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남자
이른 아침.
기계적으로 양치를 하던 이연우가 문득 핸드폰을 들었다. 진동이 느껴졌다.
- 반장님 : 얘들아. 우리 사무실 리모델링 공사한다. 공사 끝날 때까지 자택근무야. 조사 업무 나갈 일 있으면 그때 연락하마.
이상조사반의 단체 메신저.
반장에게서 온 문자.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헹궈낸 후 침대로 돌아갔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몸. 두 눈과 손가락은 핸드폰에 고정되었다.
- 나 : 갑자기 무슨 리모델링입니까?
- 반장님 : 장비 보급하는데, 그거 보관함이랑 컴퓨터랑 다 싹 바꾼다던데.
조사원 처우 개선. 이연우가 마크 정에게 요구했던 사항이 바로 이뤄지나 보다.
- 지유 선배 : 이제 와서요? 뭐 얼마나 지원하길래 공사까지 한대요?
- 반장님 : 총기, 드론, 소형관측장치, 형광조끼, 기억소거제, 테이저 건, 이것저것 많다.
- 반장님 : 그래서 공사 끝나면 드론 자격증 따야 하고, 장비 사용법 교육 받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해.
앞으로 바쁠 테니까 공사하는 동안 푹 쉬라는 말을 끝으로, 단체 메신저가 조용해졌다.
출근할 필요가 없어진 이연우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놓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의 시선이 엉망이 된 방을 보았다.
“아…. 어제 안 치우고 잤나.”
침대 주변에 맥주 캔이 잔뜩 늘어져 있다. 슬쩍 발로 밀어 옆으로 치운 이연우는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캔을 하나씩 봉투에 담으며, 이연우는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렸다.
어젯밤, 시계수리공 사람들끼리 뒤풀이 겸 술을 마시면서 채팅으로 나눴던 이야기.
‘앞으로는 단순한 친목 목적으로 남기로 했었나? 이상기후 같은 일 생기면 그때 힘을 합치고.’
시계수리공도, 다른 파벌의 인맥도 유지하기로 했다. 연락이나 도움을 주고받는 정도로.
생각하다 보니 청소가 끝났다. 이연우는 길게 하품을 하며, 원룸을 둘러보았다. 더 버릴 것도, 아침으로 먹을 것도 없는 원룸.
‘편의점이나 가야겠다.’
쓰레기를 한 아름 모아 담은 이연우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원룸 밖으로 나갔다.
분리수거장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
이연우는 편의점으로 다가가다 멈칫, 걸음을 멈췄다. 그는 편의점의 유리문을, 유리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뭐지?’
웬 남자 하나가 유리문 앞에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들어가지도 않고, 유리문에 이마를 기댄 채 가만히.
“흐흠.”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인 이연우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남자 옆의 문을 열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린다.
딸랑딸랑-!
문가에서 스치는 몸. 이연우는 곁눈질로 남자를 살폈다. 무표정한 남자가 마네킹처럼 문앞에 기대있다. 눈은 유리문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왜 이러고 있지?’
어딘가 불편한 마음.
이연우는 서둘러 움직이며 도시락이나 마실 것을 골랐다. 그것을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올 때는, 남자가 사라진 상태였다.
편의점 앞에서 길 주변을 둘러보던 이연우의 표정이 어느 순간 굳었다.
“….”
편의점 건너편의 원룸 건물.
이연우가 사는 원룸 건물의 입구에, 남자가 서 있다. 편의점 앞에서와 같이 미동도 없는 몸으로, 유리문에 이마를 기댄 자세로.
본능적으로 에코백을 찾았지만,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잠깐 나오는 자리라 두고 왔다.
‘무기. 무기.’
이연우는 식은땀이 맺힌 손으로 편의점 봉투를 고쳐잡았다. 도시락과 2리터짜리 물병이 들어 있어, 제법 무겁다. 제대로 얻어맞으면 꽤나 아플 것이다.
한차례 봉투를 휘둘러본 이연우가 곧게 걸음을 내디뎠다.
‘이상異常인지 사람인지, 집단 소속인지 단순한 민간인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정도 맞서 싸울 각오는 마쳤다.
길을 건너 도착한 원룸 건물의 입구.
봉투를 휘두르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유리문에 남자와 이연우가 동시에 비쳤다. 이연우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뭐하십니까?”
“….”
반응이 없다. 대답은 물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문에 언뜻 비치는 얼굴도 마찬가지.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이연우가 조심스럽게 팔을 쭉 뻗어, 어깨를 쿡 찔렀다. 옷자락을 푹 누르고, 평범한 사람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어디 아프십니까? 도와드릴까요?”
“….”
“….”
이연우는 고민하다가, 옆의 유리문을 향해 다가갔다. 이 사람의 정체가 뭐든, 집으로 돌아가 권총부터 챙기자는 마음.
문이 열리고 문가에서 두 사람이 교차하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살짝 돌려 남자를 보는 이연우와, 그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굴려 이연우를 보는 남자.
