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의 악마와 마주한 지 1시간이 지났다.
조사반 세 명과 백아윤은 행복아파트로 돌아왔다. 회사의 악마사냥꾼과 뒷수습 전문 인력, 그리고 교황청 소속 구마사제를 데리고.
“어, 여기야.”
반장은 붕대를 둘둘 말은 머리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악마숭배자와 마주쳤던 1층 현관.
싸움의 흔적이라고는 흩뿌려진 화분 조각과 흙더미, 깨진 소주병과 망가진 드릴 뿐이다. 회색 점토는 전부 증발하여 사라졌다.
그런데도 검은 신부복을 입은 신부는 십자가를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살짝 찡그린 콧등.
“지독한 악마 냄새…. 아주 진동을 합니다. 잡스러운 지옥것이 셋, 수준이 다른 것이 하나.”
“추적할 수 있습니까?”
검은 정장을 입은 악마사냥꾼이 첼로 케이스를 고쳐 매며 묻는다.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부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악한 힘으로 흔적을 지우는 거겠죠. 힘들겠습니다.”
“….”
악마를 추적하지 못하리란 말.
악마사냥꾼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돌아갔다. 싸우지 않는다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언젠가 회사에서 악마를 포착하는 날, 다시 나설 것이다. 악마를 죽이기 위해.
혼자 가로등 너머로 멀어지는 악마사냥꾼을 뒤로하고, 신부는 백아윤을 보았다.
“악마가 물러났으나, 또 찾아올지 모를 일입니다. 학생은 당분간 사제관에서 지내지요.”
“그게…. 부모님한테 물어봐야하는데요.”
악마를 본 후 완전히 겁을 먹고, 안색이 창백해진 백아윤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신부는 개의치 않았다.
“부모님께는 제가 연락해보겠습니다. 템플 스테이처럼 성당에서 머무는 활동을 한다고 말하면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친구나 부모님도 함께요.”
“네에….”
“성경공부도 하고, 봉사시간도 채우고, 학생은 무엇보다 악마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를 배우고요. 부모님께는 지금 연락하죠.”
신부가 백아윤을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신부는 백아윤에게 번호를 듣고는,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예, 안녕하십니까. 백아윤 학생 부모님 맞으시죠? 아뇨, 문제 때문이 아니라-”
남은 사람은 조사반의 세 명과, 회사의 뒷수습 전문 인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상의 아저씨가, 갑자기 반장의 등을 툭 쳤다.
“어이, 홍 반장. 한 푸닥거리했나 봐? 머리가 깨졌어?”
“어어이. 이 팀장. 잔말 말고 뒤처리나 해.”
“아, 그거….”
이 팀장이라 불린 아저씨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 순간, 치직하고, 아파트의 스피커가 일제히 울렸다.
- 아, 아.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 드립니다. 금일 저녁, 101동 현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해당 사건은 동영상 촬영 중 연출된 일로, 주민 여러분께서는 이에 대해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가 멎는다. 정적이 내려앉은 아파트 단지. 이 팀장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주변 눈치를 살핀 다음 불을 붙였다.
반장이 이 팀장을 노려봤다.
“이 팀장? 일 대충 하지? 이게 최선이야? 이러고도 담배가 빨려?”
“나한테 뭐라 하지 말어. 요즘 회사 지침이 이 지랄인데 내가 뭐 어쩌냐.”
이 팀장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 다음, 푸우, 내뿜는다. 반장 또한 담배를 꺼내며, 일단 말을 들었다. 이 팀장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다소 노출돼도 상관없으니까 회사 자원 최대한 아끼라는데 뭐 어째. 그 뭐야, 얼마 전에 항구였나? 그 정도 수준 아니면 다 대충대충이야.”
“윗대가리들이 미쳤나.”
반장은 라이터의 불을 담배에 대다 말고, 욕부터 뱉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으니까.
이런 노출이 하나둘 쌓이면 이상異常이 일상이 된다. 일상이 된 이상異常은 회사도 막을 방도가 없다. 이러다가 이상異常이 전면적으로 공개되는 사태라도 터지면….
