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여명을 향해 쏴라(9) >
#96
새벽의 어둠이 짙었다. 달조차 저물어버린 하늘에는 부스러기 같은 별빛만 남아 반짝이고 있었다. 여명해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파도성이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바스라지고 있었다.
간밤에 큰 소란을 겪은 여명 마탑 대부분의 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마탑의 정원을 거닐던 에르제베트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결국 한 숨도 못 잤네···.”
메마른 입술 사이로 피로에 찌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옥 같던 그녀의 얼굴에 짙은 눈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지난밤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비공정 격추 미수 사건의 범인은 그랑시아 가의 삼녀 시온 시니반 데 그랑시아였다. 도서관마저 불살라 버릴 뻔한 그녀는 탑주 대리 아운 필라의 결정에 따라 무죄 처분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 모든 것이 그랑시아가 꾸민 흉계라 생각했지만, 머리를 식히고 보니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았다. 시온은 너무 어리고, 약했고, 무엇보다 대가문의 영애가 직접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책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다니···.’
로난이 했던 이상한 말도 마음에 걸렸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이 마탑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다들 어디 간 거지?’
문득 의아함을 느낀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탑주 대리와 사서는 난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로난 역시 잘 자라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단 조금이라도 자 볼까요.”
아무리 유추해 보려 해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졸음을 먼저 느낀 에르제베트가 길었던 산책을 마무리했다. 그녀가 마탑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꺄아아악?!”
수백 개의 천둥이 동시에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르제베트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원의 서북쪽에서 거의 마탑만큼 두꺼운 화염 기둥이 솟구치고 있었다.
“무, 무슨···!”
에르제베트가 뒷걸음질쳤다. 강렬한 열기가 여기서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별을 찌를 기세로 치솟던 화염 기둥이 사그라들었다.
콰르릉! 그를 대신하듯 불과 마나의 격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꼭 작은 화산이 분화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변을 느낀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마, 맙소사!”
“세상에, 금서고가 묻혀 있는 방향입니다!”
“타, 탑주님의 불 아닌가? 사서님과 탑 메이지께서는 어디 가셨지?!”
예상치 못한 날벼락에 마법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불길의 기세는 그들에게 비명을 지를 여유를 선사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쿠아아앙! 재차 솟구친 불기둥의 모습에 마법사들의 이성이 돌아왔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폭심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 일단 불이 번지는 걸 막아야 하오!”
정원이나 마탑에 불이 옮겨붙으면 참사가 일어날 터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에르제베트가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띄웠다. 현장에 도착한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지옥과 이어지는 통로가 열린 것 같았다. 일찍이 본 적 없던 규모의 파괴적인 화염이 정원 한복판에 난 구멍 속에서 치솟고 있었다. 뒤엉키고 흘러넘치는 불길은 두 가지의 색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이 여름날의 석양을 연상케 하는 맑은 주홍색을, 다른 한쪽은 지저에서 흐르는 용암을 그대로 퍼올린 듯한 끈적하고 묵직한 암적색을 띠고 있었다.
우세를 점하는 것은 암적색 화염이었다. 사악한 화마는 주홍색 불을 게걸스레 삼키며 그 규모를 더해가고 있었다.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온 마법사들은 전력을 다해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불구덩이를 에워싼 마나 실드는 녹았다가 재생성되는 것을 빠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소···! 이건 거의 8서클의···!”
“그래도 버티시오!”
다들 분투하고 있었지만 불길이 워낙 강대한 탓에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때 에르제베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키가 아주 작은 암청색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그랑시아?”
“이이이익···!”
암살 미수 사건의 용의자 시온 시니반 데 그랑시아였다. 그녀는 진화 작업을 하는 마법사들의 틈에 섞여서 열심히 방어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마법사들은 모두 진화 작업에 뛰쳐들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무슨 도움이 되겠다고!’
에르제베트가 미간을 좁혔다. 콰과광! 별안간 거대한 폭발과 함께 화산탄을 연상케 하는 불덩이 수십 개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의 궤도를 읽은 에르제베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불덩이는 정확히 시온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방어막을 치는데 총력을 기울이던 마법사들은 충돌 직전에 이르러서야 불덩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젠장, 다들 피해!”
“그랑시아 영애, 조심하십시오!”
“이이이익···네?”
정신을 집중하던 시온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검붉은 화염구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열기에 닿은 머리카락이 말려들고 있었다.
“어?”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짧은 생에 마침표가 찍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펼쳐진 반구형의 마나 실드가 그녀를 비롯한 마법사들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콰아앙! 방어막에 충돌한 화염구가 폭발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모하긴, 뭐 하는 짓인가요.”
