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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네가 너무 좋아서 (50/112)

50. 네가 너무 좋아서2022.03.23.

시후의 진심 어린 속삭임에 겨울의 여린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거세게 박동했다. 하지만 이대로 심장이 터져버린다고 해도, 숨이 멎어버린다고 해도 결코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진심을 보여준 만큼, 겨울도 제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야만 했다.

16550884102008.jpg“오빠…….”

커다란 눈망울에 고인 투명한 이슬은 겨울의 볼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새어 나오는 울음 때문에 그저 가파르게 숨을 고를 뿐이었다. 여린 어깨가 들썩이며 겨울은 터진 눈물을 좀처럼 가누지 못했다. 그런 겨울의 볼을 감싼 시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16550884102013.jpg“사랑해, 겨울아.”

시후는 제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겨울의 눈 밑에 입술을 묻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에 달린 눈물이 뜨거운 시후의 입술 위로 비벼지며 사라졌다. 그녀의 눈물을 모두 지울 것처럼 시후는 정성스럽게 입술을 옮기며 뜨거운 숨을 뱉었다.

16550884102013.jpg“널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 없어.”

……내 마음이 너에게 다가가 짐이 될지라도. 이 넘쳐흐를 것 같은 감정을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었다.

16550884102013.jpg“사랑해…….”

너는 내 세상이자, 나의 모든 전부니까. 나를 숨 쉬게 하는 건 너였으니까. 흑백뿐이었던 내 삶의 유일한 색채였으니까……. 겨울은 제 눈가로 와닿는 그의 숨이 너무도 뜨거워 아찔하게 취하는 기분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그의 가운 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시후의 진심 어린 고백이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며 거센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겨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심장이 너무도 벅차게 뛰어 숨을 쉬기도 힘들었으나, 애써 입술을 벌렸다.

16550884102008.jpg“나도…….”

달싹이던 입술이 자그마하게 움직였다.

16550884102008.jpg“나도 좋아해.”

이 말을 하기까지 대체 몇 년이 걸렸던 걸까. 뱉고 나면 이토록 후련한 감정이었던 것을.

16550884102008.jpg“더는 내 마음을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좋아해…….”

오로지 강시후에게만 반응하는 심장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16550884102008.jpg“우리 자꾸 오해하고 멀어지는 거, 나 이제 싫어. 과거에 발목 잡혀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싫고.”

이 남자는 원수의 아들이니까,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던 남자이니까, 어차피 우린 8년 뒤 이혼할 운명이니까……. 헤어져야만 하는 수없이 많은 이유를 이기는 감정은 단 하나.

16550884102008.jpg“좋아해, 강시후…….”

제 모든 진심을 다 털어놓은 겨울은 아이처럼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내내 쌓여 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며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전율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탓에 이대로 쓰러질 것 같았으나, 시후의 단단한 팔이 겨울의 허리를 견고하게 지탱했다. 여린 몸을 꽉 끌어안은 시후는 겨울을 세게 자신의 품으로 당기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물기 어린 숨과 투명한 눈물들이 시후의 가슴에 닿아 부서졌다.

16550884102013.jpg“……꿈 아니지?”

시후는 도저히 지금 자신이 들은 겨울의 고백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겨울의 사랑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저 미움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자신은 항상 악역이었고, 상처를 주기만 했던 최악의 남자였을 뿐이니까. 제 끝없는 감정의 갈구에 그녀가 응답할 거라고 기대한 적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되뇌었던 혼자만의 메아리에 기적처럼 화답이 돌아왔다.

16550884102013.jpg“꿈이면, 차라리 평생 깨어나지 않을래.”

꿈이라면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랄 만큼 행복했다. 살며시 소리 없이 미소 지은 겨울은 두 팔을 올려 시후의 목을 양팔로 끌어당겼다. 이건 꿈이 아니라는 듯, 비스듬히 고개를 비튼 겨울은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쳤다. 살짝 누르고선 떨어진 겨울이 배시시 웃었다. 그런 겨울의 미소에 함께 웃은 시후가 고개를 내리며 그녀의 작은 입술을 다시금 머금었다. 떨리는 입술이 시후의 입술 위에서 벌어지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며 겨울의 입술을 강렬하게 빨아당겼다. 가쁘게 입술이 비벼지고 서로의 달뜬 호흡이 질척하게 뒤섞였다. 이내 목적을 찾아 헤매듯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어 움직이는 시후의 말캉한 감촉에 겨울의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맞닿은 입술 틈으로 흘러나온 젖은 소리가 뜨거워진 고막을 눅진눅진하게 만들었다. 입안에서 뒤섞이는 행위가 점점 더 격하게 달아오를수록 겨울의 심장이 움찔거렸다. 바닥으로 겨울이 입고 있던 두꺼운 코트와 가방이 차례로 떨어졌다. 시후는 그대로 무너지려는 겨울의 허벅지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한편, 호텔에 있는 서른아홉의 강시후는 겨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날 밤부터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연결되지 않는 휴대전화를 힘없이 아래로 내렸다. 주먹을 꽉 움켜쥔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독한 양주를 꺼내 들어 아무렇게나 잔에 따랐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어 연속으로 두 잔을 남김없이 비웠다. 깊은숨을 몰아쉰 시후는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가만히 내다보았다.

16550884130137.jpg“……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이대로는 미칠 것 같아 또다시 잔에 술을 따르고 비워내는 행위를 반복했다. 끝내 빈 병이 된 병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자 유리가 파열하는 소리가 룸 안을 거세게 울렸다. 산산이 조각난 병의 잔해를 보며 시후는 술잔을 꽈악 움켜쥐었다. 연약하게 부서진 유리 조각이 까맣게 물든 망막에 담겨 위태롭게 흔들렸다.