이연우가 여차하면 봉투를 휘두르기 위해 힘을 주는 순간이 지나고, 이연우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휙, 이연우가 몸을 돌려 남자를 보았다.
“….”
“….”
닫힌 유리문을 사이에 둔 두 사람. 남자는 다시 머리를 유리문에 기댄 자세로 유리를 보고 있다.
이연우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위치한 자기 원룸으로 돌아갔다.
쾅!
거칠게 현관문을 닫은 이연우는 편의점 봉투는 대충 바닥에 던져두고 에코백부터 찾아 쥐었다. 권총을 제일 위로 꺼내둔다.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위험을 느꼈다. 회사원으로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충분한 상황.
에코백을 짊어진 이연우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보았다. 7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남자를.
“….”
이연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 손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권총을 쥐고, 발이 성큼성큼 움직여 남자를 향해 다가간다.
앞으로 내세운 권총이 순식간에 남자의 뒤통수에 닿았다.
“총입니다. 허튼짓하면 쏴버릴 겁니다. 당신 누구입니까? 왜 내 앞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대답 안 하십니까?”
꾸욱-
총구가 뒤통수를 짓눌렀다. 그런데도, 남자는 반응이 없었다. 말도 없고, 미동도 없다.
이연우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목과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
‘민간인인가? 이대로 쏴버릴 수도 없고. 적대 집단이나 이상개체인지만 알면 되는데.’
하다못해 이연우를 공격하려는 징조만 보여도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완벽한 무저항이다.
이연우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총을 쥔 손은 남자를 겨누고, 반대쪽 손으로 반장한테 전화를 건다.
- 어. 무슨 일이야.
“반장님. 지금 이상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상개체인지 확인해주십시오.”
- 어…. 특징 말해봐.
당황한 듯한 목소리. 이연우는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가 가는 문 앞에 서 있는 남자.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반장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 찾아봤는데, 회사 데이터에는 없어. 그냥 이상한 사람 같은데. 경찰 불러.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목을 잡아 박동을 확인하고, 코 밑에 손을 대 숨결을 확인했다.
‘사람 같은데. 진짜 민간인인가?’
박동도, 숨결도 일정하다.
‘사람이면 민간인이겠지. 적대집단이 할 짓이 없어서 이러겠어. 바로 이상개체 써서 공격하겠지.’
민간인한테 무턱대고 총을 쏠 수는 없다. 이연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경찰을 불렀다.
“예, 여기-”
경찰은 빠르게 왔다.
1층으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7층으로 올라오고, 문이 열렸다. 남자의 건너편으로 안면이 있는 경찰이 두 명 보였다. 경찰이 이연우를 알아보고 말했다.
“그때 그 총 쏜 사람?”
예전에 원룸에서 나태의 악마를 상대하며 총을 쐈을 때,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 또 무슨 사고냐는 듯한 표정.
이연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를 가리켰다.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선 남자.
“이 사람 때문에 신고했습니다. 계속 쫓아다니면서 제가 가는 문 앞에 서 있길래요.”
“아아.”
한 경찰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고, 대화하던 경찰은 남자를 위아래로 살핀 다음 어깨를 잡고 당겼다.
남자가 힘없이 끌려간다. 경찰이 말했다.
“아프신 분 같은데. 일단 저희가 조치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열림 버튼에서 손을 떼기 무섭게 닫히는 문. 좁아지는 문 틈새로 남자의 뒤통수가 보이길 잠시.
완전히 닫힌 문에서 시선을 떼고, 위를 보았다. 엘리베이터는 1층까지 내려갔다.
“…내가 예민했나?”
이상異常을 너무 많이 봐서 과민 반응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머리를 긁적인 이연우는 총을 에코백에 넣고는 천천히 자기 원룸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이연우는 현관에 발을 들이다가 멈췄다. 텅 비어 있어야 할 원룸에 사람이 있다.
“아.”
현관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
꽉 닫힌 화장실 문 앞에, 남자가 서 있다. 그것도 엘리베이터에서 본 두 경찰과 함께, 나무 문에 머리를 기대고, 미동도 없는 자세로.
있을 수 없는 일.
이연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異常이네.”
이상개체면 망설일 것도 없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대응하면 된다.
이연우가 총을 꺼냈다.
탕탕탕탕-!
철컥철컥-
탄창이 텅 빌 때까지 이어진 사격.
구멍이 숭숭 뚫린 남자와 두 경찰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총이 안 통할 수도 있지.’
이연우는 탄창을 갈아낀 뒤, 핸드폰을 꺼냈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위험. 안전. 생존.’
경찰이 당한 것을 보면 문 앞에 선 남자가 문을 넘어가면 위험한 듯하다. 공간을 이동하는 특성도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원룸으로 왔지 않나.
대응은 어렵지 않았다.
“예, 반장님. 이상개체 맞습니다. 제가 특성 말할 테니까, 적당한 특전대나 부서에 연락해주십쇼.”
전화를 끝마친 이연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문 앞의 남자가 이동했다. 하나는 화장실 문 앞에, 하나는 닫힌 현관문 앞에,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