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안을 보면 느낌이 다를 겁니다.”
정말 좋은 매물을 소개하는 공인중개사처럼 마크 정이 뚜벅뚜벅 앞서 나간다. 자신감이 실린 발걸음과 거침없는 손짓.
이연우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딱 봐도 좁아 보이는데. 안이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가까이서 보면 더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집.
“직접 보시죠.”
마크 정이 차가운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당긴다. 두터운 문이 비명을 내지르며, 열렸다.
끼이이익-!
활짝 열린 문은 손바닥만큼 두꺼운 듯하다. 마크 정이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탕탕, 문을 두드리는 주먹.
“방폭문입니다. 벽 역시 같은 사양이죠. 두껍고, 튼튼한. 옆에 창문 보이시나요?”
“…보입니다.”
이연우의 얼굴에서 의심이 조금 물러났다. 그는 이제 귀를 기울여 마크 정의 설명에 집중했고, 눈을 반짝이며 집을 둘러봤다.
‘안은 생각보다 튼튼한데?’
일단, 엉망인 첫인상보다는 좋다.
마크 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연우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딱 맞는 건물을 골랐다.
겸사겸사 일반인과 격리도 하고, 회사의 시스템 안에 두기도 하고.
‘그래도 싫어할 리가 없지. 내부를 보면 더.’
마크 정은 집 안으로 들어가, 현관 바로 옆의 창문으로 걸어갔다. 창틀 위에 달린 버튼으로 올라간 손가락.
“창문 자체도 특수하지만, 유리에는 한계가 있죠. 유리가 버티지 못할 때를 대비한, 방폭 셔터입니다.”
꾹-!
차르륵-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셔터가 내려오며 창문이 물 샐 틈 없이 막혔다. 마크 정이 방폭 셔터를 두드리고, 상하좌우로 막 흔들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연우도 시험 삼아 몇 대 두드렸다. 손바닥에 와 닿는 그 차가운 금속의 감촉. 만족스러운 눈빛을 한 이연우에게, 마크 정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포장지일 뿐입니다. 진짜는 아래에 있죠.”
“아래요?”
지금 보인 성능만 해도 마음에 쏙 드는데, 아래에 뭐가 더 있다는 말일까.
마크 정이 집 중앙으로 걸어가고, 이연우는 병아리처럼 그를 졸졸 따라갔다.
걸음은 바닥에 둥글 게 뚫린 문 앞에서 멈췄다. 탱크 뚜껑 같은 해치와 지하로 이어진 수직통로와 통로에 지그재그로 박혀 있는 발판.
“지하 쉘터입니다. 내려가시죠.”
“오….”
이연우의 감탄이 수직통로에 메아리친다. 그는 냉큼 몸을 던져 지하로 내려갔다. 마크 정은 곧바로 따라 들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회사가 방주를 완성하기 전, 멸망 위기를 대비해 세계 곳곳에 쉘터를 잔뜩 지었습니다.”
“그럼 여기가…?”
기대가 잔뜩 담긴 목소리.
마크 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50 명의 인간이 생존하도록 준비된 쉘터입니다. 회사의 기술들이 적용되었죠. 이상개체를 이용한 생존 시스템 말입니다.”
“그거 정말.”
사다리를 타고 아래에 도착한 이연우가 잠깐 말을 멈췄다.
지하 쉘터의 복도.
관리를 안 한 지 오래되었는지 허름한 복도지만, 이제 외형은 중요치 않다. 안전하면 끝이지. 이연우가 크게 웃었다.
“마음에 드네요.”
“아직입니다. 시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는 설명이 이어졌다. 쉘터의 복도를 걸으며 이곳저곳에 달린 방을 하나씩 열어본다. 마크 정의 말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입이 바짝 말라 기침이 나올 때까지.
“전기실입니다. 태양열 발전기 하나만 믿기에는 불안하여, 다양한 발전기를 설치해두었죠. 그중 가장 믿을 만한 건 이 톱니바퀴 발전기입니다.”
