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4화 (4/194)

[인간자격시험]

- 적대수준 : 오렌지

- 위험레벨 : 3

- 중요등급 : C

- 상세 : 무작위로 시험을 대체하여, 인간의 자격을 시험하는 이상異常. 합격자는 인간이 되며, 불합격자는 인간이 아니게 된다.

또한 시험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필기와 실기, 인터넷과 현실 전부에서 인간자격시험이 등장할 수 있다.

- 대책 : 데이터 센터에서 AI를 이용한 가짜 시험을 반복하여, 현실에 나타날 확률을 낮춘다. 1번의 진짜 시험이 있다면, 1억 번의 가짜 시험을 만든다.

***

[인간자격시험의 특수한 사례와 위험성]

- 인터넷 강의 시험을 집에서 컴퓨터로 치른 경우. 가정의 어머니가 집안에 커다란 짐승이 있다고 신고하여 발견.

최초로 인터넷시험에서 등장한 사례이며, 이후로 인간자격시험이 인터넷 성격테스트, 심리테스트 등도 대체하기 시작함.

- 조리기능사 실기시험의 경우. 자신의 신체 부위로 요리하게 하였다. 합격자는 신체손실로 영구적인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인간자격시험으로 인해 물리적인 피해가 발생함.

- 짐승이 인간자격시험을 치른 경우. 대학에서 동물의 지능을 연구하는 중, 동물이 시험을 치르는 형식을 취했을 때, 인간자격시험이 나타나 동물을 시험함.

불합격한 동물은 똑같은 동물로 보였으나, 합격한 까마귀와 원숭이는 사람이 됨.

해당 까마귀와 원숭이는 [보안조치]에 이용됨.

- 궤도의 우주정거장과 화성의 [보안조치]와 [보안조치]의 [보안조치]에서 보안시험을 치른 경우.

이후로 인간자격시험이 등장하는 영역이 물리적으로 증가하였다.

- 이상異常을 시험한 [보안조치].

이상의 사례로 보아, 해당 이상현상은 진화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등장매체가 증가하였고, 시험대상을 확대했으며, 영역을 넓혀 저 [보안조치]에 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최악의 경우, 모든 인간의 삶의 매 순간이 인간자격시험이 될지 모릅니다.

어쩌면 진짜 인간보다 벌레나 동물, 물고기 따위의 가짜 인간이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레드 등급으로 격상해야 합니다.

***

[인간자격시험의 등급 격상에 관하여.]

당분간 현재 상황을 유지하겠습니다.

물론 레드 등급이 옳습니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이상異常,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異常. 반드시 파괴해야만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게서 유용성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인간이라는 구성요소를 부여하고 박탈하는가. 인간의 구성요소는 무엇인가.

그 원리를 이해한다면, 하다못해 그 시험을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시험에 나타나게 한다면.

저 원숭이와 까마귀처럼, 짐승을 인간으로 만들어 사용한다면, 진짜 인간의 불필요한 손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인류를 보호합니다.

이상異常을 이용하고 연구하는 것이 장기적인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다소의 위험은 감수합니다.

하지만 잠재된 위험성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지요.

인간자격연구팀은 이미 있으니, 연구팀을 하나 더 신설해 파괴 대책을 연구토록 하죠.

위험레벨이 5로 상승하는 날, 레드 등급을 부여하여 파괴하겠습니다.

***

[인간자격시험 출현기록]

- 한국의 고등학교. 2026년 지방직 공무원 9급 시험을 대체함. 공무원 시험 중 짐승이 무리 지어 들어왔다는 119 신고로 발견함. 피해자의 수는 33명이며, 부수적인 피해로

깜빡깜빡, 문자 뒤로 커서가 명멸했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들여보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년남성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옘병. 이거 진짜 시험에 출현할 확률 0.00001퍼센트도 안 되지 않아? 하고 많은 시험 중에서 하필이면 한국에, 그것도 공무원 시험에 나오고 지랄이야.”

무거운 몸을 뒤로 기대자, 끼긱, 의자가 비명을 질렀다. 멀리 있는 데스크에 앉은 여자는 자기 모니터만 보면서, 대충 답했다.

“데이터 센터도 한계라던데요. MBTI 테스트인지 CAPTCHA 테스트인지, 그거에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가짜 시험을 더 돌릴 여유가 없데요.”

“염병. 그럼 그냥 파괴나 하지. 안 그래도 세상에 이상異常이 얼마나 많은데, 신경 쓸 걸 만들어요, 만들어.”

신경질적으로 자기 허벅지를 두드린 남자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보고서를 마저 작성하기 시작했다.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

넓은 사무실에는 텅 빈 데스크가 가득해 공허했다. 사람이라고는 오직 둘 뿐인 사무실에 잡무 보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잠시 후 남자가 말했다.

