐리 테사의 과거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서류 상 기입된 단순 정보가 아는 전부였다. 다만 때때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짐작 가능한 사실이 있다. 견문색까지 출중한 대해적에겐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아봤다. 평생 싸움 같은 건 겪어보지도 않았을 거라고. 귀족 출신인가 싶다가도, 어딘가 달랐다. 아예 악의와 투쟁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동떨어진 딴 세상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아마 그래서 더더욱. 가능하다면 깊게 엮이지 않길 바랐고, 불가하다면 숨겨 지키길 원했다. 순진하고 안일한 마음임을 알지만, 진실로 마르코는 그러고 싶었다. 되도록 길게 어쩌면 끝까지.
이런 소망조차 최초여서. 어디에,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될지 이젠 종잡을 수도 없다. 최근 테사가 현실에서 도피하고, 그를 도피처 삼고 있음을 알아도 만류하지 않은 건 전부 그 때문이다. 마르코에겐 저지할 자격도, 능력도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진창으로 헤집어질 뿐.
매순간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사납게 일었다. 테사, 지옥에 살 놈은 구원으로 삼는 게 아니다. 널 파괴하고, 네 삶을 망치고 있는 게 누군지 아직도 모르냐고.
끝내 나오지 못한 말들이니 누굴 원망할까. 그들이 손에 쥔 것은 낭떠러지 위 평화이며, 사선 앞 키스였다. 감싸 안는 것 외 해적은 무엇도 택할 수 없었다.
뜬눈으로 또 한 번의 새벽이 지난다. 먼 동이 트고 있었다. 시선을 거두며 마르코가 침대를 빠져 나왔다. 문 근처로 가는 곳곳 시들어버린 식물들이 보였다.
이른 아침,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 방문인은 문 앞에 서있기만 했다. 노크가 필요 없단 걸 안다는 의미다. 마르코도 묻지 않고 문을 열었다.
“……네가 왔구만.”
“예상했지 않아?”
“아버지는?”
“그것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거고.”
들어가도 되나? 손짓으로 물었지만, 마르코가 고갤 젓는다. 눈치껏 상황을 읽은 삿치가 혀를 찼다. 좀 의외네. 그렇게까지 버거워할 줄이야. 하긴 민간인의 한계를 해적이 짐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다소 피로한 기색으로 마르코가 문가에 기댔다. 삿치 앞에서까지 의연할 필요 없었다. 둘 사이 익숙한 침묵이 돈다. 그들은 동료이기에 앞서 친우고, 형제였다. 많은 말이 무가치했다. 설령 그게 한쪽이 무단이탈 같은 죄를 저지른 상황이라 해도 말이다.
“곧 복귀하지요이.”
“최대한 빨라야 될 거야. 애들한테 둘러대기도 한계가 있거든.”
마르코가 끄덕였다. 감사 인사는 따로 없다. 선장의 처벌과 별개로 마르코 또한 언제든 삿치를 위해 똑같이 할 것이므로.
온 것처럼 4번대 대장은 조용히 떠났다. 해무가 짙다. 멀어지는 그림자를 한참 보다가 마르코는 뒤 돌았다.
지상에는 유통 기한이란 게 있다. 말로 뱉는 영원이 얼마나 무효한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반증이었다.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은 사그라짐이 약속되어 있다. 이 나날 또한 그에 속했다.
오래된 와인 병을 마르코는 내려둔다. 방금이 마지막 한 잔이었다.
“배로 돌아가 봐야겠어.”
청포도 한 알을 집어들던 테사의 손이 멈칫했다. 금방 태연한 표정을 꾸며냈으나 마르코가 못 볼 리 없었다.
“며칠 째인가요?”
“열흘.”
“그렇군요.”
잘못 골랐는지 맛이 시큼했다. 고가의 샤인머스캣 종이라도 다 좋을 순 없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열흘이란 말을 곱씹는다. 짧게도, 또 길게도 느껴질 만큼 애매했다.
마르코가 시가 끝을 잘라냈다. 진정 효과가 있는 마술사의 시가는 요 며칠 새 그들이 종종 태우는 것이기도 했다. 연기에 짙은 체리 향이 묻어난다. 재떨이 위, 재들이 쌓이고 쌓인 뒤에야 테사가 말했다.
