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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104/145)

104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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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르 신관의 진단 결과 로제타는 아주 건강했다. 아직 상처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전부 경미한 수준이었고, 계속 치유를 받으면 며칠 내로 없어질 것이라 했다.

16549584614333.jpg“역시 기적입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즉사……가 아니라, 위험했을 텐데! 이리 건강히 회복하시다니, 펜리르 신께서 도우신 게 틀림없어요.”

테오도르 신관은 말하던 도중 아르문트의 살벌한 눈빛을 느끼고 재빨리 단어를 교체했다. 진짜 죽은 것도 아니고, 사망 가능성에 대해 얘기한 것뿐인데. 억울한 마음이 비죽 솟았으나 이를 티 낼 용기는 없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제를 바꿨다.

16549584614333.jpg“그런데 일주일이나 깨어나지 못하신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군요. 물론 큰 사고였긴 하지만…… 대마법사님의 도움도 도움인 데다 신관들이 빠르게 치유한 덕에 사흗날에는 충분히 깨어나실 만큼 회복했는데 말입니다.”

테오도르 신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깨어났으니 잘된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점이 의아했다. 하인이 가져다준 수프를 먹으며 치유를 받고 있던 로제타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16549584614342.jpg“헉, 제가 일주일이나 못 일어났어요?!”

아르문트의 반응을 보아 자신이 제법 오래 의식이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주일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며칠 정도일 거로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녀는 이내 이유를 알아차렸다. 깨달음을 얻고 몸의 성질이 뒤바뀌는 동안은 잠시 의식을 잃기도 한다. 이렇게 길게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지만, 한 번에 큰 성장을 한데다가 또 몸 상태도 좋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러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테오도르 신관이 의문스러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의 그 처참한 기분이 떠올랐는지 아르문트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16549584614347.jpg“앞으로는…….”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6549584614347.jpg“그러지 마, 로제.”

16549584614342.jpg“네?”

16549584614347.jpg“나를 위해 널 희생하지 마. 부탁이야.”

깨어나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는 일주일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행여 갑자기 로제타의 숨이 끊어지기라도 할까 봐 아르문트는 단 한 순간도 편히 잠들지 못했고, 아예 침대 옆에 소파를 옮겨두고 온종일 그녀의 곁을 지켰다. 매일 얕은 잠을 자는 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깨어 있는 내내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불안들이었다. 로제타가 죽으면 어떡하지. 혹,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평생토록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된다면……. 이러한 걱정들은 하루하루 아르문트를 좀먹었다. 그야말로 산 채로 죽어가는 기분이었다.

16549584614347.jpg“다시는 그대가 아픈 모습 보고 싶지 않아. 그것이 나 때문이라면 더더욱.”

아르문트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힘없이 떨려오는 손길이 애처로웠다.

16549584614342.jpg“아르문트.”

로제타는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단단하게 손을 맞잡았다. 그러곤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16549584614342.jpg“……아문.”

낯선 호칭에 아르문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사실 아예 낯설지는 않았다.

16549584614347.jpg-“이번에는 애칭을 불러줘. 아르, 아문. 어느 것이든 그대가 편한 쪽으로.”

  그가 직접 그녀에게 알려준 것이었으니까. 화악! 아르문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고작 애칭 한번 불렸다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다니. 스스로도 바보 같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 부끄럽고 또 기뻐서 자제할 수가 없었다. 윽.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리처드가 징그럽다는 듯이 신음을 흘렸으나 이는 아르문트가 알 바가 아니었다. 로제타는 토마토처럼 얼굴을 붉힌 아르문트가 귀여워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단호하게 말했다.

16549584614342.jpg“싫어요.”

느닷없는 애칭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아르문트는 여전히 볼을 발갛게 붉힌 채로 두 눈을 껌뻑거렸다.

16549584614347.jpg“……응?”

16549584614342.jpg“싫다구요. 저는 당신을 지킬 수 있다면 언제든 목숨을 걸 거예요.”

로제타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능청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16549584614342.jpg“제가 뭘 해도 좋다면서요? 거짓말이었어요?”

조금 전 아르문트가 고백할 때 했던 말을 여기서 써먹는 것이었다. 아르문트는 당황한 것이 명백한 얼굴로 입술만 달싹거렸다. 마음만 같아선 그 또한 단호한 어조를 써서라도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16549584614347.jpg“……아니, 그럴 리가.”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더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강제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정말 그의 바람에 어긋나더라도 말이다. 로제타에게 그러겠노라 약속했으니까.

16549584614347.jpg“그럼 내가 더 조심하지. 절대 그대가 위험하게 두지 않을 거야.”

16549584614342.jpg“네에. 조심조심 살아요, 우리.”

16549584614347.jpg“응.”

아르문트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다란 속눈썹을 나붓이 깔고 고갯짓을 하는 모양새가 귀엽기 짝이 없었다. 로제타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16549584614342.jpg‘러크가 갑자기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도.’

저도 모르게 음흉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와 스킨십을 한 게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더 가슴이 간질간질 설렜다. 꼭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뭐, 어차피 아르문트와 다시 잘 된 이상 머지않아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소드 마스터였던 그녀를 힘들게 한 정력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흠흠, 작게 헛기침을 한 그녀가 애써 머리를 비워냈다. 그러곤 순수한 표정을 가장하며 열려 있는 문 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익숙한 기척이 멀리서부터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험악한 기운을 풀풀 풍겨대는 탓에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발레리안이었다.