“어, 언니는···?”
“그랑시아에서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면 빠져 있으라는 것도 안 가르쳐 주나요?”
시온이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에르제베트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목숨을 건진 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칼루시아 영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시끄러워요. 어린애 하나도 제대로 못 지키는 멍청이들. 당신들은 모두 제게 빚진 거예요.”
에르제베트가 날카롭게 쏘았다. 마법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방어막을 해제한 그녀가 불구덩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가세할게요.”
보라색 기운이 그녀의 손끝에서 번져 나왔다. 고무된 마법사들이 다시 자세를 잡고 섰다. 불현듯 쩌렁쩌렁한 외침이 마탑 전역에 울려 퍼졌다.
“모두 대피하시오!”
익숙한 목소리였다.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돌렸다. 익폭이 10m는 될 법한 거대한 불새 한 마리가 서쪽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만만찮게 거대한 불꽃의 맹금 수십 마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눈이 커졌다.
“아운 필라···!”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대피하시오!”
해가 서쪽에서 뜨는 듯한 광경이었다. 화조 아운 필라의 상징과도 같은 마법인 프로미넌스 버드였다. 순식간에 마탑까지 도달한 불새와 맹금들은 그대로 불구덩이에 몸을 처박았다.
화르륵! 화마의 형체가 일그러지더니 불길이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다. 머지않아 암적색 화염에 휩싸인 불새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가 불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에르제베트가 감탄을 흘렸다.
“역시···!”
다른 마법사들 전원이 노력한 것보다 유의미한 성과였다. 허공을 선회하며 불을 털어낸 아운 필라가 재차 불구덩이 속으로 강하하는 순간이었다.
화륵! 별안간 저 높은 상공에 섬광과도 같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머지않아 불이 잦아들며 두 인간의 형체가 드러났다.
몸이 불타고 있는 소년이 웬 늙은이의 목을 움켜쥔 채 추락하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을 알아본 에르제베트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로, 로난 님?!”
【빌어먹을 놈, 이거 놔라!】
동시에 섬뜩한 노호가 하늘 위에 울려 퍼졌다. 에르제베트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맹수라도 마주친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하윽···!”
다른 마법사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폭발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영창 중이던 마법이 실패하거나 마나가 역류한 부작용이었다.
“저, 저게 뭐지?”
“히이익···!”
저토록 사악한 마력은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까부터 에르제베트에게 찰싹 들러붙어 있던 시온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울먹이고 있었다.
【젠장!】
로난과 노인이 지상에 격돌하려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불꽃이 번쩍이더니 두 사람의 형체가 사라졌다. 그제야 어깨를 짓누르던 위압감이 소멸하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으아아앙!”
결국 울음을 터트린 시온이 에르제베트의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당황한 에르제베트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우, 울지 마세요···! 귀족이 울면 어떡해요?”
“흐윽···흐아아앙!”
“뚝 그쳐요, 뚝!”
에르제베트는 그녀가 그랑시아라는 것도 잊은 채 시온을 달랬다. 한참이나 시온의 등을 토닥이던 에르제베트가 로난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또 뭐랑 싸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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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놈! 놓지 않으면 타죽을 거다!】
“아직 버틸만 해.”
로난의 몸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기본적으로 내화성을 지닌 교복이 타들어가는 걸 보면 제법 강한 불꽃인 듯 했지만, 전투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별로 뜨겁지는 않았다. 바쥬라가 외쳤다.
【네놈은···네놈은 도대체 뭐냐!】
상처를 입은 바쥬라는 더욱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난사되고 있는 강력한 마법들이 그의 힘을 증명하고 있었다. 콰광! 로난을 향해 발사한 플레임 버스터가 빗나가며 인근의 숲을 증발시켜 버렸다.
【떨어져라!】
"너 같으면 놓겠냐?"
그들은 순간이동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추잡한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쥬라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로난을 떨쳐내려 하고 있었지만, 로난은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 자식도 한계야.’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연히 느껴졌다. 바쥬라는 약화되고 있었다. 불은 미지근해지고 바위는 물러지고 있었다.
화륵! 그때 불기둥이 재차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달라진 배경을 본 로난이 헛웃음 쳤다. 저 먼 발치에서 시커먼 밤바다가 물결치고 있었다.
‘기회다.’
그들은 여명해의 상공에 도달해 있었다. 콰직!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로난이 바쥬라의 코에 박치기를 날렸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바쥬라가 신음했다.
【크억!】
“불쌍한 영감님 그만 괴롭히고 나와.”
