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주차장을 지나 펜션 입구에 주차한 렉카와 경찰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렉카에서 청년이 한 명, 경찰차에서 남자가 둘.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현장이 코앞이다. 우산 없이 맨몸으로 나온 그들은, 완전히 박살 난 펜션 현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고의 같은데. 멀쩡한 주차장 냅두고 왜 굳이 여기까지 차를 몰고 들이박았겠어.”
“신고자 분 계십니까!”
중년의 경찰이 혀를 쯧쯧 차며 현관을 쭉 둘러보고, 젊은 경찰은 목소리를 높여 현관 너머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어….”
렉카를 끌고 온 청년은 우선 승용차에 고리부터 걸다가, 현관 너머를 보고 물러섰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피가 낭자한 현관 너머. 붉은 노끈에 묶인 사람이 꿈틀대고 있고, 목을 물어뜯긴 시체가 둘에, 약에 취한 것처럼 눈이 돌아간 여자가 하나, 그리고 머리가 없는 남자가 하나.
머리 없는 남자가 계단 앞에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렉카 청년을 향해 다가온다.
“경찰 아저씨, 저, 저거. 저기.”
눈을 돌리지 못하고 다급하게 손짓만 하는 렉카 청년. 하지만 경찰은 도리어 렉카 청년을 향해 다가왔다.
두 경찰은 목을 앞으로 쭉 빼며 렉카 청년을 향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괜찮으십니까? 당신 지금 목이….”
“아니, 지금 내가 문제가 아니라-”
렉카 청년을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거북이나 뱀처럼 늘어난 목이 옆으로 접혔다.
뚜득- 찌직-
목뼈가 뒤틀리고 피부가 찢어지는 소리. 청년은 저도 모르게 늘어난 목을 매만지다가, 두 경찰을 보고 뒤로 넘어졌다.
빗물이 흐르는 인도에 엉덩방아를 찧은 그의 위로, 목이 길게 늘어진 경찰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들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며, 청년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찌지직- 뚜드득-
“저기요, 목 괜찮으으-”
그리고, 목이 떨어진다.
하나, 둘, 셋.
세 명의 머리통이 펜션 입구를 데구르르 굴렀다. 모자가 벗겨지고, 빗물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 돌가루와 낙엽 따위가 엉겨 붙었다. 차마 감지 못한 눈동자로 빗물이 떨어졌다.
쏴아아-
머리 없는 몸들은 손을 뻗고 주저앉은 자세로 잠깐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펜션 내부로 몸을 돌렸다.
머리가 있는 인간을 향해.
“크르르-”
빗물을 주입받은 여자가 으르렁거리며 정신없이 고개를 돌려 머리 없는 인간들을 보았다.
최현상, 경찰 둘, 렉카 하나. 홀로 상대하기에는 힘든 숫자.
허나 정신이 나가버린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하다못해 서편호를 풀어주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짐승처럼 최현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캬아아악-!”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손톱과 사냥개처럼 들이미는 송곳니.
하지만 여자가 할퀴고 물어뜯어도, 머리 없는 최현상은 묵묵히 손을 뻗어 여자를 붙잡았다. 억센 손아귀가 여자의 어깨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사이에 천천히 다가온 머리 없는 인간 셋이 여자를 둘러쌌다. 그들은 여자의 사지를 붙잡아, 느릿하게 펜션 바깥으로 끌고 갔다.
“아아악-!”
아무리 발버둥 쳐도 꿈쩍도 안 한다. 결국 여자는 흐린 먹구름 아래에서 비를 흠뻑 맞아, 머리가 떨어졌다.
“….”
머리 없는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머리 없는 인간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노끈에 묶인 서편호까지 펜션 바깥으로 끌고 가, 서편호까지 제물로 바쳤다.
그리하여 7명의 인간은 머리가 빠졌다.
빗발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비가 점차 가늘어지고, 끝내 비가 그쳤다. 먹구름이 물러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들었다. 햇살이 엉망이 된 펜션 현관 앞을 비춘다.
“….”
“….”
머리 없는 인간들은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다가, 한순간에 물로 변하여 촤악 쏟아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물웅덩이일 뿐.
그 자리로, 펜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펜션 주인은 물웅덩이를 내려보며, 물 표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됐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는 팔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임기응변으로 비를 그치게 만들었다.
‘망하는 줄 알았는데. 저 좀비 같은 인간부터 총 든-’
안도하던 펜션 주인은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서야 또 다른 생존자에게 생각이 닿았다.
‘맞다! 그 총 든 인간! 아직 여기-’
철컥-
뒤통수에 서늘한 감각이 와닿는다. 보지 않아도 훤하다. 총이겠지. 펜션 주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벌벌 떨었다.
“그, 그. 저.”
말을 잇지 못할 때, 툭, 뭔가가 그의 앞으로 굴러왔다. 눈동자만 굴려서 보니, 붉은 노끈이었다. 발끝에 차인 노끈이 펜션 주인 앞에서 멈췄다.
이연우가 말했다.
“그걸로 스스로 묶으세요. 저기 렉카 차 고리랑 당신 한쪽 팔이랑.”
