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 종막(3) >
#312
전투가 끝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낸 아벨이 입을 열었다.
『어때. 이제 좀 희망을 버릴 준비가 되었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와 대치하고 있던 로난만이 응어리진 피를 토해내며 대답 비스무리한 것을 하고 있었다.
“커억···허어억···!”
전신이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찢어진 의복 아래로 드러난 맨살에는 아벨의 검이 긋거나 찌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는 쉽사리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과연 구원자를 반병신으로 만든 검이었다. 아벨이 자신의 옆구리에 난 자상을 보여주며 클클거렸다.
『그래도 네게는 감탄했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위험했어. 네 무재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저때 끝냈어야 했다. 대머리 왕과의 전투에서 힘을 낭비하지만 않았어도 검신을 심장까지 박아 넣을 수 있었을 터였다.
‘젠장, 회복할 시간이라도 있었더라면.’
엿 같은 일이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속말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린 로난이 상스러운 손짓을 해 보였다.
“좆까.”
『하하하. 역시 내 조카야.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 사람들한테서···후우, 발을 떼.”
로난은 검 끝으로 그를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아벨의 발치에는 중상을 입은 자이파와 나비로제가 쓰러져 있었다.
두 검성은 난전이 시작되자마자 아벨에게 달려들었지만 꺾이고 말았다. 자이파는 의식을 잃고 기절해 있었다. 간신히 고개를 든 나비로제가 입을 뗐다.
“로···난. 도망쳐라···.”
그녀와 마주친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피투성이가 된 스승이 원수에게 밟혀 있는 광경은 도저히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촤악! 로난은 검기를 쏘아내는 것으로 아벨을 물러서게 했다.
“그 더러운 발 치우라고!”
『거칠기는.』
아벨은 익살스레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어찌어찌 스승의 명예는 지켰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두 검성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강자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연달아 들려오는 신음과 절규가 듣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크으으으···크르르르···!】
멀지 않은 곳에서는 오르세가 고통에 몸을 비틀고 있었다. 본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옆구리에는 자신의 뼈를 깎아 만든 나선창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바로 근처에는 그림자 대공의 머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송곳니 돋아난 입이 천천히 벙긋거렸다.
【발···자크···.】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갈가리 찢어진 신체는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죽은 사람도 되살리는 선혈의 정수를 일곱 개나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동생을 따라갔을 터였다.
쓰러진 이들 중에는 나바르도제와 용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극심한 화상을 견디면서도 분투했지만 결국은 패배하고 말았다. 처음의 대규모 공격이 닥쳐왔을 때, 하늘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로, 로난···.”
멀찍이서 둘의 대치를 지켜보던 아셀이 울먹거렸다. 그의 뒤편에는 슐리펜과 마르야, 브라움을 비롯하여 의식을 잃은 친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끄으으윽···으으으으···.”
“여, 여기 약이에요. 다들 죽으시면 안 돼요···네?”
상대적으로 멀쩡한 이릴은 분주히 뛰어다니며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어깻죽지에 상처를 입은 아데샨이 신음을 흘렸다.
“빌어먹을···.”
그들은 전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셀이 일으킨, 반구형으로 일어난 별의 가호가 오천 명 남짓한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승산이 없는 것을 파악한 아데샨이 다급하게 후퇴시킨 병력이었다. 고개를 푹 떨군 그녀의 입에서 먹먹한 목소리가 새나왔다.
“미안하다···내가···조금만 더 유능했다면···.”
“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셀이 고개를 내저었다. 최선을 다한 그녀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아벨이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가호를 찢어 버릴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딱히 자비를 베푸는 것은 아니었고, 절망에 찬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기 위함이었다.
전장에 있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반항할 수 없는 것이 좆같을 따름이었다. 거인들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 아벨은 로난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그 역시 전투가 이어지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로난이 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새 아물어 버렸다. 불현듯 고개를 돌린 아벨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오늘 가장 날 놀라게 했던 건 자네였어. 알리브리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시야 끄트머리에서는 팔다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간 알리브리헤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악마 같은 놈···.”
넝마가 되어 버린 알리브리헤의 상태는 그림자 대공 다음으로 심각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바로 옆에서는 차원 균열이 시퍼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균열을 바라보던 아벨이 헛웃음을 쳤다.
『설마 나바르도제를 가둔 것과 동일한 봉인석을 하나 더 만들었을 줄이야···위험했다는 걸 인정하지. 조금만 늦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야.』
그는 진지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리브리헤가 난전을 틈타 워낙 은밀하게 접근하는 탓에 하마터면 그대로 봉인당할 뻔했다.
남아 있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두 번째 봉인석은 첫 번째로 삼킨 대상을 격리된 차원으로 보내버리는 기능을 품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다 소용 없는 일이 되었지만.
