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07)화 (107/194)

도시

신당의 넓은 마당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상을 옮기고, 밥을 짓고, 고기를 굽고, 하여튼 잔치를 준비했다.

노인들은 뒷짐 지고 여기저기 가리키며 뭐라 훈수를 두었고, 젊은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움직였으며, 아이들은 와아아 뛰어다니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 왁자지껄하고 들뜬 분위기.

반대로, 클럽 회원과 이연우는 구석에 모여 가만히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음식에 독을 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식사가 이상개체의 트리거일지도 모르고요.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이승으로 못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거절하는 것이 문제를 만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이연우와 사내는 척척 말을 주고받았다. 이런 부분에서는 대화가 잘 통했다. 위험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일.

괜히 조사원이 아니구나, 새삼 이연우를 본 사내가 회원 하나를 불렀다.

“우리가 챙겨온 식량 있지. 20인분 정도만 넘기자고. 잔치에 음식 거드는 느낌으로. 초콜릿도.”

“알겠습니다.”

이연우 또한 사내의 판단에 감탄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만 먹으면 되겠군요.”

“우리가 아니라, 저희가 준비한 물자인데…. 아니, 됐습니다.”

그때였다.

건장한 농민 몇이 낫이며 쇠스랑 따위를 한 아름 껴안고 들어와, 마당 구석에 쏟았다. 질이 나쁜 농기구가 절그럭 소리를 내며, 잔뜩 쌓였다.

이연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잔치에 저런 걸 왜 가져올까요?”

“가져올 수도 있죠.”

잔치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사내는 냉정하게 분석했다.

“잔치를 이유 없이 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는 농사에 의존하는 작은 마을이고, 거기에 무당이 지배하는 마을이니, 농사와 종교가 섞인 뭔가가 있겠죠.”

독특한 문화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

그리고, 이상도시의 독특한 문화에는 이상개체의 영향이 있기 마련이다.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이연우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우개를 쥐었다. 자신감이 차오른다. 안전하게, 내 몸을 지킬 수 있다는 느낌.

“잔치에 그 신이란 것이 힘을 보인다고 했었죠. 신이면 보통 어떤 이상개체를 말합니까?”

“그냥 호칭일 뿐입니다. 신이라고 이름 붙이면 신이고, 작품이라 부르면 작품이고. 악마는 조금 다른데…. 어쨌든 마을을 조직하고 지배하는 꼴을 보니 교섭할 수 있어요.”

문득 사내가 탐욕스럽게 웃었다.

“이 마을을 제 거래처로 만들고, 무병장수를 판매하면. 흐흐. 돈이 좀 벌릴 겁니다.”

“거래처요?”

“평범한 사업이랑 다름없습니다. 이쪽에서 사서 저쪽에 팔고. 이쪽 서비스를 저쪽 사람한테 중계하고. 중간에서 돈 받고.”

잔치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남았다.

손목시계를 살핀 사내는 잡담을 나눌 겸, 클럽의 구조를 설명했다.

“돈이 뭐 땅에서 나오지는 않죠. 고위회원은 각자 사업을 운영합니다. 그리고 사업의 수익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쉽게 말하면.”

사내가 손가락을 구부려 동전 모양으로 만들었다. 손목에 걸친 시계가 반짝 빛났다.

“돈이죠.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최고다, 이 말입니다.”

“단순하네요.”

회원끼리 이권 다툼이 심할 거 같기도 하고. 이연우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루한 마음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당신은 무슨 사업 하냐, 경호 서비스와 이상도시 탐사를 주로 한다, 조사원 위험한데 클럽으로 넘어오는 건 어떠냐, 싫다, 그 계약서는 뭐냐, 별거 아니고 회사가 공권력 빌려 쓰면 쉽게 무효화된다….

하잘것없는 대화를 이어가기를 잠시.

잔치 준비가 끝났다.

상마다 잡곡밥과 반찬, 고기 따위가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은 낫과 쇠스랑, 짱돌 따위를 손에 쥔 채 무당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았고, 공기는 날카롭게 곤두서는 듯하다.

“분위기가 좀….”

이연우가 몸을 웅크렸다. 꽉 눌린 용수철처럼, 달려 나갈 준비를 마친 짐승처럼. 미어캣이 되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무당이 신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짤랑, 짤랑, 방울 소리가 울린다. 점점 커지고 가까워지는 소리는, 무당이 그들 한가운데 멈춰 서고서야 멎었다.

