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101화 (101/333)

< 101. 백수제(1) >

#101

모퉁이 너머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색이 된 아셀이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외쳤다.

“배, 백수제에 나올 만티코어가 풀려났어!”

“만티코어?”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만티코어라면 북서부의 험지에나 서식하는 위험한 몬스터였다. 사람을 즐겨 먹는 것으로 유명했고, 기본적으로 와이번이나 오우거보다 격이 높게 여겨졌다.

상식적으로 그런 괴물이 아카데미 한복판에 있을 리가 없었다. 순간 긴가민가하던 백수제의 정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생각났다.’

학사 일정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백수제. 이름 그대로 백 종류 상당의 환상종이나 몬스터를 교내에 전시하며 벌이는 축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만티코어까지? 로난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중얼거리던 차였다. 투쾅!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가로등 하나가 사거리 한복판에 떨어졌다.

“뭐야?”

황동으로 만들어진 가로등은 거의 부러지기 직전까지 구부려져 있었다. 다시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거대한 수사자가 모퉁이 너머에서 뛰쳐 나왔다. 뒷걸음질치던 아셀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끄아아악! 나, 나왔다!”

“크아아아아!!

사거리 한복판에 미끄러지듯 멈춰선 사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쩌렁쩌렁한 목청을 들은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얼씨구, 진짜네?”

정말로 만티코어였다. 몸길이가 아무리 작게 잡아도 7m는 되어 보였다. 호박색 모피로 뒤덮인 근육질 육신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창해 있었다. 전갈을 닮은 두꺼운 꼬리가 허공을 사정 없이 휘적여 대고 있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만티코어를 살피던 로난이 미간을 찌푸렸다.

“엥?”

수많은 구속구가 만티코어의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송곳니가 번득이는 아가리에는 가죽으로 된 입마개가 채워져 있었다. 박쥐를 닮은 한 쌍의 날개는 굵직한 사슬로 동여메져 있었다.

극독이 뚝뚝 흘러야 할 꼬리 끝의 독침은 철구 같은 걸로 감싸져 있었다. 헛웃음을 친 로난이 아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등신아, 저런 거한테 쫄아서 도망쳤냐?”

“아윽!”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아셀이 상대하기에는 다소 벅찬 몬스터였다. 무기로 사용할만한 기관을 거의 봉인 당했다 해도 만티코어는 만티코어였으니까.

거대한 덩치와 날렵함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고, 앞발이나 꼬리에 한 방 맞기라도 했다가는 꼼짝없이 불구가 될 터였다.

“캬아아아!”

쾅! 쾅! 꼬리가 바닥을 내리찍을 때마다 부서진 포석이 튀어오르고 있었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로난의 머릿속을 스쳤다.

‘정확히 어느 정도 위력이려나.’

정말 뜬금없었지만 돌란에게서 베낀 오러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의외로 덩치가 큰 생물에게는 먹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심한 로난이 아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야, 마나 포션 있냐? 상비용으로 들고 다니는 거.”

“으, 응. 한 병 있기는 한데···.”

“이리 줘 봐.”

로난은 아셀이 포션을 꺼내기 무섭게 잡아채서 들이켰다. 비어 있던 코어가 마나로 채워지며 피로감이 사라졌다.

“크으···좋았어.”

두리번거리던 로난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미래를 예측한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로난은 왼손으로 도망치려는 아셀의 목덜미를 잡은 채 오른팔을 휘둘렀다. 딱! 낮은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멩이가 만티코어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크릉?”

“이쪽이다, 털뭉치.”

만티코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마주친 로난이 픽 웃었다. 전생에서도 한두 번 마주친 몬스터였는데, 이렇게 보니 감회가 또 새로웠다.

“크아아악!”

거칠게 포효한 만티코어가 로난을 향해 달려들었다. 간격이 빠르게 좁혀졌다. 각종 구속구를 달고 있다기에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로난은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만티코어를 응시했다. 거리가 다섯 걸음 정도로 좁혀진 순간이었다.

‘지금.’