매부리코가 부러지며 피가 터져 나왔다. 로난은 연속해서 박치기를 날렸다. 쾅! 쾅! 이동 마법이 끊기며 추락이 이어졌다.
‘이대로 물속에 처넣는다.’
기본적으로 종이는 물에 젖으면 못 쓰게 되는 법이다. 더군다나 바쥬라가 다루는 마법들은 수중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잡아 처넣고 익사체 비슷하게 변한 걸 건져 오면 될 터였다.
【웃기지···마라!】
수면과의 거리가 5m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별안간 팔을 펼친 바쥬라가 무언가를 끌어 올리는 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우르릉···! 별안간 손바닥 형상의 암초가 그들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그대로 추락한 두 사람이 돌바닥 위에 충돌했다.
“커윽!”
어지간한 범선보다 큰 암초였다. 등부터 떨어진 로난이 바닥을 뒹굴었다. 다행히도 고도가 낮아서 충격은 크지 않았으나 바쥬라를 놓치고 말았다.
“썅, 어딜 도망···”
로난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콰앙!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고래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연달아서 솟아난 바위의 창 다섯 개가 로난이 있던 자리를 교차하며 꿰뚫었다.
【죽어라!】
마지막으로 그들이 발을 디디고 있던 손아귀 형상의 암초가 로난을 움켜쥐었다. 콰직! 손틈새로 불길이 치솟음과 동시에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억, 헉···.】
암초 위에 착지한 바쥬라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몸이 확연히 무거워진게 느껴졌다. 다시금 검은 피를 토해낸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어째서···이런 일이···.】
본체의 상처가 전혀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온갖 일을 겪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필멸자들이 말하는 ‘과다출혈’이라는 증상을 최초로 경험하고 있었다.
【서둘러 회복해야 해. 위험하다···.】
마나가 풍부한 생명체를 삼켜서 상처를 치유해야 했다. 그가 다시금 여명 마탑으로 향하기 위해 준비하던 차였다.
휘리릭! 수백 명이 동시에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암초 한구석이 폭발했다. 중지가 있던 자리를 뚫고 나온 로난의 모습에 바쥬라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역시 약해졌어.”
붉게 물든 라만차가 그의 손에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동할 때 입었던 화상을 제외하면 로난의 몸에서는 별다른 상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슬슬 끝내자.”
자세를 다잡은 로난이 곧장 바쥬라를 향해 쇄도했다. 그는 충격을 받은 듯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쉬익! 로난이 칼자루로 바쥬라의 관자놀이를 찍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음산한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네가 애송이라는 거다.】
“뭐?”
칼자루는 바쥬라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으며 지나갔다. 그의 형상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뒤늦게 환각이었음을 눈치챈 로난이 몸을 돌리는 차였다. 허공에서 나타난 바쥬라의 손아귀가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크윽!"
【길었다. 정말 위험했어.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졌을지도 모르겠구나.】
“이 새끼···!”
【하지만 역사는 최후의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이지. 네 몸은 내가 잘 쓰마.】
로난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바쥬라가 주문을 영창했다. 검은 책의 형태를 띤 그의 본체가 라르단의 가슴 속에서 빠져 나왔다.
동시에 탑주의 몸에 깃들어 있던 바쥬라의 의식이 로난의 몸으로 옮겨갔다. 그의 눈동자가 새카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벌어진 로난의 입술 사이로 기괴한 신음이 새나오고 있었다.
“으···으으···똥휴지···새끼가···!”
【저항하지 마라. 곧 편해질 테니까.】
바쥬라가 조소했다. 저항이 심하기는 했지만 이미 침식에 성공한 이상 몸을 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제 심장에 자리를 잡기만 하면 끝이었다. 문득 이질감을 느낀 바쥬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불쾌한 감각이었다. 다른 몸들과는 뭔가 달랐다. 가늠할 수 없이 강대한 무언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이건···?】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사악하고 끔찍한 존재였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시커먼 그림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똬리를 틀고 있던 그림자들은 하나둘씩 바쥬라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게 왜 몸속에...가, 가까이 오지 마라...!】
하지만 그림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바쥬라를 물어뜯었다.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 바쥬라가 헛숨을 들이켰다.
【허어억!】
이어서 나머지 그림자들이 달려들었다. 바쥬라의 의식이 어둠 속에 삼켜졌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로난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악!】
“썩 살기 좋은 집은 아니지?”
로난이 바닷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었다. 검게 물들었던 그의 눈동자가 원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바쥬라의 본체인 책이 요동치며 타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