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너한테 내 모든 걸 줄 테니까2022.03.20.
시후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내내 불통이었기에, 겨울은 다급하게 8년 후의 미래에서 온 강시후를 찾아갔다. 따지듯이 시후의 코트를 움켜쥔 겨울이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게 뭐예요? 유서진 본인상은 그렇다 치고, 자녀상이라니……. 이거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야.”
모든 미래를 알고 있는 그는 겨울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세상 태연한 반응이었다.
“오늘, 새어머니와 내 이복동생 강창영이 같은 날 사고로 동시에 즉사했어.”
“뭐, 뭐라고요……?”
충격에 물든 겨울이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내가 죽기라도 한 줄 알았나?”
“아니…… 안 놀라게 생겼어요? 자녀상이라고만 써 있고, 이름은 없으니까……. 게다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이런걸…….”
“정신 차려. 네 눈앞에 있는 난 8년 뒤 서른아홉 강시후라고.”
“…….”
“오늘 내가 죽었으면, 지금 내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거 몰라?”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겨울이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잘끈 씹었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심장에 한숨을 몰아쉰 겨울이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하며 말문을 열었다.
“원래 있었던 미래에요?”
“……그래.”
“왜 미리 나한테 말 안 했어요?”
“내가 바꾸려고 온 과거는 너와의 관계 청산이 전부야. 다른 미래는 절대 건들 생각 없고, 네가 나한테 로또 번호를 알려달라고 해도 난 안 알려줄 거야.”
“…….”
“괜히 다른 것까지 건드렸다가 정작 제일 중요한 과거를 바꾸지 못하는 건 사양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경고하겠는데.”
날카로운 말투가 겨울의 가슴 위를 스치는 듯했다.
“절대 지금의 강시후한테 찾아가면 안 돼.”
“……왜요?”
“그냥 혼자 있게 내버려 둬.”
“하지만…….”
아무리 정 없이 산 가족이어도, 피가 안 섞인 어머니와 반쪽짜리 동생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이 동시에 둘이나 명을 달리했는데, 아무리 강시후라고 해도 홀로 그 모든 것을 버티긴 힘들 터였다.
“경고했어. 나 찾아가지 마.”
다시금 쏘아붙이는 말투에 겨울이 입술을 바득거렸다.
“기껏 과거를 바꿔서 여기까지 왔어.”
“…….”
“난 새어머니고 동생이고 다 필요 없어. 너와 내 미래만 바꾸면 돼.”
이 남자가 정말 강시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이 차가운 태도였다. 마치 11년 전 겨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스무 살의 강시후처럼 말이다.
“이혼한 걸 확인한 순간, 난 바로 미래로 돌아갈 거니까.”
그는 겨울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며 씹듯이 뱉었다.
“괜한 짓 하지 마.”
“…….”
두 주먹을 꽉 움켜쥔 겨울의 눈가가 살짝 발갛게 달아올랐다. 날이 선 언어들이 또다시 겨울의 가슴을 아프게 헤집어 놓았다.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왜 위태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걸까. 대체 이 남자의 진심이 뭔지, 알다가도 모를 것 같았다. 이 8년 뒤 강시후의 목적은 오로지 이혼이 전부인 걸까. 정말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나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걸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파고들고 겨울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아무 말 없이 뒤를 돈 겨울은 이번만큼은 제 생각을 믿고 관철하기로 했다. 적어도 현재의 강시후에게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으니까.
*** 시후의 새어머니 유서진과 이복동생 강창영의 장례는 합동 장례식으로 치러졌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놀란 시후도 고민 끝에 잠시 빈소를 들렀다. 상주를 서고 있던 아버지는 여느 때와 똑같이 무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조금도 슬프거나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문객이 올 때마다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비즈니스적 태도로 그들을 맞이할 뿐이었다. 한순간 아내와 친아들을 잃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멀쩡한 태도였다. 그 모습이 마치 23년 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웃던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져서 시후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 당시, 그는 극한으로 몰렸던 어머니가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에 대해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시후에게 낮은 목소리로 뇌까릴 뿐이었다.