쿵! 로난이 발을 굴렀다. 마나의 파장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동시에 만티코어의 네 다리에 반짝이는 뿌리가 엉겨붙었다. 그리고 조금의 유예도 없이 뜯겨 나갔다.

“캬아아아!!”

“그래 시발. 이럴 줄 알았어.”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러는 단련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심장으로 동력원을 교체한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불그스름한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게 됐네.”

“크아악!”

스아아- 기묘한 숨소리가 로난의 입에서 새나왔다. 사정은 잘 모르겠다만 인명 피해가 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가 막 검격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별안간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굉음을 일으키며 착지했다. 급제동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썅, 뭐야?”

정장을 입은 괴한의 키는 족히 4m는 되어 보였다. 풍성한 갈기가 그의 목덜미를 뒤덮고 있는 것을 본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바렌?”

“곤란하군요. 왜 이런 일이···.”

바렌은 대답하는 대신 왼팔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만티코어의 이마와 그의 손바닥이 충돌했다. 쾅!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두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르르···! 크아아아···!”

“나누시. 우리로 돌아가세요.”

바렌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지면에 발톱을 박은 채 힘을 주고 있는 만티코어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어서요. 이곳 사람들은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차분한 어조에서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힘겨루기로는 이기지 못할 것을 깨달은 만티코어가 튕겨나듯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인근의 첨탑을 향해 도약했다.

“크아아!”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7층쯤 되는 높이까지 도달한 만티코어는 탑의 외벽을 박차며 바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운석 같은 것이 떨어지는 듯한 광경에 아셀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악! 교수님!”

“후···.”

바렌이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철퇴 같은 앞발이 그를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어깨를 비틀어 공격을 피한 바렌이 만티코어의 갈기를 움켜잡아 지면에 내리꽂았다. 쾅!!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은 만티코어가 배를 뒤집으며 쓰러졌다.

“끄르르룽···!”

“미안해요 나누시.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만티코어의 몸이 축 늘어졌다. 바렌이 가벼운 묵례를 보냈다. 문득 로난의 눈에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저건?’

황금빛 잔상이 바렌의 오른 어깨부터 손끝까지를 뒤덮고 있었다. 언뜻언뜻 내비치는 금색의 마나는 그의 앞발처럼 난폭한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잔상의 정체를 깨달은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저게 바렌의 오러인가.’

안 그래도 만티코어를 한쪽 팔로 멈춰세운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아무리 웨어라이온이라 해도 체급 자체가 달랐으니까. 어떤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걸 사용한 것 같았다.

‘강렬하군. 신체 강화 계열 같은데···.’

로난이 유심히 오러를 관찰하던 차였다. 만티코어가 완전히 기절한 것을 확인한 바렌이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허어억! 로난?!”

로난과 아셀을 알아본 바렌의 입이 쩍 벌어졌다. 팔을 뒤덮고 있던 오러가 사그라졌다. 날카롭던 눈매가 둥글게 변하며 로난이 익히 알고 있던 꺼벙한 얼굴이 돌아왔다.

“두, 두분 모두 괜찮으십니까?!”

“죽이던데요. 바렌. 다시 봤어요.”

“지, 지금 그런 농담을 할 때가 아닙니다. 다친 곳은 없나요?”

바렌이 호들갑을 떨며 두 사람을 살폈다. 조금 멋있어지나 싶었는데 하여튼 덩칫값을 못 하는 사자였다. 로난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후···정말 면목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늦게 데려오는 거였는데···.”

바렌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누시라는 이름의 만티코어는 백수제에 등장시키기 위해 그가 직접 포획한 개체였다. 원래는 제도 인근의 야산에서 사육하고 있었고, 필레온의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어젯밤부터 우리를 부지 내로 옮겼는데, 조금 전에 철창을 부수고 탈출한 것이라고 했다.

“훈련 때문에 구속구를 채워놓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설마 노들랜드산 철창이 부서질 줄이야···당장 행사가 취소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지요.”

“엥?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백수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보고 싶었는데.”

