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추방마법은 대마법답게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도로 공사나 도시 계획 같은 규모로.
회사와 마법학회는 사후세계와 가까운 여섯 지점에 도시 규모의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 재료가 들어간 도로용 페인트로 차선을 새로 칠하고, 마법진을 구성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를 내고.
- 연말이라고 세금 쓸데없는 데 쓰네.
일반인이 투덜거린 것을 제외하면, 세계의 도시 여섯 곳에 거대한 마법진이 순조롭게 그려졌다.
그리고 준비된 추방마법은 사후세계를 강하게 밀어냈고, 추락하던 사후세계는 반발력과 충돌하여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세계 곳곳으로 사후세계의 파편이 떨어져 내린다.
‘정신 차려!’
이연우는 계속해서 비틀리는 생각을, 노트북으로 돌아가려는 눈동자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180도 돌아간 생각을 180도 더 돌려,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녀는 멀쩡하겠지. 추락한다고 다칠 사람이 아니야.’
이연우는 어렴풋이 느꼈다.
모든 확률과 가능성이 그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을. 그녀를 해할 가능성은 스스로 움츠러들었으며, 그녀를 도울 가능성은 극대화되었다.
현실을 움직이는 자였다.
황금으로 현실을 움직이는 황금만능주의나, 뜻대로 가능성을 다루는 미래의 이연우와 비슷한 경지에 있는 자.
‘주사위의 간섭도 잘 안 통할 사람이야. 이런 사고로 다치지 않겠지. 그러니까, 나만 잘 살면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 내 생존이 1순위야.’
정신이 360도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연우가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사후세계….”
푸른 하늘, 반투명한 운석 같은 것이 기묘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마찰로 인한 불길도 없이, 소음도 없이.
사후세계의 파편이 추락하고 있다. 그것이 떨어지는 방향은….
이연우가 기겁했다.
“왜 여기로 떨어지는데!”
정확히 그가 입원한 병원을 향해 내리꽂히는 사후세계의 파편. 그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어렴풋한 점 같던 것이 사람 주먹처럼 커지고, 이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제대로 반응할 시간도 없다. 이연우는 창문 아래, 철근 콘크리트 벽 옆으로 몸을 웅크렸다. 핵폭발 대응 자세를 따라 하듯,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머리를 감싼다.
그리고, 사후세계의 파편이 떨어졌다.
쿠궁-
충격은 적었다. 섬광도, 파괴력도 없었다.
이연우가 슬그머니 눈을 뜨니, 완전히 변화한 병실이 보였다.
“이건, 뭔.”
깔끔했던 병실이,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폐병원으로 변했다.
벽지가 뜯어져 곰팡이 핀 콘크리트가 드러났고, 더러운 물웅덩이가 곳곳에 나타났고, 이불 따위는 누더기가 되었고, 모든 가구가 쓰레기가 되었다.
이연우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곧장 방송이 이어졌다.
치직-
- 이상異常 발현 확인. 환자와 의료진 여러분은 침착하게 대응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병원은….
낡은 스피커가 탁한 소리를 뱉는다. 소리가 뒤틀렸다.
- 환자의 죽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방송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지독한 목소리. 비명과 악다구니가 뒤섞인 목소리.
이연우가 곤두선 감각으로 귀를 기울이니, 무슨 이승에 복수를 하겠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병원이 난리가 났다. 온갖 병실에서 환자들의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 아잇, 시팔! 병원까지 와서 이딴 일에 휘말리고 지랄이야!
- 유령은 지옥으로.
- 이건 이차원 융합인데? 마법사 없나?
- 여기 있습니다. 어디 보자, 지금 있는 재료가….
귀를 기울인 이연우의 표정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상황은 파악했다.
‘사후세계의 파편이 병원하고 융합됐어. 그리고 이 병원에는….’
배테랑 회사원들이 잔뜩 입원해 있고. 듣자 하니 악마사냥꾼에 마법사에, 전문인력이 한둘이 아니다.
이연우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겠어. 우선 저 인간이나 깨우자.’
이연우의 시선이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마크 정에게 향했다. 그는 흐느끼며 노트북 화면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도, 나도 가야 해!”
“정신 차리십시요.”
“제 정신은 멀쩡합니다. 살면서 이렇게-”
마크 정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지만, 이연우는 그 말을 바로 끊었다.
“어떻게 가려고요?.”
“그건….”
마크 정이 눈을 빛낸다. 그는 곧바로 방법을 찾았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그녀는 예술가 협회장입니다. 평소에는 예술의 전당에 머물며, 예술의 전당을 이상개체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예술가 협회에 접촉해서-”
그녀의 정체를 알았다. 이연우는 순간 꺼림칙함을 느꼈다.
평소에는 엮이기도 싫던 예술가. 그런 예술가의 우두머리.
