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71화 (71/333)

< 71. 피의 갈고리(3) >

#71

오필리아가 로난의 뺨에 손을 올렸다. 이윽고 마나가 그녀의 손바닥으로 모여들며 서늘한 빛을 발했다.

“뺘···?!”

시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필리아가 손을 뗐다. 자신의 얼굴을 만져본 로난이 인상을 찌푸렸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굴곡이 평소와 달랐다.

“젠장, 영 느낌이 이상하네. 제대로 된 거 맞아?”

“응···완벽해. 촉매까지 사용한 마법이니까. 부지를 벗어나면 다시 걸어줄게.”

“삐야웅···.”

질색하는 시타의 모습을 보아하니 제대로 먹힌 것 같기는 했다. 로난과 시타는 동이 트기 무섭게 필레온을 떠났다. 제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발을 움직여야 했다.

****

초승달이 눈웃음치는 밤이었다.

낙엽으로 뒤덮인 늪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얗게 말라죽은 나무들이 달빛 아래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늪지대의 3할 정도를 이루는, 밟고 지나다닐 수 있는 땅은 짧고 누르스름한 풀로 뒤덮여 있었다. 선혈의 정수를 거래하기 위한 약속 장소는 그 한가운데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어느 고분(古墳)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두 명이 출입구 역할을 하는 석문을 막고 서 있었다.

콧수염이 난 사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오늘 온다는 놈이 누구라고 했지? 거 되게 늦는군.”

“멍청아, 그새 까먹었냐? 자로딘 스톤송이잖아.”

“아, 기억났어. 마법사라고 했던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야. 과거에는 전대 검성과도 겨뤘던 거물이라고.”

곱슬머리의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허술한 놈과 일을 한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주인님들은 어째서 이런 잡배에게 권속이 되는 영광을 부여한 걸까. 그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주인님들께서 이번 거래를 기대하고 계시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스크롤은 잘 가지고 있지?”

“그래그래, 몇 번째 물어보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놈이 아무리 날고 기는 마법사라 해도 결국은 인간···”

“쉿! 저기 온다.”

곱슬머리가 손가락을 뻗어 전방을 가리켰다.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일렁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횃불을 든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는 긴 로브를 입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칼을 뽑아든 문지기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자로딘 스톤송···맞으십니까?”

“그래.”

콧수염이 눈살을 찌푸렸다. 교살당하는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끔찍한 목소리였다. 자로딘의 초상화를 꺼내 든 곱슬머리가 엄중한 투로 말했다.

“신원을 확인해야 하니 후드를 벗어 주십시오.”

“그러지.”

신원미상의 사내는 순순히 후드를 뒤집었다. 볼품없이 비쩍 마른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나치게 깊숙이 박혀 있는 푸른 눈동자, 과거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짙고 선명한 눈썹. 초상화와 그의 얼굴을 대조하던 곱슬머리가 이내 칼을 집어넣었다.

“확인했습니다. 탑 메이지 자로딘 스톤송.”

“그래, 고맙군.”

“들어가시죠. 귀하신 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곱슬머리는 그를 고분으로 안내했다. 자로딘의 행색을 훑던 콧수염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너무 말랐구만. 몬스터인 줄 알았수.”

“닥쳐라. 손님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마.”

“상관없으니 문이나 열어라.”

“아아, 넵!”

문지기들이 석문을 열었다. 드러난 통로 저편에서 서늘한 바람이 훅 몰려왔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자로딘의 미간이 좁혀졌다. 곱슬머리가 고분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큰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시면 됩니다. 내부가 복잡하니 주의하시길.”

“생각보다 규모가 큰가 보군···내가 밤눈이 조금 어두워서 그러는데, 혹시 안내해 줄 수는 없나?”

“그건···저희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라. 죄송합니다.”

곱슬머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면 될 텐데, 아무래도 입구를 지키는 것 외에도 따로 맡은 임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자로딘이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자네들 말고는 바깥을 지키는 인원이 없는 모양이군?”

“네? 어···그렇습니다만.”

“잘 됐어. 내가 선물을 하나 주지.”

별안 주머니를 뒤적이던 자로딘이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기껏해야 손가락만 한 아주 작은 스크롤이었다.

자로딘은 문지기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스크롤을 발동시켰다. 슈욱! 반투명한 정육면체가 세 사람을 감쌌다. 외부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건···사일런트···”

곱슬머리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자로딘의 로브 속에서 무언가 번득였다.

바람이 목울대를 긁고 지나가는 듯한 감촉과 함께 그의 세상이 기울었다. 툭. 곱슬머리 문지기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품하던 콧수염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흐어윽! 이, 이게 무슨···!”

“바로 죽네. 인간이었냐?”