16549584614342.jpg“힉…….”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곧 있을 자신의 미래가 어렵지 않게 떠올라 숨이 가빠졌다. 이를 발견한 아르문트가 이유를 물으려는 순간, 마침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16549584670247.jpg“로즈!”

발레리안은 황태자의 방에 허락도 구하지 않고 들어와서는 예의상의 인사도 팽개치고 로제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외투를 한쪽 어깨에만 걸친 차림이었다. 그녀가 잠들어 있던 동안 고생을 얼마나 했으면 고작 일주일 만에 얼굴 살이 빠져서 턱이 더 갸름해진 것 같기도 했다. 눈도 전에 없이 퀭했다. 저런 친구에게 미안해하지 못할망정 잔소리 걱정이나 하다니. 로제타는 새삼 죄책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49584614342.jpg“발레리, 안…….”

그리고 그에게 어색하게 인사하려는 순간. 말릴 새도 없이 발레리안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까 전 아르문트가 그랬던 것처럼, 매우 절박하고도 거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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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리안 특유의 은은한 꽃향기가 훅 코끝을 스쳤다. 그제야 자신이 아르문트가 보는 앞에서 발레리안과 포옹했음을 깨달은 로제타는 경악하여 입을 벌렸다.

16549584614342.jpg“바, 발레리! 나 걱정 많이 했구나! 평소에 잘 안 하던 짓도 하고. 하하…….”

그녀는 다급히 그를 밀어내며 최대한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놈의 발레리안 자식은 스킨십을 자제해달라고 말했던 제 부탁을 아예 잊어먹었는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6549584670247.jpg“그걸, 말이라고 해?”

오히려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허리를 더욱 둘러맸다.

16549584670247.jpg“내가 얼마나……!”

발레리안은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거친 숨만 뱉어냈다. 흉부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에서 그동안의 설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로제타는 그런 발레리안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르문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가 또 오해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아르문트는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으나 화가 난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발레리안에게 호통을 치거나 욕을 하기는커녕 가만히 서서 침묵했다. 정말 화가 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속은 질투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대놓고 이를 표출하기에는 이미 대마법사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그가 자신을 찾아와 신랄한 지적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참을 더 헛짓거리를 했을 테다. 그뿐만 아니라 대마법사는 이번 사고에서 로제타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아르문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발레리안은 마법을 사용해 샹들리에를 치우고, 또 신관이 올 때까지 그녀를 치유했다. 덕분에 로제타는 이렇게 무사히 깨어날 수 있었고, 자신은 그녀에게 다시 사과할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르문트는 발레리안에게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16549584614347.jpg‘로제는 나를 사랑한다 했어.’

그래, 로제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대마법사와는 그저 가족 같은 사이라고도 말했었다. 그러니 그는 이제 더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16549584614347.jpg“윈저프리드 경.”

아르문트가 느릿한 말투로 발레리안을 불렀다. 그러자 발레리안보다도 깜짝 놀란 로제타는 힘을 줘서 제 친구를 밀어냈다. 아르문트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의외의 얘기가 이어졌다.

16549584614347.jpg“고맙네. 그대 덕에 우리 로제가 무사할 수 있었어.”

아르문트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발레리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답지 않게 매우 공손한 모습이었다. 이에 감동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발레리안의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내 그의 시야에 다정한 눈길로 아르문트를 올려다보는 로제타의 모습이 담겼다. 제 연인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자신을 볼 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그런 얼굴.

16549584670247.jpg‘‘우리 로제’라.’

발레리안의 팔에 핏줄이 불뚝 솟아올랐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 로제타와 황태자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것쯤은. 그녀가 일어나기 전부터 예상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예상했다 해도 그의 속은 당장이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처럼 쓰렸다.

16549584670247.jpg“……전하의 감사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16549584614347.jpg“그렇다 해도 그대에게 고마운 것은 여전해.”

16549584670247.jpg“놀랍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 죽일 듯이 싫어하셨으면서. 우리 둘 사이를 질투하여 역정을 내지 않으셨습니까?”

발레리안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긋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비꼬는 것이 분명한 말투였다. 얘가 또 왜 이래? 당황한 로제타가 그의 옆구리를 찌르려 했으나 자신을 붙잡은 발레리안의 손길이 예상보다 단단했다.

16549584614347.jpg“그랬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로제타는 날 사랑한다 말했고, 이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난 그 말을 믿을 테니까.”

아르문트는 이렇게 말하며 로제타를 향해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공개적으로 사랑을 얘기하자 로제타는 민망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또다시 심장 부근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16549584614347.jpg“그때는 내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옹졸하게 굴었네. 미안하군.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로제와 그대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라는 것도 이제는 믿어 의심치 않아.”

세상에, 우리 전하는 사과도 이렇게 잘해! 로제타가 콩깍지가 가득 낀 눈으로 아르문트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러곤 다시 시선을 돌려 발레리안을 응시했다. 어쩌면 그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그러나 로제타의 시야에 담긴 것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의 발레리안이었다.

16549584614342.jpg“발레리?”

로제타가 숨을 크게 들이켜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발레리안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혹 어딘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를 만난 이래로 이렇게까지 어두운 얼굴은 처음일 정도였다. 갑자기 몸이 아파졌을 리도 없고.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녀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6549584614342.jpg“너…….”

그 순간, 발레리안의 얼굴이 빠르게 뒤바뀌었다. 그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금세 미소를 지어 보였다.

16549584670247.jpg“예, 맞습니다. 진짜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사이죠. 그렇지, 로즈?”

발레리안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는 속은 문드러졌을지언정 겉으로는 여유를 가장했다. 로제타가 자신을 이상하게 본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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