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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몸의 대화 (53/112)


53. 몸의 대화
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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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뉴스에는 사고로 보도됐지. 하지만 지금 정황상으로는…… 타살이 틀림없어.”

겨울의 심장이 아래로 꺼졌다. 경악으로 물든 여린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타살이라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내뱉어지는 숨이 불안정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사고도 아닌,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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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그런 짓을…….”

겨울이 더듬더듬 입술을 움직이자 시후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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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았어.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과 부딪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절벽으로 떨어진 건데, 그 트럭의 운전자가 지금 미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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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직도 안 잡힐 수 있어? 요즘 같은 때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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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와 강창영, 그 둘이 같이 타고 있던 차는 시골 외진 곳의 산으로 이어진 도로를 달리고 있었거든. 비까지 오고 있었고, 야간 영상이라 번호판은 식별도 안 되고…… 근처에는 CCTV도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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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뺑소니 사고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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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범인에게 고의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 사고인지는 검거 후에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심장이 서늘하게 조여오자 겨울이 마른침을 삼켰다.

……사고일까, 고의일까.

일전에 일방적으로 겨울에게 폭언을 쏟아냈던 유서진의 인간성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에게 원한을 산 사람이 많을 것 같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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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으로 떨어진 직후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 새어머니가 직접 119에 신고를 했더라고. 다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핸드폰으로 위치추적을 해서 구조된 직후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황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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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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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했던 건지, 아니면 잘못 적은 건지 키패드에 숫자가 적혀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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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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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12345.”

알 수 없는 말에 겨울의 미간이 가파르게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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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는 큰 의미는 안 두는 것 같아. 실수로 적은 거라는 가설에 무게가 실리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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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고 낸 범인은 지금도 계속 찾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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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데 목격자도 없고……. 왜인지 차에는 블랙박스도 없어서 범인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설마.

본능적으로 한 가지 가설을 세운 겨울의 가슴이 섬찟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겨울은 곧장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제 친아들과 아내를 죽일 만큼, 소름 끼치는 인간은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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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살감기로 병가를 낸 뒤 오랜만에 출근한 겨울은 동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직원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있었던 후배 테라피스트 우정이 겨울을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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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몸은 좀 괜찮아요? 쓰러졌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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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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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걱정 얼마나 했는지 알아요? 무리하지 말라니까!”

덤덤하게 답하자 우정이 겨울의 팔에 찰떡처럼 달라붙으며 애교스럽게 너스레를 부렸다.

픽 웃음을 터뜨린 겨울이 우정의 머리를 가볍게 흐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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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고마운데,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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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긴 무슨?”

대기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희수가 겨울의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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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을 때 넌 좀 더 쉬어야 해. 너무 일 중독이야.”

밉지 않게 흘기는 시선에 겨울이 웃음으로 회답했다. 그렇게 웃는 표정이 세상 밝고 환해 보이는 게, 일전에 암울했던 겨울의 표정과는 천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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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컨디션 좋아 보이긴 하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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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세상 팔팔하지. 이제 쉰 만큼 일하려고.”

어깨를 으쓱한 겨울이 캐비닛을 열고 유니폼을 꺼내 들었다.

우정이 관리 준비를 위해 직원대기실을 나가고 단둘이 되자 희수는 겨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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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봐. 너 남편하고 풀었구나?”

얼마 전 시후와 싸운 뒤 희수의 집에 찾아갔었던 걸 떠올린 겨울이 머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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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대화로 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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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대화?”

일순 음흉해진 희수의 표정에 겨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몸을 느끼하게 터치하며 섹시한척 입술을 동그랗게 만 희수가 우,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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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이런 격정적인, 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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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는다?”

헛웃음을 터뜨린 겨울이 유니폼의 옷깃을 정돈했다. 끝을 잡고 깔끔하게 펴자 구겨진 카라가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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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짜 부럽다. 나는 대체 몇 년째 솔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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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좋다는 남자 많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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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만날 수는 없잖아. 내 맘에 드는 남자가 없는걸. 사귀어도 한 달을 못 가요.”

지금껏 만난 남자들과는 전부 한 달도 가지 않아 남남이 되었었다.

외형에 반해 사귀어도 예전에 만났었던 전 남자친구가 도무지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희수는 첫사랑이자 무려 5년을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 외에는 제대로 애인을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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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개팅 시켜주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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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변에 아는 남자 없는 거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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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남편 주변에 미혼인 친구 소개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응? 응?”

은근슬쩍 묻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걸 보며 겨울이 실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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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알겠어. 한번 물어보고 말해줄게.”

 

***

VIP 손님의 특별관리 때문에, 원래 퇴근 시간보다 일이 더 늦게 끝난 겨울은 10시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클레르를 나올 수 있었다.

데리러 오겠다는 시후의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려고 했지만, 이윽고 받은 문자에 큰길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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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오늘 저녁 미팅이 늦어져서 데리러 못 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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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택시 타고 갈게. 집에서 봐.]

간결하게 답장한 겨울이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롯가로 향했다. 그러나 빈 차는 없었고, 있더라도 대부분 예약이 되어 있는 택시였다.

할 수 없이 애플리케이션으로 호출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드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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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겨울 씨, 이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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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사장님도 이제 가시나 봐요.”

