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내가 해치운다는 거였나?”
이든이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며 내게 물었다.
“네 답은 뭐지?”
선택해.
텅 빈 눈동자가 나를 시험했다.
보통의 아이처럼 엉엉 울고 불며 ‘거짓말을 해서 죄송하다’고 진실을 고백하게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보통 아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불은요?”
“뭐?”
“보육원에 난 불은 꺼져써요? 다친 사람은 없꾸요?”
“지금 그걸 걱정할 땐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당장 본인이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는 마당에 다른 이의 목숨이나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고작 네 살짜리 어린애가.
“먼저 대답해 쥬시면, 저도 질문에 대답 드릴게요.”
조금 당돌한 질문에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이든이 입술을 열었다.
“불은 껐다.”
“백쟉밈께서 꺼 주신 거예요?”
“그저 산불을 막으려고 했던 거니까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마라.”
“감사함미다!”
우렁찬 내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던 그가 말을 이었다.
“……부상자는 잠시 혼절하거나 찰과상을 입은 사람 정도다.”
다행이다, 모두 무사하구나.
내심 졸이고 있던 마음이 놓이면서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네 대답을 들을 차례다.”
그가 비스듬히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저는 오늘 죽지 않아여.”
“어째서.”
“백쟉밈께서는 저를 죽일 생각이 없으시니까여.”
“그저 네 바람이 아니고?”
“하지만 이미 마음을 들키셨짜나요.”
손가락을 뻗어 엉망진창이 된, ―한때는 나를 죽이려 한 살수였던― 것을 가리키자 그의 시선이 함께 그것에 머물렀다.
‘어떤 이유든 상관없어.’
그가 나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의미이니까.
“착각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단지 우연히 마주친 쓰레기를 치운 것뿐이니까.”
“백쟉밈께는 댠지 우연일 뿐이지만, 저에게는 기적이여써요.”
“기적, 이라…….”
쓸데없이 허울 좋은 말이군.
낮게 중얼거린 그의 혼잣말이 밤바람을 타고 내게 전해졌다.
‘가족들 생각이 난 걸까?’
무표정한 얼굴이 서글퍼 보였다.
그가 나만 했을 때, 간절히 기적을 바랐던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들이 살아나길.]
[부디 제 가족, 친구, 동료들을 학살한 인간들이 벌을 받기를.]
아마 그렇게 빌었더랬지.
하지만 어린 이든의 염원은 하늘에 닿지 못했다.
진창에 곤두박질친 염원은 증오와 복수를 낳았고, 그는 마음의 문이 닫힌 어른으로 자라났다.
그런 이든의 서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일까.
피를 잔뜩 뒤집어쓴 섬뜩한 모습인데도…….
어쩐지 쓸쓸해 보여.
“백쟉밈께 기적이 되어 드릴께여.”
작게 속삭이듯이 뱉은 말에 그의 눈동자가 내게 고정됐다.
“네가, 나의?”
그가 낮게 코웃음을 쳤다.
가벼운 웃음은 금세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만이 남았다.
“인간들은 어떻게 그리 하나같이 다 똑같은지.”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원수를 떠올리기라도 했나 보다.
내내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에 분노가 일렁였다.
‘거슬려.’
이든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대로, 인간인 나를 죽이겠다고 결론 내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내게는 믿는 구석이 생겼으니까.
“각하! 아니 되옵니다!”
타이밍 좋게 밤톨만 한 것이 펄쩍 뛰어올랐다.
다람쥐 수인, 토리였다.
그가 순식간에 나를 붙잡고 있는 이든의 손 위로 올라탔다.
“뭐 하는 짓이지. 토리 무크.”
“주, 죽이실 겁니까?”
토리는 양팔을 벌린 채로 앞을 막아섰다.
“뜻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는 바람 앞의 갈대처럼 바들바들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켜라.”
“소인…… 소인이 이분께 생명을 빚졌습니다!”
“비켜.”
냉랭한 명령은 거둬지지 않았다.
솜털만큼 가벼운 토리는 결국 쫓겨나듯 바닥으로 착지했다.
“어째서 살린 거지?”
곧장 날아온 질문에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신께 기도가 닿았나 보네. 내게도 기회가 온 걸 보면.’
소설에서 읽었던 설정이 선명하게 생각났다.
<수인족은 반드시 제 은혜를 갚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체크메이트.’
내게도 살길이 열렸다.
평범한 에덴 제국의 아이였다면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창고에서 마주친 다람쥐를 잔혹하게 사냥했을 테지만, 나는 그를 살려 보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그저 우연임미다.”
“우연?”
“어떤 생명이든지 모두 소즁하자냐요. 우연히 도움이 필요한 다람쥐를 만난 것뿌니에요.”
대답이 끝나고 침묵이 감돌았다.
“…….”
나는 이든의 표정과 생각을 읽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봤다. 곧잘 대답을 내놓던 두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표정은 미묘하게 균열이 생겨 있었다.
……통한 걸까?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줄곧 지켜보고만 있던 리챠드가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한 방 먹으셨군요.”
“…….”
“죽이자니 토리 무크가 빚을 진 아이라 찝찝하실 테고. 그렇다고 유일한 목격자를 그냥 둘 수도 없으실 테고……. 하면 이 일을 어쩌신다.”
“시끄럽다, 리챠드.”
“이렇게 하는 건 어떠십니까?”
리챠드가 슬쩍 나를 안아 올렸다.
“이 아이에게는 부모가 없고, 각하께는 마침 아이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어라라? 잠깐만.
리챠드의 옆구리에 매달려 대화를 잠자코 듣던 나는 상황 파악을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세계관 최강 악당이 나를 입양한다고?’
그거 완전…….
‘최고의 빽이 생기는 거잖아?!’
