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을 확인하기 바빴다. 컴퓨터 하단의 시계를, 손목의 전자시계를, 핸드폰 상단의 시간을 노려보며, 1분 1초가 지나는 것을 세었다.
“30분, 29분. …28분.”
죽은 듯이 조용히 있던 이서연은 핸드폰을 보며 남은 시간을 재었다. 30분 남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켠 스톱워치가 빠르게 흘러갔다.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렀으니까. 이서연이 독서대를 힐끔거렸다.
사락, 사락, 사락.
격리조가 출동하기까지 시간이 다가올수록, 책장도 한 장, 또 한 장 끝을 향해 넘어갔다.
그때였다.
벌컥-
이연우가 갑자기 캐비닛을 열어젖혔다. 캐비닛 안에는 정체 모를 서류철 따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연우는 그대로 서류철을 한 아름 꺼내, 쓰레기 투기하듯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거 다 정리해둔 건데! 그대로 다시 넣으세요!”
컴퓨터에서 눈을 돌린 연구원이 기겁하며 다가왔다. 거리가 닿기도 전에 팔부터 뻗었다.
이연우는 그 팔에 잡히기 전에 문서철을 강하게 던졌다. 색이 바랜 종이가 휘날리고, 연구원은 종이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손을 휘적였다.
“아니! 멈추라고!”
소란이다. 시계를 보던 시선이 이연우와 연구원에게 모였다. 그들은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이연우는 개의치 않고, 서류를 마구잡이로 내동댕이쳤다.
“진정하십시오. 26분만 기다리면 온다지 않습니까.”
강열이 이연우에게 다가왔다. 이연우는 그에게도 서류뭉치를 던졌다. 강열은 손을 휘둘러 쳐냈다. 강열의 손에 맞아 폭탄처럼 터지는 서류뭉치.
깔끔했던 바닥이 어느새 종이 따위로 어질러졌다. 그 위로 이연우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저분, 지금 몇 장이나 읽었죠? 20장? 30장?”
“…그쯤 읽었을 겁니다.”
“25장이에요.”
눈으로는 시간을, 귀로는 종이 넘어가는 소리를 세던 이서연이 말을 덧붙였다.
“지금 몇 분 남았습니까?”
“25분, 아, 이제 24분인데요.”
“그럼 저분 죽은 다음은 어쩔 겁니까? 대충 20분쯤 남을 텐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겁니까? 시간이나 세면서?”
이연우는 쉬지 않고 캐비닛을 비우면서 말했다. 문서를 바닥에 대충 던지고, 캐비닛의 선반 받침대를 뽑아내서, 벽에 기대 세우고.
절대로 독서대 쪽으로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저거 독서대에서 지 혼자 내려왔어요. 저 사람까지 잡아먹으면, 어떨까요. 여기까지 못 올까요?”
콰직!
마지막 선반 받침대까지 부수다시피 뽑았다. 받침대를 바닥에 집어 던진 이연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까지 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이 채용 취소되든, 그들이 이상異常에 살해당하든, 앞으로 보지 못할지도 모를 얼굴들.
손가락을 꼽아가며 무언가를 계산하던 이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분에 대략 4페이지? 이러면…. 두 명은 더 죽을 수 있어요. 어쩌면 세 명.”
“그래서입니다. 저는 죽기 싫으니까 이러는 겁니다. 당신들도 각자 살길 찾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해줄 말은 이게 전부.
이연우가 풀어헤친 넥타이로 눈가를 둘둘 감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정장 재킷까지 뒤집어쓴 다음, 소매나 옷 끝단을 쥐어 묶었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자신이 비운 캐비닛을 가늠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캐비닛에 구겨져 들어간 이연우. 먹먹한 목소리가 정장 상의를 뚫고 들렸다.
“이거 문 좀 닫고, 잠가주세요.”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끼이익, 캐비닛이 닫혔다. 철컥, 잠금쇠까지 걸렸다.
