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56)화 (56/194)

서편호는 얕은 숨을 뱉었다. 그는 맑은 눈으로 공윤아를 보았다.

대학생 때부터 관심을 두고, 대학원생으로 끌고 와, 마침내 인류보호회사까지 입사시킨, 그의 수제자.

그리고 최현상과 여자 다음으로 ‘빗물’을 시험할 예비 실험체였으나,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공윤아. 네가 내 연구를 이어가…. 그리고, 이연우 씨.”

서편호는 고개를 틀어, 자신을 앞세운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서편호가 쓰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제자만큼은 살려주세요. 당신을 건드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비, 어떻게 그치게 만듭니까?”

한결같다.

서편호는 언뜻 들었던 이연우의 소문을 떠올렸다. 온갖 사건사고를 끌어모으는 인간 토템. 실제로 이연우가 오기 무섭게 비가 내리지 않았나.

‘그런데도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나.’

생존에 특화된, 그야말로 조사원의 모범. 서편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건. 사람 7명을 바치면 됩니다. 자세한 건 제자한테…. 제발 제자만은 살려….”

그 말을 끝으로 서편호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쓰러진다. 아직 죽지는 않았는지, 가는 숨결이 이어졌다.

이연우는 서편호를 내려봤다. 그러다가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총을 앞세웠다.

공윤아였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뜨렸던 주사기를 들고 다가오다가, 멈췄다.

“당신한테 뭘 할 생각은 없어요.”

“….”

서편호를 바라보는 공윤아.

이연우는 말없이 서편호와 공윤아를 피해 펜션 안쪽으로 걸어갔다. 서편호가 아직 죽지 않았으니, 응급처치라도 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연우는 눈을 크게 떴다.

푸욱-

공윤아가 서편호의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엄지로 꾹 눌러, 투명한 약물이 주입되었다.

“박사님도 이걸 원할 거예요. 죽기 전에 연구에 도움 되는 일이잖아요.”

무덤덤한 목소리.

공윤아는 완전히 주입한 주사기를 뽑은 후, 주사기를 손안에서 굴렸다.

“사실 박사님은 당신한테 시험하려고 했어요. 당신이 연구를 단축시킬 거라고요.”

“아니, 뭔.”

“당신한테 빗물을 주입하고, 당신이 부작용에 저항하면, 당신의 피를 샘플 삼아 연구하면 된다고.”

이연우는 사제 권총을 고쳐잡았다. 경계를 안 하자니 미친 사람들이다.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이.

공윤아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가 서편호를 담았다. 공윤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9월 11일. 빗물-003 임상실험. 시험대상은 서편호. 상태, 복부에 총상 셋. 빗물 주입 후 1분 경과. 총상이 회복되고 있음.”

이연우가 힐긋 서편호를 보았다.

정말로 총상이 회복되고 있었다. 구멍 뚫린 옷 아래, 핏물로 젖은 복부에 살이 차올랐다. 또한 서편호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며,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위험한 느낌.

“탈모 진행 중. 경련 확인.”

“이봐요. 그 전에 비를 그치는 법부터 알려주세요.”

공윤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무미건조하게 지식을 읊었다.

“사람 7명이 비에 당해 머리가 빠지면 비가 그친다고 기록되어 있었어요.”

7명이나 희생해야 한다.

이연우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이곳에 머무는 사람의 숫자를 셌다.

‘머리 빠진 남자, 일반인 남녀 둘, 연구팀 셋, 펜션 주인.’

이연우를 제외하면 딱 일곱. 이연우는 총을 흔들며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였다. 이연우가 요란하게 팔을 치켜들며 총을 겨눴다.

총구가 향하는 곳은 서편호.

끽- 뚜득- 뚝- 끼이익-

악령 들린 사람처럼 사지를 뒤틀며, 관절을 꺾어대며, 손톱이 부러져라 바닥을 긁어대며, 몸부림을 친다.

이연우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저거 위험, 아니, 위험하겠지.”

공윤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결론을 냈다. 서편호가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공격성 향상과 정신이상이라는 부작용을.

‘가만히 두면 좀비처럼 지랄할 게 분명해.’

이연우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가, 총을 에코백에 집어넣었다. 총격은 효과가 없다. 차라리 묵직한 타격이나 날카로운 절단이 낫다.

이연우가 구석에 웅크린 남자를 불렀다.

“차 망가진 분. 같이 저거 제압합시다.”

“예? 예!”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길쭉한 빗자루를 쥐었고,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공구 하나를 꺼냈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미니 전기톱을.

톱날의 크기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

위이이잉-

방아쇠 같은 버튼을 누르자, RPM이 상승하며 전기톱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자그마한 나무둥치를 썰어내는 미니 전기톱이 공기를 가르며, 서편호를 향해 나아갔다.

공윤아가 그 앞에 서, 서편호를 가렸다.

“공윤아 씨, 비키세요.”

