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심장의 열기2022.03.16.
겨울은 찌뿌듯하게 무거운 눈꺼풀을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열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익숙한 천장이 들어찼다. 몽롱한 정신 속에도 이곳이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다시금 몰려오는 몸살 기운에 도로 눈을 감았다. 문득 제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이 닿는 느낌이 들자 겨울이 움찔했다. 열 오른 피부가 시원해지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윽고 커다란 손이 제 뺨을 부드럽게 감싸는 감각을 느꼈다. 이 시리도록 차갑지만 다정한 손의 주인을, 겨울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울컥 치받쳐 오르는 감정의 돌풍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만지듯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에 겨울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왜 이렇게 다정하게 쓰다듬는 걸까. 지금껏 날 붙잡은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인생에 이혼이라는 오점을 남기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면서. 제 가슴에 생채기를 남긴 입술과 달리, 그의 손길은 한없이 따뜻하고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대로는 심장이 고장 날 것만 같아 지금 막 잠에서 깬 척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깼어?”
살짝 놀란 듯 반사적으로 겨울의 뺨에서 손을 떼어낸 시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기분 좋은 손길이 떠난 것이 아쉬워 입술을 말아 삼킨 겨울이 작게 한숨 쉬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클레르 옆 카페에서 쓰러졌었어. 나한테 연락이 와서 데리러 갔었는데, 병원에서 몸살감기라고 하더라.”
“아…….”
“왜 무리해서 출근한 거야?”
“……오늘까지 일하면 내일은 쉬니까 괜찮을 줄 알았어.”
시후와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워 시선을 내리깐 겨울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대답에 입술 끝을 짓씹은 시후의 까만 눈매가 타오를 듯 어둑하게 물들었다. 쏟아지는 뜨거운 눈빛에 겨울의 눈꺼풀이 잘게 경련했다. 토해내듯 숨을 뱉은 겨울이 하릴없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미안해.”
몸살로 아픈 것보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욱 컸다. 또 바보처럼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견뎌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애써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열이 떨어지지 않은 머리가 아직도 어질어질했으나 이대로 침대에 누워 그의 병간호를 받고 있을 자신은 없었다. 이불을 들어 올린 겨울은 하얀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 이제 가볼…….”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순간적으로 몰려온 어지럼증에 여린 몸이 휘청했다. 중심을 잃고 기울어진 몸은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잘록한 겨울의 허리를 붙잡아 끌어안은 시후와 겨울의 시선이 강렬하게 맞부딪혔다. 화르륵 얼굴에 열이 오르고 겨울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아, 미안.”
당황한 시후가 황급히 겨울을 안고 있던 손을 놓으며 어수선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온통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겨울의 얼굴만큼이나 시후의 귓바퀴도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겨울을 안았던 손에 열이 오르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시후가 황급히 뒤를 돌았다. 빠르게 뛰기 시작한 제 심장을 느끼며 시후가 애써 덤덤한 척 입술을 움직였다.
“더 쉬어. 불편하면 내가 나갈게.”
나직하게 속삭인 시후가 협탁에 놓인 약봉지를 겨울에게 건넸다.
“약 먹고 자.”
떨리는 손으로 약 봉지를 받아든 겨울이 빨개진 얼굴을 손등으로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쭉한 다리가 빠르게 교차하며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내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문이 굳게 닫혔다.
“…….”
동시에 겨울은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이토록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가파른 숨을 토해낸 겨울은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손부채질하고 가슴을 쓸어내려도 한번 폭발한 박동은 좀처럼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쳤어, 함겨울.”
어깨를 붙잡은 커다랗고 단단한 손의 느낌이, 허리를 끌어안던 팔의 강렬한 힘이, 입술 앞에서 맴돌던 따뜻한 숨결이 뇌리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강시후 너는, 항상 날 열 오르게 만들고. 창피하고 꼴사납게 만드는데. 뭐든 내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 하나 없고, 몸과 마음이 따로 놀게 되는데……. 그래도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건……. 열 오른 뺨을 덮은 겨울은 입술을 꼭 말아 삼켰다. ***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일요일 아침이 되자 겨울은 집을 나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클레르에는 수요일까지 쉬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온종일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회복에 힘썼다. 그렇게 일요일과 월요일이 하릴없이 지나고, 화요일이 될 때까지 시후에게서는 연락 한 통 없었다. 화요일 밤이 되어서야 호텔 룸 밖을 나온 겨울은 답답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 기분 전환을 위해 최상층에 있는 라운지로 향했다. 몸살 기운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몸이 온전한 것은 아니었기에 무알코올 칵테일을 하나 주문한 뒤 고요한 제 휴대전화를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연락도 없네.”