대신 이어지는 것은 무당의 날카로운 목소리.

“죽음을 바치는 날이야. 다들 준비되었겠지? 빠진 사람 없고?”

“예, 예. 그러믄요.”

낫이며 쇠스랑을 꽉 쥐는 손들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눈꺼풀은 질끈 감겼다.

무당이 훽 고개를 돌렸다. 손님들에게 고정된 시선. 사내는 태연하게 그 시선을 받았다. 배고프다는 듯 배를 문지르면서.

무당이 히죽 웃었다.

“손님들께서는 거기 가만히 있으시게. 그분의 권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느끼란 말이야.”

“기대되는군요.”

사내도 히죽 웃는다. 눈싸움하듯 시선을 마주하기를 잠시.

무당이 부채를 촤락 펼쳤다. 거무스름한 삼도천의 신이 모호하게 그려진 부채였다. 그 부채가 휙 위로 올라갔다.

“시작하게.”

빙그르르, 부채가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무당은 굿판을 벌이듯 펄쩍펄쩍 뛰고 빙글빙글 돌았다. 옷에 묶은 장식이 활짝 펼쳐졌고, 방울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렸다.

그리고, 피가 튀었다.

푹!

낫이 사람의 목을 그었다. 쇠스랑은 창이 되어 사람을 찔렀다. 내리 찍힌 짱돌이 머리를 찍었고, 돌팔매질에 머리가 깨졌다.

우당탕!

사람들이 윽,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기껏 차려놓은 밥상이 엎어지고, 멀쩡한 밥상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이연우의 동공이 확장됐다.

진짜다. 시늉이나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피비린내가 짙게 풍긴다.

“아니, 미친.”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마당의 울타리를 슬금슬금 따라 걸어, 활짝 열린 대문을 향해.

그 순간, 휘릭, 무당이 이연우를 가리켰다. 마을 사람들의 머리도 동시에 돌아가, 이연우를 보았다.

“감히 잔치 중에 자리를 벗어나려고?”

째지는 목소리. 방울 소리가 멈췄고, 죽고 죽이는 소리 또한 멈췄다.

무당이며 마을 사람이며 검은 연기가 낀 눈으로 이연우를 노려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조차 숨을 헐떡이며, 피를 토하며, 신음을 흘리며, 이연우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 살벌한 분위기. 붉게 물든 낫과 쇠스랑. 피를 뒤집어쓴 인간들. 살기가 충천한 공기.

당장 이연우를 잡아 산제물로 바칠 듯한 기세 앞에서, 이연우는 말했다.

“아뇨. 여기가 잘 보여서요. 잔치 계속하시죠. 와, 진짜 이런 건 몇 번 못 봤는데.”

무당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클럽 회원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당이 다시 펄쩍 뛰며 사람들이 죽고 죽이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다시 광기로 물들었다.

도망치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 죽고 죽인다.

원수처럼 싸우니, 살육은 금방 끝났다.

마을 사람 모두가 상처를 입고 바닥에 누웠다. 쌕쌕, 힘겨운 숨소리. 무당은 비린내 나는 공기를 듬뿍 마신 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삼도천의 신께서도 만족하실 거다.”

무당이 향에 불을 붙였다. 향에서는 검은 연기가 풀풀 솟아나, 신당 안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동시에, 사람들의 상처가 점차 사라졌다. 흘린 핏물은 남았지만, 깨진 머리와 베인 목과 찔린 몸통은 빠르게 회복된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마을 사람들은 언제 치명상을 입었냐는 듯, 아이구,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피가 뿌려진 밥상 앞에 털푸덕 주저앉는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노인 몇은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는지, 몸을 웅크리고 신음과 고통을 애써 참았다.

무당이 검게 물든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고개를 주억였다.

“고생했으니, 식사들 하시게. 죽음을 덜 바친 자들은 남아 있고. 그리고, 손님들께서는 어떻게 보았나? 우리 신께서-”

짝- 짝- 짝-

느릿한 박수 소리가 무당의 말을 끊는다. 클럽의 고위회원인 사내였다. 사내는 붉게 물든 얼굴로 기쁘게 웃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훌륭합니다. 영업이 아주 예술이십니다.”

상품 소개를 이보다 더 직관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걸 보고도 상품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무병장수만이 아니라 치명상조차 치료되는 이상개체! 이건 상품성이 확실하다!

물론 아직 완벽히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그거야 차근차근 알아내면 될 일이다.