“저도 그러면 좋겠군요. 학생회와 교수진의 판단에 따라 갈릴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바렌이 말꼬리를 끌었다. 머지않아 갑옷을 입은 수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정신을 잃은 만티코어를 쇠사슬로 묶은 뒤 거대한 수레에 태워서 데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렌이 재차 허리를 숙였다.

“어쨌든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수이자 백수제의 책임자 중 한 명으로써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됐어요.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벌어지는 거지. 아셀 너도 괜찮지?”

“네에···괘, 괘, 괘, 괜찮아요···.”

아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볼 위로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린 바렌이 입을 열었다.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우선 상황을 수습하러 가보겠습니다.”

팡! 바렌은 그 말과 함께 공중으로 도약했다. 건물 몇 개를 펄쩍펄쩍 뛰어넘는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맨날 쿠키나 굽고 차나 홀짝여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바렌 역시 어마어마한 강자였다.

‘하긴 웨어라이온이니 당연한 건가. 그나저나···.’

로난은 조금 전에 보았던 바렌의 오러를 떠올렸다. 신체를 강화하는 계열로 보였는데, 척 보기에도 굉장히 쓸만해 보였다.

문득 오러라는 힘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폭풍검이나 만사처럼 말도 안 되는 사기 오러를 얻는데, 누구는 빛나는 뿌리로 남의 다리나 걸고 앉아있으니.

‘나도 그런거나 베꼈으면 얼마나 좋아.’

로난은 별 생각 없이 조금 전에 바렌이 취했던 자세를 따라해 보았다. 왼팔을 뻗어 만티코어를 막던 동작이었다. 그가 오러의 형상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츠팟! 금빛 섬전이 로난의 팔을 타고 일어났다가 사그라졌다.

“씨발, 뭐야?!”

“에?”

로난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우연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아셀이 눈을 부비적거렸다. 순간 바렌에게서 느껴지던 마나가 로난의 팔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바, 방금 뭐였어?”

“···나도 몰라.”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보았다. 바렌의 오러와 같은 힘이었다.

‘설마 다른 것도 베낄 수 있는 건가?’

벼락 한 가닥이 뇌를 꿰뚫으며 지나간 것 같았다. 곧바로 바렌의 오러를 재현하려 했지만, 방금의 섬광만으로 마나가 전부 소진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돌란의 오러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마나가 소모된 것이 느껴졌다.

‘그 등신들의 오러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하지만 로난의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네뷸라 클라지에가 아닌 다른 이의 오러를 발현했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 종양에서 말미암은 능력이 타인의 오러를 복사하는 거라면, 그리고 그 대상에 한계가 없다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힘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직 부족해.’

하지만 아직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능력에 대한 검증이 더 필요했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로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일단 코어를 키워야겠어.”

“으응? 코어?”

“아냐. 일단 돌아가자.”

고민해봤자 당장 더 할수 있는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정을 되찾은 학생들이 이송되는 만티코어를 따라가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

로난이 동아리 구역인 네스트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나비로제에게 자신의 코어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주러 갔다가 그대로 붙잡힌 탓이었다.

“젠장, 무식하기는.”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직도 팔다리가 벌벌 떨려왔다. 그가 코어를 두 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비로제는 ‘그럼 훈련도 두 배로 할 수 있겠군.’ 이라는, 지극히 그녀 다운 반응을 보였다.

결국 로난은 두 개의 심장이 텅텅 빌 때까지 구르게 되었다. 잠시 오늘 벌어졌던 일을 회상하던 그가 입술을 비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겠지.’

나비로제에게는 자로딘에게 들었던 정보 대부분을 말했지만, 타인의 오러를 베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밝히지 않았다. 조금 더 능력의 윤곽이 드러난 후 알려줘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오러의 격에 따라 베끼는 난이도가 다른 건가.’

훈련 당시를 떠올리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바렌의 오러를 흉내 내는 것은 결국 실패했다. 몇 번이고 시도해 봤지만 마나만 쭉 빠져나갈 뿐 재현되지가 않았다.