“만약에요. 당신이 해적이 아니고, 내가 마술사가 아니었다면 뭐가 달랐을까?”
여러 가지가 함축된 물음이었다. 현실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어떤 힘도 지니지 못한다. 알면서도 테사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 남자를 독차지할 방도가 있을까 궁금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에게만 보이는 마술사의 연약한 민낯은 이 해적의 속을 시리게 할퀴곤 했다. 마르코는 생각한다. 아주 많은 게 달랐겠지.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대신 반문했다.
“그게 아닌 너와 나를 상상할 수 있나?”
테사가 흐리게 웃었다. 아니요. 시가 냄새로 가득한 실내, 베어 무는 청포도는 맛이 꽤 씁쓸했다. 잠깐의 침묵 다음 마술사는 다녀오라고 말했다. 긴 잠에서 깨어난 현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젊은 파블로는 흰 수염 해적단 1번대 소속 막내다.
성장한 남자들은 모두 해적이 되는 무법지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삶을 고려해본 적 없었다. 또 위대한 항로의 해적들 대다수가 그러하듯 사황의 위대함을 지근에서 겪으며 자란 청년이었다.
특히 흰 수염. 파블로의 고향 무법지에는 그들 소유 카지노가 자리했다. 거대한 수익을 창출해 거의 금광과도 다를 바 없었으나 누구도 탐내지 않는 곳이었다.
수금을 위해 해적단에서 방문할 시기가 되면, 어떤 파락호나 무뢰배도 꼬릴 말았고 큰돈을 잃은 자도 잡음 한 번 내지 않았다. 당시 카지노에서 잡일부로 일했기에 파블로는 잘 알았다.
언젠가 바다에 나가야지, 막연하기만 하던 계획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낸 것도 다 그때부터였다. 거들먹거리고 내세우지 않아도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의 지배자들.
저런 해적이 되고 싶다. 동경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1번대 대장 마르코는 파블로가 그린 이상 그 자체인 사내였다.
첫 인상은 굳이 더듬지 않아도 생생하다. 상대의 강함조차 인지 못하는 머저리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매우 드물지만, 카지노에도 종종 나타나서. 에드워드 뉴게이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시작된 난동은 단 한 명의 등장으로 정리되었다.
눈부시고 어떤 색보다 선명하던 청염. 피워낸 불꽃을 정리하며 마르코가 말했다.
‘너 제법 재능이 있구만. 이런 데보다는 바다가 어울리겠는데.’
건조한 말투였지만, 파블로의 심장은 격동했다. 쥔 검에서 힘도 빼지 못하고 그저 넋을 놓아 바라봤다. 무료하게 내리뜬 눈이 제안했다.
‘위대한 이름을 등에 업어보고 싶다면 따라와. 애송이.’
마르코가 뒤 돌았다. 상처 하나 없는 등이었다. 그의 청염이 휩쓸고 지나간 곳엔 감히 두 발로 선 자가 없었다. 현존하는 대해적이 쓰러진 패잔병 더미를 지나쳤다. 더없이 일상적인 걸음으로.
이게 <진짜> 해적. 홀린 듯 파블로는 달려 뒤쫓았다. 그때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청년의 대장은 완벽했고, 거기엔 의심 한 톨 섞인 적 없다.
보고 있으면 아득해 파블로는 저도 모르게 묻기도 했다.
‘어떻게 마르코 대장 같은 사람이 있는 거죠?’
같은 1번대 크루들이 씩 웃었다. 앞선 등을 쫓는 눈빛들. 모두 파블로의 것과 닮아 있었다.
‘마르코 대장이잖아.’
어떤 신뢰도 과분하지 않은 사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의 긍지를 맨가슴에 새겨도 조금도 버겁지 않은 남자. 파블로는 지금 그 등을 바라본다. 갑판 위로 마르코가 오르고 있었다. 열흘 만에 복귀였다.
옛날부터 파블로는 눈치가 빨랐다. 사람 간 감정을 읽는 데에 탁월해 아무도 모르는 진실을 알아채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더욱 의문인 것이다. 정말로 마르코 대장 같은 사람이 고작 사랑에 빠졌다고?
