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겁쟁이 아셀(1)
#3
아셀은 오늘도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것을 극심하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아프다는 핑계라도 댔어야 하는데 늘 이런 식이다.
“그러게! 돈을! 가져왔으면! 안! 맞아도! 되잖아!”
“저, 정말 돈이 없어요!”
그 대가로 아셀은 무리의 중간에 섞여서 두들겨 맞는 목동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왜소한 아이는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정말 공이라도 된 것처럼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럼 니 병든 애미 약값은 뭐로 내는 거야, 엉?!”
“그···그건! ”
맞는 이유도 기가 막혔다. 최근에 어머니의 병세가 깊어져서 지출 대부분이 약값으로 돌아간 탓이었다. 고아 출신이 대부분인 그의 패거리는 목동의 효심을 참작해주지 않았다.
“야, 길러 줄 애미 같은 거 없어도 나처럼 잘살 수 있어. 어차피 조만간 뒈질 년한테 뭣 하러 매달리냐, 응?”
“관짝 살 비용 가불했다 생각하면 속이 좀 편하지 않겠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을 듣고도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셀은 주먹을 쥔 채 웅얼거렸다.
“멍청이.”
그것은 아이가 아닌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목동 못지않게 왜소하고 삐쩍 마른 그가 불량배들의 표적이 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재능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폭력이나 따돌림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아셀은 기도했다. 말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제발 저 야만스러운 폭력이 빨리 끝나기를. 자신의 이름이 부디 불리지 않기를.
하지만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어이, 아셀! 이 자식이 네 마법 맛을 보고 싶나 본데?”
대장 노릇을 하는 한스가 숨을 몰아쉬며 그를 불렀다. 그 순간 모든 불량배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셀은 무거운 추 같은 것이 심장 위로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이이익! 마, 마법! 안돼요! 제발! 그것만은 봐 주세요!”
“그래 아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버려!”
“마법사님! 마법사니이임! 제발 자비를!”
목동이 허둥지둥 무릎을 꿇었다. 코피를 줄줄 흘리며 아셀의 바짓단을 붙들었다. 아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주문을 영창했다.
“인비저블 핸드”
목동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안 돼!”
보이지 않는 손이 목동을 쥔 채 들어올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느릿하게 올라가던 그의 몸은 머지않아 떨어지면 크게 다칠 높이에 도달했다. 그러나 불량배들은 아셀을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낄낄,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버려!”
“내려 줘요! 제발! 내려 주세요!”
아셀이 입술을 비틀었다. 자신의 같잖은 재능이 저주스러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잡상인이 팔던 마법서를 장난삼아 사 보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촌구석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을까?
손이 덜덜 떨려왔다. 집중이 깨지는 순간 목동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그의 마법은 아직 미약하고 불안정했다. 아셀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제발 누가 말려 줘!
“그래, 내려 줘.”
별안간 뒤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떤 새끼야?”
“너, 너는!”
무리는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길을 가다 돌을 맞아도 당황하지 않는 한스조차 벙어리가 되었다.
무슨 일이지? 아셀은 고개만 간신히 돌려서 뒤를 돌아봤다. 님버튼의 무법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로난이 다시금 말했다.
“내리라니까?”
아셀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 속에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목동을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한스가 아셀의 어깨를 콱 쥐었다.
“야, 지금 뭐 하냐?”
“으, 응?”
“저 새끼가 내리라 한다고 내려? 넌 내가 만만하냐?”
“그, 그건 아닌데···.”
“다시 올려.”
아셀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목동의 몸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로난이 헛웃음을 지었다. 성큼성큼 걸어간 한스가 로난의 코앞에 멈춰 섰다.
“로난, 오랜만이네. 그치?”
“그러게 한스, 정말 오랜만이야.”
“왜 갑자기 나대는 거야? 계속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매독 걸린 고구마 같은 면상은 여전하네. 이 정도로 심했던가?”
“······씨발놈아, 너는 주제 파악이 안 되냐?”
키가 훨씬 큰 한스가 로난을 내려 보는 모양새였다. 실제로 한스는 로난보다 세 살이 많았다.
