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180화 (180/333)

180. 오러(2)

#180

뤼코포스의 습격 이후 삼십 분 정도가 지났다. 한층 강렬해진 석양이 성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온통 붉게 물든 분화구는 여기가 왜 빛이 고이는 웅덩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지 친히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상황은 처참했다. 분화구를 물들이는데 기여한 적색은 비단 노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 위로 뿌려진 피가 만들어낸 진홍색 얼룩이 성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빽빽하게 자라난 검령들 사이로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다르만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전향하는 이들은 살려 주겠다. 방어막을 해제하고 무기를 버려.”

“닥쳐라.”

“우리의 권유를 받아들인다면 살려주는 것은 물론 지금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약속하겠다. 머지않을 종말의 날에 구원받을 수 있는 자리도 내어 주지. 당신과 검성은 날개를 받을 자격이 있어.”

“검보다는 혓바닥을 더 잘 놀리는군.”

나비로제가 으르렁거렸다.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다르만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물러날 기색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반투명한 장막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은 채 일렁이고 있었다. 반구형의 방어막은 나비로제뿐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생존자를 모두 감싸고 있었다. 원로 중 한 명인 알로긴의 오러였다. 세 명의 원로와 열네 명의 참가자가 반구의 안쪽 테두리를 따라 늘어선 채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냥 죽이면 안 될까? 저 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다르만의 옆에 서 있던 아지에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그녀의 왼쪽 팔꿈치 아래가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별의 가호가 끝나는 틈을 파고든 나비로제의 작품이었다. 다르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아라. 어차피 팔다리 정도는 알리브리헤 님이 만들어 주시잖나.”

“그렇기는 하지만···열 받는단 말이지.”

아지에가 단검을 투척했다. 캉! 방어막에 부딪힌 칼날이 맥없이 튕겨 나왔다. 다르만이 나비로제의 뒤편에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부질없는 저항이다. 당신도 저 늙은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나비로제는 대답하는 대신 눈살을 찌푸렸다. 분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반구의 중심부에 솟아 있는 바위에는 자이파와 알로긴이 나란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자이파는 악몽이라도 꾸는 사람처럼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붉게 물든 알로긴의 배에서는 아직도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르만에게 당한 상처였다.

“···나는 괜찮네 나비로제.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게.”

“말을 삼가하십시오. 상처가 벌어집니다.”

“허허···꼴도 보기 싫어서 평생 사용하지도 않았던 오러가···쿨럭,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알로긴이 힘없이 클클거렸다. 내뱉는 숨마다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위태로운 웃음이었다.

그의 오러는 자신이나 주변인의 마나로 강력한 방어막을 치는 것이었다. 과거 나비로제나 자이파 못지 않게 거친 삶을 살아온 알로긴에게 있어서 그 능력은 수치이자 놀림거리에 불과했다.

계집애처럼 방어막이나 치고 들어가 숨으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헌데 그 능력이 지금 와서는 자신과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생명줄이 되어 버렸으니, 역시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름대로 괜찮구나···커윽.”

“알로긴···.”

나비로제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마나를 제공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알로긴의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 방어막이 무너지는 순간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대로 몰살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희망을 걸 만한 존재도 불분명했다. 알로긴을 비롯한 원로들은 성지에서 일이 터진 것을 감지한 사람들이 도우러 올 것이라 말했지만, 그녀는 산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를 보고는 반쯤 체념했다. 이미 아래쪽에서는 비극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가장 흔들어 놓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로난.’

제자의 얼굴을 떠올린 그녀가 입술을 비틀었다. 로난은 세상이 떠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그 뒤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분화구 일부가 붕괴한 걸로 보아 저 아래로 추락한 것 같은데, 도저히 구하러 갈 틈이 나지 않았다. 그녀를 힐긋 돌아본 슐리펜이 전음을 보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허튼 소리 마라. 슐리펜.]

[할 수 있습니다. 로난의 안전을 확보한 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네 목숨이 두 개라고 해도 허락할 수 없다.]

나비로제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용감한 걸 넘어서 무모한 짓이었다. 만약 여기 있는 것이 다르만이나 아지에 뿐이었다면 어찌어찌 시도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방어막 건너편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사내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랑시아의 소공작은 제게 주시지요. 방심한 틈을 타서 이따위 짓을···.”

이목구비 없는 가면이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예리하고 깊은 자상이 사내의 왼쪽 쇄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슐리펜의 폭풍검에 당한 상처였다.

그는 치열하던 격전을 틈타 가세한 열댓 명의 괴한 중 한 명이었다. 같은 가면을 쓴 남녀 여섯이 방어막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네뷸라 클라지에로 추정되는 괴한들은 다르만이나 아지에보다는 실력이 떨어졌으나 체계적으로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고, 제법 많은 참가자가 그들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다르만이 말했다.

