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보인 사진은 끔찍한 시체였다. 이리저리 뒤틀린 사지, 끌려 올라간 상의 아래로 짐승이 내장을 파먹은 듯 푹 파인 복부. 득실득실 달라붙은 벌레떼.
눈살을 찌푸린 유지유가 설명을 더했다.
“이 산에서 등산객이 사망한 일이 있었죠. 부검결과, 발을 헛디뎌서 비탈길을 굴러떨어졌고, 그 부상으로 천천히 죽어갔다고 하고요.”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평범한 실족사고 같은데.”
이연우는 침착하게 되물었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이상한 점은 없나 잔인한 사진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봐도 모르겠는데.’
단순한 시체다. 이연우가 사진에서 눈을 떼고, 다른 사람을 보았다.
“우욱, 씹.”
최재민은 벤치 너머로 고개를 빼서 헛구역질을 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유지유는 선배답게, 모를 줄 알았다는 듯 친절하게 보고서를 가리켰다.
“단순한 사고 같죠? 다음 장 봐보세요.”
사락-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 자기가 넘겨놓고 흠칫 놀란 이연우는 눈을 감았다가, 이내 태연하게 눈을 떠 보고서를 읽었다.
“어.”
박상준의 증명사진이 나왔다. 아래로는 인터뷰처럼 대화기록이 쓰여 있다. 번갈아 나오는 질문과 답이 많다.
이연우가 의문을 담아 유지유를 올려봤다.
“연우 씨도 아는 사람이죠?”
“예. 이 사람이 왜 여기에 나옵니까?”
고시 낭인, 박상준.
인간자격시험을 치르고, 신입사원연수까지 함께 했던 사람.
유지유는 짙은 한숨을 쉬었다.
“이 산에서 죽으려고 했대요. 사람이 오지 않는 산골짜기에서.”
“네? 어째서.”
“연수 못 버티고 나갔다던데. 그러면 기억소거제 처방받은 거잖아요.”
“그랬죠…. 더 말 안 하셔도 됩니다.”
이연우는 묵묵히 박상준의 증명사진을 보았다. 어쩐지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5번째 공무원 시험은 불합격했고, 6번째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정신 차려보니 공부한 기억도 없이 시간만 지나 있었겠지.’
더는 시험을 준비할 자신이 없어서, 더는 못 버티겠어, 어쩌면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의 영향이 무의식에 남아있어서.
‘나도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으면…. 아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자기 뺨을 찹- 때린 이연우가 사무적으로 자료를 읽어나갔다.
“생존? 기억상실?”
박상준은 살았다. 하지만 또 이상한 사건을 겪은 모양이다.
“만신창이가 되어서 허겁지겁 내려왔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더라고요. 뭘 봤고, 그래서 도망친 거 같다는데. 그런데 중요한 건.”
유지유가 네 손가락을 펴서, 이연우의 눈앞에 들이댔다.
“박상준이 죽기로 한 골짜기가 처음 사망자가 발생한 현장이고, 그 후로도 이 산에서 네 명이 더 사망했다는 거죠.”
“발을 헛디뎌서요?”
“네, 굴러떨어져서.”
“비슷한 골짜기에서?”
“그 골짜기에서.”
이건 확실히 이상하다. 이연우는 경계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안개가 아까보다 짙어졌다. 좁아지는 가시거리. 멀리 있는 나무가 흐릿한 그림자가 되어, 안개 너머에 서 있다. 흔들리는 가지와 나뭇잎이 무언가의 손짓 같다.
불길한 산 한복판에서, 유지유가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 이상異常인지, 이상異常이면 어떤 이상異常인지 조사하는 게 우리 임무입니다.”
“위험한 일이군요.”
이연우는 각오를 다졌다. 인간자격시험을 치를 때처럼,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로부터 살아남을 때처럼, 작가와 레오나르도를 포획할 때처럼, 필사적으로.
그런데 한창 심각해질 때, 유지유가 돌연 어깨를 늘어뜨렸다. 입가를 조금 올리며, 웃었다.
“…뭐, 실제로는 조그마한 단서만 구해서 도망치는 일이에요. 어쨌든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데, 목숨까지 걸 필요 없어요.”
