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3화 (3/194)

짐을 챙기는 사람들 때문에 소란스럽던 시험장에 다시 공포스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필기구를 챙기고,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쁘게 떠나려던 사람들이 딱딱한 얼굴로 스피커를 올려보았다.

이어, 노이즈 섞은 목소리가 울렸다.

- 시험시간 중 시험장을 벗어나는 자는 부정행위자로 간주합니다. 시험시간 중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험생은 부정행위자로 간주됩니다.

“안 돼. 아, 안 돼!”

희망과 안도로 편안한 얼굴들에 절망이 가득 들어찼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과 쉰 목소리.

손을 휘둘러 책상을 거칠게 밀어내면서, 책상다리가 교실바닥을 날카롭게 긁는 소리가 났다.

밀려난 책상 옆으로 시험생이 주저앉아 주먹으로 두 귀를 꽉 막았다. 질끈 감은 눈과 좌우로 떨리는 머리통. 빠르게 달싹이는 입술에서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아냐, 아냐, 아냐. 현실일 리 없어.”

방송은 계속됐다.

- 부정행위자는 인간자격시험에서 즉각 불합격 처리됩니다. 불합격자는 더는 인간이 아닙니다.

동시에 짐승의 울부짖음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차마 형용하기 힘든 짐승의 합창. 인간을 모독하는 듯한 불쾌한 소음.

이어, 13마리의 짐승이 난동을 피우면서 시험장을 탈출했다. 우당탕쿵탕, 의자가 쓰러졌다. 책상은 열을 벗어났다. 짐승이 떨어뜨린 문제지와 답안지 따위가 마구잡이로 짓밟혀, 짐승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질서정연했던 시험장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짐승의 행렬이 지나는 동안, 두 손으로 책상을 꼭 붙잡고, 눈을 꽉 감고, 책상에 머리를 박았던 시험생들이 벌벌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흔들리는 시선이 복도로 향했다.

짐승들이 날뛰는 복도.

“그르아아악!”

내달리고, 소리치고, 뛰어오르고, 명패와 정수기 따위를 때려 부수는 짐승의 향연.

복도중앙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장수생이었던 짐승이 머리털을 적신 상태로 뛰쳐나와, 짐승의 무리 사이로 섞여들었다.

끔찍한 난장판.

곳곳에서 감독관이 다급하게 튀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테러입니까? 어떻게 짐승이 3층 복도에 이렇게 옵니까. 누가 일부러 풀었나요?”

“이게 돼지는 아닌 거 같은데, 몇 마리나 들어온 거죠?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시험본부에서 119에 연락해 지원 요청했답니다. 여러분은 시험생들 대응해주세요.”

방금까지 시험생이었던 인간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짐승 취급하는 목소리들.

이상현상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후우.”

이연우는 최대한 침착하게 심호흡했다. 짐승이 치고 지나가서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흩어졌던 정신을 다시금 한곳으로 모았다.

다행히 두 번째로 본다고 처음보다는 괜찮았다. 오히려 안도감까지 들었다.

‘13명. 장수생까지 14명이 탈락했어. 합격자를 몇 명이나 뽑을지 모르겠지만, 좋아.’

이러는 동안 지나간 시간이 15분.

남은 시간은 70분. 남은 문제는 99문제.

이연우는 2번 문제부터 답하기 시작했다.

딱딱거리는 볼펜 소리나, 희미한 울음소리, 발을 떠는 소리, 격한 기침 소리는 더 이상 방해가 아니었다.

경쟁자가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긍정적인 신호였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2번. …2번. …2번. 이거 맞아? 삼연속 2번이라고? 아냐, 시간 없어. 일단 지나가.’

이상해도 멈춤 없이 읽고 답했다. 눈이 문제와 지문을 읽은 후 바로 답에 V자를 표시했다. 이게 진짜 인간다운 답인지 걱정되었지만, 시간이 없다.

부지런히 펜을 놀려, 시험시간이 지나기 전에 100개의 문제를 다 풀었다.

한문제당 30초 정도씩 썼을까. 50분이 지나, 20분이 남았다.

뽁-

이연우는 전자시계를 확인한 후, 볼펜을 놓고 컴퓨터 사인펜의 뚜껑을 뽑아 열었다.

‘우선 확실한 것만 마킹한다. 헷갈리는 건 나중에.’

찍찍찍-

단단한 질감의 답안지 위로 까만 사인펜이 세 번씩 왕복했다. 문제번호와 마킹하는 자리를 몇 번씩 확인하면서, 정답을 신중하게 칠했다.

동그란 번호에서 튀어 나가지 않게. 너무 연하지도 않게, 빈틈없이 꽉 채워서.

‘밀리지 않았지? 맞아. 30번에, 1번. 31번에 4번. 32번은 헷갈리니까 이따가 하고. 33번에.’

그렇게 1차적으로 마킹이 끝났다.

인적사항 따위를 제대로 마킹했나 확인한 이연우는 서둘러 시험지를 펼쳤다. 얼른 눈을 굴려, 세모 표시를 쳐둔 문제를 찾았다.

헷갈려서 1차 마킹 뒤로 미룬 문제.

‘10분 남았다. 빨리해.’

너무 신중하게 마킹하느라 10분이나 잡아먹었다. 헷갈리는 문제를 깊게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째깍째깍-

벽시계의 초침이 내달린다. 잠깐 고민하면 초침이 한 바퀴를 돌아 1분이 지났고, 길게 고민하면 세 바퀴를 돌아 3분이 지났다.

그렇게 마지막 문제를 남겼을 때는 채 1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한 이연우는 끝까지 고민했다.