말단 흡혈귀인 줄 알았는데 그냥 권속인 듯했다. 곧장 앞으로 뛰쳐나간 자로딘이 팔을 휘둘렀다. 서걱. 시커먼 칼날이 호를 그림과 동시에 콧수염의 목에 붉은 선이 생겼다.

“커억···!”

“너는 피를 조금 더 마셨나 보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음을 눈치챘다. 뱀파이어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재생력이 즉사를 막아주고 있었다. 콧수염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짓누르며 주머니에 넣어 뒀던 스크롤을 왼손으로 꺼내들었다.

“우아아아악!”

“에이 씨발, 깜짝이야.”

콧수염은 괴성을 지르며 스크롤의 봉인을 해제하려 들었다. 자로딘이 침착하게 참격을 날렸다. 서걱! 그의 양팔은 먼젓번에 베어졌던 머리와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았다. 시체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본 자로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침묵 마법을 걸기 잘 했네.’

하마터면 초장부터 일이 틀어질 뻔했다. 그가 사용한 것은 이전에 슐리펜에게 선물 받은 초소형 사일런트 스크롤이었다.

그때 피 웅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는 두루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콧수염이 필사적으로 밀봉을 뜯으려 한 것이었다. 자로딘, 정확히는 자로딘으로 폴리모프한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용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로난이 스크롤을 집어드는 순간이었다. 달랑달랑하던 묶음끈이 끊어지며 스크롤에 각인되어 있던 마법이 발동되었다. 슈아악! 느닷없이 솟아난 마나의 장벽이 석문을 가로막았다. 로난이 헛웃음 쳤다.

“···수고를 덜었네.”

아무래도 입구를 봉쇄해서 자로딘이 도망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자로딘을 상대로 준비한 물건이라 그런지 확실히 견고해 보였다. 자기들도 뚫고 나가지 못할 만큼.

로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곱슬머리의 소매도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스크롤이 숨겨져 있었다. 스크롤을 챙긴 로난이 로브를 들추며 말했다.

“시타. 치워.”

“뺘아.”

시타가 로브 속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가 맞지도 않는 로브를 입고 온 이유 중 하나였다.

곳곳에 튀어 있는 혈흔을 확인한 시타가 날개를 펼쳤다. 시체의 몸 속에 남아 있던 피는 물론, 로브에 묻은 모래알만 한 핏자국까지 남김없이 방울이 되어 떠오르며 시타의 몸에 흡수되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현장이 깔끔해졌다. 미라처럼 말라붙은 시체들을 본 로난이 만족스레 웃었다.

“잘했어. 이 정도면 안 들키겠지.”

혹시라도 뱀파이어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이미 저 안쪽에서도 피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어 들킬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을 마친 시타는 다시 로브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로난은 통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상태가 좋군.’

통로는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정교한 석공술이 눈에 띄었다. 늪지대인지라 사방이 물과 진흙으로 차 있을 텐데도 물이 샌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로난은 이 무덤에 적용된 건축 양식이 사란테의 신전과 비슷하다는 걸 눈치챘다.

‘설마···우연이겠지.’

내부는 상당히 복잡했다. 건물을 그대로 땅 속에 파묻은 듯한 구조의 무덤이었다.

로난은 곱슬머리 문지기가 말한 것처럼 큰 통로만을 따라 걸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피냄새가 진해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시야가 넓어지며 연회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왔다. 진짜 왔어. 그 자로딘 스톤송이야.”

“인간과 거래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너무 말랐어. 피가 세 잔도 안 나오겠네.”

연회장 한복판에는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기다란 돌 탁자가 놓여 있었다. 스무 명의 젊은 남녀가 탁자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많이도 왔군.’

그들이 모두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마흔 개의 붉은 안광이 로난을 응시하고 있었다. 핥는 듯 끈적한 시선에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으으으···으으···.”

“가만히 있어. 손님이 오셨잖아.”

탁자 위에는 세 명의 남녀가 결박당한 채 누워 있었다. 여인 둘에 사내 한 명이었는데, 전부 목덜미와 손목에서 피를 흥건하게 흘리고 있었다.

로난은 그들의 머리에 자루가 씌워져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려 달라 호소하는 얼굴을 보면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뱀파이어가 몸을 일으켰다.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자로딘 스톤송. 피의 갈고리의 단장인 츠바이 폰 아른슈타펠입니다.”

츠바이는 금발의 미청년이었다. 과연 모기 동호회 대장 다운 요란한 이름이었다. 그는 탁자 위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시길래 먼저 식사를 들었습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함께하시겠습니까?”

버터를 바른 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로난은 대꾸하지 않았다. 뱀파이어들의 면면을 훑어본 그가 불쾌한 듯 혀를 찼다.

