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이 깨져 격리실과 연결된 실험실.
뻥 뚫린 창틀 너머로 이상異常에 사로잡힌 송시우의 모습이 선명했다. 독서대를 지나치다가 멈춰서는, 고개만 돌린 자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눈동자.
사락-, 책장이 스스로 넘어가는 소리가 스피커를 거치지 않고 직접 들려왔다.
“빌어먹을! 왜 멍청한 짓을 해서!”
연구원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이상개체의 변화, 격리실의 파괴, 비참한 죽음. 모든 것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뇌를 쿡쿡 찔렀다.
연구원을 제압한 한창성과 가위를 제공한 강열은 눈을 크게 떴다.
“저러면 저 사람도 죽는 거 아닙니까?”
“구조해야.”
그들이 반사적으로 유리가루가 잔뜩 묻은 창틀로 다가갈 때였다.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 쥔 연구원은 핏발 선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거친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붉은 기가 감도는 눈동자에 언뜻 차가운 이성의 빛이 번뜩였다.
“저것에게 더 먹이를 주면 안 됩니다. 보아하니, 사람을 잡아먹을수록 특성이 추가되고, 힘이 강해지는 듯한데. 당신들이 까딱 잘못하면 연구소에 있는 사람 다 죽습니다. 격리조치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있으세요.”
“그러니까… 그 말씀은.”
어려운 말. 강열과 한창성은 직업적으로 그 말을 해석했다. 저곳에 흉악범이 흉기를 들고 있다고, 해체법을 모르는 폭발물이 저곳에 설치되어 있다고.
그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사람을 투입했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이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무게가 무겁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들은 머리를 숙였다. 눈을 질끈 감고 송시우에게서 눈을 돌렸다. 때로는 사람이 죽는데도 손을 놓고 있어야 했으니까.
그때였다.
철컥- 철컥철컥-
문손잡이를 연달아 돌리는 소리가 났다. 박상준이었다. 그는 손잡이를 부숴버릴 기세로 문을 앞뒤로 흔들었지만, 잠기지도 않은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저 나갈게요. 나가겠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
손잡이를 꽉 쥔 박상준이 김 박사와 연구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확장된 동공이 빠르게 떨렸다. PTSD가 터진 듯도 했고, 압박을 견디지 못한 정신이 무너진 듯도 했다.
연구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박상준만이 아니라, 모든 신입사원에게 말했다.
“유리가 깨지는 순간 이곳도 봉쇄됐습니다. 격리조가 올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갑니다.”
“안 돼. 아. 안 돼!”
쾅쾅쾅!
박상준이 문을 연달아 내려친 후, 그대로 주저앉았다. 문을 내리진 주먹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박상준은 문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들썩였다.
“….”
우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경비의 선글라스에서 나는 날카로운 소음과, 연구원이 재차 키보드와 버튼 따위를 누르는 소리, 신입사원이 발을 떨고 거칠게 호흡하는 소리,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따위가 이어졌다.
“….”
이연우는 열리지 않는 문을 보았다. 깨진 유리창을 보았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송시우와 이상異常.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었다.
“저기. 김 박사님. 연구하는 선생님.”
“뭡니까?”
연구원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평가하는 눈으로 신입사원을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평가가 중요하지 않다. 생존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침을 꿀꺽 삼켰다.
이연우는 송시우를 보며 말했다.
“저분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탁!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내리친다. 연구원이 거칠게 의자를 돌려, 이연우를 노려봤다. 눈빛이 살벌했다. 목소리는 더 살벌했다.
“안 된다고요. 얌전히 계시라고.”
“아뇨.”
이연우는 여전히 독서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까 책이 총 몇 장이 넘어갔지? 40장이었나? 지금 저 사람은 20장 정도 넘긴 거 같고. 아직 늦지 않았다.
“저 이상異常. 사람을 죽일수록 강해진다면서요. 저분까지 죽으면, 자기 혼자 이동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여기 있는 사람도 읽고 싶게 만든다거나.”
송시우가 죽으면 우리도 위험해진다는 말.
순간, 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연구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머릿속에서 그동안의 실험 데이터와 지금 보인 변화의 추이가 비교되며, 결론이 나왔다.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신입사원이 숨을 들이켜고,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봉쇄된 밀실, 도망칠 곳은 없다. 최대한 멀리, 캐비닛에 등을 붙였다.
오직 한 명, 한창성만이 앞으로 나아갔다. 와작, 유리 파편이 밟힌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저 책만 보지 않으면 됩니까?”
독서대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죄책감과 책임감이 서린 목소리로 말한다.
연구원은 잠시 그를 올려보다가 침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어뜯은 입술에서 여전히 혈향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피실험체가 쏟아낸 피 냄새가 창틀을 넘어오는지도 몰랐다.
“문화적 재해는 인식만 막으면 됩니다. 하지만 아까 피실험체가 그랬듯, 저 사람도 어떻게든 계속 보려고 할 겁니다.”