그것은 실체도 없는 주제에 모든 것을 앗아 몰두하도록 한다. 저런 대단한 사내가 겪어선 안 될 일이다. 대다수 크루들이 이 열흘간 부재가 아버지 명에 의한 것이라 알고 있지만, 파블로와 몇몇 1번대들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떠나는 대장은 조급했고, 아버지가 아시냐는 리암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눈빛. 파블로는 선내를 향하던 마르코의 표정을 기억한다. 분명 그건…… 죄악감이었지.
“저기 유세프. 우리 대장이…….”
“씁, 아무 말 마. 파블로.”
유세프가 고갤 가로 저었다. 은연중에 부대장으로 여겨지는 유세프는 마르코를 가장 오래 따른 최측근이었다. 비스타와 잠깐 대화를 나눈 마르코가 함께 선내로 들어간다. 그 뒷모습을 한참 응시하던 유세프가 중얼거렸다. 섣부르게 생각할 필요 없어.
“답은 대장이 낼 거다. 우린 따르기만 하면 돼.”
1번대는 각자 맡은 일로 돌아갔다. 그들의 대장은 등 뒤 부하들과 형제들이 있는 한, 틀린 길로 앞장서지 않는다. 그게 유세프가 아는 전부였고 또 그걸로 충분했다.
본대 인원만 천육백 명에 육박하는 대집단. 세간에선 해적 주제에 가족 놀이를 한다며 규율도 가벼우리라 착각하지만, 틀렸다. 이 규모를 통솔하기 위해, 또 긍지와 인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만큼 선내 기강은 엄격했다.
수평 관계인 대장들을 제외하면 하극상은 금지되었으며 선장의 룰을 어길 경우, 수위에 따라 부자의 술잔을 거두는 것에서부터 처형까지 선고되곤 했다.
대기가 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른다. 마르코는 저항하지 않았다. 가진 두 무릎은 애초에 눈앞 한 사람에게만 꿇려야 옳았다. 절대적인 선장이자 하늘보다 위대한 아버지. 흰 수염이 아들을 내려다봤다.
“마르코, 재밌는 일을 벌였더구나.”
패왕색 패기는 굳이 이쪽을 향하지 않아도 공기부터 진동한다. 목조로 된 선실 벽 일부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그래. 변명은?”
“없어요이.”
감내하는 마르코의 표정은 담담했다. 뉴게이트가 패기를 풀었다. 지진을 닮은 웃음소리가 선내를 울린다. 일과 별개로 아들의 고집이 싫지만은 않았다.
마르코가 일어났다. 독대는 아니었다. 술통을 들이키는 선장 옆으로 두 명의 대장이 더 자리했다. 부선장 격인 마르코의 부재 시 권한을 양도받는 비스타와 이 일의 가장 밀접한 관계자인 삿치였다.
“수습은 저 둘이 했다. 알고 있겠지만.”
“……그 불사조 마르코가 이성을 잃고 이탈했다고 소문낼 순 없으니까요. 뭔 얘기가 돌지 어우,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적어도 크루들 없는 데서 떠날 양심은 없었냐 삿치가 이죽거린다. 이탈 직전 마르코의 견문색에 잡히던 기척은 그였고, 정황을 파악하자마자 삿치는 그 즉시 입들을 단속했다. 기색이 하도 심상찮아 찝찝해 찾아보길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애 좀 먹었을 것이다. 비스타가 덧붙인다.
“어차피 같은 목적지였기에 망정이나, 마르코. 경솔했다. 네 위치가 어떤 자리인지 따로 일러줄 필요는 없을 텐데.”
일개 선원과 대장의 책임이 같을 순 없다. 많은 것을 책임지는 만큼 처벌은 보다 분명해야 했다. 이 자리에 두 대장이 동석한 이유도 그것이다. 아들들에게 무른 아버지가 혹여나 문책 없이 넘어갈까봐.
그 모든 걸 아는 마르코는 그저 선장의 처벌을 기다릴 뿐이다. 럼주가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만이 울린다. 술통 하나를 다 비운 흰 수염이 던지듯 내려두었다.
“무단이탈은 불문에 부친다.”
“…….”
“다만 내 부선장이 계속 이런다면 제법 곤란하겠지. 일단은 근신이다, 마르코. 이번 달 네 몫의 정산도 제하마.”
