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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야한 짓 (21/112)

21. 야한 짓2021.12.12.

16550876307617.jpg“키스해도 돼?”

그렇게 묻자 놀란 듯 겨울의 눈망울이 커다랗게 뜨여졌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겨울은 말없이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 자그마한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시후의 억눌러왔던 감정은 폭발했다. 도저히 이 여울진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시후는 겨울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그시 눈을 감고 말랑한 입술에 천천히 제 입술을 포개자 시후는 제 심장에서 시작된 거센 파동을 느꼈다. ……더, 조금만 더. 더욱 깊숙이 그녀를 탐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피어올랐다. 비스듬히 고개를 틀어 부드럽게 입술을 벌린 시후가 겨울의 아랫입술을 물자 놀란 겨울이 퍼드득 움츠러들며 시후의 셔츠를 지그시 움켜쥐었다. 그 가녀린 손짓이 귀여워 살며시 숨결을 터뜨린 그가 느릿하게 움직여 겨울의 윗입술을 빨아들였다. 강렬한 흡입에 겨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어쩔 줄 모르고 시후의 허리춤을 더듬던 겨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어깨를 살포시 감쌌다. 말랑말랑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흡입하던 시후가 입을 크게 벌려 한입에 물었다. 그 행위에 움찔한 겨울의 성대에서 이상한 신음이 흘렀다. 여린 살점으로 타들어 갈듯한 열감이 진하게 와닿자 겨울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고동쳤다. 하아, 호흡을 위해 벌어진 입술 틈새를 놓치지 않고 시후의 숨이 그 틈을 깊이 파고들었다. 입안을 꾹 누르며 넘어온 말캉한 감촉에 겨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길게 들어온 시후가 겨울의 치열을 훑으며 헝클어진 숨과 뒤섞였다. 농밀하게 얽힌 숨결이 이내 질척해지며 무덥게 열 오른 공기는 후끈해졌다. 한여름의 아스팔트처럼 들끓는 숨과 함께 겨울은 시후의 커다란 손이 제 목덜미를 타고 어깨를 지나 허리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심장에서 무언가 어긋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잘록한 허리를 단번에 끌어안은 시후는 더욱 깊숙이 겨울을 탐하며 파도처럼 밀려왔다. 앞에서 쏟아지는 무게에 더듬더듬 소파 위를 짚던 겨울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16550876307621.jpg“아……!”

순식간에 소파에 반쯤 눕혀진 겨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뒷머리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지자 손끝이 오므라들었다. 힘줄이 도드라진 팔은 다시금 겨울의 허리를 끌어안고 강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은 아랫배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들끓었다. 시후의 커다란 손이 겨울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올리자 움찔한 겨울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이대로면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짙은 숨을 몰아쉰 시후의 입술이 느슨하게 멀어졌다.

16550876307617.jpg“……잠깐만.”

너른 품에 꽉 안겨 들어간 겨울은 제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16550876307617.jpg“이대로 조금만, 있을게.”

열띤 속삭임이 귓가에 끈적하게 휘감겼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옭아맨 커다란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렇게 뒤엉킨 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천히 겨울을 놓아준 시후가 몸을 일으키며 겨울의 뺨을 느릿하게 보듬었다.

16550876307617.jpg“……미안.”

그렇게 말하는 까만 눈동자에서는 우주보다 더한 어두움이 느껴졌다.

16550876307617.jpg“아무래도 연고 다시 발라야겠다.”

청량하게 웃는 입술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화악 달아오른 고개를 홱 돌린 겨울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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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겼으나 겨울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조금 전 키스 때문에 얼굴에는 홧홧한 열감이 떠날 새가 없었다. 후, 숨을 뱉은 겨울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아 삼키자 조금 전의 끈적끈적했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12년 전 첫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입맞춤이었다. 훨씬 더 성숙하고 농익은…… 그야말로 어른의 키스. 제 모든 것을 전부 앗아가려는 듯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욕망이 선연했던 말캉한 형체가 제 안에서 어디를 훑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떠올리자 겨울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16550876307621.jpg“……아.”

막 입술을 뗀 직후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후의 얼굴에는 아직 풀지 못한 욕구가 흠뻑 젖어 있었다. 사실 겨울은 그때, 왜 갑자기 키스하냐고 화를 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뚫어질 듯 응시하는 까만 눈이 너무도 슬퍼 보여,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었다. 지독한 암흑 속에서 끝없이 헤엄치는 짐승의 눈처럼 말이다.