“깊은 이야기를 해도 되겠군요. 그 쪽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무당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당이 예상한 반응이 아니다.

그러다가 문가에 선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 인간이 하나도 없네.’

이런 잔치를 주도한 무당도, 그걸 보고 돈이 된다며 좋아하는 클럽의 사내도,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여기서는 오직 자신만 멀쩡한-

이연우의 생각은 무당의 말소리에 멈췄다.

“그쪽 손님은 어떻게 보셨나?”

“아.”

이연우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무당의 음산한 눈빛에 이연우는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떠오르는 대로 말을 뱉었다.

“식상하네요. 딱히 특별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서로 죽인다? 저건 무당의 강요로 인한 행동이었다. 차라리 사람을 죽이는 병이 무섭다. 재생? 머리가 빠지는 비에서 보았던 좀비가 더 끈질겼고.

그렇기에, 이연우는 도리어 자그마한 긴장마저 풀었다. 이게 전부면 딱히 위험할 것도 없다.

이연우의 얼굴에 대놓고 드러난 지루함.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심지어 심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 때문에, 무당의 얼굴에 혼란이 들어찼다.

“이연우 씨! 그쪽도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쪽 몫은 그쪽이 챙겨야지.”

사내가 신당으로 성큼 발을 들인다. 무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 들어갔고, 이연우는 느긋하게 신발을 벗고 신당으로 들어갔다.

신당 안을 앞서 걷는 무당과 사내.

‘냄새.’

이연우는 코를 찡긋했다. 그 검은 연기가 뱀처럼 허공을 기어간 자리를 더듬는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연기의 자취는, 벽에 그려진 신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저 그림이 이상개체인가? 무당은 이상개체 하나를 다루는 거고? 지우개 두 번 휘두르면 끝이겠네.’

삼도천을 가로막은 검은 그림자. 어쩐지 조금 흐려진 느낌인데.

“빨리 오세요! 일분일초가 아깝지 않습니까! 하루 일찍 사업을 시작하면 하루만큼 돈을 더-”

“예, 갑니다.”

***

신당의 자그마한 방.

온돌이 뜨끈하게 데워진 바닥에 앉아, 무당과 사내와 이연우가 대화를 이어갔다.

사내는 몸을 들썩이며 적극적으로 말했다.

“이…. 종교? 마을? 신도? 어쨌든 사람 더 받을 생각 없습니까?”

“손님들이라면-”

“우리 말고, 바깥사람들 말입니다. 그쪽도 알겠지만, 우리는 닫힌 통로를 열고 왔습니다. 얼마든지 오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당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폭우에 둑이 무너진 것처럼 대화의 흐름이 폭발적이다. 차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우리가 사람들을 이쪽으로 데리고 오겠다, 이 말입니다.”

무당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부채를 촥 펼쳐 얼굴을 가렸다.

“우선 신께 여쭤봐야-”

“아하. 그러면 그 신 좀 불러보십시오. 직접 담판을 짓겠습니다.”

“그게 무슨-”

“당신이 삼도천의 신을 모시듯, 우리도 그쪽 사람이거든요. 주술, 축복, 도술, 법력, 어쨌든 그런 거.”

그러면서 사내는 특별한 지폐 한 장을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겉보기에는 1만 원짜리 지폐일 뿐인 섬유가 불타자, 사내는 손을 당기는 시늉을 했고.

벌컥-

창문, 문, 서랍이 모조리 동시에 열렸다. 사내의 몸값에 따라, 1만 원어치 노동이 순식간에 이뤄진 것이다.

바깥 공기와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무당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탁, 부채를 접었다. 부채는 곧바로 자그마한 상으로 떨어져, 경쾌한 타격음을 내었다.

“확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네. 우선 장례부터 치르고 이야기하지.”

“오래 걸립니까? 아니, 그 전에 그 삼도천의 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주시죠. 사람들한테 잘 말하려면-”

“불가! 얌전히 기다리게.”

사내는 실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연우 또한 그를 따라 그들이 머물던 집으로 향하는 길.

마을 사람은 모두 신당에 모였기에,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사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자, 본격적으로 움직여봅시다. 신당 안의 정보도 빼내고, 무당도 감시하고.”

“괜히 경계심만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당신네들 형광조끼 같은 게 있습니다. 그거 쓰면 문제없어요. 정체도 대강 짐작되고.”

어쨌든 골드버그 클럽이 주다. 일개 참여자일 뿐인 이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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