“아저씨, 쫄 필요 없어요. 저도 몇 번 일해봤는데, 진짜 이상한 건 본 적이 없어요.”
다 거짓말이고, 헛소리고, 소문일 뿐이었다고. 이상異常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고. 최재민과 유지유가 웃는다.
하지만 이연우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상한 세상이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근육의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이완. 사방을 경계하는 감각. 무슨 징조가 보인다면, 즉각 반응하게끔 곤두선 신경.
이연우의 긴장된 얼굴을 보고, 유지유가 팔뚝을 툭툭 쳤다.
“좋아요, 뭐. 신입사원이니까 바짝 긴장할 수도 있죠. 나쁘지 않은 자세예요.”
“아저씨, 진짜 쫄보네. 하긴, 오히려 나보다 경험이 없구나. 나는 조사 실습만 벌써 10번이 넘는데.”
웃는 사람들. 아무리 생각해도 안전불감증이다. 무어라 말하려고 이연우가 입을 열었지만.
“그럼 슬슬 다시 일할까요?”
유지유가 서류를 되찾아갔다. 서류를 가방에 넣은 유지유는, 가방을 등에 메며 벤치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사망사건이 연달았던 골짜기는 너무 위험하니까, 그 골짜기가 내려 보이는 산봉우리로 돌아서 올라가죠. 거기서 내려보면 뭐라도 단서가 보이겠죠.”
유지유가 운동복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 응원봉처럼 흔들었다.
“안전제일. 안전하게 가자고요.”
그 말에 이연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조사반의 선배다. 그 노하우와 경력,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긴장해야지.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나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고개를 내저으며 풀어지려는 정신을 붙잡는다. 최재민과 함께 유지유를 뒤쫓아가던 이연우가 문득 질문했다.
“그런데 그 산봉우리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한 5분의 1? 올라왔을걸요?”
“아, 아아. 20퍼센트 정도….”
아직 한참 남은 산행. 하산하는 길까지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이연우는 높은 산봉우리를 막막한 눈으로 보았다.
짙은 안개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다.
***
***
***
걷고, 걷고, 걷는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오르고, 내려가고. 흙을 밟고, 잡초를 밟고, 낙엽을 밟고, 나뭇가지를 밟는다.
흐으윽- 허어억-
“잠, 깐. 잠깐, 쉬었다, 쉬었다.”
“…으음, 그러죠.”
철푸덕-
이연우가 그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아,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새하얀 안개가 뚜껑처럼 씌워진 하늘. 하얀 점 같은 태양이 높이, 정수리 위에 있다.
“저희, 한참 전에, 도착을, 했어야.”
“그게 맞는데…. 이상하네. 왜 아직도 산길이지?”
한참 지났다. 이연우 때문에 쉬엄쉬엄 걸었다지만, 그럼에도 정상에 도착하고 남을 시간.
그런데도 그들은 산길을 걷고 있었다. 산자락인지, 산 중턱인지, 정상 근처인지조차 모르는 산길을.
유지유가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렸다. 망원경으로 허벅지를 빠르게 두드린다.
타타타탁-
“안개 때문에 보이는 것도 없고, 사람도 없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누나. 이거 봐.”
최재민이 핸드폰을 유지유에게 보였다. 지도 앱이 켜져 있다. 빨간색 핀이 박힌 현재위치.
“이제 중간 올라왔어.”
“…말이 안 되는데.”
딱 멈춘 손짓.
유지유가 지도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걸어온 길을 보았다. 하얀 안개가 그득하게 들어찬 공기, 내리막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순간, 유지유가 애써 기운차게 말했다.
“단서 수집 끝! 사람이 길을 잃게 하는 안개, 딱 봐도 이상하죠? 내려가서 보고합시다!”
“맞아? 안개 때문에 길 잃은 거 아니야?”
최재민이 말대꾸를 하기 무섭게 휘둘러지는 손바닥.
빡-!
“악! 왜 또!”
“실습생? 정규직원이 말을 하면 듣자?”
“아씨.”
장난스럽지만 진지한 태도에 최재민이 입술을 불퉁 내밀었다. 눈치껏 말을 더하지 않았다.