헉, 하고 숨을 집어삼켰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어떠십니까, 이 아이를 입양하심이?”
호들갑스러운 권유는 계속됐다.
물론 이든은 쉬이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각하의 얼굴을 보고도 울음을 터트리지 않는 아이는 이 아이가 유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거든?’
나는 기왕 하늘이 준 기회를 제대로 잡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저를 입양해 쥬세요, 백쟉밈!”
이든의 고막에 때려 박을 기세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저를 입양해 쥬세요……!
저를 입양……!
저를……!
용기를 낸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프리마 숲속에 울려 퍼졌다.
“자, 어떤 선택을 하실 겁니까.”
나와 리챠드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동시에 이든을 바라봤다.
“…….”
그는 대답 없이 휙 돌아섰다.
이윽고,
“챙겨.”
고저 없는 음성이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헐, 진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오오!”
“리챠드, 호들갑 떨지 마라. 그저 정보 수집을 위해서일 뿐이니까.”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이든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각하, 같이 가요!”
나를 품에 안은 리챠드가 부지런히 이든을 뒤따랐다.
잔뜩 부푼 마음이 날아가지 않게 꼭 붙들고 있는데, 앞서 걷던 이든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식량이 부족해질 때도 있겠지. ……뭐, 그래 봤자 큰 도움이 되겠냐마는.”
아. 뒤이어지는 말만 안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 * *
다음 날, 나는 낯선 곳에서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우웅…….”
폭신폭신한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던 나는 문득, 천장에 그려진 화려한 벽화를 보고 정신이 들었다.
“!”
초승달 아래의 사자 그림.
익히 알고 있는 라이언하트 가문의 상징이었다.
“맞다. 나 어제 입양돼찌.”
진짜 꿈이 아니었네.
태어나서 이렇게 넓은 방에서 자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재력 하나는 끝내주네.’
보육원에서는 늘 작은 방에 서너 명씩 모여 단체 생활을 했었는데.
아직은 가구가 없어 침대 외에는 휑한 방이었지만, 그마저도 내게는 설렘이었다.
“그럼 이제 내 이름에도 성(姓)이 생기는 곤가?”
루나 라이언하트.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조심스레 속으로 읊었다.
아직 임시 보호일 뿐이지만, 라이언하트 저택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종종 보육원에 아이를 보러 오는 귀족들은 내가 입양 가지 못할 거라 했었는데.’
그들은 입양할 아이를 등급 먹일 때, ‘고귀한 핏줄’ 혹은 마력이나 신성력 같은 ‘이능’을 중시했다.
그 평가대로라면 귀족가의 입양아 후보로서 내 가치는 F등급.
그들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입양 안 하느니만 못한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선택됐다.
그것도 근래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라이언하트에게!
심지어 멀지 않은 미래에 라이언하트 가문은 에덴 제국의 세도 가문 세 곳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난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씀!’
물론 아직 몇 가지 정식 절차가 남아 있었다.
에덴 제국의 입양 절차는 꽤 복잡한 편이라, 단순히 보육원에서 입양할 아이를 데려온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처럼, 임시 보호 기간 동안 관공서에 제출할 입양 신청서와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그게 무슨 헛소리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문 너머에서 이든과 리챠드의 대화가 들렸다.
“헛소리이길 바라시는 심정은 이해됩니다만, 안타깝게도 비스의 법이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그놈의 법이라는 단어 없이는 살 수는 없는 건가?”
“원래 그런 종족들 아닙니까. 작은 것 하나에도 틀을 정해 놓고, 소수의 권력자들이 통제하는 걸 좋아하는.”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들어.”
“어찌 됐건, 입양 필수 조건 중 하나라고 하니까 싫으시더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점점 가까워진 말소리가 끊겼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님.”
“굿모닝.”
밝게 인사를 건넨 리챠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간밤에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셨나요?”
“녜. 폭신폭신해서 좋아써요.”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왠지 모르게 편하게 느껴지는 리챠드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심결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아차차. 완전 까먹고 있었다.
“안뇽히 주무셨어요?”
“…….”
뒤늦은 인사에 기분 상한 걸까.
그가 들은 체도 안 하며 반대편으로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어…… 음…….”
덕분에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내게 리챠드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각하께서 모닝 뽀뽀를 기대하시는 모양입니다.”
“녜?”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모닝 뽀뽀라니?’
목석같이 굳어 버린 나를 보며 리챠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리챠드. 쓸데없이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이든이 리챠드를 나무랐다.
그 작은 소리를 어떻게 들었데.
수인족의 청력이 인간보다 몇십 배 뛰어나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이상한 것이라뇨? 지극히 큰 오해십니다만. 그저 앞으로 각하와 아가님의 관계를 위해 작은 팁을 드린 것뿐입니다.”
“필요 없다.”
“영유아 때가 아빠와 딸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 합니다.”
리챠드가 전문 육아 서적까지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 말이 통하긴 할까?
내심 이든의 반응이 궁금해서 슬쩍 곁눈질로 표정을 살폈다.
“상관없는 일이라니까.”
“모르는 일입니다, 각하.”
이든의 이마에 깊게 홈이 파였다.
역시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일 줄 알았다니까.
“두 번 말하진 않는다. 모닝 뽀뽀 따위 필요 없어.”
“분명 각하께서 오늘 발언을 후회하실 때가 오실 겁니다.”
“한 번만 더 이상한 소리를 했다가는 네 장례식을 치러 주도록 하지, 리챠드.”
살벌한 경고에 리챠드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거야 원, 입양 와서도 생존기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네.’
에휴.
두 남자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느 틈엔가 내 옆으로 다가온 리챠드가 지치지도 않고 속삭였다.
“각하께서 낯을 가리시는 중이니 너무 상처 받진 마셔요.”
“우응, 녜.”
아무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