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멸종방어장치 : 방주.
단어만 몇 번 들었지, 위치는 물론이요, 실체조차 모르는 무언가. 회사에서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른다.
“방주….”
이연우는 중얼거리다가,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면서 미래 이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걸 제가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빨리 찾아달라고는 안 해. 그냥, 네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니까 부탁하는 거야.”
미래 이연우는 쉘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가벼운 몸짓과 목소리지만, 사람이 사람인지라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연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저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찾아나 보라고. 찾기만 하면, 보수도 챙겨줄 테니까.”
미래 이연우가 이연우와 주변에 놓인 TV며 에코백 따위를 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깊게 잠긴 눈동자.
이연우는 기대를 품었다.
“보수라면 어떤?”
“고민 중인데. 쉘터를 업그레이드 해줄까? 오라클 시스템 고장 났을 거 아냐.”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이런 귀중한 기회를 고작 쉘터에 쓸 수는 없다. 차라리 개인의 생존능력을 올려주는 쪽이 좋다. 이상장비나, 주사위를 활용하는 노하우 같은 것.
그 생각을 고스란히 말하자, 미래 이연우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주억인다.
“잘 아네. 위기상황에서 결국 믿을 건 자신 하나뿐이지. 자신의 능력이든, 지닌 이상異常이든. 쉘터는 활용하기 힘들지. 그러니까, 보수는 네가 골라.”
“그러면 보수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 방주 찾으면 날 대상으로 주사위를 굴리고. 그러면 감지하고 찾아올 거야.”
미래 이연우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분간은 나도 이 세계에 있을 거야. 오랜만에 햄버거나 먹어야겠어. 물론, 나는 나대로 방주를 찾아보고.”
당장 떠나려는 듯, 손을 펼친다. 확률을 헤아리는 손짓. 손가락 사이로 꿈틀거리는 확률을 붙잡아 끌어내리려는 순간.
이연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선금! 선금으로 하나만 주십시오!”
“…무슨 선금?”
미래 이연우가 확률을 붙잡은 채 묻는다. 얼굴에는 조금 황당한 감정이 어려 있었지만, 이연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피했다.
“확정뽑기권 하나만 만들어주십시오. 소환 거부로요. 괜히 남들한테 끌려갔다가 못 돌아오면 방주도 못 찾지 않습니까.”
“어휴.”
한숨을 쉬며 반대쪽 손을 쥔다. 동시에 이연우의 머릿속에 확정뽑기권이 생성되었다. 실패뽑기권만 뽑던 이연우가 행복한 웃음을 지을 때였다.
“….”
미래 이연우의 얼굴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 질척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순간 이연우의 감각이 예민하게 벼려지더니, 언뜻 미래 이연우의 육체가 무너지고, 기묘한 형상이 드러나는 듯했다.
피와 살이 아니라, 확률과 가능성의 실타래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닌 무언가.
미래 이연우에게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협박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너나 나나, 목숨이 위험해야 전력으로 움직이잖아.”
이연우를 확실하게 움직이는 법.
기묘한 형상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당장 튀어 나가려는 짐승처럼 몸을 웅크린 이연우는, 귀를 쫑긋 세웠다.
“네가 방주를 못 찾으면, 내 세계를 재건하지 못한다면, 그 희망이 사라진다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형상이 돌아온다. 원래의 육신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허공의 한 점을 보는 눈.
마지막으로 히죽 웃은 미래 이연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가능성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마냥, 쉘터에서 사라진 미래의 이연우.
적막한 쉘터.
혼자 남은 이연우는 한동안 돌처럼 굳어있다가, 느릿하게 손을 올려 입가를 매만졌다. 체온을 빼앗긴 듯, 차가운 손가락과 입술.
‘그건 일부러 보여준 건가? …협박 한번 살벌하네.’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한다. 온종일 고생하며 피로가 쌓인 몸은 활력을 내뿜으며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그는 침착하게 판단했다.
‘의뢰에 시간제한은 안 걸렸고. 난이도는 있지만, 해볼 만한 의뢰야.’
당장 불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눈을 깜빡이던 이연우가 침대가 놓여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먼지가 쌓여 있는 이불을 몇 번 털고는, 침대 위에 눕는다.
‘오늘은 이것저것 생각만 해보자.’
방주를 찾는 법. 그리고 미래 이연우의 형상과 그를 상대할 방법. 다방면으로 떠오르는 생각.
양 떼처럼 맴도는 생각들 속에서, 이연우는 까무룩 잠들었다.
***
쉘터 안에는 햇빛도, 달빛도 비치지 않기 때문에 밤낮을 알 수 없었다. 오직 시계 따위의 장치만이 시간을 알려줄 뿐.
“아침 먹어야지. …아침인가?”
이연우는 쉘터에 구비되어 있던 밥 통조림과 반찬 통조림을 가져와 뚜껑을 뜯었다.
