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31화 (31/194)

[위상학개론]

…우리가 사는 우주만이 차원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접한 다른 차원이 존재합니다.

(대충 다양한 차원을 묘사하는 그림.)

악마로 분류한 이상개체가 살아가는 지옥을 대표로, 저승의 존재와, 알 수 없는 존재가 살고 알 수 없는 특성을 지닌 무수한 이차원들.

이러한 차원은 일반적으로 평행선처럼 우리의 세상과 조금의 연관도 없지만, 마법이라 불리는 특정한 상호작용법으로, 평행차원에서 드리우는 그림자와 빛의 형태로, 또는 천문학적인 우연의 일치로 우리 세상과 교차하기도 합니다.

(세 개의 그림. 왼쪽부터 죽은 자와 대화하는 마법사, 고깃덩이로 변하는 농민, 요정의 세상에 떨어진 여행자가 있다.)

그리고 차원이 교차할 때면, 교차점의 운이 없는 사람은 이차원의 존재와 소통하거나, 이차원의 존재로 변화하거나, 때로는 아예 이차원으로 떠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 관한 학문이 위상학이며-

***

단언컨대, 이연우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회사의 검사를 피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거대한 세상, 풀잎이 가로수만큼 길게 자란 세상의 들판.

“미친 주사위 새끼야….”

쥐처럼 작은 이연우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여잡으며, 조금 전의 과거를 떠올렸다.

***

이사는 금방 끝났다. 옮길 짐은 애초에 거의 없었다. 높게 쌓인 공무원 시험교재는 버린 지 오래고, 개인물품이랄 것도 딱히 없었으니까. 이연우의 차로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

짧은 시간에 끝난 이사.

햇볕이 잘 드는 복층 원룸.

휑하니 비었지만, 번 돈으로 사서 채우면 된다. 공시생 탈출의 확실한 증거. 얼마나 보람차고 재밌을까.

“….”

하지만 원룸 가운데에 서 있는 이연우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오히려 우중충했다. 회사에 정밀검사를 받으러 갈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발을 동동 구른다.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원룸을 빙글빙글 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받는 게 맞는데….’

끼인 남자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회사를 위해 목숨을 버린 다음에야 나아진 처우. 그전에는 밥도 안 주고, 가둬두고, 실험이나 했다지.

이상한 주사위를 품은 지금, 무슨 꼴을 당할지 걱정이 크다. 최소한 감금이고, 이런저런 실험도 많이 당할 것이다. 무슨 이상異常인지 알아보겠다고 무슨 짓을 할지….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위험한 일도 생길 텐데. 역시 검사는 안 하는 게 맞아.’

애초에 무당과 회사의 정밀검사는 느낌이 많이 다르지 않나.

그렇게 결심했으나, 정밀검사를 취소하는 것도 문제였다.

철푸덕-

“아…. 뭐라 말하지….”

이연우는 바닥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두 개의 문자가 있었다.

반장의, 검사 잘 받으라는 문자.

이상검사과에서 온, 오늘 몇 시까지 데리러 오겠다는 문자.

“아아아-!”

늘어지는 외침에 원룸이 진동한다. 이연우는 벌러덩 누우며, 복층 원룸의 높은 천장을 노려보았다.

“그냥 안 받겠다고 하면, 빼도 박도 못하고 이상異常 가졌다고 자백하는 꼴인데.”

그렇다고 요령 좋게 이상검사를 미룰만한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 없이 시간이 지났고, 전화가 왔다. 문자와 같은 번호, 이상검사과. 이연우는 우울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예, 맞습니다. 도착하셨다고요? 아…. 네, 내려가겠습니다.”

이상검사과에서 데리러 왔다.

이연우는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발뒤꿈치를 질질 끌며 원룸을 나갔다.

건물을 나가자마자 보인 것은 갓길에 주차한 승용차.

이상검사과에서 나왔을 사람이, 창문을 전부 내리고 이연우를 기다린다. 그는 이미 이연우의 신상정보를 받았는지, 이연우를 보고는 손을 들었다.

“여깁니다.”

“….”

이연우는 말없이 다가가며, 검사과의 사람과 창 너머로 보이는 차 내부를 보았다.

의사나 연구원보다는 전투원에 가까운 육체. 여차하면 제압할 생각인지, 삼단봉과 테이저 건이 조수석에 놓여 있다.

이연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데리러 온 거야, 체포하러 온 거야.’

벌써부터 느낌이 좋지 않다. 이연우는 차 문을 향해 손을 뻗다가, 생각하고 말았다.

‘아, 제발. 검사받기 싫은데. 어떻게든 피했으면-’

데구르르-

이연우가 고개를 든다. 이연우의 거동을 주시하던 검사과의 직원과 눈이 마주쳤지만, 이연우의 정신은 구르기 시작한 주사위를 살피기 바쁘다.

주사위가 멈췄다.

대성공!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거대한 세상으로. 인간이 작고 약한 이차원으로.

***

“미친 주사위 새끼야…. 돌려보내 달라고….”

이연우가 울먹거리면서 말해도, 주사위는 묵묵부답이다. 비슷한 안건으로 연속된 사용은 불가능하다는 뜻일까. 이연우가 눈을 꾹 감으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나는 검사를 피하고 싶다고 했지, 사람을 이런 이상한 세상으로 옮겨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상황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나태의 악마를 소환한 채로 13일이 지난 사람이 지옥으로 가듯, 주사위가 이연우를 거대한 세상으로 옮겼다고.

이연우는 기껏해야 햄스터 크기며, 햄스터 따위는 손쉽게 잡아먹는 생물이 무수한 세상이라고. 대형견처럼 크게 느껴지는 벌레의 무리와, 비행기처럼 큰 새와, 수많은 생물.