분위기에 위압된 다른 소년들이 숨죽인 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본래 님버튼에서 로난의 입지란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걷지도 기지도 못하게 주물러 놓지만, 자신이 다른 다툼에 개입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옛날에 주먹질 좀 한 걸로 나대지 마. 다시 싸워도 니가 이길 것 같아?”
그에 반해 한스는 아무나 들이받는 들소와도 같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아도 시비를 걸고,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즉시 주먹을 날렸다. 물론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로 한해서.
상대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참사가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그의 지독하게 못생긴 매부리코였는데, 3년 전에 시비가 붙었던 로난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한스의 허리춤에는 그럴싸한 롱소드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지난 겨울 내내 어느 용병단의 수발을 든 보상으로 받은 물건이었다.
스르릉!
한스가 칼을 뽑아들었다. 로난이 입을 둥글게 말며 감탄했다.
“오, 칼.”
“너네는 왜 멀뚱히 보고만 있어?”
한스의 목소리는 그의 몸집만큼이나 위압적이었다. 불량배들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에워쌌다. 아셀은 마법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어. 한 번은 봐 줄테니까.”
“휘두를 줄은 알아? 막대를 쥐고 흔든다고 해서 그 짓거리와 똑같이 생각하면 곤란···.”
쐐액!
한스가 수직으로 칼을 휘둘렀다. 로난은 가볍게 어깨를 비틀며 공격을 피했다. 엉망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자세가 봐줄만 했다.
“···팔 하나 없는 병신으로 만들려 했는데, 운도 좋아. ”
“그러게.”
운이 좋다. 로난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형편없어진 근력이나 체력과는 달리, 동체시력과 반응속도는 그대로인 듯했다. 물론 상대가 한스 나부랭이인지라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빌어도 늦었어. 가려면 귀나 코 한쪽은 놓고 가야 할 거야.”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관심은 다시 아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키 작은 소년은 허공에서 휘청이는 목동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역시 기억이 틀리지 않았어. 저 새끼 마법사였지···.’
로난의 침묵을 위축으로 해석한 소년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하긴 벌써 몇 년 전 일이냐 그게. 괜히 쫄았네.”
“같잖은 무게 잡지 말고 지금이라도 싹싹 빌어 병신아.”
아무리 로난이라 해도 잠자리보다 약간 더 두꺼운 작대기로 진검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한스는 매일같이 검을 수련했다. 결코 좋은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가 노력가인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한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나 뒈지면, 니 누나는 내가 귀여워해 주마. 그 탱탱한 엉덩이를 주무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쉬릭!
그 순간 휘파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툭. 둥글넓적한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 떨어졌다.
“어?”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못했다. 다만 어깨에 걸쳐져 있던 로난의 작대기가 바닥에 내려와 있었다.
위화감을 느낀 한스가 시선을 떨구었다. 잘려나간 귀 한쪽이 신발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어어?”
이윽고 타는 듯한 통증이 귓가를 엄습했다. 한스는 칼도 내팽겨진 채 귀가 있던 자리를 부여잡았다. 손가락 틈새로 붉은 피가 울걱울걱 솟구쳤다.
“아아아아악! 씨발! 내 귀!”
“야.”
뻐억! 로난이 한스의 배를 강하게 걷어찼다. 한스는 귀가 잘린 고통도 잊은 채 그대로 고꾸라졌다. 충격이 내장까지 전해진 탓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았다.
“허어억···!”
“이 개 좆만한 고아 새끼야.”
그는 한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거칠게 들어 올렸다. 웃음기가 사라진 로난의 입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우리 누나 엉덩이가 뭐 어쨌다고?”
“죽여! 죽여버려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한스가 침과 눈물을 질질 흘리며 외쳤다. 주춤거리던 소년들이 하나둘씩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로난은 한스의 얼굴을 그대로 바닥에 찍어 버리며 중얼거렸다.
“애미애비 없는 친구들은 꼭 티를 낸다니까. 나도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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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려놨네?”
“으, 응.”