조심스럽게 수저로 뒤적인다. 생긴 건 그럭저럭 멀쩡하지만, 이상한 화학제품 냄새가 은은하게 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한참 동안 통조림을 건드리던 이연우는, 한 입을 먹고는 그대로 내려놓았다.
시험 삼아 먹어봤지만, 맛이 영 좋지 않다. 비상용으로는 먹겠지만, 의뢰 때문에 입맛이 없는 지금 먹기에는….
“캔하고 음식물을 어디에 버리라고 했는데.”
쉘터 사용 설명서를 보며, 복잡한 쉘터 내부를 헤매다가. 간신히 쓰레기처리소를 찾았을 때였다.
갑자기 쉘터 스피커에서 방송이 울린다.
- 쉘터 관리자님. 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황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
이연우는 재활용 장치에 캔을 던져넣고는, 곧장 몸을 돌렸다. 의문이 서린 표정.
‘본사에서 왜?’
한달음에 달려가니, 큼직한 모니터에 마크 정이 있었다. 어두운 표정을 하고,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해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문득 화면을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마크 정이 손짓을 딱 멈췄다.
- 이연우 특수조사원님. 임무입니다.
“…무슨 임무입니까?”
이연우가 자세를 고쳐 앉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본사의 임무면, 멸망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을 터.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힌다.
마크 정은 뭘 툭툭 건드리더니, 화면에 어떤 동영상을 올렸다.
- 이연우 님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이상방송이 송출되었습니다.
재생되는 동영상.
- 오늘은 평행세계에서 귀중한 손님이 우리 차원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방문객은 멸망한 지구 최후의 생존자이자-
단말마를 내뱉으면서 쓰러지는 아나운서. 이연우도 보았던 방송.
‘설마, 이거.’
이연우가 무언가를 직감하는 순간, 마크 정의 설명이 이어졌다.
- 불청객이 우리 세상에 찾아왔습니다. 회사는, 우호집단은 이 불청객을 굉장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그냥 살만한 장소를 찾아온 생존자 아닐까요? 어쩌면 돌아갔을 수도 있고요.”
혓바닥으로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해도, 마크 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 낙관할 수 없습니다. 이상방송의 근원을 공격한 능력은 물론이고, 공격해서 막아야 했던 뒷말이 무엇일지 모릅니다.
회사가 예상하는 뒷말을 이연우는 가만히 들었다.
- 멸망주의자가 모조리 죽이고 다른 세계의 인간까지 죽이려고 찾아왔다면. 불청객이 세계를 멸망시킨 질병과 저주를 품고 찾아왔다면. 세계를 멸망시킨 이상개체가 보낸 인간이라면. 최악의 가능성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게….”
입술이 다물리고, 더는 말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러면 밝힐 수가 없잖아.’
회사의 경계심이 굉장히 강했다.
정체와 의도를 밝히더라도, 회사는 미래 이연우를 잡아 조사하려고 할 테고, 미래 이연우는 순순히 잡혀주지 않을 것이다.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이연우가 그렇게 차마 말을 뱉지 못하고 있어도, 마크 정은 계속해서 말했다.
- 이 불청객을 우려하는 회사와 다른 집단이 모든 수단을 써서 추적했지만, 전부 막혔습니다. 이것만 봐도 주의해야 합니다. 떳떳하면 이걸 막았겠습니까.
‘떳떳하지 않긴 한데.’
멸종방어장치인 방주를 노리고 있긴 하다. 이연우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회사에 말하면 안 돼. 사고가 크게 날 거야.’
회사와 미래 이연우가 한바탕 싸우기라도 하면, 그 여파가 끔찍할 것이다. 지금 회사의 경계심을 볼 때, 어지간한 수단은 쓰지 않을 테니까.
이연우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알았습니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불청객 때문에 어떤 위험한 재난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대화가 마무리된다.
이연우는 화면이 꺼지기 전에, 마크 정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 말씀하시죠.
통신을 끝내려던 자세로 멈춘 마크 정이 손을 내린다.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질문했다.
“그 불청객, 많이 위험하겠습니까?”
- 적어도 회사와 다른 집단들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회사와 여러 집단이 온갖 이상異常을 다 써서 추적했는데 막혔다는 점만 봐도 그렇죠.
정말로 걱정하는 듯, 어두운 낯빛.
이연우는 미래 이연우를 몰랐을 때를 가정하고, 자신다운 반응을 보였다.
“이상기후처럼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는 말이죠.”
- 어쩌면요.
“그러면 혹시, 방주에 제가 들어갈 자리를 남겨둘 수 있습니까? 혹시, 만약을 대비해서요.”
- …방주요? 멸종방어장치인 그 방주?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크 정이 애써 표정을 다스린 후, 손을 내저었다.
- 그건 제 권한 밖이라서. 일단 상부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이왕이면 한 번 방문할 수 있나, 그것도 물어봐 주세요. 전부터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 예. 답이 돌아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마크 정은 의심 없이 대화를 마쳤다. 통신 종료 버튼을 누르는 손.
삑-!
통신이 끊겼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모니터에 비치는 이연우의 모습. 이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