클레르 옆 카페의 사장 한석우였다. 저번에 카페에서 쓰러진 이후 처음 보는 얼굴에 머쓱해진 겨울이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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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는 진짜 감사했어요. 제가 갑자기 카페에서 쓰러져서 많이 놀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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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남편분께서 바로 데리러 오셔서 다행이었어요. 이제 몸은 괜찮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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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완전히 멀쩡해요.”

언제나 그랬듯 다정한 석우의 미소에 겨울이 입꼬리를 올렸다. 비스듬히 시선을 내린 석우는 잠시 왼쪽 손목을 확인하더니 코트에서 차 키를 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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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늦었는데, 제가 집까지 차로 바래다 드릴게요. 겨울 씨가 어디 산다고 하셨죠? 예전에 이 근처 산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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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 10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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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면 그냥 제 차 타고 가세요. 밤늦은 시간인데 여자 혼자 택시 타면 위험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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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괜찮은데.”

잠시 고민하던 겨울이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인데, 더 이상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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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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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하게 타세요.”

석우는 카페 옆 주차장 쪽으로 손짓했다. 그의 뒤를 따라가자 외관이 깨끗하고 세련된 중형 SUV가 단정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조수석에 올라타서 본 내부마저도 마치 새 차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자 입이 절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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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런데 차가 진짜 깨끗하고 좋네요. 관리 되게 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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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뽑은 차에요. 제 인생 두 번째 차랄까.”

나지막이 읊조린 석우가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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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차를 꽤 오래 끄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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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스무 살 때 뽑은 차였는데, 서른인 지금까지 거의 10년을 가까이 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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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10년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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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오래됐죠? 아마 이번 차도 그럴 것 같아요. 제가 차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한 번 차 뽑으면 오래 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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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차가 로망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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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딱히 그런 로망은 없는 것 같아요.”

고개 돌린 겨울은 가볍게 핸들을 쥔 석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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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어렸을 때부터 카페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지금은 꿈을 이루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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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꿈을 이뤘다는 거.”

숨소리처럼 흐릿한 웃음이 겨울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꿈을 이야기하니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가세가 기울고 현실의 벽에 부딪혔던 겨울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저 멀리 하늘에 떠다니는 한 조각의 뜬구름이었다.

이제는 아득해졌던 과거의 꿈을 떠올리자 입안이 쓰라렸다.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겨울은 빠르게 화제 전환했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집 근처에 도착했다. 아파트 앞에 부드럽게 차가 정차하고, 겨울과 석우는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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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감사 인사를 하는데, 일순 뒤에서 빠르게 앞질러 온 차가 석우의 차 바로 앞에 정차했다.

시후의 차라는 것을 알아본 겨울의 눈이 살짝 커다랗게 뜨여졌다.

운전석에서 내린 시후와 눈이 마주친 겨울은 일전에 석우에게 번호를 요구받다가 들켰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티 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질투했던 시후를 떠올린 겨울이 입술을 옹송그려 물었다.

그가 또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깊은 걱정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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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번에 뵙고 또 인사드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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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네요.”

그러나 겨울의 우려와는 달리 시후는 그다지 석우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뚝뚝하게 고개를 까딱이며 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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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씨가 늦게 끝나셨길래, 집도 근처라고 하셔서 모셔다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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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감사합니다.”

심지어는 질투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큰둥하게 인사하는 걸 보니 딱히 기분이 나쁜 것 같지도 않았다.

그 태도에 묘한 서운함이 일은 겨울의 미간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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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좋은 밤 보내세요.”

끝까지 싹싹하게 예를 표한 석우가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차에 올라탔다.

그가 떠난 뒤, 겨울은 시후의 차에 올라타고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겨울은 시후의 눈치를 보았으나, 그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듯 세상 무던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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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질투를 안 하는 거지?’

기분이 꽁해지며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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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엄청나게 질투했으면서…….’

설마 잡은 물고기한테는 관심 없다, 이런 건 아니겠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오자, 코트를 벗은 시후가 넥타이를 풀며 겨울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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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으니까 일단 씻어야겠네. 너도 샤워하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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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찝찝한 마음을 안은 채 욕실로 들어간 겨울은 샤워하는 동안에도 묘하게 억울한 마음이었다.

10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에 아내가 외간 남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는데 질투하기는커녕 무관심한 태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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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왜 갑자기 남편이 질투하지 않는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말리는 것도 잊은 겨울이 대충 손에 집히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거실로 나왔다.

내내 복잡했던 겨울의 마음은 이내 세상 편안한 모습으로 거실에서 태블릿PC로 업무를 보고 있는 시후를 발견하고 울컥했다.

아니, 나는 이렇게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데……!

결국 못 견디게 억울해진 겨울이 참지 못하고 쿵쾅거리며 시후에게 다가갔다. 태블릿PC를 마주갑이로 뺏어 들자 놀란 시후가 고개를 들었다.

살짝 커진 눈동자를 본 겨울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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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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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단단히 삐진 겨울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무렇게나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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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래?! 이제 잡은 물고기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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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슨 말이야?”

심통 난 겨울은 창피함도 잊고 꽥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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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질투도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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