겨울도 먼저 하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주형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고 오해할 터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겨울이 핸드폰을 뒤집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함겨울?”
그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한 겨울이 고개를 들었다. 시야를 한가득 메우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여기서 다 만나네. 오랜만……은 아니지.”
“…….”
“겨울이 넌 여기 어쩐 일이야?”
17살, 고등학생 시절. 겨울과 가장 친했었던 친구 모채연이었다. 겨울의 집안이 몰락하기 전, 한승희와 김규리, 모채연까지 세 사람은 원래 겨울과 세트처럼 붙어 다녔던 사이였다. 겨울을 질투한 승희가 그녀가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이후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나는 이 근처에 출장 왔다가 이 호텔에서 하루 지내는데, 맘이 답답해서 술 한잔하려고…….”
“우리가 아는 척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시절, 채연은 전형적인 방관자였다. 한승희가 겨울을 몰아붙이고 왕따를 주도할 때 그녀의 옆에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겨울의 고통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겨울은 처음부터 묘하게 싸했던 승희의 배신보다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채연의 외면이 더욱더 상처였었다.
“……미안.”
일전에 클럽에서도 그녀는 똑같이 승희의 유치한 행동을 방관만 했었다. 겨울은 서른이 가까이 돼서도 달라진 게 없는 채연의 태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 되면,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나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오늘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입술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가만히 바라보던 겨울이 상체를 똑바로 일으키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삐딱하게 팔짱을 끼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이 떨어지자 건너편에 앉은 채연은 바텐더에게 제조가 간단한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 칵테일이 서빙될 때까지 채연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머뭇할 뿐이었다.
“할 말이 뭔데?”
참다못한 겨울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연은 망설이다가 자그마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갑자기 뭐가?”
“그냥 전부 다…….”
예상치 못한 사과에 겨울은 소리 없이 미간을 좁혔다.
“예전부터 너한테 항상 사과하고 싶었어. 그래도 학생 때 너랑 내가 제일 친했는데…….”
“…….”
“변명밖에 안 되지만, 그 당시 생각이 너무 어려서…… 네 편을 들어주기 무서웠던 것 같아.”
칵테일 잔을 만지작거리며 채연이 작게 한숨 지었다.
“그때 클럽에서 너 만나고, 승희하고 많이 싸웠거든. 나도 대체 걔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
“…….”
“아마 너한테 열등감 가진 것 같은데, 네가 시후 선배랑 결혼했다는 소식 듣고서 승희 걔가 질투가 더 심해진 것 같더라고.”
머뭇거리던 채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사실 너한테 고백할 게 있는데.”
“……뭘?”
“너도 아마 알고 있을 거야. 배우 오민주 씨하고 시후 선배, 불미스러운 소문 돌았던 거.”
“…….”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자선 파티에서 쏟아졌던 사람들의 미묘한 시선들과 한승희가 제게 쏘아붙였던 그 악독한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네 남편, 오민주하고 호텔에서 사진 찍힌 건 아니?’
그날 한승희는 유리한 패를 쥔 사람처럼 기세등등하게 말했었다.
‘일전에 호텔에서 사진 찍힌 거, 대대적으로 기사화될 뻔한 걸 네 남편이 돈으로 겨우겨우 막았다던데.’
그 당시, 분노가 치밀어오르다 못해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도 위축되는 기색 없이 당당한 한승희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실 한빛 매니지먼트에서 일하고 있거든. 배우 오민주 씨도 우리 소속 연예인인데, 한 달쯤 전인가. 시후 선배네 회사 넥스트 게임즈 광고 촬영 관련해서 미팅이 있었어.”
“…….”
“그때 호텔 미팅룸에서 관계자들끼리 만났었는데, 내가 시후 선배 너무 멋있어서 사진을 살짝 찍었거든…….”
겨울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흔들렸다.
“승희한테 보내서 시후 선배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잘생겼다고 얘기를 좀 했는데, 걔가 또 너한테 질투를 했는지…….”
“…….”
“내가 보내 준 사진에서 다른 사람은 교묘하게 잘라서, 민주 씨랑 시후 선배 둘이 나온 사진처럼 꾸며서 기자한테 보냈더라고.”
풍랑을 맞은 듯 나부끼던 겨울의 동공이 휑하니 울렸다. 오민주와 호텔에서 찍혔다는 사진의 전말은 이토록 허탈한 것이었다.
“시후 선배가 그거 막으려고 고생 좀 한 것 같던데, 진짜 그때 내가 너랑 시후 선배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게 사실이야?”