끼이익- 어느덧 동아리 건물 앞에 도착한 로난이 문을 열었다. 선술집을 연상케 하는 실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만나기로 했던 아셀은 보이지 않았다.

“아, 로난. 오랜만이네.”

대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던 마르야가 눈에 들어왔다. 로난과 눈이 마주친 그녀가 활짝 웃었다. 풍성한 금발에 얽혀 있던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그러게. 아셀은?”

“응? 귀염둥이는 안 왔는데. 약속 잡았어?”

“엉···기다리지 뭐. 그런데 너는 몸이 어째 더 단단해진 것 같다.”

마르야를 위아래로 흝은 로난이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배가 드러나는 훈련복을 입고 있었다.

일자형의 복근이 유달리 선명한 것으로 봐서 방금 근육 단련을 끝내고 씻은 모양이었다. 팔도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이는 것이 아셀의 머리 따위는 한 손으로 으깨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상인인지 야만 전사인지.’

전생에서 저 큰 가슴을 달고도 남장에 성공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지방을 모조리 근육으로 바꾸어 압축시킨 것이 분명했다. 칭찬을 들은 마르야가 자신의 복근을 탁탁 두드렸다.

“히히, 그렇지? 한번 만져 볼래?”

“됐어.”

마르야는 자존심이 상한 듯이 입술을 씰룩였다. 휘청이던 로난이 눈앞에 있는 탁자 위에 걸터앉았다. 두 개의 심장을 몽땅 털어내서 그런지 피로의 수준 자체가 달랐다.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앉은 마르야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상했네. 무슨 일 있었어?”

“많은 일이 있었지···.”

“요 며칠간 안 보이던데, 어디 다녀 온 거야?”

“여명 마탑.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냐? 만티코어 사건 빼고.”

“별일? 으음···뭐가 있더라.”

마르야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침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맞닿은 어깨가 뜨거웠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살살 간질이고 있었다.

‘얘는 왜 이러는 걸까.’

더우니까 비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지금은 귀찮았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마르야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사라졌던 라코타가 오늘 아침에 돌아왔어.”

“라코타?”

“왜, 바렌 교수님 수업 같이 듣는 남자애 있잖아. 우리랑 동갑이고.”

“아. 그 허약한 놈.”

라코타의 얼굴을 기억해낸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렌의 수업을 같이 수강하는 무예과 동기였다. 고향에서는 농장에서 돼지인지 염소인지를 길렀다고 한 거 같은데, 솔직히 그다지 존재감이 있는 놈은 아니었다.

“그 자식이 실종됐었다고?”

“응. 어젯밤에 말도 없이 실종돼서 난리가 났었어.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냐고 물어보니까, 밤에만 피는 약초를 따려고 숲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대. 진짜 어이없지 않아?”

“거 덜떨어진 놈일세.”

로난이 픽 웃었다. 물론 필레온 아카데미가 더럽게 넓어서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딱! 마르야의 손가락이 다시 튕겨졌다.

“참, 그리고 방금 공지 올라왔어. 백수제는 그대로 개최된대.”

“다행이네.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어. 한 명도.”

“그것도 다행이네.”

부지의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다. 만티코어의 탈출은 단순한 소동으로 마무리됐다. 마르야는 학생회와 교수진이 논의한 끝에 정상 개최가 결정되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건 예상했어. 백수제가 어떤 축제인데. 게다가 올해는 취소하면 절대 안 되지.”

“왜. 기타 치는 도롱뇽이라도 나오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로난이 어깨를 으쓱였다. 헛웃음을 친 마르야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기가 막혀. 아무리 바빠도 세상 소식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냐?”

“그만 비싸게 굴고 말해 인마. 뭐 때문에 그러는데.”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드래곤이라도 전시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마르야가 말을 이었다.

“무려 도플갱어가 최초로 대중 앞에 전시되는 거잖아. 그것도 알파와 오메가 한 쌍이 전부. 온 제국이 난리인데, 정말 몰랐어?”

“도플···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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