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이연우는 곧바로 질문했다.
“외계인. 안전합니까?”
흥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외계인이고, 외계 문명 최후의 생존자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어디까지나 핸드폰 화면을 통해 영상이나 이미지로 볼 때의 이야기지, 실제로 얼굴을 맞댄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심지어 최후의 생존자라고 했어.’
이연우의 손바닥에 끈적한 식은땀이 맺혔다. 경계심이 바짝 솟았다.
문명 하나, 별 하나가 멸망했는데도 생존한 존재가 만만할까? 이런 한산한 천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맞을까?
연구원은 둔해 보였는데, 그런데도 이연우의 긴장을 알아챘다. 연구원은 깊은 탄식을 뱉었다.
“괜찮습니다. 진짜로요. 다 죽어가는 사람한테 호흡기만 붙여둔 느낌이라. 오히려 불쌍한 존재예요. 정말로….”
이미 몇 번 교류를 마쳤는지, 외계인에게 깊이 공감하는 말. 목소리에 담긴 깊은 연민과 존중과 슬픔과 경탄.
이연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정신 조작인가?’
이연우는 슬그머니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문제가 느껴지는 순간 도망치기 위해, 시간을 사는 지폐를 쥔다.
연구원은 빙글 몸을 돌렸다.
“직접 보시면 알 겁니다.”
이연우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툭, 질문을 던졌다.
“꼭 봐야 합니까?”
“보기 싫으시면 상관은 없는데. 명왕성의 이상장막을 뚫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고요.”
연구원이 걸음을 멈췄다. 연구원의 앞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연구원은 어떻게 하겠냐는 듯, 머리만 돌려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외계인을 미래의 나와 같은 수준으로 가정하면 이미 늦었지. 그쪽 영역에 들어온 거니까.’
이연우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미래의 자신. 외계인은 이상기후로 멸망한 세상의 마지막 생존자인 그것과 비등하다고.
그렇다면 이제 와서 야단법석을 떨기도 힘들었다. 차라리 차가운 머리로 살길을 찾아야지.
이연우가 걸음을 디뎠다.
“한번 봅시다.”
그들은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깊은 아래로 한 칸씩 꾸준하게.
연구원은 경건한 자세로 옷매무새와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으며 말했다.
“사실 지금도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릅니다. 멀리서 온 운석이 그들의 기원인데, 기억을 읽어봐도 정작 그 운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거든요.”
“무슨 외계인입니까? 명왕성?”
“명왕성은 고향을 떠난 그들이 착륙한 장소일 뿐이죠. 태양계로 날아온 그들 대부분이 명왕성으로 떨어져서.”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연우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질문했다.
“외계인은 무슨 힘을 지녔습니까?”
“강인한 생명력이요.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 문명의 산물이죠. 그들은….”
연구원이 말을 끌었다. 이연우는 귀를 쫑긋 세웠다. 연구원이 복잡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이상異常으로 인한 오염을 가속하고, 오염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술을 가졌습니다. A에 오염 받아도 A부터 Z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는 기술을요.”
이연우가 순간 걸음을 헛디뎠다. 그 기술의 전능함을 깨달았다.
‘전염병 형태의 이상에 오염되어도, 전염병이 아니라 초인을 만드는 식으로 쓸 수 있다는 거잖아. 아니, 상상이 닿는 모든 이상개체로 변할 수 있다고.’
단어 그대로 전능이다.
집을 짓는 이상개체, 공간을 확장하는 이상개체, 시간을 조종하는 이상개체, 식량을 만드는 이상개체, 생물과 무생물,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
‘통제되는 오염은 오염이 아니잖아. 신의 권능이지.’
이연우의 경계심이 더 강해졌다. 에코백을 꽉 쥐고, 감각을 곤두세우고.
연구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은 그 기술로 찬란한 문명을 세웠고, 또 그 기술로 멸망했죠. 하지만 그들은…. 아, 다 왔네요.”
그들이 지하에 발을 디뎠다. 철문 하나가 덩그러니 기다리는 지하.
삑삑-
연구원은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사원증으로 인증하고, 자물쇠를 끼리릭 돌려, 문을 열었다.
두꺼운 철문이 둔중한 소음을 내며 밀려났다. 그 틈새에서 스며 나오는 냉기. 이연우가 오들오들 떨었다. 입에서 허연 입김이 쏟아졌다.
