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명품관의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따듯한 빛을 뿌리는 벽난로와 고급스러운 원목 진열장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진열장에는 바깥보다 적은 숫자의 우리가 조금의 거리를 두고 전시되듯 진열되어 있었다.
그 우리를 본 이연우는 헛숨을 들이켰다.
‘인, 간? 저게?’
어떤 우리.
키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뼈마디가 얇은 인간이 좁은 우리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 아래 붙은 명패.
[인간품종개량대회 큰 키 부분 1등상 수상]
그 옆의 우리.
길고 빽빽한 털을 지녀서 예티나 빅풋처럼 보이는 인간이 대자로 누워 숨을 헉헉댔다.
[인간품종개량대회 많은 털 부분 2등상 수상]
또 다른 우리.
보라색 피부를 지닌 인간이 피부를 벅벅 긁었다. 벗겨진 피부와 맺힌 핏방울.
[인간품종개량대회 자연적으로 있을 수 없는 피부색 부분 후보 선정]
그 외에도 이상한 생김새의 인간이 우리마다 하나씩. 머리 많은 인간 부분 수상, 가장 무거운 인간 부분 수상, 가장 가벼운 인간 부분 후보 선정 등등등. 이연우가 멍하니 그들의 외형을 보고, 명패를 읽을 때였다.
후욱-!
돌연 강해진 중력과 함께, 시야가 위로 올라갔다. 정확히는 거인이 이연우의 우리를 갑자기 높이 들어 올렸다. 진열장의 빈자리를 스윽 훑어보며 거인이 중얼거렸다.
“마침 품종인증서를 가진 인간이 하나 있으니, 그 옆에 두는 편이 좋겠군.”
이왕이면 비슷한 테마의 상품을 모아두는 게 좋지 않겠냐며, 진열장 최상층에 이연우의 우리를 쿵 올려둔다.
그 충격에 휘청거리는 이연우를 뒤로 하고, 거인이 명품관을 나갔다.
“너희 먹을 밥을 가져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거라.”
끼이익-!
거대한 문이 닫힌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멀어진다. 인간의 숨소리만 들려오는 명품관.
이연우는 손을 뻗어, 우리의 쇠창살부터 붙잡았다. 철컹철컹, 흔들리는 쇠창살. 그 박자가 급하고 빠르다.
‘탈출! 탈출해야 해!’
인간을 멋대로 개량하고 개조하는 괴물에게 잡혀 왔다.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쇠창살을 밀어도 보고, 당겨도 보고, 그 틈으로 몸을 구겨 넣어도 보고. 하지만 엉성한 듯한 쇠창살은 꼼짝도 안 한다.
‘맨손으로 탈출은 힘든가….’
단단히 고정된 쇠창살. 이연우가 시선을 옮겼다. 어떤 도구나, 우리의 취약한 지점이 있을까, 기대를 담아 우리를 훑어보는 시선.
그러다가 보았다.
바로 옆의 우리. 조금의 거리를 두고 떨어진 우리 안에 있는, 쇠창살에 매달려 좌우로 움직이는 인간을.
이연우가 입을 열었다.
“…저기, 제 말 들리세요? 이해되시나요?”
장발의 남자.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지닌 남자는, 쇠창살을 붙잡고 기어올라 우리 천장을 찍더니 그 자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가 말한다.
“네 말, 이해된다. 내 이름은 제임스 콩. 회사의 조사원이다.”
품종보증서, 그러니까 인간자격증을 가졌다는 남자는 턱을 북북 긁으며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이연우는 반색했다.
“아…!”
뭐 하는 세상인지 몰라도, 회사의 흔적을 보았다. 물론 해외지사의 조사원이라는 남자도 잡혀있기는 하지만.
***
쾅쾅-!
이연우가 우리 바닥을 연달아 내리쳤다. 답답하다 못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흠집도 안 나는 바닥보다 저 인간이 더 갑갑하다.