“고작 거래일 뿐인데 지나치게 많이 데려왔군.”

“양해해 주십시오. 당신을 뵙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서요.”

“이 정도면 전원이 모인 거라 봐도 되겠나?”

“그렇습니다. 실제로 전원이지요.”

“선혈의 정수는?”

“물론 가져왔습니다. 거래를 마치는 즉시 추출해서 가공 처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좋다. 바라는 게 뭐지?”

“저희의 권속이 되십시오.”

한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오필리아가 예상한 대로였다. 로난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당장 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십 년의 유예를 드리겠습니다. 일단 피의 맹약을 맺으시고, 시간이 되었을 때 저희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나보고 너희 흡혈귀들의 노예가 되라는 건가.”

“그만큼 절박하셔서 저희를 찾아오신 걸 알고 있습니다. 필멸자들이 선혈의 정수를 구하신다는 건···열에 아홉은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로난의 얼굴이 한순간 굳었다. 그걸 놓치지 않고 포착한 츠바이가 가증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하, 제 말이 맞나 보군요.”

“닥쳐라.”

“뭐···이번 거래가 파기되면 선혈의 정수는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저희도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츠바이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오필리아와 했던 대화로 미루어 봤을 때 저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유감스러운 일이군요. 아마 무사히 돌아가시지는 못할 겁니다.”

“뭐?”

딱! 별안간 츠바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스무 명의 뱀파이어가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소리 없이 다가온 그들이 로난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허튼 수작은 부리지 마시지요. 마나가 교란되고 있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당신 수준의 마법사라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보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듣고 보니 연회장 구석구석에서 수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츠바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설령 마법을 사용해서 탈출하신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실 겁니다. 서클이 무너져서 다시는 마법을 못 쓰게 되실 수도 있지요.”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나.”

“절박함에 눈이 멀었던 것이 당신의 불행입니다. 자로딘 스톤송, 같은 마법사로서 당신을 존중할 때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겁니다.”

살기가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뱀파이어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수작을 부렸을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제대로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침음을 흘리던 로난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피의 맹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츠바이가 안주머니에서 붉은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대부분의 마법적 맹약에 사용되는, 숫산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였다. 한숨을 내쉰 로난이 새끼손가락에서 피를 짜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그 전에 선혈의 정수를 봐야겠다. 그릇은 누구지?”

“어차피 맹약을 마치면 알게 될 텐데요.”

“흡혈귀. 이쪽도 양보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로난은 말없이 츠바이를 노려보았다. 피의 갈고리의 젊은 단장은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옅게 한숨을 내쉰 츠바이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후···알겠습니다. 특별히 보여 드리지요.”

그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선홍빛의 마나 덩어리가 위태롭게 딸려 나왔다. 오필리아가 말한 것과 일치하는 외형이었다.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릇인가 보군. 지도자로서 귀감을 보이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됐다. 오래도 걸렸어.”

“네?

별안간 로브를 들춘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인지가 불가능한 속도로 날아간 검격이 츠바이의 사지 위로 그어졌다. 서걱! 네 개의 팔다리가 거의 동시에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어···?”

“진짜 자로딘이었으면 당했을 수도 있겠네.”

츠바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뭐라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로난은 곧장 넓게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다섯 개의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커어어어어억!”

“츠, 츠바이!”

뒤늦은 비명이 피분수와 함께 터져 나왔다. 로난은 머리 없는 몸뚱이를 밟고 뛰어올랐다. 황급히 몸을 돌린 뱀파이어들이 손톱과 날붙이를 휘둘렀으나 로난은 이미 포위망을 탈출한 뒤였다. 그는 머리가 잘리고도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흡혈귀들의 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좆같은 모기 새끼들···.”

로난의 움직임은 마법사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검고 반투명한 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참변에 뱀파이어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카, 칼···?!”

“젠장, 마법사라고 했잖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단장! 정신 차려, 단장!”

“등신들아, 선입견에 눈이 머니까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거잖아.”

그때 연회장의 입구를 가로막고 선 로난이 로브를 벗어던졌다. 줄곧 그의 등에 매달려 있던 시타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뺘아앗!”

“자로딘이 칼도 잘 휘둘렀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

“저, 저건···!”

로난의 허리춤을 본 뱀파이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은으로 만든 단말뚝 수십 개가 그의 혁대를 따라 매달려 있었다. 로난은 문지기의 시체에서 챙긴 스크롤을 뜯으며 입을 열었다.

“뭐···아무도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스크롤이 펼쳐졌다. 마나 장벽이 솟아나며 연회장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칼자루를 움켜쥔 로난이 뱀파이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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