후우욱-
이연우는 더운 숨을 뱉었다. 얼굴을 묶은 넥타이와 뒤집어쓴 정장 재킷. 숨결에 서린 열기와 습기가 고스란히 얼굴에 닿는다. 덥고, 답답해 죽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은 이것이었다. 살고 싶으면 버티는 수밖에.
좁고 어두운 캐비닛에서, 머리를 싸맨 이연우는 눈을 감았다. 두근거리는 맥박 소리가 들려왔다. 침착하게, 규칙적으로 호흡했다.
***
두근두근-
좁고 어둡고 덥고 조용한 세상.
시간의 흐름을 모르겠다. 10분이 지난 듯도 했고, 5분이 지난 듯도 했다. 어쩌면 20분?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갇혀 있는 기분이다. 혹시 모르지. 이제 기껏해야 3분 지났을지도.
이연우는 몸을 꿈틀거렸다.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자세를 바꿨다. 땀에 흠뻑 젖은 옷자락이 철썩 피부에 달라붙었다.
“후우우우.”
길게 숨을 쉬는데 오히려 갑갑하게 목이 졸려오는 느낌. 정장 재킷의 탄 냄새. 숨이 막혀온다. 이대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은 느낌.
‘격리조? 아무튼 누가 열어줄 때까지는 이러고 있어야 해. 참아.’
이연우는 속으로 얼음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빙수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어찌 됐든, 못 버티면 진짜 죽을 테니까.
그러고 있자면 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넥타이, 정장 재킷, 캐비닛에 막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단락적으로 끊어졌다.
“저██ 눈 가██, 손█ 잡█ ██?”
“좋██ █각███.”
뭔가 여럿이 두런거리는 듯하다.
‘격리조가 왔나? 벌써 30분이 지났다고? 그랬으면 좋겠다.’
종아리와 허벅지는 저리고, 허리와 어깨와 목이 아파져 온다.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도 뻐근한 통증은 가시지 않는다. 여기에 후덥지근한 열기와 끈적한 땀까지 더해지니 미칠 거 같다.
‘조금만 느슨하게 풀까? 아냐, 안 돼. 참아.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체온으로 달아올라 미적지근한 캐비닛. 그나마 시원한 부분을 찾아 몸을 움직인다. 그때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듯했다.
“██ 움███! 모█ 손 █ 잡██!”
“█!”
외침 같은 것이 한 차례 들린 후, 침묵이 이어진다.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힌 이연우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뭐지? 진짜 격리조가 들어왔나? 아니면….’
누군가 이상異常에 당했나?
입술을 핥은 후 침을 꿀꺽 삼킨다. 흥건한 땀 때문에 혓바닥에 짠맛이 감돈다. 불쾌함을 느끼기에는, 온 감각이 바깥으로 향했다.
실험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귀를 기울인다.
후우욱- 후욱-
자신의 뜨거운 숨소리.
“….”
그 외에는 딱히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 책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리를 싸맸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없다. 새까만 도화지 위로 불온한 상상의 나래만 자유롭게 펼쳐졌다.
‘빌어먹을.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격리조가 왔나? 다 정리하고 구해서 나갔나? 자기만 버려두고? 아니면 이상異常이 다 죽여버렸나? 아니면, 다른 사고가 터졌나?
미지. 불안감. 공포. 당장이라도 속박을 풀고, 캐비닛의 얇은 환기구로 눈을 들이밀고 싶다. 이연우는 정장 재킷을 돌돌 묶어둔 매듭에까지 손을 올렸다.
‘…아냐. 참아. 아직이야.’
가까스로 손을 내린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쿵, 캐비닛의 철제문을 때렸다. 아픈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철제의 질감.
열이 오른 머리로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했다.
‘격리조인지 뭔지 하는 게 왔으면 날 꺼내줬겠지. 누가 이상異常에 당했으면, 이제 20분이 남았다는 소리야. 캐비닛에 들어온 지 3분밖에 안 됐고.’
한참 남은 게 분명하다.
“후우우우.”
잡념과 답답함과 불안과 짜증을 토해내듯 숨을 내쉬어, 머리를 비운다.