“아니…! 어디 소속이시냐고요! 여기는 어디고요!”
“나, 모른다. 그냥 앞으로 계속 걸으라고 들었다.”
“어디로! 걸으라고 했는데요!”
“모른다. 길? 겹친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같은 조사원이라는 사람한테 조금의 정보를 들을 수가 없다. 혹시 일부러 저러나, 소속 지사가 다르다고 저러나, 이연우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제임스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원룸 크기의 우리를 빙빙 달리다가, 쇠창살을 붙잡고 상하좌우로 움직이다가, 혼잣말처럼 툭 뱉을 뿐.
“바나나 먹고 싶다.”
“아니…. 저기요. 제발 대화 좀 합시다. 바나나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우리 서로 위험한 상황이잖아요? 지금 사람이 막 개조되는 세상인데? 예?”
이연우의 절절한 목소리. 두 손으로 쇠창살을 붙잡고 제자리에서 콩콩 뛰어도,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안 위험하다. 너나 나는 여기 살만하다. 그리고 나는 사람 아니었다. 우리 익숙하다.”
“예…?”
이연우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제임스를 보자, 제임스는 잠깐 이연우를 마주 보았다.
“나, 원숭이. 시험 보고 인간 됐다.”
그리고는 다시 쇠창살을 붙잡고 움직이는 제임스.
이연우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새삼 제임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쇠창살을 붙잡고 이동하는 근력을 빼면, 어떻게 봐도 인간이다. 말도 마찬가지.
하지만 인간자격시험에 탈락한 인간이 짐승으로 인식되던 걸 생각하면….
‘합격자라고?’
원숭이지만 그 목소리와 행동을 인간으로 인식하게 만든 건 아닐까? 제임스를 본 거인이 이건 정품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인간 같지 않은 이세계의 인간과 원숭이였던 인간과 자신.
‘뭘 어떻게 해야…!’
이연우가 머리를 부여잡고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에 빠질 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거인이 돌아왔다.
거인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큰 접시에 침 고이는 냄새를 풍기는 고깃덩이와, 가위를 들고 왔다.
“밥 먹자-!”
거인은 최상층의 제임스가 자리한 우리부터 가위질을 시작했다. 싹둑, 싹둑. 잘게 잘라 먹기 좋은 크기로 떨어진 고기가 우리 입구의 밥그릇에 떨어진다.
이연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이야르 반응을 훌륭하게 일으킨 갈색 고기. 군데군데 갈린 통후추가 박혀 있다.
‘맛있어 보이는데…?’
이연우가 저도 모르게 손바닥 크기의 살점 하나를 들어, 우리 안으로 들고 왔다. 기름기가 뚝뚝 떨어진다. 그걸 한 입 크게 무는 순간, 툭 터지는 육즙과, 밑간한 소금과 후추의 맛과 향. 은은하게 입혀진 버터와 허브의 향까지.
귀한 몸이라고 식사까지 다르다. 평소 대충 먹었던 세 끼 식사보다 맛있다. 이연우가 충격 속에서 기계처럼 고기를 씹었다. 이연우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의외로 괜찮을지도…?’
거인이 다른 우리에도 고기를 썰어주며, 흐뭇하게 웃는다.
“잘 먹고, 비싸게 팔리거라.”
이연우는 남은 고기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탈출이든, 뭐든, 행동을 하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
결국 탈출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제임스와 괜찮은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밤이 왔다. 달이 하늘의 중간을 지나, 슬슬 자정을 지나는 시간.
이연우는 눈을 감고 주사위에게 말했다.
‘지구로! 제발!’
이 세상은 답이 없다. 식사가 훌륭해도, 결국은 인간을 멋대로 조작하는 괴물이 지배하는 세상. 지구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 설령 회사의 의심을 받더라도.
데구르르-
이연우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결과를 기다렸고, 주사위가 멈췄다.