이 팀장은 담배를 털며, 흩날리는 담뱃재를 보았다.
“모르겠다, 나도. 윗대가리들이 정신을 어디에다가 팔아먹었는지. 나 때는 말이야, 이러지가 않았어.”
담배가 조금씩 타오른다.
“정부에서 총기만은 절대 안 된다는 거, 어떻게 협상해서 특전대도 만들고. 사원한테 지원이고 복지고 빵빵하게 해주고. 그런데 요즘 꼬라지 좀 봐라.”
말하다 보니 화가 났을까. 이 팀장이 고개를 퍼뜩 쳐들고는,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쥔 손이 마구 흔들리며, 잿가루를 흩뿌렸다.
“있던 복지도 줄이고, 사람은 줄어드는데 뽑지는 않고, 이제는 은폐작업도 가라 치라 하고. 딴 놈들 말 들어보면 지원도 개판으로 한다던데,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뭔 생각을-”
“어이, 담배.”
“어? 앗, 뜨거!”
필터까지 기어오른 불씨가 길게 잡은 손가락에 닿는다. 이 팀장은 화들짝 놀라 담배꽁초를 던졌다. 바닥을 구르는 담배꽁초.
이 팀장은 맥이 풀린 듯, 꽁초를 밟아 끄며 말을 마무리했다.
“하여튼. 슬슬 퇴직할 때가 온 건가 싶다.”
“그만두면 뭐 해 먹고 살게?”
반장이 이제야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묻자, 이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모을 만큼 모았다. 남은 인생 즐기다 가면 되지 않겠냐. 홍 반장. 너도 그만둬.”
“지랄.”
“몸 상해가면서 일해서 뭐가 남냐. 열정만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나 나나, 짬은 토할 만큼 먹었어.”
“이 팀장아. 신입 듣는다.”
반장의 눈짓에 이 팀장이 시선을 옮겼다.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최재민과 이연우. 최재민의 반창고를 붙인 얼굴과, 이연우의 지친 얼굴.
이 팀장은 잘됐다며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조사반이라고 뽑긴 했네. 신입들아, 들어봐라. 예전이면 모르겠는데, 요즘 회사는-”
“또또 헛소리하지?”
“씁.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인데.”
이 팀장은 심통 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는, 털레털레 걷기 시작했다.
“홍 반장아. 난 간다.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
“진짜 이대로 간다고? 수습이 이게 끝이야?”
“으이. 고생해라.”
이 팀장이 저 멀리 사라진다. 반장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슬쩍 최재민과 이연우를 보았다. 이 팀장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듯이, 걱정을 한가득 품은 기색.
반장은 헛기침을 한 후, 수습에 나섰다.
“학생아, 신입아. 너무 귀담아듣지는 말고. 원래 불만이 많은 사람이야.”
“아, 네. 그런데 반장님. 저분 말이 진짜면 회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최재민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반장은 말문이 턱 막혀, 담배만 계속 빨다가 늦게 답했다.
“아냐. 그거 뭐야. 회사가 다른 곳에 집중하면 가끔 이래.”
“정말요?”
“학생아. 네가 회사에 대해 뭘 아냐. 아무튼 내 말이 맞아.”
“아닌 거 같은데….”
반장이 다 핀 담배와, 이 팀장이 버린 꽁초를 주워, 주변에 놓인 재떨이에 버린다. 최재민과 이연우도 슬슬 떠날 준비를 했다.
반장이 말했다.
“학생은 이 아파트 살고. 신입아. 어디 사냐? 태워줄게.”
“시내에 있는 고시텔입니다.”
“아직도 고시텔에 산다고?”
“안 그래도 이사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번에 마침 월세 보증금이랑, 이것저것 살 돈이 다 모였거든요.”
이연우가 뿌듯하게 말했다. 두 달 동안 월급을 모아, 괜찮은 월세방으로 옮길 돈을 모았다. 오류를 진정시킨 실적을 인정 받아 추가로 포상금도 나올 예정이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제법 성취감이 든다.
반장은 선선히 이연우를 축하했다.