‘…뭔가 이상한데.’
- 끼에에엑!
마침 복도에서 유령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머리를 쑤시는 비명이 두통을 일으켰고, 이연우는 조금 더 그녀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감각이 곤두서고, 생각이 흐른다.
‘정신이 오염됐나? 하지만 그녀는….’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녀의 그림자. 그 아름다움.
뭔가 이상하지만 그녀는 이연우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았고, 주사위조차 저항하지 못했기에,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연우는 쿡쿡 쑤시는 머리를 매만졌고, 곧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사후세계의 파편과 융합된 병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연우가 마크 정을 똑바로 보았다.
“그보다는 일단 여기서 탈출할 생각부터 합시다. 여기서 죽으면 예술가 협회장 다시는 못 봅니다.”
마크 정도 정신을 차렸다. 아니,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했다.
“그건 맞습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병실을 벗어났다.
***
회사가 운영하는 병원.
파편은 잘못 떨어졌다. 전문인력들이 입원하는 병원에는 어지간한 위험은 물리칠 수 있는 자들이 수두룩했으니까.
- 끄에에엑!
깁스한 손을 팔걸이에 걸고, 다른 손으로는 은 단검을 쥔 악마사냥꾼이 귀신 하나를 찢어발겼다.
귀신은 원통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악마사냥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다가 짧게, 아멘, 기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인류를 위협하는 것을 사냥하는 것.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발소리.
악마사냥꾼이 고개를 돌려보니, 환자복을 입은 남자 하나와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조사원 이연우입니다. 이쪽은 본사 소속 마크 정이고요. 탈출하려고 하는데 함께 하시겠습니까?”
악마사냥꾼은 눈살을 찌푸렸다.
냄새가 난다. 사람을 유혹하는 냄새가.
스릉-
은 단검이 비스듬하게 세워졌다. 날카로운 날이 희미한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당신들, 이상異常에 당했어.”
“우리가요?”
“그래.”
악마사냥꾼은 가만히 있다가, 은 단검을 내렸다. 저런 일이야 흔한 일이다. 자아를 완전히 빼앗기거나 조종당하는 것 같지도 않고.
“탈출하는 대로 검사받아.”
이연우와 마크 정은 서로 마주 봤다가, 다시 악마사냥꾼을 보았다.
“탈출 안 하십니까?”
“이놈들 사냥할 거야. 가봐.”
단호하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긴다. 은 단검이 섬뜩한 빛을 흩뿌렸다.
이연우와 마크 정은 더 권하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걷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복도 중앙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의료진과 환자가 우글우글 모여 있었는데,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저기 두 명 더 온다.”
“빨리 오세요! 마법사가 안전구역 만들었습니다!”
그 말대로 복도 반대편에는 귀신이 모여서 증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법진에 접근할 수 없다.
마법사는 무슨 가루를 휙 뿌려 귀신을 내쫓았고, 가방을 뒤적였다.
“아, 재료가 부족한데. 회사와 연락 안 됐나요?”
“계속 통화 중이던데….”
그때였다.
그들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이연우도 곧바로 확인했다.
첫 번째 메시지는 모든 회사원에게 온 것이었다.
- 사후세계가 조각난 채로 추락하였습니다. 한시바삐 파편의 위치를 추적하고, 해당 파편에 존재하는 이상개체를 억제하기 위해 움직이십시오.
마비된 지휘부와 별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회사. 전투태세에 들어가고,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다.
두 번째 메시지는 특별관리대상에게 온 것이었다.
- 정예요원 여러분. 곧 임무를 하달하겠습니다. 준비를 갖추십시오.
세 번째 메시지는, 전쟁을 관전하여 협회장에게 당한 사람들에게 온 것이었다.
“이건….”
- 기억소거제를 마시세요.
짧은 문장은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이었는데, 정신을 강제하는 힘이 있었다.
마크 정이 곧장 품에서 기억소거제를 꺼내 입에 몇 방울 털어 넣었다. 이연우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저항했다.
‘지금 상황에 기억소거제는 아닌데.’
정신이 세 갈래로 찢어진다.
협회장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 기억소거제를 마시라는 마음.
이연우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머리가 아프다.
그때였다.
돌연 기계음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돌리니, 반은 인간이고 반은 기계인 존재들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들의 가슴에는 신스 다이나믹스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 파편에 머물던, 전쟁 중이던 이상개체다.
- 순수 유기체 발견. 개조하라.
붉은 안광이 번쩍인다. 기계 인간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연우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천천히 손을 내렸다.
‘…맞아. 사후세계에 있던 그 이상개체들이 여기에도 있겠지.’
핵폭발의 정령 같은 거라도 여기 있으면 진짜 위험하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가 차갑게 식고, 갈라지던 정신이 봉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