“회사는 언제 정리하고 들어올 거냐? 이제 내 회사를 맡아줄 놈은 네 녀석밖에 없는데, 알아서 처신 잘해.”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혐오스러운 감정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증오심이 밀려왔다. 새어머니와 이복동생 모두 치 떨리게 싫은 인간들이었음에도, 아버지의 이런 태도는 시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후…….”
빈소를 들렀다가 곧장 근처의 바로 향한 시후는 희석도 하지 않은 양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내뱉어진 깊은숨에서 독한 알코올의 향기가 위험하게 어른거렸다. 취기로 온몸을 적시지 않으면 괴로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시후가 7살일 때. 어머니의 집안이 몰락하고 그녀의 일가가 불의의 사고로 전멸하자,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머니를 때리고 학대하며 대놓고 외도를 저질렀다. 극한까지 몰린 그녀의 자살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지금의 새어머니와 재혼을 했었다.
“……하.”
그리고 이제는 그 새어머니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대체 왜…….”
입만 열면 욕설이 새어 나오고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대체 왜 악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걸까. 사랑하는 여자 하나 지켜줄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을 전부 불행하게만 하는……. 그런 인간쓰레기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제 몸에 흐르는 아버지의 피를 모조리 뽑아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 시후의 집에 도착한 겨울은 집 안의 불이 전부 꺼져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으나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안 들어왔나……?”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멀쩡히 있는데 상주를 서진 않을 터였다. 더불어 친어머니도 아니고, 가족끼리 사이도 좋지 않은 마당에 빈소를 지키고 있을 리도 없었다. 묘하게 불안한 느낌이 그저 기우이길 바라며 겨울은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초조하게 시후를 기다렸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이 되어도, 심지어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그는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뭐야, 불안하게…….”
어느덧 1시에 가까워지자 겨울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 불안이 점점 더 크기를 키웠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후를 찾기 위해 나서려는 찰나였다. 띵동. 적막한 집 안으로 초인종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시간에 집에 올 사람은 시후밖에 없는데, 왜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초인종을 누른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왜 초인종을 누르고…… 아.”
현관문을 연 겨울의 눈이 놀라 동그랗게 뜨여졌다. 모습을 드러낸 건 진탕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로 아파트 관리 요원에게 부축을 받으며 끌려온 시후였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사모님. 펜트하우스 사장님이 술을 좀 많이 드신 것 같아서요.”
“아…… 저야말로 죄송해요. 저희 남편이 폐를 끼쳤네요. 이리 주세요.”
“아휴, 폐라니요. 아닙니다.”
힘겨운 숨을 몰아쉰 관리 요원은 겨울에게 시후를 넘긴 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웃었다.
“그럼 편안한 밤 보내세요.”
정중하게 인사한 관리 요원이 뒤를 돌아 나갔다. 겨울은 엄청난 무게의 시후를 부축하여 낑낑거리며 침실로 들어섰다. 제 몸보다 훨씬 큰 거구를 겨우겨우 침대에 눕힌 겨울은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그는 의식도 없는 것 같았다. 흐트러진 모습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는데, 이렇게 취기에 무너진 시후를 보니 마음이 먹먹하게 조여왔다.
“……오늘 오길 잘했지.”
분명히 또 아무한테도 말 한마디 못 하고, 혼자 세상 온갖 고통은 다 가진 사람처럼 괴로워했을 게 뻔했다. 그는 솔직하게 제 맘을 털어놓는 데는 너무도 미숙한 남자였으니까.
“……바보.”
취기에 젖어 잠들어 있는 시후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겨울이 뾰로통하게 중얼거렸다. 침대의 끝에 걸터앉은 겨울의 눈동자가 시후의 이목구비를 천천히 쓰다듬듯이 내려왔다. 반듯한 이마와 우뚝한 콧대, 길쭉한 눈매를 따라 섬세하게 자리한 속눈썹과 살짝 벌어진 선홍빛 입술……. 이제는 가만히 자는 얼굴을 보기만 하더라도 심장이 노골적으로 뛰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은 겨울이 시후의 거칠어진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날렵한 턱선과 우람한 목울대를 타고 흐른 손은 시후의 목을 옥죄고 있는 넥타이로 향했다. 풀어주기 위해 살짝 잡아당기자 굳게 닫혀 있던 시후의 눈꺼풀이 게슴츠레 올라갔다. 흠칫한 겨울의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났다.