“네가 고생한 만큼 번 거지. 아무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와, 부럽다. 형 나중에 놀러 가도 돼요?”
“나중에.”
그런 대화를 마친 후, 그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반장님, 연우 형,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오냐, 너도 조심하고.”
말없이 손을 흔드는 이연우. 최재민은 신부와 함께 있는 백아윤에게 갔고, 반장과 이연우는 반장의 차를 탔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한 반장이 말한다.
“고시텔…. 가는 데 조금 걸리겠구만.”
반장이 엑셀을 밟는다. 차가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반장은 백미러로 이연우를 보았다.
***
머리가 복잡하다. 반장은 좀처럼 운전에 집중하지 못했다.
퇴사하겠다는 이 팀장도 그렇고, 운영을 개판으로 하는 회사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연우도 그렇다.
“….”
반장이 백미러를 보았다. 이연우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뭐 재밌는 걸 보는지 미세하게 웃으면서. 미소 아래로는 가시지 않는 짙은 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신입다운 얼굴이다.
가슴이 돌을 얹은 것처럼 무거웠다. 아래 직원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
하지만.
‘이쯤이면 의심을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반장이 본 이력서. 직접 보고 들은 사건.
인간자격시험은 넘어가더라도, 연수 중에만 격리 실패가 일어났고, 적대집단이 습격해왔다. 첫 출근에서는 이상異常을 발견했고, 차출되어 나간 현장에서는 멸망주의자의 습격을 받아 오류가 확산되기까지 했다.
‘오늘은 악마숭배자가, 대악마가 오기까지 했고.’
우연이 연속되면 이상異常이다.
반장은 조사원으로서 이연우를 의심했다.
그리고, 의심은 빠르게 풀어야 하는 법.
“크흠. 흠.”
헛기침. 이연우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반장의 뒤통수를 보았다.
반장은 백미러로 슬쩍 이연우를 살피면서 직접적으로 말했다. 마침 괜찮은 구실도 있다.
“신입아. 너 한 번 검사 받아보자.”
“예?”
“너 무당 찾았지 않냐. 오늘 악마숭배자까지 마주친 걸 보니까, 조금 이상하긴 하다. 회사에서 정밀검사 한 번 받자.”
“아.”
이연우가 핸드폰 화면을 끄며, 잠시 창밖을 보았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꾹 다물린 입.
정밀검사라는 단어가 풍기는 불온한 분위기가 꺼림칙한 걸까. 아니면 회사가 불편한 걸까. 그도 아니면, 이상異常이라?
반장은 추측을 멈추고, 설득을 시작했다.
“이상異常으로 판명 날까 봐 걱정은 하지 말고. 어지간하면 내가 커버칠 수 있어. 학생 봐라. 연구자들이 실험도구로 돌려쓰겠다는 걸 내가 데려온 거야.”
“…받겠습니다.”
이연우가 짧은 고민 끝에 검사를 받기로 했다. 반장은 저도 모르게 안도하며, 한 손으로 운전대를 쿵쿵 두들겼다.
“잘 생각했다. 검사라고 해도 별거 없어.”
“그런데, 반장님.”
“어? 왜?”
“검사받는 거, 이사만 마치고 해도 괜찮을까요?”
날짜까지 잡아놨는데 이사를 미루기는 많이 귀찮다는 이연우의 말에, 반장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한다고 했지, 참. 그러면 이사하고 검사받는 걸로 하자.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휴가로 처리하고.”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요?”
이연우가 의문을 가지고 반장의 옆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반장에게는 당연한 대처였다.
“그래. 너는 이상異常을 끌어들이거나, 사고를 격화시키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정확한 결과 나올 때까지는 쉬는 게 맞아.”
그런 이유라면야….
이연우가 납득한 얼굴로, 한편으로는 이미 자신을 이상異常으로 보는 반장이 불편한 얼굴로, 핸드폰을 다시 켰다.
그 머릿속에는 검사에 대한 생각이 떠돈다.
***
그리고, 이연우가 이사를 끝마치고, 회사 직원의 마중을 받아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
반장은 상부에서 연락을 받았다.
이연우가 실종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