16550884130137.jpg“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미래를 바꾸기 위해 지난 8년간 모든 걸 버리고 살아왔는데. 시후는 두 눈으로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입술을 꽉 짓씹었다. 눈가로 열기가 모이고 또다시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어른거렸다. 지난 8년간 지독히도 시후를 괴롭히고 잠 못 이루게 했던, 그날의 기억이…….

16550884130137.jpg“겨울아…….”

……제발 날 떠나. 내가 던진 돌에 날개가 부러졌으면서, 대체 왜 나를 사랑하는 거야. 끝까지 경멸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며,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가야지. 넌 날 미워해야만 살아갈 수 있어. 내 옆을 영원히 떠나야 해. 그래야 멀리 날아갈 수 있어. *** 너무 오랫동안 목 놓아 울었던 탓에 겨울의 커다란 눈 주위는 빨갛게 부어버렸다.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온 겨울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아몬드 같은 눈동자를 하릴없이 굴렸다. 제 눈치를 보는 겨울이 귀여워 시후는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16550884102013.jpg“퉁퉁 부었네. 얼마나 울었으면.”

16550884102008.jpg“……이씨, 누구 때문인데.”

뾰로통하게 눈가를 좁힌 겨울이 시후를 흘끗 흘겨보았다. 얼굴은 하도 울어서 빨갛고, 눈은 소복하게 부은 채로 투덜거리는 모습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시후는 저도 모르게 헤픈 웃음을 흘렸다.

16550884102013.jpg“귀엽기는…….”

나직한 속삭임에 겨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불쑥 가깝게 다가온 시후의 입술이 성급하게 겨울의 이마로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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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 노골적인 마찰음에 놀란 겨울이 눈을 질끈 감았으나, 시후의 입술은 멈추지 않고 겨울의 얼굴 곳곳을 누볐다. 눈썹, 눈꺼풀, 뺨, 콧잔등, 턱, 등 여린 살갗 위에서 쪽쪽 거리던 입술이 이내 길게 늘어졌다. 시린 눈웃음에 겨울의 가슴이 벌렁거렸다. 이제까지 들이댔던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거침없이 질주해왔다. 쪽, 쪽,

16550884102013.jpg“네가…….”

쪽.

16550884102013.jpg“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그리고 그 직진에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 나달거리는 여자가 여기에. 얼굴을 붉힌 겨울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계속해서 뽀뽀 세례를 날리는 시후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16550884102008.jpg“그만해. 바보야…….”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찬 바람이 쌩쌩 불었던 것이 전부 거짓말인 것처럼, 완전히 뒤바뀐 시후의 태도는 겨울을 진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시후는 제 입을 틀어막은 겨울의 손 위로 제 손을 부드럽게 겹치며 웃었다. 살포시 터진 숨결이 손바닥에 닿자 움찔한 겨울이 손가락을 바르작거렸다. 그런 겨울의 손바닥에 입술을 모아 진하게 키스한 시후가 그녀의 다섯 손가락 하나하나에 모두 입을 맞추며 정성을 들였다. 손끝까지 전류가 흐르며 온몸에 심장 소리가 울리자 겨울이 빨개진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16550884102008.jpg“……언제는 사랑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16550884102013.jpg“어?”

16550884102008.jpg“인생에 오점 남기기 싫어서 나 붙잡은 거라고 했잖아.”

자그마한 소리로 투덜거리자 시후가 겨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6550884102013.jpg“진심이 아니었다는 거 알잖아.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으니까.”

비스듬히 시선이 맞물리자 겨울의 가슴이 낮게 두근거렸다. 하릴없이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그의 옷자락을 살짝 움켜쥐었다.

16550884102008.jpg“……나도, 아니었어.”

16550884102013.jpg“뭘?”

16550884102008.jpg“주형이네 집에서 잔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용기를 낸 겨울은 시후를 할퀴고 상처 내기 위해 일부러 했던 말들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16550884102008.jpg“첫날은 희수네 집에서 잤고, 그 이후엔 계속 호텔에서 지냈어.”

16550884102013.jpg“…….”

16550884102008.jpg“그냥 나한테 뭐든 비밀로 하려는 오빠 때문에…… 아무 말도 안 해주는 오빠가 서운해서…… 심술부리고 싶었어. 상처 주고 싶었어.”

솔직히 털어놓은 겨울은 고개를 작게 떨구며 주먹을 꼭 쥐었다. 겨울의 토로에 안도한 시후는 두 팔로 겨울을 끌어안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6550884102013.jpg“며칠 동안 잠 한숨 못 잤는데…… 다행이다.”

그가 얼마나 걱정을 했었는지 온몸으로 느껴져서, 겨울은 무작정 집을 나왔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에게 거짓말로 상처를 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간 직면하지 못했던 문제를 꺼내었다.

16550884102008.jpg“이제 오빠도 말해줘.”

8년 뒤 어차피 이혼할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현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겨울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를 이 이상 나아가려거든 과거에 얽힌 문제를 직면하고 완전히 풀어야만 했다.

16550884102008.jpg“왜 옛날에 나한테 그렇게 행동했던 건지……. 내가 모르는 비밀이 대체 뭔지.”

그를 사랑하게 되었기에 더더욱 짚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16550884102008.jpg“나도 오빠가 나한테 기대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터놨으면 좋겠어.”

시후의 까만 눈동자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겨울은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말했다. 그 흔들림 없는 눈을 바라보자 시후는 지금껏 모든 걸 비밀로 해왔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16550884102013.jpg“……그래. 전부 얘기할게.”

낮게 시선을 내리깐 시후가 조심스럽게 포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회피했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16550884102013.jpg“12년 전, 우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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