실패!
결구 아무런 변화도 없이, 좁은 원룸 크기의 우리에 남겨진 이연우. 이연우는 명상하듯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늘어뜨리고,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같은 내용으로는 하루에 한 번? 오늘은 글렀다. 잠이나 자자.’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어쨌든 하루에 한 번, 탈출할 기회가 돌아온다. 사지 멀쩡하게, 어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다.
벽난로의 불꽃에서 온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
날이 밝았다.
거인이 채소 따위와 드레싱 소스를 버무린 샐러드를 아침 식사라고 나눠줄 때, 이연우는 졸린 눈을 비비며 우리 입구로 나아갔다.
양상추, 양배추, 옥수수, 토마토, 닭가슴살 따위를 맛있는 소스와 비빈 샐러드가 잘게 잘려 있다. 이연우는 닭가슴살과 옥수수만 빼먹었고, 거인은 이연우의 우리를 툭 쳤다.
“편식하면 안 된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지.”
이연우는 잠깐 씹던 입을 멈췄다.
‘내가 진짜 애완동물인 줄 아나?’
거인과 똑같은 지능과 지성과 인격을 지닌 인간이다. 흔한 들짐승과 같은 취급은-
거인이 말했다.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는데…. 상태가 전체적으로 괜찮군. 잘 팔렸으면 좋겠는데.”
이연우가 들고 있던 닭가슴살을 내려놓았다. 손에 잔뜩 묻은 소스를 차가운 물이 묻은 양상추 따위에 닦아낸다.
‘손님…. 팔리는 것보다는 여기 있는 게 낫나?’
입에 남은 고기를 삼킨 이연우가 고민했다.
이곳에 남는 편이 나을지, 어떻게든 팔려서 다른 곳으로 가는 편이 나을지.
‘하루에 한 번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주사위를 굴릴 수 있어. 안전하게 시간을 버는 쪽이 낫고, 아무래도 이곳이 안전하지.’
괜히 사람을 먹거나, 학대하거나, 버리거나, 죽이는 거인에게 팔려 가기라도 하면 답이 없다. 주사위가 대성공을 띄우기 전에 죽는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기 무섭게, 거인이 나가서 손님을 데려온다.
웅성웅성-
쿠쿵쿵쿵-
두터운 나무 벽을 뚫고 들려오는 말소리와 발걸음의 진동. 곧 문이 열리고, 판매자인 거인과 손님인 거인 가족이 들어온다.
아빠 거인, 엄마 거인, 아들 거인, 딸 거인.
명품관으로 들어온 자식들이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외쳤다.
“와! 이거 봐! 신기하게 생겼어!”
“엄청 복슬복슬해 보여!”
어른 거인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거대한 거인 아이 둘이 우리에 바짝 다가갔다. 창틀 사이로 들이미는 큼직한 눈동자. 손가락을 우리 안에 밀어 넣어 다른 인간을 툭툭 친다.
이연우는 슬금슬금 물러나 우리 뒤쪽의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아빠 거인과 엄마 거인은 자식을 말리는 시늉만 하며, 판매자인 거인에게 말을 걸었다.
“품종 인증을 받은 인간이 있다고요?”
“둘이나 있습니다.”
“호, 수컷은 있습니까?”
“그럼요. 둘 다 수컷입니다. 보시겠습니까?”
“어디 봅시다.”
철컹-
제임스와 이연우의 우리를 붙잡아 꺼냈다. 제임스와 이연우는 서로 다른 자세로 창살을 붙잡고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아빠 거인과 엄마 거인의 시선을 받았다. 상품을 보듯 살피는 눈.
아빠 거인이 제임스와 이연우를 번갈아보고는, 턱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혹시 중성화했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비가 무서울 정도로 내립니다.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이 이렇게까지 넘칠듯이 올라온 건 처음 봤습니다. 모두 비, 더위, 강풍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