16550876307621.jpg“……그만 생각하자, 함겨울.”

차라리 전부 없었던 일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오늘 목격한 그의 심연까지도 모조리 잊어버리는 게……. 고개를 끄덕인 겨울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지그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새벽녘의 어두운 기운이 방안을 휘감았을 때, 비스듬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겨울은 몽롱한 시야 속으로 익숙한 남자를 보았다. 제 옆에 누워 비스듬히 고개를 틀고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강시후?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운동으로 단련한 탄탄한 근육이 시야를 자극하자 겨울의 입술이 툭 벌어졌다. 왜 여기에 이 남자가……. 뭐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벙긋거리고 있자 시후의 날렵한 턱선이 비틀렸다. 부드럽게 밀려오는 무게에 맞춰 입술이 맞물리자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겨울이 미간을 좁혔다. ……음? 근데 이거 뭔가 좀 이상한…….

16550876307621.jpg“……!”

흠칫한 겨울은 화악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잠에서 깬 겨울은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어수선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16550876307621.jpg“……미친.”

시후는 없었고 겨울은 넓은 방 안에 혼자 덜렁 있었다.

16550876307621.jpg“하…….”

꿈이었던 것이다.

16550876307621.jpg“……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나이 스물아홉 먹어서 야한 꿈이라니……. 그것도 강시후를 상대로!

16550876307621.jpg“진짜 미쳤지, 내가!”

아무래도 자기 전 그와의 키스를 계속해서 되새긴 게 원흉이었던 듯하다. 침대 위를 때굴때굴 구르며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했다.

16550876307621.jpg“……잠깐, 근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 겨울이 우뚝 멈추었다.

16550876307621.jpg“정말 꿈 맞아……?”

꿈이라고 하기에는 강시후의 자기주장 분명한 눈코입의 모습과 진득하게 얽히는 입술의 감촉이 너무도 생생했었다.

16550876307621.jpg“설마…….”

커다랗게 뜨여진 동공이 슬그머니 옆방을 향해 굴렀다. ……진짜 강시후였던 거 아냐? 꿈이 아닌 것 같다는 의혹이 점점 더 크기를 키우며 기분이 이상야릇해지기 시작했다. 꼴깍 침을 삼킨 겨울이 덮고 있던 이불을 스르르 옆으로 치웠다. 조용히 아래로 내려온 겨울이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옆 침실로 향했다.

16550876307621.jpg‘자고 있는지, 확인만…….’

숨을 죽인 겨울이 조금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눈을 밀어 넣자, 어둑한 침실의 전경이 보였다. 하지만 칠흑처럼 어두운 탓에 정작 강시후가 있는지 없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답답했던 겨울은 슬쩍 문을 열고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 침대 가까이 다가가 흘끗 살펴보았다. 이불 속 거대한 형체의 위에 손을 휘휘 저어보았으나 그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16550876307621.jpg‘역시 꿈이었나…….’

안도의 숨을 내쉰 겨울은 조용히 반원을 그리며 뒤를 돌았다. 얼른 방으로 돌아가 마저 잠을 취하려던 찰나였다.

16550876307621.jpg“아!”

일순 힘줄이 도드라진 팔이 허리를 감고서 훅 끌어당겼다. 중심을 잃은 겨울은 단번에 침대 위로 세차게 눕혀졌다. 쿵, 단단한 어깨에 부딪혀 정신이 혼미해진 와중 커다란 그림자는 단번에 겨울 위를 장악하고 섰다. 순식간에 제 위로 덮치듯 올라탄 시후에 놀란 겨울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16550876307617.jpg“……내 방엔 왜 찾아왔어?”

막 잠에서 깬 시후의 음성은 동굴처럼 낮게 깔려 있었다. 겨울의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고동쳤다. 귓가에서 울리는 제 심장 소리를 느끼며 당혹스러운 눈으로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겨울을 아래에 깔아 눕힌 시후는 겨울의 턱을 한 손으로 휘어잡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틀었다.

16550876307621.jpg“그……게…….”

당황한 겨울은 더듬더듬 입술을 움직였다.

16550876307621.jpg“이상한 꿈을 꿔서…… 진짜 꿈인가 확인하려고…….”