그야말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세계. 차라리 검사를 받고 마는 것이 나은 세계.

그때였다.

쿵-! 쿵-!

대지가 일정한 박자로 뒤흔들린다. 이연우는 다급하게 나무만큼 커다란 풀잎을 껴안으며 다리를 고정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세상이 어둡다.

구름이 태양을 가린 줄 알았다. 아니었다. 거인이다. 거인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쿵-! 쿵-!

대지를 흔들면서, 땅에 깊은 발자국을 내면서, 빌딩만큼 커다란 몸을 옮기면서.

거대한 발이 운석처럼 떨어지며, 이연우의 위로 짙은 어둠을 드리운다. 점점 커지는 신발 밑창. 이연우의 체력으로 잠깐 달린다고 피할 크기가 아니다. 이연우가 필사적인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음?”

멈칫, 발이 떨어지다 말고 허공에 멈춘다. 거대한 신발 밑창이 흙먼지를 후두둑 떨어뜨리며, 점점 멀어졌다.

이어, 한 발로 선 거인이 이연우를 내려보았다.

“오. 인간이잖아?”

쿵-!

들어 올린 발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몸을 쭈그려 앉는다. 멀리서 봐도 거대했던 얼굴이 충돌 직전의 운석처럼 거대하게 다가온다. 주춤 물러서는 이연우.

동시에, 주사위가 다시 한번 굴렀다.

데구르르-

성공!

팔랑팔랑, 이연우의 인간자격증이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거인한테, 한 손가락으로 이연우쯤은 짓눌러 죽일 수 있는 거인한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이연우는 그것이 인간자격증인지도 몰랐다.

거인이 조심스럽게 손톱으로 인간자격증을 집어 가고, 눈살을 잔뜩 찌푸려 그것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서야 알았다.

“뭐라고 써 있냐. 위 개체는, 인간임을 증명, 합니다. 오.”

거인이 손가락을 치우고, 이연우를 내려본다. 초승달처럼 휜 눈과 천둥번개 같은 목소리.

“운이 좋군. 품종인증서를 가진 인간이라니. 비싸게 팔 수 있겠어.”

거대한 손이 느릿하게 뻗어지고, 생쥐 크기의 이연우는 어찌할 도리 없이 잡히고 말았다. 느슨하지만, 조금만 조이면 이연우를 터트려 죽일 듯한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흐으으- 흐윽-

이연우는 숨을 가늘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인간자격증은 왜, 아니, 그보다 대체 뭐 하는 세상인데….’

거대하기만 한 게 아니다. 이연우는 다시 눈을 뜨고, 입을 벌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고함.

“저기요! 여기는 어디고, 당신은-”

“오, 그래. 잉잉거리는 게 참 힘차구나. 내가 꼭 비싸게 팔아주마. 이래 봬도 잘 나가는 애완인간 판매자거든.”

거인은 인간자격증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툭, 이연우의 머리를 쳤다. 목이 꺾일 듯이 머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고통보다는 애완인간이니 인간을 파니 하는 소리가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든다.

이연우는 거인의 걸음에 맞춰 몸을 뒤흔드는 진동과 거친 바람을 느끼며, 속으로 절규했다.

‘주사위 새끼야! 빨리 돌려보내 달라고!’

***

거인은 들판을 지나, 어디까지나 이연우의 시선에서 거대한 성 같은 오두막, 거인에게는 그럭저럭 넓은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거인은 오두막으로 들어가자마자, 쇠창살이 빽빽하게 꽂힌 우리를 꺼내, 이연우를 집어넣었다. 좁은 원룸 크기의 우리에 들어간 이연우는 팔이며 다리부터 주물럭거렸다.

꽉 붙잡혀서 이동하는 동안 피가 안 통했다. 온몸이 저리다.

“음, 음. 애들 밥부터 주고, 너는 조금 있다가 귀한 인간들 모아놓은 방으로 옮겨주마.”

거인이 쿵쿵 바닥을 찍어가며 이동한다. 이연우는 냉정한 눈으로 거인을 살폈다. 잡혀 오는 동안 침착을 되찾았다.

‘일단, 상황부터 정확히 파악하자.’

거인이 사는 거대한 세상으로 왔음은 알았다. 인간을 애완동물처럼 사고파는 세상인 것도, 거인은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짖는 소리로 듣는다는 것도. 반대로 이연우는 거인의 말과 문자를 이해한다는 것도.

그래도 난생 처음 겪는 세계, 보다 자세한 파악이 필요하다.

푸우욱-!

거인이 큰 그릇을 들어, 컨테이너를 세워놓은 듯한 포대에서 동글동글한 사료를 퍼낸다.

거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두막 벽에 닭장처럼 쌓아놓은 우리로 갔다.

“밥 먹자, 상품들아.”

그리고, 이연우는 보았다. 빼곡한 우리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인간을. 그곳에 붙은 무수한 명패를.

[떨이! 인간 다섯을 하나 값에!]

[목줄까지 함께 드립니다!]

[가격은 문의해주시면 친절하게 답해드리겠습니다!]

[잡종. 수컷. 젊음. 건강함.]

[잡종. 암컷. 늙음. 병약함.]

[잡종. 수컷. 어림. 활발함.]

[잡종… 암컷…]

[잡종… 얌전함…]

옷도 입지 못한 무수한 인간이 우리 입구에 바짝 붙었다. 거인이 우리 앞에 달린 밥그릇에 사료를 한 움큼씩 넣었다.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사료를 주워 먹는 인간들.

이연우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귀한 몸은 명품종 방으로 가자.”

거인이 이연우의 우리를 들고 오두막 안쪽 방으로 간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리 속에서, 이연우는 쇠창살을 붙잡고 또 다른 우리 속의 인간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끼이익-

방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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