『저기에 누구를 처넣을지는 내 천천히 고민해 보겠네. 이만 쉬시게나.』
“잠깐···커헉!”
뭐라 말하려던 알리브리헤가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아데샨이 따로 후퇴시킨 잔존 병력을 제외한 병사들은 모두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죽은 이들의 육신 위로 새하얀 아지랑이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지금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나약하기 짝이 없군.』
그 광경을 본 아벨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이 죽지 않을 정도로 계량해서 상처를 입혔다. 아무래도 약해진 몸이 부상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았다.
시체에서 빠져나온 아지랑이는 모두 아벨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로난은 저것이 아벨에게 살해당한 이들의 영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개자식. 정말로 거인이 되어 버린 건가.’
으드득. 칼자루를 움켜쥔 로난의 손에서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저딴 꼴을 계속 보고 있느니 죽거나 죽이거나 결판을 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한 번이라면 될 지도 몰라.’
빈틈을 잘 노리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놈을 방심시켜야 했다. 잠시 침묵하던 로난이 입을 뗐다.
“들어나...보자···.”
『음?』
“도대체 네 원대한 계획이 뭐길래 이딴 짓거리를 하는지···어디 들어나 보자.”
로난의 질문을 들은 아벨이 눈썹을 치켜떴다. 사실 그딴 건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얗게 물든 밤하늘을 슬쩍 올려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직 시간도 남았으니 그렇게 할까.』
어차피 곧 모두가 알게 되겠지만 특별히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검을 거둔 아벨이 말을 이었다.
『사실 별로 설명할 것도 없지. 내 목적은 이 별에 살아가는 이들이 더 고차원의 존재로 진화시키는 거다.』
“고차원의 존재···?”
『그래. 네가 지금까지 베어 왔던 거인 놈들이 대표적이지. 놈들은 전 우주를 떠돌며 행성을 사냥하는 최상위 포식자들이다. 목표 삼은 별에 살아가는 생명체를 말살하고, 그 영혼을 흡수하며 힘을 기르며 살아가지.』
아벨의 말을 들은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 신경을 상처 회복에 기울이던 그가 툭 내뱉었다.
“뭔 병신 같은···너는 진심으로 그렇게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냐?”
『찰나에 불과한 삶을 살아가는 네놈들은 절대로 모를 거다.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를. 티끌보다 못한 별에 얽매여 살아가는 주제에,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아벨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구원자와 함께하던 나날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는 대기권 너머로 솟아나던 버섯구름과, 덧없이 사그라진 문명의 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거인들의 뒤통수를 친 이유는 뭐야?”
『인격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였지. 기존의 우리는 단순한 먹잇감에 불과했지만, 내가 놈들의 근원을 손에 넣은 이상 이 영혼 집합체의 주체는 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토록 죽지도, 늙지도 않는 존재가 되어 저 우주에 군림하는 거다.』
“콧물마냥 희멀건 대머리로 말이지.”
『장담컨데 그것보다는 멋진 모습으로 구축할 거야. 영혼체의 형태는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으니까.』
아벨은 자기도 대머리는 질색이라 딱 잘라 말했다. 장난치듯 검을 빙빙 돌리던 그가 이릴을 돌아보았다.
『사실 너희는 훨씬 더 나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대로 이릴을 내버려 뒀더라면 적어도 행복한 꿈을 꾸며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애써 베푼 자비를 걷어찼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
“씨발새끼가 진짜. 그게 자비냐?”
『그럼 딱히 대체할 단어가 있나? 뭐,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너희를 제외한 모든 이는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소멸할 테니까···.』
갑자기 아벨이 말꼬리를 끌었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반짝거리는 마나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하늘을 올려 보며 말을 맺었다.
『어쨌든, 슬슬 끝낼 시간이다.』
로난의 미간이 구겨졌다. 심상치 않은 것이 기습을 한다면 지금밖에 없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며 뛰어나간 로난이 아벨의 목을 노리며 검격을 쏘았다. 카아앙! 짧은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니미.”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칼날 두 개가 눈앞에서 맞물린 채 비적거리고 있었다. 필사의 일격이었건만, 너무나도 쉽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덜떨어진 것.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을 모를 줄 알았나?』
“닥쳐!”
아벨이 조소했다. 그는 이미 로난의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다. 악에 받친 로난이 연달아 검을 휘둘렀지만 모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만둬라. 너는 이미 졌어.』
아벨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지켜보던 생존자들의 얼굴에도 절망이 드리웠다. 금세 승기를 잡은 아벨이 마무리를 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상처를 부여잡고 있던 아데샨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로난! 지금이다!!”
갈라진 외침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녀로부터 쏘아진 그림자의 마나가 아벨을 덮쳤다. 정신을 장악하는 힘이 그를 휘감았다.