겨울이 입술을 꾹 말아 삼켰다. 스스로 말하고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얼굴만 붉어질 뿐이었다. 변명할 길이 없자 꼴깍 침을 삼키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시후의 벗은 상체가 겨울의 시선을 붙들었다. 우람한 가슴 근육이 시후의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자 겨울의 양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도 모르게 잘 다져진 복근을 따라 흐르는 눈길을 가까스로 제지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16550876307617.jpg“얼굴은 왜 붉혀.”

시후가 픽 웃음을 흘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다시 비스듬히 눈꺼풀을 들어올린 겨울은 시후의 까만 눈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16550876307617.jpg“무슨 꿈이었는데……?”

무더워진 공기가 한껏 달아오르며 겨울은 제 피부의 솜털 하나하나까지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견딜 수가 없어 거친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16550876307617.jpg“뭘 했어?”

16550876307621.jpg“……그만…….”

시후의 턱선이 사선을 타고 내려와 겨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16550876307617.jpg“이런 거?”

무더운 열기가 입술 위를 할짝 핥으며 지나갔다. 미끌미끌한 감각에 고동 소리가 점점 더 크기를 키우며 증폭했다.

16550876307617.jpg“말해 봐. 어땠어…….”

입술 위를 간질간질하게 스치며 속삭였다. 이내 벌어진 입술이 겨울의 아랫입술을 함빡 물고 빨아들였다. 말캉한 형체가 입술 틈을 배회하며 움직이다가 내부로 깊이 들어와 겨울의 것과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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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득 움츠러든 겨울이 시후의 어깨를 붙잡자 커다란 손이 겨울의 손을 움켜쥐고 매트리스 위로 지그시 눌렀다.

16550876307621.jpg“……장난하지 마. 놔줘.”

시후가 픽 웃었다.

16550876307617.jpg“넌 이럴 때만 반말을 하더라.”

그렇게 속삭이는 입술이 겨울의 입술 위에서 길어졌다. 뜨거운 숨결이 입술을 흠뻑 적시자 겨울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16550876307621.jpg“……그만해. 미칠 것 같아.”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 시후가 숨소리처럼 웃었다. 장악하던 거대한 그림자가 아래로 내려오고 겨울은 저를 결박했던 힘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16550876307617.jpg“그래, 좋아…….”

커다란 손이 겨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6550876307617.jpg“대신 다음에 또 들어오면 그땐 나도 몰라.”

입술을 꾹 다문 겨울은 빨개진 얼굴을 감추고는 얼른 제 방으로 뛰어갔다. 여러모로 남들에게 말 못 할 밤이었다. ***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도록 정신없이 흘렀다. 출근해서도 온종일 시후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던 겨울은 퇴근할 때까지 어젯밤 일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16550876307621.jpg“……바보 같아, 함겨울.”

어제 내가 왜 그랬지? 왜 좋다고 같이 키스하고 있었냐고! 밤에는 그 남자 방에 왜 찾아가서는!

16550876307621.jpg“진짜, 미쳤어. 어제는 홀린 게 틀림없어…….”

비 맞은 중처럼 쭝얼쭝얼하던 겨울은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휘황찬란한 아파트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겨울은 계속해서 자책을 이어갔다. 어쩐지 나날이 흑역사를 갱신해가는 듯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는데, 문득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16550876307621.jpg“……맞다.”

전날 그 이상한 남자……. 원래 어제 이혼하라고 협박했던 그 괴한의 정체를 두고 시후와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16550876307621.jpg‘강시후, 오늘도 10시 넘어서 퇴근한다고 그랬는데…….’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늦더라도 반드시 괴한에 관한 얘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겨울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20층을 꾹 눌렀다. 이내 스르르 문이 닫히려는데, 일순 길쭉한 팔이 그 틈을 파고들어 문을 도로 벌컥 열었다. 활짝 벌어진 문틈으로 한 남자가 올라타고, 고개를 치켜올린 겨울은 아무 생각 없이 빠르게 상승하는 숫자를 바라보았다.

16550876307621.jpg“…….”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겨울의 가슴이 섬뜩해졌다. 슈퍼 펜트하우스인 시후의 집은 20층에 있는 유일한 세대였는데, 같이 올라탄 사람이 층수를 누르지 않은 것이었다.

16550876307621.jpg“…….”

등골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긴장한 겨울의 고개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은 겨울의 눈이 한계까지 뜨여졌다. 검은색 버킷햇과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남자는 전날의 그 키가 큰 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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