“이상피해자 후속대책은 오늘 간다고 했나?”

“해당지역 민간대응반에서 출동했대요.”

“기억소거제만 쓰겠네.”

“신입이 들어올 수도 있죠. 우리 부서에 오면 좋을 텐데.”

여자가 희미한 희망을 품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이상異常을 겪은 사람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는 일은 늘 있었지만, 이상異常에 크게 덴 사람이 인류보호회사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옥을 탈출한 사람이 자기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갈 리가 없지 않나.

심지어 거절하면 그 끔찍한 기억까지 제거해주는데.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희망으로 눈동자를 빛내면서 말했다.

“공무원 시험 망한 사람들이잖아요. 장수생이기라도 하면 일자리가 절실할지도 몰라요.”

“…그런가?”

남자는 언제 비웃었느냐는 듯 혹한 얼굴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럴듯한데? 안 되겠다. 나 인사부서 좀 갔다 올게. 신입 들어오면 여기로 먼저 보내달라고 해야겠어.”

벌떡 일어선 남자가 쿵쿵 걸었다. 한바탕 싸울 사람처럼 기세를 잔뜩 일으키면서였다. 조금 걸어 넓은 사무실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여자는 한 손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반장님! 꼭! 꼭 잡아오세요!”

“오냐! 사무실 좀 채워보자!”

문을 벌컥 열고, 힘을 주어 쾅, 닫는다. 소음이 텅 비고 넓은 사무실 안에 메아리쳤다.

닫힌 문의 낡은 명패에는 부서 이름이 페인트가 벗겨진 채로 박혀 있었다.

이상조사반.

인류보호회사 한국지점에서 퇴직률 1위를 자랑하는 부서였다.

***

똑똑-

“이연우 씨 계십니까?”

이연우는 고시텔 자기 방의 텅 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얀 스탠드 등이 내리쬐는 책상. 소용돌이치는 나뭇결만 멍하니 내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퀭한 눈이 철제문을 노려봤다.

똑- 똑-

“안에 계신 거 압니다. 잠깐 열어주시죠.”

“누구십니까?”

잔뜩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문 너머에서 남자가 답했다.

“얼마 전에 큰일을 겪으셨죠? 그거 관련해서 나왔습니다.”

“….”

큰 일. 그 말에 악몽 같은 광경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시험. 이상한 문제. 짐승이 된 사람들. 책상 한 쪽에 자리한 인간자격증.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숨이 거칠어졌고, 시야가 핑 돌았다. 하얗게 물드는 정신. 이연우는 가까스로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억지로 숨을 길게 뱉었다.

“후우우. 나가, 나갑니다. 잠시만요.”

그 일을 겪은 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재생되며, 지금처럼 공황 같은 것이 왔다.

공부하겠다고 문제를 풀 때면 더 했다. 문제나 시험지를 볼 때마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집중될 리가 없었다.

심호흡을 반복하며 간신히 진정했다.

탁-

책상에 두 손을 짚으면서 일어난 이연우가 문을 열었다.

창문 한 점 없는 방으로 복도의 조명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남자 둘의 그림자가 방안으로 드리워졌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형광조끼를 걸친 남자 두 명인데, 고시텔의 복도에 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키가 크고 작은 그들은 방으로 들어오려다가 멈칫했다. 작은 창문조차 없는 방은 너무 어두웠다. 책상 위의 스탠드가 조명의 전부였다.

“잠깐 불 좀 켜겠습니다.”

키 큰 남자가 문 옆의 벽을 더듬거리면서 스위치를 찾았다. 이연우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방의 주인은 자신이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말릴 이유가 없었다.

“아, 여깄네.”

딸깍-

천장 등이 눈 부신 빛을 쏟았다. 형광조끼가 번쩍 빛났다. 이연우는 눈이 부셔서, 눈살을 좁혔다.

“들어갑시다. 어우, 앉을 자리도 없네.”

“침대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이연우는 그들을 방 안으로 들였다. 제대로 개지 않은 이불이 남은 침대에 그들을 앉혔다. 그들은 방의 일부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끼익-

이연우는 의자에 앉은 후, 의자를 돌려 그들과 마주 봤다. 방이 좁아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이연우가 먼저 말했다.

“그 일 때문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무슨 말입니까?”

“인간자격시험을 겪으셨지요.”

“….”

단도직입적인 단어. 인간자격시험.

이연우는 뭐라 답하지 못했다. 솟구쳐 올라오는 질문으로 목이 꽉 막혀서, 눈을 크게 뜨고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릴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뭘 아는 거지? 시험을 주관한 관련자? 왜 찾아왔지? 아닌가? 시험을 겪은 또 다른 피해자? 날 왜?’