“……겨울아?”
비스듬히 열린 눈꺼풀 사이로 까만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조금 놀란 겨울은 빠른 속도로 뛰는 제 심장을 느끼며 자그마하게 입술을 벌렸다.
“응, 나야.”
그는 제 눈앞에 보이는 겨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참 동안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이내 크게 숨을 내몰아쉰 시후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미안해.”
“뭐가?”
“그냥 전부…….”
흐릿해진 말끝이 보이지 않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겨울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욱신거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와 얽힌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결국엔 사라지는 건가 봐.”
슬픔에 푹 잠긴 검은 눈동자가 겨울의 심장을 아프게 헤집었다.
“고운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인간들이었는데도, 왠지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
“…….”
“너도 내 곁에 있으면 불행해질 뿐이겠지. 난 널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으니까.”
탁하게 오염된 눈빛은 겨울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우린 어떻게 해서든 안되는 거니까.”
“……진짜 바보네.”
흔들지 말라니까 더 흔드는 남자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그의 행동 하나에, 말투 하나에, 웃고, 울고, 화나는 내가 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 감정 기복이 말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괴로움에 이렇게 심장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이 감정이 뭔지, 더 이상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함께하면 서로에게 독이 된다고 한들…….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천벌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이 가여운 남자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 다음 날 아침, 시후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동공이 바쁘게 구르며 어떻게 된 건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날 겨울이 제 곁에 있었던 것 같은데…….
“꿈이었나.”
겨울을 향한 그리움이 도를 지나쳐 이제는 환각까지 보는 듯했다. 짧게 숨을 뱉은 시후가 아무렇게나 머리를 쓸어올렸다. 전날 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조차 기억이 분명하지 않았다. 이렇게 의식을 놓을 정도로 진탕 마셔본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근 며칠간 겨울에 대한 걱정과 질투로 잠 한숨 이루지 못했고, 밥도 먹지 못했으니 컨디션 또한 최악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한 시후는 알코올에 함락됐었던 지난 밤의 잔상을 깨끗하게 지워냈다. 수건으로 물기를 털며 욕실을 나온 시후는 젖은 몸에 대충 가운을 걸쳐 입고 거실로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낯선 냄새에 시후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주방 쪽으로 흘렀다. 이내 아침을 차리고 있는 겨울을 발견하고 흐리터분하던 시후의 눈이 커졌다.
“일어났어?”
“……어? 어…….”
설마, 어젯밤 꿈이…….
“술 많이 마신 것 같은데 해장해. 콩나물국 끓였어.”
꿈이 아니었던 건가. 당혹감에 마른침을 삼킨 시후가 놀란 눈으로 겨울을 바라보았다.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앉아.”
“어…….”
어리숙하게 대답한 시후가 식탁에 앉자마자 겨울은 그릇에 콩나물국을 한가득 담아 그의 앞으로 건넸다. 겨울이 시후에게 난생처음으로 차려준 식사였다. 고슬고슬한 쌀밥과 몇 가지 먹음직스러운 반찬을 두고 시후와 겨울은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시후는 밥을 먹는 내내 본능적으로 이 식사가 그녀와의 마지막 일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식사를 전부 마치면, 그녀가 또 제게서 떠나버릴 것만 같아서. 일부러 느릿느릿 천천히 숟가락을 움직였으나 결국 그릇의 바닥은 드러나고 말았다.
“난 이제 갈게, 그럼.”
코트를 입은 겨울이 집 밖을 나서기 위해 시후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겨울은 애써 시선을 떨어뜨리며 굳은 듯 멈춰 있는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어떠한 계산도 하지 않은 채, 강시후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입술을 깨문 겨울은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겨울아.”
그 순간 뒤에서 시후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를 적셨다.
“……고마워.”
입술 틈으로 흘러나온 한마디가 겨울의 다리를 꽁꽁 묶어 놓았다.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제 그렇게 나 도와준 것도…… 오늘 아침 식사 같이해준 것도. 지금껏 나와 부부로 살아준 것도 고맙고…….”