유지유가 이연우를 돌아보았다.
“연우 씨? 이만 내려가죠? 연우 씨?”
“선배님.”
떨리는 목소리. 이연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는 눈이, 핸드폰을 쥔 손이 흔들린다.
“저, 이것 좀.”
“뭔데요?”
유지유가 빠르게 다가가, 이연우의 등 뒤에서 몸을 숙여 핸드폰을 보았다.
[최근 통화]
- 반장님 (발신 통화 / 한 시간 전) : 1분 20초
한 적 없는 통화가 그곳에 있었다.
코가 스칠 듯한 거리에서 유지유와 이연우가 서로 눈을 마주 봤다.
“연우 씨, 혹시 우리 몰래 반장님한테?”
“아닙니다. 그리고 통화하는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멀리서 걸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기억에 없는 통화기록. 일어선 유지유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단축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스피커폰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어, 왜 또.
“반장님, 저희가 지금 내려가려고 하거든요. 안개가 길을 잃게 해서, 그래서, 내려가려고 하는데요.”
- …그거 아까 신입이가 보고했는데?
“보고를 했다고요?”
이마를 짚은 유지유가 이연우를 본다. 이연우는 격렬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입 모양으로 절대 아니라고, 그런 적 없다고 벙긋거리면서. 유지유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반장님. 저희가, 아직 산인데. 전화를 한 기억이 없는데요.”
- 기억이 없다고?
침묵.
핸드폰 스피커에서 숨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이윽고 핸드폰 너머로 반장이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하고, 종이를 뒤지는 소리가 어수선하게 들린다.
잠시 후 반장이 입을 열었다.
- 옘병.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니니까 구조대는 없단다. 빌어먹을 놈들. 조사원을 뭔 실험체로 알아.
“아. 그러면, 저희가 알아서 탈출해야. 그런데, 길을 못 찾겠는데.”
유지유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쭉 빼고, 사방을 둘러봤다. 하얀 안개뿐,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쁜 숨이 핸드폰 마이크를 때렸다.
그것을 들은 반장이 크게 소리쳤다. 스피커가 부르르 떨리는듯한 고함.
- 유지유! 정신 차려! 네가 선배인데 그러면 안 돼! 그러다 발 헛디디면 죽는 거야! 침착해!
“아, 네. 침착하게. 침착하게.”
후우우우-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린다. 숨소리를 듣던 반장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 그그, 부모감별하는 학생 잘 챙기고. 신입이 말 잘 듣고. 그 녀석이 살아남는 건 잘할 거야.
“그렇죠. 네.”
- 살아서 와. 돌아오면 포상금 있을 거야.
“포상금이요?”
다소 침착해진 유지유가 눈을 반짝였다.
- 그 안개, 기억소거제에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부족한 기억소거제 공급에 기여하는 거니까 보상이 적지 않을 거다.
“살아서 돌아가야겠네요.”
- 그래. 이따가 보자.
뚝, 끊어진 전화.
유지유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다가, 다시 꺼내 손에 쥐었다. 기억을 잃는 머리를 대신해, 동영상 촬영을 켜둔다.
촬영 중인 핸드폰 화면 안에, 이연우와 최재민이 담겼다. 유지유의 말을 기다리는 표정. 유지유의 목소리가 마이크에 닿는다.
“으흠. 실습생. 후배. 지금부터 우리는 하산이 최우선입니다. 조사는 끝났으니,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니 기억상실을 대비해 각자 기록합시다.”
“알겠습니다.”
“네, 누나.”
이연우는 메모장을 켜서 몇 마디를 적었다.
현재시각 12시 35분 : 기억상실 확인. 조심해서 내려갈 것.
그것을 홈 화면에 박아둔다.
찰칵-
이때 최재민은 셀카를 찍더니, 사진 위에 문장 몇 개를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지도 앱을 다시 켰다.
“나는 경로 계속 확인할게.”
“좋아, 잘했어. 그럼 내려가자.”
유지유가 선두에 서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곧 세 명의 인영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인적이 드문 산. 나무와 새, 짐승 따위의 그림자가 수런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