그 마음 다 안다는 듯, 키가 작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상현상에 대처하는 기관이 존재합니다. 저희는 이연우 씨 같은 피해자들을 찾아가, 뒤처리를 하는 사람들이고요.”

이상현상. 기관. 뒷처리.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이연우는 뒤처리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딱 봐도 불온한 기운을 풀풀 풍기지 않나.

“뒤처리라면…?”

끼이익-

슬그머니 문가를 향해 의자를 끈다. 여차하면 의자로 남자 둘을 막고, 자신은 방문으로 나가려는 위치선정.

남자는 얼른 양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친근한 웃음기가 서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상한 거 아니고, 나쁜 거 아닙니다. 옛날 외계인 나오는 영화 아시죠? 그런 겁니다.”

남자는 활짝 펼친 손바닥을 오므려, 볼펜 같은 것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이연우도 아는 영화고 장면이었다. 요원이 목격자에게 빛을 번쩍이는.

“기억삭제?”

“예. 그거요. 이연우 씨에게도 좋은 제안일 겁니다. 사실 힘드시죠? 안색이 초췌하신 게, 잠도 못 주무시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때 기억을 지워 드리겠습니다.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아….”

좋은 제안이다. 지금 상태로는 공부가 불가능했다. 좋은 기억도 아니고, 악몽 같은 기억이 사라진다.

이연우가 고개를 앞으로 당기면서, 그 제안에 관심을 보이려는 때였다.

키 큰 남자가 말했다.

“기억제거와는 다른 제안도 있습니다.”

“예? 어떤…?”

“저희 회사에 입사하는 것입니다.”

“하겠습니다.”

본능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말한 이연우도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남자 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시텔의 좁은 방을 둘러보고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이야기 먼저 들어보시죠.”

“제가 좀, 급했네요.”

“그럴 수도 있죠. 우선 회사가 뭔지,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작은 남자와 키 큰 남자가 번갈아가며 대략 설명했다.

세상에는 인간자격시험 같은 이상異常이 무수히 많으며, 이상異常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기관이 바로 인류보호회사라고.

키가 작은 남자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쉽게 결정하면 안 됩니다. 몇 번이고 고민하고 숙고한 끝에 결정하세요. 어느 부서로 들어갈지 모르지만, 결국 모두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죽는 사람도 많고요.”

“….”

이연우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고민과 생각이 격류가 되어 흘렀다. 두뇌가 가득 찼다.

공무원 시험을 더 준비한다고 될 것 같지 않다. 이미 시험을 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듯했다. 스카우트 제안은 행운이고, 기회였다.

하지만 인간자격시험을 겪으며 느낀 공포. 지금도 머리 한구석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두려움. 굳이 그런 것과 마주하는 일을 해야 할까.

3시간 같은 3분의 고민.

이연우가 눈을 떴다. 맑은 눈동자에 천장의 하얀빛이 맺혔다. 결의를 굳게 다진 목소리가 짧게 나왔다.

“입사하겠습니다.”

“입사하신다면 기억은 그대로 둘 겁니다. 앞으로도 고통받으셔야 하는데, 진짜로 하실 건가요?”

“입사하지 않으면 더 고통받을 겁니다.”

그게 결론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남은 평생을 장담할 수가 없다. 위험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

키가 크고 작은 남자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방에 셋이나 있다 보니, 방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는 직장동료로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다음에 봅시다.”

“그런데, 면접이나 자세한 사항을 연락받는 건 어떻게 됩니까?”

키가 작은 남자가 의자를 치운 후, 열린 문 앞에 서서 씩 웃었다.

“회사에서 연락할 겁니다.”

이연우는 수긍했다. 이렇게 자기 방까지 찾아왔는데, 연락 정도는 문제도 아니겠지.

문이 닫혔다. 천장등이 켜져 밝은 방에 홀로 남았다. 문득 이연우가 입가를 매만졌다. 입매가 길쭉하게 솟아 있었다. 웃음이 터졌다.

“흐. 하하.”

입사다. 취직했다.

위험한 직업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것은 머릿속에 조금도 남지 않았다. 순수한 기쁨이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방방 뛰고, 방이 쩌렁쩌렁 울리게 웃고, 두 팔을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뻗었다.

‘그래. 이게 공무원이지. 아니, 오히려 낫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보다 인류를 위하는 회사의 직원이 더 대단한 거 아니겠어?’

이연우가 서둘러서 핸드폰을 찾았다. 기쁨으로 떨리는 손이 막힘 없이 번호를 눌렀다.

“나 취직했어! 어? 진짜 괜찮은 회사야. 어떻게 했냐고? 아니, 나한테 입사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더라고.”

이연우는 인류보호회사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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