『어리석기는. 이제 와서 그런게 통할 것 같으냐?』
하지만 아벨은 동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데샨의 능력 따위는 지금의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눈을 감은 아벨이 정신 방벽을 활성화하려던 차였다. 감당할 수 없는 어지러움이 그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크억!』
아벨이 구역질했다. 강력한 충격파에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격한 반응에 놀란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뭐야?”
『어떤, 어떤 놈이···!』
황급히 몸을 뺀 아벨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범인을 찾아 구르던 그의 눈동자가 어느 한 지점에 정지했다. 아셀이 세운 장막 너머에서, 이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이릴···!』
“내, 내 동생 괴롭히지 마세요!”
이릴이 호소하듯 외쳤다. 노을빛 눈동자가 타오르듯 빛을 내고 있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능력이 발현되고 있었다. 구원자의 힘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소망을 실현하는 힘이 아벨을 공격하고 있었다.
『큭···크으으···!』
아벨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이 깃들었다. 두 종류의 정신계 능력이 한 번에 덮쳐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대응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원에서 발현된 힘은 그마저도 감당할 만큼 강력했으니까. 이마를 쥐어싼 아벨이 짧은 기합성을 토해냈다.
『하압!』
정신 장막이 펼쳐졌다. 그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던 여인들의 의식이 거칠게 튕겨 나갔다. 아데샨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커억···!”
“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이릴이 뒤로 넘어졌다. 아데샨이 가까스로 그녀를 붙잡았다. 아벨의 입에서 노기 어린 신음이 새나왔다.
『이 빌어먹을 년들이···!』
아벨이 이마를 쥐어싼 채 비틀거렸다. 로난은 본능적으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눈치챘다. 쾅! 그가 다시 달려드는 것을 본 아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까짓 요행으로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으냐!』
아벨은 몸을 비틀며 강격을 날렸다. 힘에서 밀린 로난이 공성추에 치인 것처럼 튕겨 나갔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벨이 외쳤다.
『이제 됐다. 모조리 죽여주마!』
별안간 아벨의 몸이 환한 빛이 일어났다. 터무니없이 강력한 마나에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 저건···!”
“우린 이제 다 죽는 건가.”
사람들은 그것이 별의 3할을 파괴했던 공격과 같은 기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모두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별안간 로난이 날아간 방향에서 주홍색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으음?!』
무언가에 당겨지는 감각에 아벨이 고개를 돌렸다. 로난은 아직도 날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 방향이 심상치 않았다. 그의 몸은 알리브리헤가 연 차원 균열로 향하고 있었다.
『네놈, 설마!』
“멍청한 새끼야. 이제야 눈치챘냐?”
아벨이 경악했다. 로난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아벨의 힘을 역이용한 그는 순식간에 목적지 삼은 균열 앞까지 다다랐다.
“이리 와!”
그리 외친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파아아아-! 아벨의 몸을 감싼 노을빛이 더 밝아졌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의 몸이 갈고리에 채인 듯이 끌려갔다.
『이게···감히!』
아벨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끌려가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로난의 오러는 거인의 왕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칼자루를 역수로 고쳐 잡은 아벨이 바닥에 검을 쑤셔 박았다. 카가가각! 기다란 선이 지면을 가르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안도하던 찰나였다. 균열의 목전까지 다다른 로난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셀! 밀어!!”
『뭐?』
“그 정도의 마나는 남아 있을 거 아냐! 저 호로새끼의 등을 떠밀어 버리라고!”
불길한 예감에 아벨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별의 가호를 거둔 아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하지만···거기에 들어가면 로난은···!”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다 뒈지고 싶어?!”
로난은 신경질을 내며 아셀을 재촉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깨달은 아셀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여 있던 눈물을 짜낸 그가 양 팔을 뻗었다.
“이, 인비저블 핸드!”
『잠깐···!』
아벨의 얼굴이 굳어졌다. 화아악!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등을 강하게 떠밀었다. 간신히 버티던 몸이 공중으로 튕겨 나가며 다시 끌려가기 시작했다.
“잡았다. 이 씹새끼.”
로난이 웃었다. 차원의 균열은 이미 그를 반쯤 삼키고 있었다. 한 번 균형을 잃은 아벨은 눈 깜짝할 새 로난의 코앞까지 끌려왔다. 뭘 대응할 새도 없었다. 푸확! 기다리고 있던 로난의 검이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커억!』
이번 상처는 깊었다. 아벨의 입에서 푸른 피가 터져 나왔다. 겹쳐진 두 사내의 몸뚱어리가 차원의 균열 뒤편으로 넘어갔다. 무정형으로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로난이 아벨의 눈을 노려 보며 으르렁거렸다.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