“소공작에게 몇 명이 죽었지?”

“여섯입니다.”

“많이도 당했군. 두 검성과 함께 꼭 데려가야 하는 인재야.”

다르만이 헛웃음을 쳤다. 그 또한 바람의 칼날을 휘두르던 슐리펜의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도저히 그 나이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자신의 동생과 더불어 대륙에서 제일가는 유망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똑똑. 그는 노크하듯 손을 들어 방어막을 두드렸다. 과연 소드 마스터의 오러로 만들어진 결계라 그런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생존자들의 눈빛이 투지로 불타는 것을 본 다르만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협상은 결렬이군.”

계획 변경이었다. 아무래도 모조리 죽여 놓고 극소수만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다르만이 손을 뻗어 방어막을 겨누었다. 위험을 직감한 참가자들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광풍이 있을지니.”

그 순간 반투명한 날개 한 쌍이 다르만의 등 뒤로 펼쳐졌다. 콰아아아아! 집도 쓸어버릴 만큼 강력한 바람이 방어막을 직격했다. 부상당한 와중에도 투혼을 발휘하던 알로긴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커억!”

“알로긴!”

방어막이 꺼져 가는 촛불처럼 점멸하고 있었다. 이어서 다르만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와 아지에를 비롯한 괴한들이 일제히 검을 빼들고는 방어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광산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빠른 간격으로 울려 퍼졌다. 담쟁이 같은 균열이 반구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비로제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부서지는 대로 다 죽여. 방금 말한 셋만 빼고.”

다르만이 심드렁하게 지시했다. 참가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제 몇 초면 벌어질 학살극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때 콧노래를 부르며 단검을 돌리던 아지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저게 누구지?”

“뭐가 말이냐.”

“저기 동쪽에. 누가 왔는데?”

다르만은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누군가 서 있었다. 웬 청년이 자신이 무너뜨린 분화구의 벽면을 등지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윤곽을 본 다르만이 눈썹을 으쓱였다.

“벌써 올라왔나? 아직 좀 남았는데.”

“···로난?”

나비로제의 눈이 커졌다. 석양을 받으며 다가오고 있는 로난의 모습은 막 녹인 금을 부은 조각상 같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평소에 다루던 것과 비슷해 보였지만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헛숨을 들이킨 나비로제가 큰 소리로 외쳤다.

“멍청한···어서 도망쳐라!!”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검 같은 게 아니었다. 기껏 목숨을 건졌으면 도망치거나 숨어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의문이었다. 옷이 넝마가 된 것이 척 봐도 상태도 안 좋아 보이거늘. 입꼬리를 슬쩍 올린 다르만이 가면을 쓴 이들에게 명령했다.

“잘 됐군. 내 동생을 데려와라.”

“네.”

그러자 방어막을 두들기던 괴한 중 반절이 로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완벽하게 발을 맞춰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같은 뇌를 공유하는 사람들 같았다. 순식간에 로난의 코앞까지 도달한 사내가 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저항하면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그와 동시에 양옆의 여인들이 밧줄과 검을 동시에 뽑아들었다. 마치 군무를 보는 듯 체계적인 동작이었다. 심드렁하게 그들을 지켜보던 로난이 검을 들어 올렸다. 한순간 그의 팔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괴한들의 몸 위로 하얀 선이 어지럽게 그려졌다.

“···음?”

영문 모를 이질감을 느낀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이었다. 퍼억! 하얀 선이 벌어지며 그들의 몸이 수십 토막으로 분해되었다. 부채꼴로 뿌려진 피와 내장이 눈밭을 적셨다. 식재료처럼 일정한 크기로 썰린 고깃덩이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뭐?”

다르만과 아지에의 눈이 커졌다. 방어막을 공격하던 괴한들이 동작을 멈췄다. 한순간 성지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방어막 속에서 분투하던 티르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저 청년이 뭘 한 거요?”

나비로제는 들었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순간이었지만 로난의 동작을 놓쳤다.

그는 고깃덩이가 된 괴한들을 짓밟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로난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장과 살이 뭉그러지는 소리가 번지듯이 들려왔다.

사람 셋을 도륙했음에도 그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불현듯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저게 내가 알던 제자가 맞나? 로난을 응시하던 아지에가 흥미로운 듯 콧소리를 냈다.

“흐응···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뭔가 있기는 했던 모양인데. 동화처럼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재밌겠다. 다녀올게.”

아지에가 눈웃음쳤다. 그녀는 다르만의 경고를 무시한 채 로난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훔쳐 본 로난의 몸놀림은 틀림없이 자신보다 느렸다. 검을 안 맞을 자신도 있었거니와 무슨 일이 있다면 별의 가호나 다른 권능을 써서 탈출하면 될 터였다.