“예!”
이연우는 펜션 주인을 구속한 후 회사에 연락했다. 뒷수습이 필요하다고, 그의 정보부 인맥에게.
***
이연우는 펜션 1층에 주저앉아, 회사가 현장을 수습하는 광경을 보았다.
두 명의 뒷수습 전문 직원은 어딘가로 전화하여 뭐라뭐라 말하였고, CCTV 기록을 물리적으로 강탈하여 박스에 넣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실험실의 컴퓨터와 실험도구를 전부 회수해 포터 트럭에 실었다.
“선생님들, 제 말 좀 들어주십쇼.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포터에는 수갑이 채워진 펜션 주인도 적재되었다. 그가 울상을 지으며 뒷수습 직원에게 애걸복걸해도, 직원들은 들은 체도 안 했다. 무슨 수면제 같은 것을 주입해 재우고는, 그 위로 검은 천막을 씌웠다.
일을 마무리한 직원이 이연우에게 다가왔다.
“이연우 조사원님. 전부 처리됐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던 걸로 되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유. 고생은요. 고생은 조사원님이 하셨죠. 세상에, 요즘 세상에 이상숭배가 웬 말입니까. 아니, 숭배야 그렇다 쳐도 산제물은 뭔….”
간단한 심문을 통해 펜션 주인에게 정보를 얻은 그들은 진저리를 쳤다.
“이상異常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걸 막으라고 있는 회사 아닙니까. 굳이 사람이 희생하지 않아도 막을 방법이 있을 텐데.”
검은 천막 아래에서 자고 있을 펜션 주인을 한 번 흘겨본 그는, 고개를 몇 번 내젓고는 이연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예.”
검은 포터 트럭이 부르릉 떠난다.
이연우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에코백을 몇 번 매만졌다. 여러 공구 사이로 작은 유리병 같은 것이 두 개. 하나는 기억소거제고, 다른 하나는 ‘빗물’이다.
뒷수습 전문 직원이 오기 전에 빼돌린 빗물.
‘…하나 정도는 챙겨 두는 게 낫겠지.’
이연우는 가라앉은 눈으로 생각에 잠겼다. 부작용이 심각하지만, 주사위가 있지 않나.
부상이 심해 죽을 지경이 오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물약이다. 얌전히 죽기보다, 빗물을 마시고 주사위로 부작용에 저항이라도 돌리는 편이 낫다.
그리고, 빗물 또한 무기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이연우의 눈이 펜션 바깥에 고인 빗물 웅덩이로 향했다.
‘서편호는 흙에 남은 성분으로 ‘빗물’을 만들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저 빗물 자체도….’
벌떡-
이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텀블러 컵에 조심스럽게 빗물을 채우고, 비닐봉지로 한 겹 감싸 에코백에 챙겨 넣는다.
‘적한테 뿌려버리거나, 물총에 넣어 쏴도 괜찮을 거야.’
대강 일은 마친 이연우는 홀로 남은 펜션을 한 번 쭉 둘러보았다. 더 챙길 것이 있나? 없다.
그대로 펜션을 떠나려던 이연우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이제 추석 연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막히지 않을까?
“…조금 쉬다가, 차 안 막힐 때 가자.”
어차피 출장은 추석 연휴가 끝날 때까지였으니, 천천히 돌아가도 아무 문제 없다.
구멍가게 수준인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챙긴 이연우는 2층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
며칠이 지났다.
이상조사반의 사무실.
이연우는 사람없는산골펜션에서 겪었던 일을 보고서로 작성하다가 문득 멈췄다. 막 서편호한테 반격하던 과정을 서술하던 중이었다.
- 서편호 연구원이 먼저 까마귀를 던져
이연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이때 빗물을 맞았구나….’
진짜 조금이고 금방 닦아내서 신경도 안 썼는데.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스윽-
이연우가 머리카락을 가볍게 움켜쥐었다가, 눈앞으로 손을 가져왔다. 손에는 머리카락이 제법 많이 묻어 있었다. 미약하게 탈모가 온 것이다.
“아….”
탄식. 한숨이 머리카락과 함께 무겁게 키보드에 내려앉는다.
유지유가 이연우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꿈틀거렸다. 웃음을 참는 표정.
“그, 큼. 괜찮아요?”
“예에…. 이 정도로 끝났으면 다행이죠.”
목이 늘어나서 결국 머리가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 불면증이나 정신이상도 없고, 죽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연우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자, 반장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신입아.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해. 어, 일을 하다 보면 말이야-”
“…반장님. 저 빗물 챙겨왔는데.”
고통은 나눌수록 덜어진다. 모두의 머리가 빠진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다. 빗물을 분무기에 넣어, 딱 한 번만 뿌리면 된다.
이연우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나자, 유지유와 반장이 기겁을 하며 몸을 피했다. 의자를 멀리 빼고, 데스크 안으로 고개를 숙인다.
“안 돼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신입아, 그건 안 된다. 어!”
“조심하십쇼.”
이연우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거북목을 교정하는 자세로 턱을 바짝 당긴 뒤 보고서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