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내는 빠르게 행동했다. 무전기를 들고 홍살문을 지키고 있을 3조와 그 옆에 대기하고 2조로 통신을 건다.
“2조, 돌 들고 내려와. 감시 대상 확정했다.”
지금까지 먹고 자던 방이 임시 연구소로 변신했다. 접이식 책상을 꺼내 펴놓고, 그 위로 노트북이 올라오고, 바깥으로 자그마한 발전기가 자리 잡고, 전선 따위가 복잡하게 꼬였다.
이연우는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그 일 처리를 가만히 구경했다.
‘이게 제대로된 과정인가?’
퇴로 확보, 정찰조 파견, 탐문, 핵심 인물과 관계 수립, 은밀한 정보수집 팀 파견….
나름 회사와 비슷한 체계다.
조사원 파견, 조사원의 정보를 바탕으로 전문부대 출동, 뒤처리. 지금까지 한 행동들은 조사원으로서 하는 일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이연우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을 느꼈다.
‘이게 맞아? 조사 나가면 이상異常 만나고 몸 비틀어야 하는 거 아니야?’
뭐랄까, 낯선 외국에 떨어진 느낌? 안 먹던 음식을 먹은 느낌? 소수로 움직이다가 다수로 움직이니까 더 그런 느낌?
이연우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털썩, 벽에 등을 기댔다.
‘대충 구경만 하다 가자. 그 이상개체도 궁금하긴 하고.’
안전이 거의 보장된 상황. 평소라면 자그마한 것도 경계심을 품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겠지만, 지금은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2조가 내려왔다.
이상하게 보고도 무시되던 2조가 돌을 주머니에 넣기 무섭게 돌연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들에게 사내가 명령했다.
“2명은 신당에 가서 자료 전부 찍어와. 다른 조원은 돌아가면서 무당 감시하고. 그리고, 이연우 씨?”
사내가 검은 봉투를 이연우에게 건넸다. 이연우가 받아보니, 무전기와 돌맹이 하나였다. 인식을 왜곡하는 돌인 듯하다.
“이건 왜…?”
“공동묘지가 수상하거든요. 그쪽 한 번 보고 와주세요.”
자연사한 노인의 시체를 한곳에 모아두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죽음과 연관된 이상개체로 추측되니,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내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불침번에서도 빼 드렸고, 물자도 다 빌려드렸는데.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예, 뭐. 밥값은 해야죠.”
인터넷도 안 되고 심심하겠다, 시간이나 보낼 생각으로 받아들인 제안.
사내는 봉투를 툭툭 쳤다.
“이 돌을 쥐면 진짜 길가의 돌처럼 여겨지게 되거든요. 무덤의 사진, 동영상 찍어오시고, 이왕이면 시체 사진도 부탁드립니다.”
공구가 쌓여 있는 구석을 가리킨다. 이연우는 큼직한 삽을 대충 어깨에 걸쳤다.
그렇게 이연우는 묘지로 갔다.
***
묘지는 그들이 내려왔던 산에 있었는데, 홍살문으로 올라가는 길과 다른 길로 올라가야 했다.
이연우는 한가롭게 산길을 오르며, 천천히 감각을 깨웠다. 상쾌하고 맑은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혼자야. 위험할지도 몰라.’
아무리 지우개를 지녔어도 뒤통수를 맞으면 위험한 법. 홀로 남으니, 잠에 빠졌던 본능이 느릿하게 꿈틀거렸다.
미약한 활력이 피를 타고 전신을 휘돈다. 걸음마다 힘이 들어가고, 두뇌가 조금씩 깨어났다.
‘이 돌 덕분에 인식은 벗어났지. 뭐가 위험할까. 폭격이나 지진 같은 범위공격? 이곳에 버려지는 것도 안 좋지. 지렁이 교단의 교주처럼 인파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어.’
의심병에 가까운 생존본능이 사소한 요소를 모조리 꺼내와 위험 요소로 뒤바꾼다.
‘그 회복은 지우개의 삭제도 회복할 수 있을까? …클럽도 위험하지. 돈을 벌 수 있다면 나도 죽일 거야. 에코백도, 주사위도 돈 될 물건이지.’
의심하다 보니 도착한 묘지.
정확히는 산에 위치한 자연 동굴. 동굴 안에 시체를 안치한다고 했다.
이연우는 가만히 서서 동굴 입구를 보았다. 잔칫날인데도, 사람 둘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건장한 체격에 검과 활로 무장했다.