그가 불량배들을 정리하고 왔을 때 아셀은 이미 목동을 내려놓은 뒤였다. 로난이 바지에 손을 문지르며 투덜댔다.
“흐, 확실히 약해지긴 했어. 고작 이 정도로 지치다니.”
아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약해졌다고?
대략 오 분간 일어난 그 사건은 싸움이라 칭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압도적인 폭력은 닭장에 침투한 독수리의 난동을 연상케 했다.
나무 아래에는 원래 목동이 쓰던 빵모자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로난은 모자를 주워서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목동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넌 집에 가.”
“저, 저어···그러니까···.”
“저 병신들은 걱정하지 말고. 이제 니가 아니라 니 동생이랑 싸워도 질 거다.”
로난은 엄지를 들어 뒤쪽에 널브러진 불량배들을 가리켰다. 하나같이 팔다리가 죄다 부러진 채 골골대고 있었다.
“참, 이것도 가져가.”
로난은 다시 목동의 모자를 벗겨서 그 안에 동전을 한 움큼 집어넣었다. 불량배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목동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이건 너무 많아요.”
“괜찮아. 내 몫은 이미 뗐거든.”
“그, 그래도···.”
“바지에 똥 지릴 때까지 맞고 갈래?”
“감사합니닷!!”
목동은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한 뒤 언덕 아래로 달려갔다. 아셀은 로난의 눈치를 보며 괜한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이윽고 로난이 입을 열었다.
“어이, 난쟁이.”
“아, 응? 나?”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이름이 미셀이었나?”
“그, 아셀이야.”
“그게 그거지. 그나저나 남자 맞지?”
“어? 으, 으응···.”
“계집애같이 생겨먹었네. 내 기억보다 훨씬.”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빨간 머리카락과 쌍꺼풀 진한 눈을 보고 있자면 이게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키도 아주 작아서, 아데샨이 그의 정수리에 가슴을 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 그, 저기··· 그···미안···.”
“됐고, 너 아까 그거 나한테 써봐.”
“응? 뭘...?”
“염력 마법. 저 꼬맹이를 집어서 들어 올린 거 말야.”
“그, 그럴 순 없어!”
아셀이 손사래를 쳤다. 로난은 피딱지가 눌어붙은 주먹을 슬쩍 보여 주며 말했다.
“올리다가 떨궈도 뭐라 안 할테니까 그냥 해봐.”
“아니, 위험한 것도 문제지만···아마 들어 올리지도 못 할 거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해.”
아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로난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손이 나타나 로난을 쥐었다.
“오.”
이윽고 그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목동보다 훨씬 무거운 탓에 힘이 더 많이 들었다.
“이, 이제 내릴까?”
“계속해.”
전생에서 공중전을 벌였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결전 당시 숙달된 염력 마법사가 자신을 움직여준 덕에 그는 아하유테의 날개를 자를 수 있었다.
‘마법사는 드물지. 염력 마법사는 더 드물고.’
마법사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 가지의 속성밖에 다루지 못했다. 염력은 굉장히 희귀한 능력에 속했다.
로난은 아셀의 얼굴을 보고 까마득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가 염동력으로 가판대의 물건을 훔치던 기억이 난 것이다.
전생에는 개미 코딱지만큼도 관심이 없던 놈팡이가 이런 재능의 원석이었다니. 로난은 이 뜻밖의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로난의 몸은 어느새 자신의 키 정도의 높이 까지 떠올랐다. 아셀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 가며 마법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실험해 봐야지.’
스르릉! 별안간 로난이 칼을 뽑아들었다. 이제 다시는 검을 휘두를 수 없게 된 한스의 검이었다. 아셀이 화들짝 놀라며 마법을 해제하려 했지만 로난이 그를 만류했다.
“아니, 그대로 계속 올려.”
영문 모를 소리였다. 아셀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로난은 염력이 작용하고 있는 부분을 가볍게 칼로 그었다. 물을 베는 듯한 촉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동시에, 그를 붙들고 있던 힘이 소멸했다.
“어?!”
털썩. 아셀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사뿐하게 착지한 로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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