무한 회전 톱니바퀴. 감속 없이 무한하게 회전하는 톱니바퀴를 이용한 발전기.
“공기 정화와 수질 정화는 기본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더해 자체적인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물론 비상용 이상개체도 있죠.”
쉘터 자체에 자그마한 생태계를 완성하였고, 기적의 사과나무 등을 이용해 비상시 식량문제를 해결했다.
“쉘터의 핵심. 오라클 시스템입니다.”
“그게 뭡니까?”
“예언자는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가 미래를 고정하는 것이라는 이론에 입각해 만든 안전 시스템이죠. 오라클 시스템은 쉘터의 주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할 겁니다.”
자연재해를 피하는 시스템. 지진이나 폭우나 산사태를 예방하는 체계를 구비했다.
방을 하나 볼 때마다, 이연우의 눈에 광채가 더해졌다. 흥분과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 이연우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거의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지경이 되었다.
“이건, 정말. 정말 마음에 드네요. 이걸 저한테 준다는 말입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대여입니다. 평소에 집으로 쓰다가, 멸망 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회사원도 입주할 겁니다.”
쉬지 않고 말한 마크 정은 목이 아픈지 눈살을 찌푸리며, 목을 매만졌다. 헛기침을 몇 번 뱉은 그가 마지막 방으로 안내한다.
“상황실입니다.”
이연우가 서둘러 들어간 그곳에는 여러 모니터와 복잡한 기계장치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쉘터의 모든 시스템을 총괄합니다. 또한 비상통신망은 물론, 회사의 정보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쪽 벽에 모여 있는 터치스크린 모니터와 조종 장치.
이연우가 대강 훑어보니, 예전에 시간이 정지했을 때, 시계초침제작소에서 확인한 비상통신망이 확실하다.
거기에 시말서와 보고서 따위를 쓰며 익숙해진 회사의 시스템.
마지막으로, 이연우의 시선은 구석에 놓인 TV로 옮겨졌다. 노이즈가 낀 TV.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
“이건…. 뭡니까? 오래된 TV 같은데.”
기억소거제를 마셨기 때문에 사라진 기억.
“가까운 미래의 이상사건을 방송하는 TV입니다. 정확히는 방송 자체가 이상개체고, TV는 매개체일 뿐이라, 회사도 여럿 확보-”
위잉위잉-
작은 경보음이 들린다. 한창 대화하던 두 사람이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모니터 중 하나가 붉게 물들었다.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 오라클 시스템 무력화 확인. 쉘터 관리자는 조속히 확인하십시오.
“아니, 이게 갑자기 왜.”
마크 정이 당황하며 모니터 앞으로 가, 모니터를 툭툭 두드렸다. 자세한 문제점이 출력된다. 우상향하는 그래프가 어느 순간 한계점을 뚫었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미래 변동성이 증폭? 왜?”
잠깐 생각하던 이연우가 탄식했다. 실망감이 담긴 목소리.
“아.”
“아니, 이연우 님. 이게 원래 이런 쉘터가 아닙니다. 문제가 생길 리가 없는데.”
마크 정이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지만,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제 주사위 때문 같습니다.”
확률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주사위. 미래를 안전한 방향으로 고정하는 오라클 시스템은 주사위의 존재를 버티지 못하고 고장 난 모양이다.
거의 수전증처럼 손을 떨며 모니터를 두드리던 마크 정이 딱 멈추더니, 짤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아. 확실히. 이건 못 쓰겠네요.”
머리를 긁적이고는, 오라클 시스템을 꺼버린다. 은은하게 귀청을 때리던 경보음이 사라지고, 쉘터 특유의 적막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연우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때, 마크 정은 품에서 두꺼운 책을 한 권 꺼냈다.