이연우는 돌멩이를 꽉 쥔 채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뒤에서 머리만 빼꼼.
정확히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남자는 나뭇가지 보듯 흘려넘기고는 입을 열었다.
“잔치 끝났겠지?”
“끝났겠지. 어휴. 참가 안 해서 다행이지. 진짜 못 할 짓이야.”
“뭐 어쩌겠냐. 무당님 말씀이고, 그분께서 원하는 것인데.”
이연우는 돌의 효과를 그제야 확실히 믿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구로 걷는다.
사람이 그들을 지나치는데, 경비를 서는 남자들은 잡담을 나누기 바빴다.
“노인네들 어쩌냐. 이제 여기로 들어갈 텐데.”
“그분 덕분에 건강하게 잘 살았으니, 수명을 누린 이후는 그분께 바쳐야지.”
이연우가 동굴로 들어갔다. 횃불이 하나도 없어 어두컴컴한 동굴로, 하얀 빛줄기가 뻗어졌다. 이연우가 킨 손전등이다.
‘냄새….’
동굴 안에는 무당이 태웠던 향의 냄새가 어렴풋이 났다. 그 냄새는 동굴 안쪽으로 걸을수록 강해졌고, 기온이 낮아서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냄새를 쫓아, 발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걷기를 잠시.
이연우는 마침내 큰 공동에 도착했고.
빼곡히 쌓인 시체들을, 아니, 죽지 못해 시체보다 못한 꼴이 되어버린 자들을 보았다.
“이건.”
쌕쌕, 힘겨운 숨소리의 파도에 묻히듯 나지막한 혼잣말이 가라앉는다. 겨우 숨만 내쉬는 숨소리는 공동 안쪽에서도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연우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가까운 시체 인간에게 다가갔다.
빼빼 말라 뼈마디가 보이는 몸. 하얀 머리카락이 잔뜩 빠져있는 머리. 사람보다는 미라에 가까운 얼굴. 검은 연기가 낀 눈동자가 손전등의 빛을 따라 겨우 움직였다.
푸르딩딩한 입술이 우물거리더니, 미약한 목소리가 들렸다.
“죽, 여줘…. 제발….”
이연우는 깨달았다.
죽음을 바쳤다. 죽음을 바친 자는 죽지 못한다. 죽음 자체를 삼도천의 신에게 바쳤기에, 자연사조차 잃어버린 자들. 영원토록 죽음을 바치는 지옥에 빠진 자들.
최후가 끔찍하다.
‘의례를 안 치른 건 잘한 일 같긴 한데.’
이연우는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조사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회사에서 구를 대로 구르며, 안 그래도 둔한 감성이 더 메말랐다. 이연우는 한 명의 조사원으로서 판단을 내렸다.
‘우선 촬영부터 하고. 한 분 정도는 모셔가야겠어.’
찰칵- 찰칵-
클럽에서 받은 카메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체구가 작은 노인 하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에코백을 활짝 펼쳐, 노인을 발끝부터 집어넣었다.
마르고 체격이 왜소한 노인이라 관절을 잘 접으니까 쉽게 들어간다. 죽지 못하는 몸이니 문제도 없고.
마지막으로 이연우는, 자신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했던 노인에게 향했다.
“죽여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원하십니까?”
노인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톱만큼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 뜻은 전해졌다.
이연우가 지우개를 꺼냈다.
‘이 죽음 거부에 지우개가 통하는지 확인해봐야겠어.’
지우개가 느릿하게 노인의 머리를 지웠다. 근처의 다른 것도 지워졌고, 목 위로 남은 것이 없다. 탁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이연우는 손목의 맥을 짚어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회복은 못 하네. …편히 가십시오.’
이연우는 남은 육체마저 모조리 지우는 때였다. 다른 시체들이 필사적으로 꿈틀거렸다. 힘 없는 목소리가 열망을 품고 쏟아진다.
“나도, 나도 죽여주시오….”
“제발….”
스산한 목소리. 뱀이나 기생충처럼 한곳에 모여 꿈틀거리는 시체 같은 인간들.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다시 오겠습니다.”
회사에 이걸 보고하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이상개체의 손아귀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죽지 못한 인간들이 축 늘어졌다. 다시 힘겨운 숨소리가 이어지지만, 그 눈동자에는 희망이 담겼다. 죽지 못해 사는 삶에 끝이 보인다.
그리고, 눈동자에 낀 검은 안개는 모든 것을 보았다. 노인이 완전히 삭제되는 장면을. 영구적인 죽음을 맞이한 광경을.
