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특급 모험 동아리(3) >
#51
분명히 보았다. 오필리아가 처음에 사용하려 했던 마법은 시타와 같은 종류의, 피를 다루는 마법이었다. 로난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합격.”
면접 질문을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합격이라는 말을 들은 오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빨간 눈동자와 대비되는 하얀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하게 느껴졌다.
그 대비를 보는 순간 로난의 머릿속에 어느 종족이 떠올랐다. 시타에게 영향을 줬으리라 예측되는 세 존재 중 하나. 과거 인간과의 공존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결국 제국령을 떠나 자신들의 왕국을 세운 종족.
“오필리아. 혹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로난이 뭐라 질문하려는 차였다. 로난의 머릿속에 오필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봤구나.]
전음 마법이었다. 아데샨이 아닌 로난에게만 들리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그런데 일단은 비밀로 해 줘.]
전음에서마저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로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회답한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시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오필리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뺘아?”
“나···그럼 만져도 돼?”
마치 어린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사탕을 먹어도 되냐 묻는 것 같았다. 오필리아의 얼굴을 훑은 로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이제 시타가 어떤 종류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네, 뭐···아마 좋아할 거예요.”
“···헤헤.”
배시시 웃은 오필리아가 손을 뻗어 시타를 만졌다. 시타는 일말의 거부 반응도 보이지 않고 바로 그녀의 손등에 얼굴을 부볐다.
“빠야~”
참 한결같은 놈이었다. 면접을 일단락지은 로난은 오필리아와 함께 제1투기장을 떠났다. 물어볼 것이 아주아주 많았다.
갈레리온 관을 벗어난 그들은 대광장까지 이동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서는 말해도 돼죠?”
“응.”
“당신 종족은 전부 제국을 떠난 거 아니었어요?”
오필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적막의 자리를 대신했다. 몇 분을 더 걷고 나서야 로난의 머릿속에 전음이 울려 퍼졌다.
[···전부는 아니야.]
“그렇군요. 말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아냐. 극소수긴 해도 여전히 제국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뱀파이어가 있어. 필레온 아카데미에 들어온 게 나 혼자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나요?”
[크라티르 교장님과 교수진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몰라. 정체를 들키면 귀찮은 일밖에 벌어지지 않았거든.]
오필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필레온에 들어오게 된 경위나 배경은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로난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거워질 것을 감지한 로난이 화제를 돌렸다.
“솔직히 동아리가 아니라 시타한테 관심이 있어서 온 거죠?”
[응.]
“솔직해서 좋네요. 단순히 귀여워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우리 종족의 마법···그러니까 혈마법의 기운을 느꼈거든.]
오필리아는 그 말과 함께 검지를 들어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 위로 피로 이루어진 장미가 나타났다. 로난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시타가 고개를 쭉 빼며 눈을 반짝였다.
“뺘아!”
별안간 시타의 눈이 밝게 빛났다. 장미의 형태가 뭉그러지며 시타를 닮은 새의 모습으로 재구성되었다. 피의 새는 그대로 시타의 깃털에 흡수되었다. 오필리아가 시타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역시.]
“그 괴물딱지 같은 요술을 혈마법이라 부르나 보네요.”
[응. 너무 신기해서···피의 마나를 오랜만에 느낀 것도 있지만, 뱀파이어가 아닌 종족이 혈마법을 쓰다니···원리가 뭐지?]
그녀의 말투에는 학자들의 대화에서나 느껴질 법한 탐구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쩐지 웨어울프 대장장이 디디칸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시타의 날개를 매만지던 오필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얘는 무슨 동물이야···? 꼭 오르세 님처럼 날개가 네 장이네.]
“꿈새라는 환상종이에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지는 모르겠는데, 피를 다룰 줄 알더라구요.”
로난은 꿈새의 특성과 시타를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직 태어난 지 두 달이 안 지났다는 말을 들은 오필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달···?”
“네. 문제라도 있나요?”
“잠깐만···그런데 방금 피의 형태를 조작한 거야···?”
“···그게 놀랄 일이였어요? 더 대단한 짓도 하던데.”
로난은 시타가 했던 활약들을 말해 주었다. 돌란과의 전투에서는 출혈을 더 심하게 만들어서 빈틈을 만들었다. 그란 카파도키아에서는 생존자들의 피를 광범위하게 조작해서 위치를 알리는 기둥을 만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때마다 오필리아의 얼굴이 점진적으로 굳어졌다. 벌어진 오필리아의 입술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시타가 별안간 눈을 빛냈다.
“뺘.”
갑자기 시타의 눈앞에 피로 이루어진 장미 한 송이가 나타났다. 오필리아가 만들었던 것과 완벽하게 같은 형태였다. 시타는 마치 선물을 주는 것처럼 피의 장미를 물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세상에···!”
“왜 그래요?”
“이건···정말 대단해. 이름이 시타라고 했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아의 입에서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얼굴에 조금씩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어쩌면···어쩌면 이 아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저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일단 말해 보세요.”
“이 아이의 피를···아니, 깃털을 몇 개만 줄 수 있어?”
“깃털을요?”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갑자기 꿈새 마르페즈의 깃털을 따라 바렌을 찾아갔던 일이 떠올랐다. 오필리아가 호소하듯 말했다.
“원래는 활동은 안 하고 연구만 할 목적이었는데···정말로 열심히 참여할게. 그러니까 세 개, 아니···두 개만 줘···.”
“진정해요.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건데요?”
“새로운 혈마법의 연구에 쓰려고 해. 이번에는 느낌이 왔어. 돌아오면 반드시 이 아이에게도 가르쳐 줄 테니까···응?”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요? 시타한테?”
로난의 눈이 커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느끼고 있었는데, 시타는 무언가를 배우고 활용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래, 어지간한 꼴통들도 배우면 똑똑해지는데....'