“중독자같이.”
“결국 몸으로 다툴 텐데, 그 와중에 저것을 안 볼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면 눈을 감고 저 사람을 제압할 수 있습니까?”
소방관 출신이다. 체구가 크고 건장하다. 체력과 힘이 약할 리가 없다.
“….”
한창성이 연구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얀 조명을 등진 얼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저분 살리는 게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당신도 책에 홀리지만 않으면요.”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발을 뻗었다. 부서진 창틀을 넘고, 유리 조각이 널브러진 길을 지나, 독서대 앞까지 걷는다.
실험실에 남은 사람들은 가만히 그의 등을 보았다. 그는 독서대 앞에서 멈췄다.
한창성은 잠깐 송시우의 눈을 보았다. 한 번을 깜빡이지 않는 눈. 뻑뻑하게 마른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그 와중에 책을 읽는다고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마저 느껴진다.
후우-
숨을 내쉰다. 이리저리 팔을 뻗고 굽히고, 제자리에서 발의 위치도 몇 번 바꾸며, 어떻게 제압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그 사이에 종이가 한 장 더 넘어갔다. 질끈, 눈을 감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큭!”
눈을 감아 어두운 세상.
미리 봐둔 거리만큼 발을 뻗어 다리를 걸고, 팔을 붙잡아 등 뒤로 비틀어 꺾으며, 체중을 실어 힘껏 민다.
순간,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는 감각과, 온몸이 넘어지는 부유감과, 송시우가 쿠션이 되어 받치는 감각, 그리고 무릎 따위가 바닥에 제대로 부딪치는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우당탕-
뒤늦게 사람들이 바닥으로 제대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異常에 홀린 사람이 울부짖으면서 발악하는 소리도.
“크으! 놔! 놔!”
“얌전히 있으십시오!”
몸을 뒤틀고, 발버둥을 치고, 벗어나려고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머리를 마구 흔든다.
한창성은 눈을 꼭 감은 상태로 최대한 제압을 유지했다. 체중을 실었고, 관절을 붙잡았다. 송시우가 한동안 몸이 들썩이다가, 멈췄다.
“흐윽, 흐으윽.”
효과가 있었을까. 송시우는 숨을 몰아쉴 뿐, 더는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체력이 다했든, 정신을 차렸든, 제압에 성공한 듯했다.
“후우, 수갑만 있었으면.”
한창성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실눈을 살짝 떴다. 바닥에 엎어졌으니 책을 볼 일도 없을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보았다.
“아…?”
다투는 중에 독서대를 쳤을까. 송시우가 발버둥 치다가 쳤을까. 아니면, 혼자 떨어졌을까.
툭, 두 사람의 얼굴 앞으로 떨어진 책.
검은 표지, 작은 일기장, 얇은 두께. 사람이 손을 쓴 듯한 글씨가 일기처럼 나열된 종이.
사락, 사락, 사락.
연달아 넘어간 책이 끝을 보였다. 동시에 으직, 고기 씹는 소리가 들렸고, 짙은 피 냄새가 코끝으로 후욱 몰려왔다.
한창성이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들었다. 코앞이 온통 붉었다. 송시우가 피를 쏟았다. 책에 사로잡힌 송시우의 시선은 그제야 자유를 찾아, 어딘지 모를 허공을 보았다.
“아, 아.”
반대로 한창성의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어느샌가 앞표지를 내보이는 이상異常을 향했다.
‘내가 죽어야 하는 38가지 이유.’
사락-
책장이 넘어가며 첫 번째 이유가 보인다.
[어느 더운 여름밤의 일이다. 자려고 누운 나는 활짝 열어둔 창문을 보았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지도, 살기 싫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뛰어내렸다.]
사락-
책장이 다시 넘어간다. 한창성은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눈을 크게 뜨고, 누군가가 죽은 이유를 읽고, 또 읽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는 실험실에도 들렸다.
“씨발….”
눈치 빠른 누군가 욕설을 뱉었다.
한창성의 얼굴도 책도 보이지 않는다. 독서대에 가렸다. 하필이면 넘어진 위치가 그랬다.
하지만 한참 투닥이던 두 사람의 몸이 시체처럼 멈춘 것도, 이상하게 강해진 피비린내도, 독서대 너머로 번져 나오는 붉은 핏물도, 모두 실험실에서 느껴졌다.
눈치 없는 사람도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피! 저기 피!”
“진정하세요!”
날뛰려는 박상준을 향해, 연구원이 손을 흔든다. 연구원은 침착하게 컴퓨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안실에서 연락 왔습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의 격리조가 준비되고 출동하기까지 30분밖에 안 남았답니다! 30분만 버티면 돼요!”
‘좆됐다.’
30분.
사람 죽이는 이상異常으로부터 버티기에는 지나치게 긴 시간. 여기 있는 사람이 모조리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연우는 자기 살길부터 찾기로 했다. 입사고 평가고 지랄이고, 산 다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