무슨 냉동창고 열린 것처럼 춥다.
“들어가겠습니다.”
연구원은 옷을 꽁꽁 싸매며 말했고, 이연우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철문을 보았다.
연구원이 활짝 열린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연우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안쪽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외계인 어디 있습니까?”
“여기 이분입니다.”
“이게요?”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유리 벽에 손을 올렸다.
“외계인 맞습니다. 냉동되고 정지되고 봉인된 상태지만요.”
이연우는 얼이 빠져 멍하니 유리 상자를 보았다.
유리 상자 안에는 운석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검고 탁한 질감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운석. 잔뜩 갈라지고 깨졌으며, 생명의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뇌파 측정기 같은 것이 주렁주렁 달려있지만, 이연우는 그것에게서 위험은 물론, 생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안전한 느낌인데? 조금 불안하지만, 평범한 이상개체를 앞에 둔 느낌이고. 애초에 이게 생명은 맞나?’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
그때 연구원은 유리 상자 바깥의 기계장치를 조작했다. 버튼을 누르고, 헬멧을 꺼낸다.
연구원이 이연우에게 헬멧을 내밀었다.
“기억을 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외계인의 기억을 보면, 이연우 씨가 뚫어야 할 이상장막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도 알게 되고요.”
이연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헬멧을 받았다. 그가 헬멧을 쓰기 무섭게 세상이 까맣게 물들고, 무언가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외계 문명을 살아가던 외계인의 기억.
***
찬란하고 위대한 문명이다.
이연우는 영화를 보듯, 입을 벌리고 재생되는 기억을 보았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미래 문명을 넘어서는 세상. 판타지와 SF의 종점에 다다른 듯한 세상은, 무한한 번영을 이루었다.
- ….
- ….
새하얀 광채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들은 연결된 정신으로 소통하였으나, 이연우는 그들의 정신파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초월한 존재임을 어렴풋이 눈치챌 뿐이었다. 불멸자. 수명이 존재하지 않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눈으로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개체.
이연우는 고개를 돌려 이들의 문명을 보았다.
‘이게 가능하다고?’
무한을 손에 넣으면 이러할까. 이상異常으로 이룰 수 있는 극한의 문명이 그곳에 있었다.
공간에 끝이 없었다. 그들이 공간을 확장했다. 공간을 이상개체로 오염시켜서.
부족한 자원은 없었다. 자원을 쏟아내는 이상개체를 만들었으니까.
공간도, 시간도, 자원도, 기술도, 생명도 한계가 없었다. 무언가 필요하면 그걸 만드는 이상개체를 만들면 되었다.
‘아.’
이연우는 광채로 이루어진 초월자들이 취미 삼아 이상개체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생명을 만들기도 했다. 공간을 꾸미기도 했고, 쾌락을 제공하는 이상개체를 만들어 쾌락에 절어있기도 했다.
영생에 지루함을 느낀 초월자는 지루함을 지워주는 이상개체를 만들어 삶의 활력을 영원토록 유지했다.
상상을 구현하는 기술이었다.
이상異常에 모든 걸 의존하는 이상문명이었다.
이연우는 문득 생각했다. 오한이 들었다.
‘이런 문명이 왜 망했지?’
그리고, 시점이 변했다. 시간이 흘렀다.
찬란하고 위대한 세상에 안개가 끼었다. 이상異常으로 이루어진 안개가.
그 안개는 이들의 세상 어디에서나 나타났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이상개체를 침식했다.
안개 속에서 이상개체들이 뒤틀리고, 흩어지고, 제멋대로 오염되어 변이했다.
전부가 이상개체로 만들어진 문명은 지독하게 위험한 무언가를 향해 폭주하기 시작했다. 통제되지 않는 오염이 강해질수록 문명을 삼킨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 …!
- ……!
초월자들이 바쁘게 공간을 이동했다. 비명을 지르듯 강대한 정신파를 터트리고, 안개를 막아낼 벽을 만들고, 공간을 격리하고.
하지만 잠깐일 뿐이었다.
안개는 벽과 공간을 천천히 침식했다. 방호를 위한 이상개체는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도구로 다루어지던 이상개체는 본래의 이상성을 되찾았다. 논리적으로 이해 불가능하고, 극도로 위험한 이상異常의 본질.