***
무당은 누가 감시하는 줄도 모르고, 신의 그림 앞에 가만히 앉아 명상에 들었다.
정확히는 삼도천의 신, 자그마한 공간에 봉인된 저승의 존재와 교류하는 중이다.
‘더 많은 죽음을 수확할 수 있는 것으로 사료되나이다. 어떻게 하면 되겠나이까?’
- …잠시만 기다리거라.
마침 이연우가 동굴에 진입한 시점이다. 돌로 여겨졌기에 이연우는 감지하지 못했지만, 지우개가 지운 제물은 보았다.
- 내쫓아! 공손하게! 저들에게 끔찍한 무언가가…. 아니. 잠깐. 아니다. 이곳으로 모시거라. 저들이 저런 것을 휘두를 수 있다면, 죽음을 더 수확할 필요도 없지.
공포가 8할, 희망이 2할 섞인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 어쩌면 이 봉인을 무시하고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알겠나이다.’
무당은 영문을 몰랐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것의 뜻에 따랐다.
자칭타칭 삼도천의 신은 희망에 차올랐다.
- 죽음 이후의 세계로 돌아가자, 제발. 이런 끔찍한 이승에는 다시는 발 안 붙일 테니까.
한편, 클럽의 회원들은 신당에서 몰래 촬영한 자료를 해석하기 바빴다. 클럽에서 만든 번역 프로그램이, 무당이 숨겨둔 고서적을 번역하고 있다.
“중요한 부분은 번역이 끝났습니다.”
“설명해봐.”
“예. 이 삼도천의 신이란 것은 조선시대에 나타난 것인데.”
회원이 모니터를 보며 술술 읽었다.
“저승에서 악귀가 나와 이 근처에서 난동을 부렸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스님이 봉인했다는군요.”
“어떻게?”
“죽지 않는 나무에 집어넣었답니다. 기록된 대화는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 저승으로 돌아갈 테니 풀어주시오.
- 어허. 그대는 깨달음이 부족한 몸. 그 안에서 삶의 고통부터 깨닫거라.
- 죽은 자가 삶의 고통을 모르겠소?
- 내가 보기에, 너는 충분히 고통받지 못해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니라.
사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면, 죽음을 바치라는 이유는 그 나무에서 빠져나오기 위함인가?”
“아마도요.”
죽지 않는 나무에 봉인된 악귀. 죽음을 수확하여 나무에서 탈출하려는 악귀.
이건….
“장기적인 수익을 못 내잖아. 죽음을 충분히 수집하면 탈출할 거 아냐.”
“아무래도 그렇죠.”
사내는 이마를 탁 짚었다. 잘못하면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상도시 탐사는 손해를 보기 일쑤였으나, 기껏 대박이 터지나 싶었는데.
“돈, 돈, 돈을 벌어야하는데. 어디보자.”
죽지 않는 나무를 강화하면 영원히 죽음을 수확하는 기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회사 지분을 조금 늘려주고, 대가로 봉인에 도움을 받아야겠어.”
그때, 짤랑짤랑, 방울 소리가 들리며 무당의 방문을 알렸다. 동굴에서 내려오는 이연우보다 빠른 걸음.
사내는 침투가 들켰나, 깜짝 놀라 서둘러 나갔다. 무당은 어쩐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자네들에게 도움을 받아야겠어.”
“어떤 도움말인지?”
사내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지만, 이어진 무당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영원한 죽음을 내리는 물건이 있잖은가. 신께서 무덤에서 있었던 일을 다 보았네. 그걸 몇 번만 더 써주시게.”
사내의 머릿속에서 황금빛 번개가 친다. 무덤에 간 이연우. 영구적인 죽음. 가벼운 옷차림에 그만한 효과를 지닐 물건. 지우개!
‘…그래. 지우개를 조사원이 들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 그 반장인 줄 알았는데, 이쪽이었나? 확실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야.’
사내가 웃었다.
“2조. 돌 들어라. 대어를 낚을 시간이다.”
이건 대박이다. 회사와의 갈등을 감수할 만한 대박! 거기에 무슨 주사위까지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지우개와 주사위는 얼마에 팔 수 있을까? 이건 도전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연우는 산을 내려오던 중 뭔가를 떠올리고는, 에코백에서 형광조끼까지 꺼내입고 돌을 쥐었다.
‘너무 방심했던 거 같아. 골드버그 클럽은 적대집단인데. 통로를 여는 방법이라도 몰래 알아놔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