울컥한 겨울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널 좋아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눈가가 화끈거리고 목울대로 따끔한 기운이 올라왔다. 촉촉해진 눈물샘으로 투명한 이슬이 고여 들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냥 다 고마워.”
결국 터져 흐른 눈물이 하얗게 질린 뺨으로 가느다란 줄기를 만들며 내려갔다. 턱에 고인 눈물이 굳은 듯 멈춘 발치로 뚝뚝 떨어졌다. ……아. 끝이구나. 이제 정말 다 끝이야. 이 남자와 내가 함께할 미래는 정말 없는 거구나.
‘……그래.’
어차피 우린 8년 뒤에 이혼할 예정이니까. 지금 정리하는 게 맞아. 겨울은 굳은 발을 가까스로 움직여 현관 손잡이를 꽈악 움켜쥐었다. 밀어내려는 순간, 일순 단단한 팔이 겨울의 몸을 뒤에서 확 끌어안았다. 밀려오는 따스한 체온과 남자의 체취에 놀란 겨울의 동공이 뒤흔들렸다. 등 뒤로 닿는 가슴 근육으로부터 엄청난 속도로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놀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나직한 숨이 흐르고 겨울의 뺨에 열기가 올랐다.
“그리고…… 미안해.”
애절한 음성이 길게 늘어지며 겨울의 귓가를 아찔하게 적셨다.
“역시 내 곁에 있어 주면 안 될까.”
적나라하게 와닿는 갈구가 겨울의 심장에 파열하듯 부딪혔다.
“머릿속으로는 놓아줘야 한다는 거 아는데…… 마음이 따라 주지가 않아.”
뜨거운 숨이 겨울의 고막에 질척하게 밀착되었다.
“너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젖은 목소리가 한껏 갈라지며 흘러나왔다.
“이대로 네가 날 두고 떠난다고 해도, 난 평생 너만 바라볼 거야.”
“…….”
“겨울이 올 때마다 그리워서 밤마다 잠 못 이룰 거고, 네 표정, 말투,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죽을 때까지 평생 기억하며 살아갈 거야.”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낀 시후는 겨울을 놓아줄 수 없다는 듯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뒤엉키는 심장박동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내 진심이야.”
발화하는 머리와 심장이 너무도 뜨거워 어떻게든 돼버릴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불에 덴 듯 화끈거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제 심장에 강렬하게 새겨진 한 남자를 이제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천천히 뒤를 돈 겨울이 뻐근하게 고개를 들어 시후와 눈을 마주했다. 겨울의 눈가에 달린 이슬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시후의 엄지가 겨울의 뺨을 지나 입술에 닿았다. 떨리는 손으로 살짝 누르자 붉은 입술이 여린 꽃잎처럼 벌어졌다. 비스듬히 내려온 시후가 젖은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었다.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는 감각에 떠밀리듯 밀려난 겨울의 몸이 차가운 현관에 살짝 닿았다. 그 옆을 짚어 겨울을 제 품에 가둔 시후는 다시는 그녀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강렬하게 턱을 비틀었다. 애정을 갈구하듯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삼키던 시후가 이내 그녀의 입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찔한 감각에 겨울이 움찔 몸을 떨자,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안았다. 이내 갈라진 입술 틈을 파고든 시후가 연한 속살을 헤집으며 고른 치열과 촉촉한 점막을 차례로 훑어내렸다. 정신없이 뒤엉키는 감촉에 겨울의 심장에 강렬한 파동이 일었다. 하아, 여린 숨이 입안에서 터져 흐르자 시후가 그 숨 한 조각마저도 전부 들이마시겠다는 듯 더욱 겨울의 안을 파고들었다. 뜨거운 숨결이 닿은 부위가 불에 덴 듯 화끈했다. 거칠게 마찰하는 감각기관은 서로를 한없이 탐하며 갈구하고 또 갈구했다.
한참 만에 입술이 떨어지자 겨울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전에 나한테 흔들지 말라고 했지.”
시후의 눈매가 까맣게 타오르며 짙게 물들었다.
“근데 나, 지금부터 너 제대로 흔들 거야.”
각오하라는 듯 내려온 입술이 겨울의 하얀 뺨 위로 문질러졌다.
“너한테 내 모든 걸 줄 테니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흐른 뜨거운 숨이 겨울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