찬란했던 문명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미래가 닫혔다.
안개는 침식할 뿐만 아니었다. 공간과 시간에 드리워졌다.
초월자들은 한계를 맞이했다. 그들의 문명은 무너졌다. 미래를 내다볼 수도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공간을 마음대로 건너뛸 수도 없었다.
이연우는 잔뜩 확장된 동공으로 안개를 노려봤다.
‘이게 뭐지? 이상오염?’
단순한 안개가 아니다. 이상오염을 통제하는 문명에서 탄생한, 이상오염의 극한.
오염을 걷잡을 수 없이 폭주시키고, 이상개체를 폭발적으로 변이시키는 무언가.
이연우는 이상오염이 도래했을 지구를 간접적으로 보았다.
- ….
스스로를 초월자로 진화시킨 그들이 변이했다. 그들은 자의식을 잃고 괴물이 되었다. 자원을 생산하는 공장이 괴물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다. 확장된 공간은 이차원처럼 변이했다. 놀이터 같던 시간은 감옥이 되었다.
이상異常이 아닌 자연물도 변화했다.
그쯤에서 시점이 변했다.
초월자는 모든 걸 이상개체에 의존했지만 지능을 잃지는 않았고, 피할 수 없는 멸망이 찾아왔음을 알았다.
살아남은 초월자들이 모여서 대화한다.
- ….
- ….
문명의 끝을 앞에 둔 그들의 형상이 빛난다. 그들은 그들이 초래한 멸망을 보았고, 우주를 보았으며, 생명을 보았다.
이연우는 어쩐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월자들이 오염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퇴화시켰는지, 말뜻이 이해되었다.
- 이 안개는 모든 생명의 재앙이 될 것이다.
- 우리 손으로 마무리를 짓자.
- 별을 터트리자. 우주 앞에서 불멸은 존재하지 않으니.
안개를 지우기 위한 자폭.
그리고.
- 우리의 흔적을 우주에 남기자. 우리가 멸망하더라도, 우리로 인해 태어난 생명이 어두운 우주 속에서 빛나기를.
새하얀 광채로 이루어진 그들이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불멸하는 초월자가 단단한 운석으로 변화했다.
지능도 정신도 희미해졌으나, 안개에 짧은 시간 동안 저항할 수 있고, 진화의 가능성을 품은 미생물을 지녀 생명을 뿌릴 수 있는 단단한 돌로.
그들의 별이 터져도, 그 폭발력으로 우주를 가로질러 다른 별에 떨어지도록 튼튼하게.
———!
마침내, 별이 폭발했다.
폭주한 이상문명은 섬광 속에서 스러졌고, 안개는 증발했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을 품은 운석은 별의 폭발을 추진력 삼아 우주로 흩어졌고, 이연우는 운석이 우주를 가로질러 태양계로 날아오는 광경을 보았다.
‘명왕성.’
운석 무리가 명왕성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하나의 운석은 지구로 떨어졌고.
거기서 기억이 멈췄다.
“….”
이연우는 한동안 기억을 소화하다가, 헬멧을 벗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명왕성이 관측에서 벗어난 이유가 그 안개 때문입니까?”
“네. 그들이 떨어진 명왕성이 그 안개로 뒤덮였습니다. 그 안개가 관측을 막아서.”
연구원은 복잡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재앙을 태양계로 가져온 그들을 원망할지, 그들의 결의와 희망에 감탄할지 모르겠다는 듯.
이연우는 고개를 들어 무기질적인 천장을 올려봤다. 천장 너머의 하늘을, 하늘 너머의 우주를 바라보듯.
무한한 우주 속에도 이상異常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문명과 생명이 존재하며, 상상하기 힘든 이상개체 또한 있을 것이다.
당장 명왕성에 오염의 안개가 있으니까.
‘지구만큼 안전한 곳이 없어. 회사도 있고, 다른 집단도 있잖아. 이곳에서 잘 살아야 해.’
이연우의 눈이 번쩍였다. 갑자기 사명감 같은 것이 타오른다.
‘명왕성은 너무 가까워. 지구에 무슨 영향을 끼칠지 몰라.’
이연우가 말했다.
“그 관측,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는 정보를 얻으면 회사가 어떻게든 대처하리라 믿었고, 연구원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