뉴게이트가 다시 침묵했지만, 얘기가 끝나지 않았음은 모두가 알았다. 물끄러미 마르코를 보던 흰 수염. 이내 나머지 둘에게 자릴 비키라 일렀다. 이 다음부턴 선장과 선원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란 뜻이었다.
해안가로 밀린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선체와 절벽으로 부딪친다. 흰 수염이 명했다. “아들아, 내 눈을 봐라.” 말보다 눈빛의 무게를 알고, 그 눈에 담긴 것 또한 읽을 줄 아는 자들. 부자의 시선이 마주친다.
보다 깊어졌고, 보다 무르익었다. 마르코가 맞닥뜨린 큰 굴곡이 흰 수염에겐 보였다.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거치는 순간, 결과가 어쨌건 이전과 동일한 삶을 살아가기 불가능했다.
“이거, 보기 좋게 흔들리고 있구나.”
“웃으실 일이 아니구만. 두려울 정도라면 믿으실까.”
“믿는다. 사람 아니냐.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갈라보면 속은 다 똑같이 여린 것이 바로 인간이지.”
“…….”
“마르코, 삶이 야속하다 여기면 끝없을 것이다. 원망과 회한은 발자국일 뿐 길이 되어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거대한 손이 아들의 머릴 덮는다. 어깨에서 힘이 빠짐을 마르코는 느꼈다. 이 노련한 해적에게도 이 모든 일들이 처음이다.
허나 애석하게도 바다는 인내심이 없고 해적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언제까지고 멈춰있을 수만은 없었다. 흰 수염은 파도에 귀 기울인다. 세상은 이 순간에조차 흐르고 있었다.
“예상보다 빠르긴 해도 언젠가 찾아올 파도인 걸 너도, 나도 알고 있었지.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소란스러운 시대일수록 걸물의 출현을 기다리는 법.”
꼿꼿이 세운 허리와 올곧고 영민한 눈빛. 언제 시류 중심에 올라도 놀랍지 않을 인물임을 그들뿐만 아니라 시대 또한 모르지 않을 터.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잠시 마술사를 떠올리다가 말했다.
“마지막 처벌은 숙제다. 반드시 답을 내야 됨을 명심해라.”
분위기가 일변한다. 마르코의 뒷목이 서늘해진다. 엄정한 시선으로 흰 수염이 내려다봤다. 그의 선장이 선언했다.
“사흘 뒤 출항한다. 바인브릿지 타운에서의 정박은 이걸로 끝이다.”
“……아버지.”
“원래 내 몫이었을 지병. 애써 완치까진 필요 없다. 마술사의 호의는 이미 넘치도록 받았지. 그걸 갚기는커녕 급류에 끌어들였으니 책임져야지 않겠느냐. 너희의 선택지는 두 개다. 마르코.”
“…….”
“내 배에 비전투원으로 타거나.”
“…….”
“그 자의 인생에서 우리가 비켜주거나.”
아직 세계 정부의 답은 없지만, 머지않을 것이다. 신비한 재주를 부리며 불로불사를 언급한데도 모자라 이젠 폭풍과 천둥까지 불러 일으켰다. 사황의 보호민이라는 수식어만으론 턱없었다.
게다가 흰 수염 해적단에겐 늘 해군의 감시가 따라다닌다. 그들 지척에 머문다면 마술사의 행적은 언제나 노출된다고 봐야 됐다. 원치 않아도 휘말리는 일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더 이상 어중간함은 불가능했다. 아예 품에 안거나 혹은 멀어지는 것. 선택지는 극단적으로 축소됐다.
굳은 마르코의 안색이 밀랍 같다. 흰 수염은 차오르는 그 번민을 눈에 담았다.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
마르코가 만류하는 시선으로 제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이들 부자 모두 그게 무얼 가리킴을 알지만, 또 절대 꺼내선 안 될 얘기였다.
거산 같은 뉴게이트에게선 진의를 읽어내기 힘들다. 울리는 목소리가 쌓인 세월만큼 묵직했다. 마르코, 내 아들아. 이것만 잊지 말거라.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넌 영원히 내 자식이다.”
가볍지 않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근신을 명받은 1번대 대장이 제 선실로 복귀했다. 선실 안은 파도 소리 외 적막했다. 심연 같은 밤이 드리운다. 마르코는 그 속에서 몇 시간이고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불 꺼진 선실에서 이 남자가 무얼 생각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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