‘이건 2번이 내 마음이지만, 1번이 조금 더 사람다운데 바꿀까. 아냐, 바꾸면 틀려. 2번 간다. 그래도 1번이. 아. 그냥 찍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문제를 마킹하는 순간.

치직-

아슬아슬하게 시계가 11시 40분을 가리켰다. 10시에 시작한 100분짜리 시험이 끝난 것이다.

띵동댕동-

시험의 시작을 알렸던 종소리가 시험의 끝을 알렸다. 이연우는 사인펜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았다.

멍한 눈으로 답안지를 내려봤다. 체력을 전부 뽑아 쓴 것처럼 탈력감이 몰려왔다. 잠깐 꿈을 꾼 듯도 했다.

‘진짜? 끝났나? 현실이었나?’

새삼 느껴지는 불신과 비현실적인 느낌.

천천히 시험장을 둘러보았다. 다들 풀린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찍찍찍찍찍-

그런데, 종료종이 쳤는데도 싸인펜을 놀리는 사람이 있었다. 시간분배에 실패했는지, 허겁지겁 답안지에 마킹하는 손놀림. 산발한 머리가 답안지와 문제지 사이를 오가면서 마구 흔들렸다.

“1번, 3번, 3번, 2번.”

작고 빠른 웅얼거림.

노이즈 낀 목소리가 스피커에 흘러나왔다.

- 시험이 끝난 후 답안지를 작성하는 행위는 부정행위로 간주하여, 불합격자로 처리됩니다.

“아니야. 나는 다 풀었어! 방송이 늦어서-!”

시험이 끝났는데도 답안지를 작성하던 시험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복도로 달려갔다.

“그아아아아악!”

규정을 못 지킨 시험생이 짐승이 되었다. 짐승은 시험장을 벗어나, 다른 교실에서 나오는 시험생을 아무렇게나 밀치면서 도망쳤다.

“악! 뭐야!”

“아까 존나 시끄럽게 했던 그거 아니야?”

“저게 무슨 동물이지? 옷까지 입혀 놓은 거 보면 주인 있는 거 아냐?”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어나지만 교실 바깥의 이야기다.

“….”

“….”

시험이 끝났는데도 이연우가 있는 교실은 조용했다. 인간자격시험을 치른 시험생들은 감히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험은 끝난 것 같지만, 어떤 규정이 있을지 몰라서, 실수했다가 짐승이 되기 싫어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30분이 지났다.

12시 10분.

시험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시간. 점심을 먹을 시간. 배가 고파,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그때가 되어서야 꿈에서 깬 듯했다.

시험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문제없이 벗어났다. 퇴장하는 물결이 시작되었다. 이연우도 넋을 놓은 얼굴로 퇴실하는 시험생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끝났나? 진짜 끝났구나.’

이후의 일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저 희미했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고시텔의 자기 방으로 흔들흔들 걸어간 듯했다.

“아.”

문앞에서 문득 생각했다. 시험을 마쳤구나. 문제를 전부 풀었구나.

이연우는 반사적으로 고시텔의 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창문조차 없는 좁은 방.

하얀 스탠드 등이 좁게 비추는 책상 앞에서, 이연우는 핸드폰을 켰다. 오늘이 시험일이라며 팝업된 스케쥴 앱이 크게 깜빡였고, 오늘 아침 9시쯤 엄마에게 온 문자가 상단에 작게 표시되었다.

[아들, 시험이지. 밥 잘 챙겨 먹고, 떨어져도 괜찮으니까-]

더는 읽지 못하고 화면을 껐다.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핸드폰에 맞아, 탑처럼 쌓아놓은 교재가 밀려났다.

2025년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 해설집.

2024년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 해설집.

2023년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 해설집.

이연우가 공시생으로 살아온 연도가 주마등처럼 주르륵 거꾸로 지나갔다. 주마등은 시험에서 탈락할 때마다 했던 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에는 시험도 치르지 못했으니까, 26년 시험 해설집을 사야겠구나….’

이연우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책상에 팔꿈치를 기대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공무원 시험은 애초에 치지도 못했다.

어떻게든 무사히 치른 인간자격시험도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결과는 언제 나오는 거지?’

언제 짐승으로 변할지 걱정하며, 벌벌 떨면서 살아야 하나?

이연우가 끔찍한 상상에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였다.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 책상의 구석에 편지 봉투가 나타났다.

‘이건…?’

이연우는 느릿하게 손을 뻗어 편지 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어린 아이 손바닥만 한 무언가가 들어 있다. 여권 같기도 하고, 수첩 같기도 한 무언가.

‘설마?’

서두르는 손이 그것의 가죽표지를 넘겼다.

속에는 이연우의 증명사진이 박혀 있고, 성명과 생년월일, 그리고 합격 연월일과 발급 연월일 따위가 쓰여 있다.

이연우의 눈은 그 중 가운데 쓰인 문장에서 멈췄다.

- 위 개체는 인간임을 증명합니다.

인간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말.

그것을 보는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입에서는 흐릿한 울음이 새어 나왔다.

“흐으. 흐으윽.”

살았다는 안도감. 더는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러다가 문득 자격증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간. 나는 인간이구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방의 누군가가 벽을 두드릴 때까지, 엄마에게서 안부전화가 올 때까지, 이연우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공무원 시험만 4번이다. 이연우는 무사히 살아서 5번째 시험을 준비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원래 공무원 시험에서는 시험시작 종이 치기 전에는 책형 확인도 못하고, 인적사항 마킹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험 에피소드에서 했던 것은 그냥 소설적 허용으로 봐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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