겨울이 홀린 듯 되묻자 채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일 이후 승희 멀리하다가, 이번에 너한테 하는 태도 보고 정말 학을 뗐어. 진작에 연 끊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겨울의 심장이 서서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시후와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한승희의 유치한 계략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겨울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은 겨울이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어 입가를 적셨다.
“그 일 때문에 괜한 소문도 좀 돌았던 것 같은데, 내 탓 같아서 미안했어…….”
겨울은 차마 할 말이 없어 씁쓸한 입안만 한번 굴렸다. 이런 내막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시후에게 오민주와 사진 찍힌 것에 대해 사납게 따졌던 것이 떠올랐다. 착잡함이 몰려오자 입술을 꼭 사리물었다.
“그래도 난, 네가 문제없이 선배하고 잘 사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채연이 흐릿하게 숨소리처럼 웃었다.
“시후 선배가 잘해주지?”
“…….”
“어렸을 때부터 선배가 너 진짜 좋아했잖아. 너라면 완전히 눈 돌아가서는…….”
오래전 과거를 회상한 채연이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그때 되게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멋있기는 엄청 멋있었어.”
“뭐?”
“과장 좀 보태서, 시후 선배 안 좋아해 본 여자애 한 명도 없을걸? 부럽다. 그런 모든 여자의 이상형이 남편이라니.”
“아니, 그게 아니라…… 무섭다니? 뭐가 무서워?”
“아…… 너 설마 몰라?”
“뭘?”
“그 왜, 너 불타는 창고에 갇혔을 때 시후 선배가 너 구해줬었잖아.”
“…….”
“그때 너 창고에 갇혀 있다는 사실 듣자마자,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창고로 뛰어들어서 구하는데 진짜 히어로 같았거든. 게다가 선배 등은 까맣게 화상 입어서 피부까지 녹아내리고 있는데, 오로지 겨울이 너 무사한지만 살피고…….”
충격에 물든 겨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저를 구한 사람이 시후란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 목격자에게서 듣는 그날의 이야기는 겨울의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그다음 날 선배가 학교에 오자마자, 너 창고에 가뒀던 애 피떡 되도록 팼었잖아.”
“……때렸다고? 나 가뒀던 그 인간?”
“응. 이것도 선배가 너한테 말 안 했나 보구나.”
의외의 사실에 놀란 채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걸 맘대로 말해도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
“그때 애들 보란 듯이 복도에서 공개적으로 패고, 앞으로 함겨울한테 손대는 인간들 다 죽여버리겠다고 그랬었거든. 겨울이 너한테 말도 걸지 말고 네 앞에서 숨도 쉬지 말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창고에서 있었던 화재 사건 이후, 겨울을 향한 모든 괴롭힘이 완전히 사라졌었는데, 그 내막에는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어쩐지 그 당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겨울을 보는 일부 학생들의 시선에 묘한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난 선배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건 처음 봤어. 널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
겨울의 가슴이 거세게 일렁였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박동하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그토록 차갑게 대했으면서, 뒤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저를 아껴주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내부가 파도처럼 울렁이자 겨울은 제 손끝으로 번지는 떨림을 막을 수 없었다. 채연과 헤어진 이후로도 겨울은 내내 멍한 상태였다.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했던 강시후의 진심을 알게 되자 온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심장이 파열할 것처럼 뛰고 가슴이 찢길 것처럼 욱신거렸다.
“대체 왜…….”
그동안 모든 걸 비밀로 하고, 악역을 자처한 이유가 뭘까…….
‘설마 나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이 닿자 울컥 솟구치는 감정에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가슴에서 시작된 열기에 녹아버리기 전에, 겨울은 무작정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 지금 당장 시후를 만나야만 했다. 그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야 이 심장에 맺힌 알 수 없는 열기가 조금 가실 것만 같았다. 시후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무작정 액정화면을 켠 겨울은 다급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문득 문자가 한 통 도착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운 화면을 꾹 누른 겨울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부고 故 유서진의 본인상 및 자녀상을 알립니다. 발인 11월 24일 오전 7시 제우병원장례식장] 시후의 새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문자였다. 겨울의 심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온몸의 피가 한순간 증발하며 머리가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휴대전화를 쥔 손이 덜덜 떨리고 머리가 뜨끈하게 아파왔다. ……죽었다고? 그 여자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의 부고 알림이라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과 함께 뇌관이 뒤틀리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잠깐…….”
그런데 자녀상이란 말은 또 뭘까. 일순 끔찍한 상상을 한 겨울의 손발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린 겨울의 심장은 곧 폭발할 것처럼 뛰었다. 식겁한 겨울은 자꾸만 어긋나는 손가락으로 꾸역꾸역 시후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걸었다. 그러나 오래도록 이어지는 신호음은 끊길 기미가 없었고, 초조해진 겨울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