문제는 다루는 마법이 워낙에 기괴망측한 탓에 스승 삼을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혈마법이라는 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생기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로난이 시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시타, 괜찮아?”
“뺘.”
시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난은 그녀의 사상검증을 마친 뒤 깃털 세 개를 뽑아 주었다. 오필리아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시타의 깃털을 받아들었다.
“고마워···그런데 아하유테···? 가 무슨 뜻이야···?”
“치질 걸린 원숭이 이름이라니까요.”
“이상한 이름이네···아무튼 고마워. 반드시 돌아올게···.”
오필리아는 그 말을 남긴 채 등을 돌려 걸어갔다. 이윽고 갈레리온 관이 만들어 낸 그림자 속에서 은색을 띠는 박쥐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박쥐는 거의 맹금류에 버금가는 속도로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는 별과 분간할 수 없게 된 박쥐를 바라보며, 로난이 중얼거렸다.
“···괜찮은 거겠지?”
****
훈련은 매일 이어졌다. 다행히도 부원들은 동아리 활동에 적극 참여해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로난이 라만차를 들고 잡으러 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정말 남는 시간마다 네스트로 와서 훈련에 매진했다. 기본적으로 재능과 열정이 뒷받침되어주는 터라 성장하는 속도가 빨랐다.
“아니, 이게 안되냐? 그냥 슉 들어와서 샥 베면 되잖아.”
“하하하! 나도 네 머리를 샥 베고 싶군! 그게 말인가 당나귀인가!”
“참아, 브라움.”
“이해를 못 하겠네. 다시 해 보자. 허리를 비틀면서 이렇게 슉!”
로난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두 사람을 가르쳤다. 물론 그에게는 빈말로라도 교육자의 재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무예는 한 번 보고 베낄 수 있는 로난에게 있어서 마르야와 브라움의 부진은 지체 장애의 일종으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볼 때 전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결국 이해를 실패한 로난은 징벌병식 훈련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못 하면 될 때까지 맞는다. 다만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병아리들을 두들겨 팰 수는 없었기에, 악몽 같은 체력 단련으로 구타를 대신했다.
“헉, 도대체···! 몇 바퀴째 도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야. 체력이 뒷받침되어있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 그리고 체력이 증진되면 더 오래 훈련을 할 수 있겠지.”
“와하하! 살려줘!”
로난은 체력뿐만 아니라 근력 단련 또한 병행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네스트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훈련 시설을 그들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같이 그 지랄을 하다 보니 신체에도 자연스레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날인가 훈련을 마친 마르야가 아셀을 불렀다.
“귀염둥이, 한번 만져 봐.”
“어? 어어?”
“빼지 말고, 어서.”
마르야는 아셀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배를 만지게 했다. 땀에 젖은 옷감 너머로 돌을 만지는 듯한 촉감이 아셀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마르야가 땀을 닦으며 웃었다.
“어때, 끝내주지? 몸 단단해지는거 하나는 마음에 들더라.”
아셀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는 브라움도 몸 자랑을 꽤나 즐기는 편이었지만, 밤에 그를 몬스터로 오인한 신고가 세 번 정도 들어온 이후로는 조금 사리는 중이었다.
마르야는 보름 정도가 지나자 자신의 대검으로 제국 검술을 시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다음 날 제국 검술 수업의 조기 이수증을 들고 왔다.
“아자! 봤지!”
“고생했다. 이제 격투술 이수해야지.”
“아아악!”
그 다음 날에는 브라움이 중급 격투술을 조기 이수했다. 2학년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성취를 이루었다며 교관의 찬사를 들었다고 했다.
“와하하! 특히 맷집이 돋보인다더군! 다 너희들 덕분이다, 고맙다!”
“제법인데 브라움!”
“커억!”
뻐억! 습관적으로 날아온 마르야의 주먹에 브라움의 다리가 풀렸다. 다만 처음처럼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로난이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브라움에게는 대검이 아닌, 다른 무기가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손검과 거대한 방패라던가.
‘그나저나 그 자식은 언제 오는거야.’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건만 슐리펜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랑시아 가에서 대규모의 숙청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만이 알음알음 들려올 뿐이었다.
나비로제는 시릴라와 돌란에게서 캐낸 정보들이 문서화 되어 각계의 상부로 보고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황제께서도 이번 일을 알게 된 것 같더군. 네뷸라 클라지에만을 노리는 특수 조직이 창설을 앞두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앞으로 더 혼란스러워지겠네요.”
“그렇지. 그나저나 요즘 뭘 하길래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냐. 바렌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정확히는 싸돌아다니려고 준비 중이에요. 교관님의 잠옷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일이죠.”
제1 투기장에 로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는 며칠간 귀를 남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열흘이 더 지났다. 마르야와 브라움은 수업을 각각 두 개씩 더 조기 이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동아리 건물의 코르크 보드에 자신들의 조기이수증을 진열해 놓았다.
“이걸로 세 장째다!”
“나는 네 장!”
“다들 고생했어.”
로난이 박수를 쳤다. 이제 두 사람의 시간표도 로난이나 아셀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시간표를 조율하자 동아리원 전원이 주말을 포함해서 닷새를 비울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갈 준비가 되었군.”
오필리아에게서는 주기적으로 편지가 오고 있었다. 사흘 전에 이제 정말 마무리 단계라는 내용의 편지가 왔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출발해야 할 때였다. 로난은 곧장 ‘창백한 말’이라는 길드에 연락을 넣었다. 바람을 타고 달린다는 유령마를 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였다.
계획을 짜던 로난은 유령마를 탈 경우 바이디안까지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결코 저렴하지 않은 비용이 수반되었지만, 그건 학교 측의 문제지 로난이 알 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