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상에서는 하루하루 살아남기 바쁜 법. 내일을 준비하는 저축 따위는 사치다.
부우웅-
첫 직장, 첫 출근, 그리고 첫 차.
이연우는 흐뭇하게 웃으며 자그마한 경차를 운전했다. 회사에서 받은 보상금을 모조리 쏟아부은 경차는, 중고였지만 제법 괜찮았다. 운전하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
즐겁게, 또 어설프게 도로를 달리기를 잠시.
내비게이션 어플을 켜둔 핸드폰에서 띵동하고 알림 소리가 났다.
- 전방 5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우회전.”
이연우는 노래 부르듯 말을 늘어뜨리며, 핸들을 꺾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발발발 달리는 경차가 한적한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네모난 주차칸으로 삐뚜름하게 들어가는 경차.
띵동-
-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안내 수고했어.”
내비게이션 어플을 종료한 이연우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넓고 한적한 공용주차장.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은 이연우의 경차를 제외하면 경찰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뿐.
시선을 올려보면, 이연우를 내려보듯 높게 솟은 산이 푸른 옷을 입었고, 머리에 하얀 안개 모자를 썼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풀과 산의 내음.
“산은 되게 오랜만에 오는 거 같은데….”
이연우의 목소리가 떨떠름하게 변했다. 운전 연습이나 등산을 위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이상조사반 반장과 통화했던 기억이 빠르게 스쳤다.
스피커를 터트릴 듯이 우렁찬 목소리.
‘어, 신입! 네가 일할 부서 반장이다! 내일부터 출근하는데, 괴백산 알지? 아침 7시까지 그쪽으로 와!’
느슨하게 올라갔던 이연우의 입매가 축 늘어졌다. 그는 느릿하게 손을 움직여, 어제 새로 산 등산복의 옷매무새를 고쳤다. 새 옷 냄새와 빤닥이는 광채 때문에 코와 눈이 피곤하다.
한숨 섞인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윗사람이 등산에 미친 사람이면 피곤해진다던데….”
주말도 아닌 평일이고, 신입사원이 출근하는 첫날이다. 벌써부터 산으로 부르는 꼴을 보니,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연우는 등산로 입구를 향해 걸으면서,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니겠지. 조사반이 산에 있는 거겠지.”
출근할 때마다 산을 올라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등산에 미쳐버린 자가 상사인 것보다는…. 아닌가? 뭐가 더 문제지?
고민하는 사이 도착한 등산로 입구.
이연우는 쓸데없는 고민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입구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뭐지?’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진 입구.
테이프 앞에 선 경찰 두 명이 출입을 통제했고, 그 옆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쪼그려 앉아 멍하니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이연우가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경찰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
“죄송합니다. 사건이 있어서, 등산객의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그래요?”
분명히 괴백산으로 불렀고, 여기가 괴백산인데 이상한 일이다.
‘신고식 같은 건가? 아니면 진짜 무슨 사고가 난 건가? 설마 또 시험은 아니겠지?’
일단 반장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꺼낼 때였다. 통화이력을 뒤지는 이연우를 유심히 지켜본 여자가 말을 건넸다.
“이연우 씨? 맞죠?”
“예, 접니다. 그런데, 그쪽은…?”
“으흠, 조사반에서 일하는 유지유에요.”
같은 부서 사람.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다. 허름한 옷차림이나 의욕 없이 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탁탁-
일어서서 트레이닝복의 흙먼지를 털어내는 유지유에게, 이연우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번에 입사한 이연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정말 반가워요. 반장님이 아주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더라고요. S급 신입이라고. 앞으로, 오래도록 함께 일해봐요.”
악수하자며 내민 손. 맞잡고 두어 번 흔든다.
그때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아저씨. 부모님 두 분 다 건강하시네요?”
“뭐?”
뜬금없는, 어떻게 들으면 기분이 나쁘기까지 한 발언. 이연우는 침착하게 유지유를 보았다. 아는 사람인지, 조사반의 관계자인지 묻는 시선.
이연우의 눈을 피한 유지유가 손바닥을 휘둘러, 학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빡-!
“악! 왜 때려!”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말을 안 들으면 맞아야지.”
“이거 폭력이야! 경찰 아저씨! 이 아줌마 좀!”
빡-!
“악!”
“휴. 어쨌든 이연우 씨. 이 애는 최재민이라고, 보다시피 좀 ‘이상’한 애에요.”
“’이상’한 말입니까?”
관계없는 경찰이 있기 때문일까. 웃고 있는 경찰이 못 알아듣게 이상개체를 돌려 말한다.
그것을 알아들은 이연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현실을 조작하는 감독, 정신을 황홀경으로 이끄는 레오나르도. 그가 겪은 인간형 이상개체는 하나 같이 끔찍했으니까.
최재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경계와 적의가 섞인다. 최재민도 그랬다. 뒤통수를 문지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흥분하고 화난 목소리.
“난 사람이야! 괴물 같은 게 아니라고!”
최재민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도, 이상조사반의 직원 둘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연우는 최재민에게 긴장된 시선을 고정하며, 유지유에게 소리 죽여 질문했다.
“어떻게, 많이 이상한가요? 다른 사람이 위험할 정도로?”
“아뇨. 레벨로 따지면 1 정도? 무해해요. 기껏해야 부모를 욕하는-”
“씹덕 같은 소리나 하면서 무시하지 말라고!”
가만히 구경하던 경찰이 소리 죽여 웃는다. 유지유는 최재민의 뒤통수를 한 번 더 때렸다.