귀는 바깥을 향해 쫑긋 세웠다.
희미한 소리라도 들릴까. 누군가 새로 이상에 당하면, 10분이 지났다는 소리니까.
‘그러고 보니까, 두 명을 제물로 바치면 격리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아냐.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저게 어떤 식으로 위험해질지도 모르고.’
시각이 멀고, 청각도 반쯤은 멀어버렸다. 어둡고 후덥지근한 세상에서 생각이 맥락 없이 튀었다.
‘신입사원평가는 망했겠지. 나 혼자 살겠다고 움직였으니까. 채용취소까지 갈까.’
김 박사의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 떠올라, 걱정에 몸을 떨기도 했고.
‘그래도 사는 게 우선이야. 다른 사람이 죽더라도. 내가 대신 죽을 수는 없잖아.’
오늘 처음 본 입사동기 셋의 얼굴이 떠올라, 털어내듯 고개를 젓기도 했다. 이서연의 하얀 얼굴, 강열의 누가 봐도 군인인 얼굴, 박상준의 고시 낭인 티가 남은 얼굴.
이어서 죽어버린 한창성과 송시우의 얼굴도 연달아 떠올랐다.
‘…죽었지. 이상異常에 당해서.’
이상한 것. 위험한 것. 회사에서 일한다면 무조건 마주하게 될 것.
“안 █! 가█히 있███!”
“손 놓██ 안 ███!”
“놔! 봐█ 해! █야 █다고!”
고함.
덜컹-
화들짝 놀라 몸을 뒤튼다. 이연우는 머리를 움직여, 캐비닛의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정장과 넥타이를 뚫고 말소리가 들려왔다.
“박██ 씨! 멈███! 손 놓█ ██, 얌█히 있███!”
“막█ 마! █을 거█!”
누군가 이상異常에 당했다. 일부만 들리는데도 상황이 눈에 보였다. 이연우는 생각했다.
‘이제 10분 남았나.’
두근두근-
빠른 심장박동을 시계 초침 삼아 시간을 잰다. 박동 백 번에 1분 정도.
‘1, 2, 3, …57, …89, …100. 1분.’
“잡█! 놓██ 마! 못 ██ 막아!”
“늦███! 놓███!”
‘1, 2, 3, …100. 2분.’
“█버려███! 우█가 살 █각█터!”
‘…3분, …4분, …5분.’
“돌입! 돌입!”
“왔█!”
“██개체 확인! 부상█ 확인!”
처음 듣는, 우렁찬 목소리가 겹겹이 두른 천을 꿰뚫고 고막에 내리꽂힌다. 이연우는 확신했다. 격리조가 왔다고.
“이상██ ██완료! █상자에█ 진정█ 투입███! █정제 █과 없█! 전█뱀 ██!”
보고하는 소리가 이어지길 잠시.
흔들림과 함께 캐비닛 문이 열렸다. 시원한 공기가 불어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연우는 혹시 몰라 여전히 머리를 싸맨 채로, 크게 말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나오셔도 됩니다.”
이연우는 서둘러 정장 재킷을 묶은 매듭으로 손을 옮겼다. 급하게 손을 놀려서인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꽉 묶인 매듭 위로 헛도는 손가락.
화악-
결국 헬멧 벗듯 위로 정장 재킷을 뽑아냈다. 꽉 묶은 넥타이도 마찬가지. 얼굴이 쓸리는 것도 감수하고 머리 위로 끌어당긴다. 얼굴 살이 쓸려 올라가며, 쓰라린 고통 끝에 넥타이를 벗어 던졌다.
“후우우우!”
시원하다. 살 것 같다. 이연우는 저린 다리를 절뚝이며 캐비닛에서 나왔다.
하얀 조명 아래, 난장판이 된 실험실의 풍경이 보였다. 엉망이 된 옷차림을 한 신입과 박사와 연구원과 선글라스를 끈 경비, 그리고 경비와는 다른, 더 신기한 장비를 두른 격리조의 조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