“쉘터 설명서랑 기본적인 정비지침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이런 쉘터를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연우가 책을 사라락 넘겨봤다. 책에 코를 박다시피 숙인 고개. 처음의 불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
“좋네요. 여기서 살겠습니다.”
이연우를 쉘터에 입주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한 마크 정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출입증과 열쇠는 저기 테이블 위에 있습니다.”
“예, 예.”
“추가적인 청소와 가구 배치를 위해 몇 번 더 올 겁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크 정.
그렇게 집이 지워진 이연우는 쉘터를 새로운 집으로 삼아 살게 되었다.
***
쉘터의 상황실.
이연우는 가장 큰 모니터 앞에 앉아, 요원이 보내준 영상기록을 보는 중이었다. 머리에서 사라진 기억들.
- 그거 헬멧 다 기록되죠? 이거 마신 뒤에 기록, 저한테 보여주세요.
배속 재생으로 압축된 목소리가 끝난다. 이후의 일들은 기억에 있어 볼 필요가 없다.
‘이래서 먹었구나. …이걸 본다고 딱히 오염이 돌아오지는 않고.’
이연우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다리를 쭉 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찌뿌둥하다. 어쩌면 피로가 안 풀렸을 수도 있고.
“잠이나 잘까. 어디서 자지.”
쉘터라고 침실도 많다. 이연우가 쉘터 사용 설명서를 펼치고는, 방을 고를 때였다.
치지직!
구형 TV에서 소음이 커지더니, 돌연 흐릿한 화면이 송출되기 시작한다.
오래된 TV 화면 속에는 데스크와, 데스크 뒤의 노이즈가 낀 아나운서가 있다.
- 오늘의 소식입니다.
“아, 또, 뭔.”
짜증부터 난다. 하루 동안 겪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연우가 얼굴을 구기며 모니터를 보자, 아나운서가 유창하게 말을 이어갔다.
- 오늘은 평행세계에서 귀중한 손님이 우리 차원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방문객은 멸망한 지구 최후의 생존자이자-
말이 끊긴다.
그리고,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연우와 똑같은 목소리가.
“그걸 다 말하면 안 되지.”
이연우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TV 안의 아나운서가 단말마를 뱉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방송이 꺼졌다. 다시 노이즈를 내뿜는 TV.
이연우는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이연우보다 오히려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한, 미래의 이연우가 있었다.
“이상기후는 잘 해결한 거 같고.”
“여,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
미래 이연우가 히죽 웃었다.
“너를 죽이고 네 자리를 차지하려고. 여기는 모두 멀쩡히 살아있잖아?”
그 말에 이연우의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차라리 지우개가 상대면 싸울 수라도 있지, 미래의 이연우는 방법이 없다. 꽉 쥔 주먹이 하얗게 질렸다.
'주사위를 이용해 자폭을 각오하면-'
미래 이연우는 웃으며 그런 이연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장난이야. 진짜 그럴 거면 진작에 했지. 애초에 그런 위험한 짓은 안 하고.”
“아. 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이연우를 뒤로 하고, 미래 이연우가 대충 아무 자리에 몸을 기댄다. 그는 이연우를 향해 손짓했다.
“내가 이상기후 해결법 알려줬잖아. 그 대가를 받으러 왔어.”
“…어떤 대가 말입니까?”
이연우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심장 떨어지는 장난이나 치고. 대가도 당연히 치러야겠지만, 본인이 직접 움직이면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을 텐데.
“제가 도울 일은 없지 않습니까. 능력이-”
“방주. 멸종방어장치인 방주 좀 찾아서 나한테 보여줘. 내가 다른 문제는 거의 다 해결했는데, 그걸 못 찾아. 뭔지도 모르겠고.”
미래 이연우가 허공을 본다. 무수한 확률을 헤아리는 감각도, 원하는 가능성을 끌어내리는 힘도, 회사 최후의 희망인 멸종방어장치만큼은 찾을 수 없다.
혼잣말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세상도 이제 재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