빡-!
“아악!”
“어쨌든 여기서 말하기는 힘들고, 산 올라가면서 말하죠.”
유지유가 웃는 경찰에게 몇 마디를 하고는, 출입금지 테이프를 넘어갔다. 뒤통수를 감싸 쥔 최재민도 뭐라 투덜거리면서 유지유를 뒤따랐다.
이연우는 최재민의 뒷모습을 애매한 시선으로 보았다. 어떤 이상개체인지 가늠이 되었다.
‘부모감별?’
정말 애매하고 하찮다. 다른 사람한테 패륜적인 욕설을 뱉을 때나 쓸 법하지, 사람 하나 죽이기도 힘든….
그러고 있자니, 저만치 앞서나간 유지유가 돌아서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연우 씨, 출근 첫날부터 산으로 불렀다고 퇴사하려는 건 아니죠? 이것도 업무, 아니, 등산이 업무라는 게 아니라요. 그 알잖아요. 일 때문에 온 거거든요. 아니, 이러면 우리 일이 등산이라는 소리 같잖아. 그게 아니라-”
신입을 보는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이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닙니다. 갑니다.”
출입금지 테이프를 넘어간다. 경찰은 막지 않았다. 지나가기 편하게 테이프를 들어주었다.
이연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산길에 올랐다.
***
굴곡진 산길을 오르다 보면, 땀이 흐르고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쉴 새 없이 뛰기 마련이다. 공시생으로 살며 운동 한 번을 안 한 몸이면 더욱더.
허억- 허억- 허억- 허어어억-
몇 걸음이나 뒤처진 이연우가 무릎에 손을 얹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팔과 다리, 구토하는 사람처럼 숙인 상체. 땀방울이 코끝과 턱 끝에 맺혔다가, 뚝뚝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침도 질질 흘렀다.
중간에 선 최재민이 이연우를 돌아보았다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누나! 여기 이 아저씨 죽으려고 하는데! 진짜 죽을 거 같아!”
“체력이 많이 안 좋네요…. 이건 안 좋은데….”
유지유는 어딘가 실망한 기색으로 이연우를 내려보았다. 그녀는 땀은 흘렸지만, 그렇게까지 지쳐 보이지는 않았다.
이연우는 간신히 고개만 꺾어 들어 올린 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잠깐, 만, 쉬었다, 가죠. 저, 진짜.”
“저기 조금만 올라가면 쉼터 있다는데, 거기까지만 가죠.”
“조금, 맞습니까?”
“네, 정말 조금.”
“으흐으!”
이연우는 악을 쓰며, 숙인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안간힘을 다해 발을 뻗었다.
유지유와 최재민은 더디게 걸었다. 이연우의 근처에서 계속 이연우를 힐끗거렸다. 당장 쓰러질 것 같아, 걱정 어린 말을 한두 마디씩 건넸다.
“아저씨, 이온음료 좀 마실래요? 저 가지고 왔는데. 그런데 아저씨 체력 진짜 약하네.”
“말, 시키지, 마.”
선의를 가장한 방해.
“연우 씨. 제가 선배니까 하는 말인데, 기분 상하지 말고 들어요.”
“네, 에.”
“우리 조사반은 발로 뛰는 일이 많아요. 체력이 이렇게 약하면 문제가 될 거예요. 앞으로 틈틈이 운동해서 체력을 길러야-”
충고를 가장한 방해.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이연우가 말소리를 백색소음처럼 흘려버릴 때였다. 문득 이연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쉼터! 쉼터다!’
자그맣고 평평한 공터에 공원 벤치 같은 것이 두 개 놓여 있다. 바로 옆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 그림자까지 드리워진 자리!
“제가 다 조사반의 식구로서 하는 말인데, 연우 씨? 이연우 씨, 듣고 있죠?”
“예! 정말 조금 남았었네요!”
“누나, 하나도 못 들은 거 같은데.”
힘을 쥐어짜, 걸음을 재촉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연우는 벤치 하나를 차지했다. 아예 몸을 던져 침대처럼 누워버린 것이다.
“아, 살 거 같다.”
딱딱한 나무 벤치가 침대보다 좋다.
쏴아아-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란하는 아침 햇살. 편안하게 눈을 감은 이연우의 호흡이 점차 느릿해질 즈음.
유지유가 말했다.
“연우 씨, 이제 좀 괜찮죠? 일 이야기 시작해도 될까요?”
“예!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체력이 부족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와봐요.”
유지유와 최재민이 앉아 있는 벤치. 둘의 사이에 종이 몇 장이 늘어서 있었는데, 기사나 사진 또는 글 따위였다. 이연우가 벤치 앞에 쪼그려 앉아, 셋이 머리를 맞댔다.
유지유가 말했다.
“우선, 우리 이상조사반은 이상한 사건, 이상異常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에 투입되어 정보를 수집하는 부서입니다.”
“그럼, 이 산에 이상異常이…?”
이연우는 뒷말을 흐렸다. 쉬면서 좋아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곤두선 신경. 저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 없는 산이 낯설다.
쏴아아아-
바람을 맞아 잎사귀가 몸을 비비는 소리,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안개.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죠. 여기 이거 보세요.”
유지유가 종이 몇 장을 건넸다. 사진 몇 장과 면담기록이 담긴 종이. 이연우는 첫 장부터 진지하게 읽다가, 어느 지점에서 표정이 이상해졌다.
‘박상준? 이 사람이 왜 여기에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