“…바로 묶을 테니까 실험체를 망가뜨리지 마세요.”

공윤아는 머리 없는 남자를 묶다가 남은 노끈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서편호의 발목을 묶고, 손과 몸통을 묶었다.

노끈으로 꽁꽁 묶인 상태로 몸부림치는 서편호. 살갗이 쓸려 피부가 벗겨져도, 벗겨진 피부가 다시 재생되어 계속해서 쓸려도, 고통 없이 발버둥 친다.

위이잉-

이연우는 계속해서 전기톱을 작동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과연 경계심은 과하지 않았다.

쪼그려 앉아 매듭을 단단하게 묶는 공윤아.

“캬아아악!”

눈이 돌아간 서편호가 상반신을 일으켜, 쩍 벌린 입으로 공윤아의 목을 물어뜯었고.

철퍽-

바깥에 나갔던 최현상이 머리 없이 돌아와, 찢어진 우비를 질질 끌며 부서진 현관을 넘어왔고.

우당탕-

서편호를 부르기 위해 위로 올라갔던 여자가 계단을 우당탕 굴러떨어졌다. 여자는 실험실로 갔다가 ‘빗물’을 주입 당했는지,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이 돌아갔다.

“키아악!”

“….”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현장.

공윤아는 뜯겨나간 목에서 피를 뿜었다. 지금도 목덜미의 살점을 뜯기고 있다.

머리 없는 최현상은 빗물에 젖은 신발을 철퍽이며 그들을 향해 느릿하게 다가왔으며, 여자는 짐승처럼 네 발로 웅크리고 앉아 당장 튀어 나갈 태세를 취했다.

“…차 망가진 분. 이거 쥐세요.”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망치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계단에 바리케이드 세우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아, 아.”

남자는 망치를 쥐었지만, 망치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그의 눈은 여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처럼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

“왜, 아. 내가. 나 때문에. 내가 오자고 해서.”

정신을 못 차린다. 넋이 나갔다.

이연우는 그를 포기했다.

계단을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디딘다. 여자가 펄쩍 뛰어오르며 네 발로 달려들었다. 이연우는 옆으로 한 걸음 걸어 피하고는, 빠르게 뛰어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남자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린다.

“정신 차려! 나야! 아악!”

틀렸다. 이연우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문이 열려 있는 실험실로 들어가,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를 들고 계단으로 돌아왔다.

철퍽- 철퍽-

계단 아래, 머리 없는 최현상이 계단을 올라온다. 한 걸음씩, 분명하게.

이연우는 모니터를 번쩍 들어 올린 후, 적당히 가늠해서 모니터를 집어던졌다.

모니터는 허공을 가르고, 최현상의 가슴팍을 때렸다. 최현상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계단을 굴러떨어졌다.

이연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대로는 해결이 안 되는데. 2층으로 올라온 것도 실수 같아. 차라리 우산을 쓰고 바깥으로 나갔어야 해.’

그 와중에도 다시 한번 컴퓨터 본체를 내던져, 최현상과 여자를 동시에 밀어낸 이연우가 실험실로 달리며 주머니를 다급하게 뒤졌다.

‘회사에 지원…. 너무 늦어. 안 올지도 모르고. 차라리 경찰이나 보험회사, 렉카를 불러서 제물로-’

그때였다.

실험실에 도착한 이연우가 문득 멈췄다.

주차장과 도로가 내다보이는 실험실의 창가.

경찰차와 렉카 차가 펜션에 도착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여, 먼저 행동한 사람이 있다.

***

펜션 주인은 창고 안을 정신없이 서성였다.

선반을 빙글빙글 돌고, 꽉 잠근 문을 확인하기도 하고,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삿갓과 볏짚이나 갈대 따위를 엮은 도롱이를 쥐기도 한다.

그는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머리가 빠지는 비는 대수롭지 않다.

그는 대대로 머리골에 사는 가문의 사람으로, 비를 잠재우는 무당의 후손이었다. 당연히 머리가 빠지는 비의 존재와 7명의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 역시 알았다. 그의 일이었으니까.

얼마 전, 꿈을 통해 비가 곧 내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준비를 해두었는데….

‘장기숙박한다길래 어떻게 새 손님을 들이고, 새 손님 빼고 타이어까지 다 터트렸는데. 연구자의 우비까지 찢었는데.’

총 든 강도가 나오고, 현관문이 부서지고, 좀비 같은 인간까지 나와버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켜, 펜션 1층의 CCTV를 보았다. 기억을 더하여 숫자를 센다.

날뛰는 사람이 둘, 목을 물어뜯겨 죽은 사람이 둘, 머리가 없는 사람이 둘.

그는 다시 한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리가 부족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인간들이 제사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이대로면 비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비를 빨리 그치게 만들어야 하는데.

펜션 주인은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그는 핸드폰을 보았다.

“외지인을 바치는 게 맞는데.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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