“안녕 자기. 내가 네 누나야.”

아지에가 장난스레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새하얀 단발머리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누나라는 말을 들은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라고?”

“응. 다르만이 네 형이라면서? 그러면 나는 누나지.”

아지에가 생글생글 웃었다. 물론 장난스러운 것은 겉모습뿐이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 사이로 그녀는 로난의 급소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솔직히 별 거 없어 보이는데. 쾌검이라면 다르만이 한 수 위일 거고.’

실제로 마주하니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도 오히려 남들보다 적은 편이었다. 단검을 한 바퀴 돌려 잡은 그녀가 막 도약하려는 참이었다. 파아아···! 한순간 로난의 손에 쥐어진 검이 밝은 빛을 뿌렸다.

“윽?!”

주홍색 섬광이 그녀를 덮쳤다. 빛이 제법 강렬한 탓에 아지에는 한순간 눈을 감고 말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따지며 눈을 뜬 그녀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분명 오십 걸음도 더 떨어져 있던 로난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

아지에의 눈이 커졌다. 로난과 그녀의 사이에는 고작 반 걸음 정도의 간격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동체시력이 가장 큰 자랑거리였음에도 그녀는 로난이 도약하거나 달려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무슨 수를 쓴 것은 분명해 보였으나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벌레를 보듯 아지에를 내려보던 로난이 툭 내뱉었다.

“나는 너 같은 누나 둔 적 없어.”

“무슨···!”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 황급히 전투 자세를 취한 아지에가 단검을 바로쥐었다. 허나 로난의 검은 이미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안 돼.’

눈이 좋은 아지에는 먼저 죽은 두 사람과는 달리 로난의 쾌검이 움직이는 경로를 미약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반응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사선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온 칼날이 오른팔과 오른쪽 허벅지를 동시에 가르며 지나갔다. 이어서 몸을 비튼 검은 물 찬 제비처럼 상승하며 왼쪽 허벅지마저 베어 버렸다.

별의 가호를 발동할 틈조차 없었다. 피부와 근육, 뼈가 잘리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지에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로난의 검이 가르며 지나간 자리에 붉은 선이 생겼다. 아지에가 뭐라 외치려는 찰나였다.

“잠깐···!”

촤아아악! 선을 따라 절단된 팔다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몸통과 머리만 남은 그녀가 바닥에 엎어졌다. 뒤늦게 들이닥친 통증이 아지에를 물어뜯었다.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캬아아아악! 키아아악!”

성지에 있는 모든 이가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섬뜩한 비명이었다. 로난은 말없이 그녀의 안면을 강하게 걷어찼다. 뻑! 사람의 얼굴에서 나서는 안 될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새하얀 이빨 대여섯 개가 튀어올랐다. 기절한 아지에가 축 늘어졌다.

“쯧.”

그녀를 쓰레기라도 된 것처럼 걷어차서 치운 로난이 다시금 걸음을 내디뎠다. 다르만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놀랍군. 도대체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냐.”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하게 걸음만 옮기는 그의 모습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졌다. 눈썹을 으쓱인 다르만이 재치 있는 도발 한 마디를 건네려는 차였다. 한순간 그의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음···!”

다르만은 반사적으로 검을 쳐들었다. 동시에 맹렬한 금속음이 그의 코앞에서 울려 퍼졌다. 카아아앙! 온 힘을 줬음에도 몸이 뒤로 밀려났다.

“크으으윽!”

“막았네?”

로난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힘도 속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다르만이 일방적으로 밀려나는 형세가 되었다. 카각! 캉! 불씨가 연달아서 작렬하며 거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다르만이 입술을 비틀었다.

‘이거 좀 위험한데.’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로난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뤼코포스의 입단식을 치르며 교주님의 검을 받을 때와 비슷한 압도감이었다.

일단 상황을 살펴야겠군. 그리 읊조린 다르만이 권능을 발동했다. 그의 등 위로 다시금 한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콰아아아! 폭발하듯 발현된 광풍이 로난을 덮침과 동시에 다르만의 몸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가 기가 차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하, 이것도 버티는 건가.”

로난은 튕겨 나가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검을 박아넣은 채 강풍을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그때 라만차의 검신이 다시금 환한 빛을 내뿜었다.

“음?!”

석양을 연상케 하는 주홍색 섬광이었다. 손아귀처럼 뻗어 나온 빛무리가 다르만을 휘감았다. 찰나 다르만은 강력한 무언가가 자신을 등 뒤에서 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도망가냐. 형이라는 새끼가.”

“뭐···?”

다르만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로난이 바로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푹. 뭐라 할 새도 없이 날아든 라만차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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