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41)화 (141/194)

외계인

관측을 돕겠다는 이연우의 말. 연구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요청 승낙했으니까 당연히 도우려고 온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이연우가 입을 열었다. 연구원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전공과 관련 있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우주가 많이 위험합니까? 저…. 오염의 안개나 천문학적인 이상개체 같은 거 말입니다. 그리고 오염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우주가 오염된다거나.”

“그건.”

연구원은 뭐라 대답하려다가 손을 싹싹 비볐다. 지하격리실이 추웠다. 연구원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올라가서 이야기하죠. 이곳이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라서.”

이연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빗물의 활력 덕에 추위에 조금 저항했지만, 그래도 추운 건 추웠다.

그들은 지하격리실을 다시 단단하게 잠그고, 조촐한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은 물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

“따듯한 차 마시겠습니까? 뭐로 드릴까요?”

“아무거나 주십시오.”

“녹차 드리겠습니다.”

딱히 차를 마시고 싶지는 않지만, 손난로 느낌으로 받았다. 이연우는 따듯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는 연구원을 보았다. 아까의 질문에 답해달라는 듯이.

연구원이 맞은편에 앉아 티백을 휘휘 저었다.

“우주에 위험한 이상개체가 많냐고 질문하셨죠. 많을 겁니다. 우주가 저렇게 넓은데 없는 게 더 이상하죠.”

순간 이연우의 몸이 굳었다. 지구에 넘쳐나는 것들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우주까지 그 시야를 넓히면….

하지만 연구원은 태연하게 차를 몇 모금 마셨다. 걱정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실제로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까지 올 만한 이상개체는 한 줌에 불과합니다. 우주잖아요. 사람이든 이상異常이든 오염이든, 우주 앞에서는 먼지일 뿐입니다.”

“…확실합니까?”

이연우가 의심과 희망을 담아 물었다. 찻잔의 온기로 손을 녹이며, 연구원과 눈을 마주쳤다.

“진짜입니다. 우주가 얼마나 위험한데. 블랙홀, 초신성 폭발, 감마선 폭발, 은하 충돌….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가 팽창하잖아요.”

연구원은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았다가, 좌우로 손을 활짝 펼쳤다.

“거리가 일정 수준 이상 멀어지면 오염이 퍼지는 속도보다, 이상개체가 접근하는 속도보다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팽창하는 우주가 자연적인 보호막이 되어주는 거죠.”

우주 앞에서는 이상異常조차 티끌 하나에 불과하여, 지구까지 다가올 수 없다는 말.

이연우는 눈을 깜빡였다. 머릿속에서 물음표 수십 개가 떠다니는 듯했다.

‘그런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가 이렇게 말하니까,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믿을 뿐이었다.

연구원이 갑자기 실소를 터트렸다. 연구원은 핸드폰을 꺼내 두드리더니, 이상한 별 하나를 띄워서 이연우에게 보여줬다.

“회사도 우주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이상개체로 우주를 관측하고 있습니다. 이건 한때 지구멸망 시나리오의 주인공이었던 이상개체인데.”

이연우가 목을 앞으로 빼며 화면을 유심히 보았다.

그것은 괴상한 별이었다. 입과 이빨의 윤곽을 지닌, 기이한 별.

“뭡니까?”

“행성포식자라고 이름 붙인 별을 먹는 이상개체인데. 회사가 이놈을 관측하는 순간, 이놈도 지구를 인지하고 지구를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왔습니다.”

순간 이연우는 한기를 느꼈다. 사실 이상개체가 아니더라도, 이만한 질량이 지구로 떨어지는 순간 멸망이었다.

하지만 연구원은 피식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놈이 진짜 멀리 있었거든요. 우주 팽창으로 거리가 멀어질 만큼이요. 이놈이 지구를 향해 죽어라 날아와도 거리는 계속 멀어져서.”

연구원이 핸드폰을 툭 쳤다. 사진이 바뀌었다.

행성포식자가 바싹 말라 죽어 있는 사진이었다. 행성 규모의 입이 허무하게 벌어졌고, 침 같은 먼지를 뿌렸다.

“굶어 죽었습니다.”

“굶어서요?”

이연우는 멍하니 사진을 봤고, 연구원은 사진을 넘겼다.

다음 사진에는 행성포식자의 허무한 최후가 그려져 있었다. 지나가는 혜성에 얻어맞아 산산이 부서져, 우주의 먼지가 된 행성포식자. 그 먼지마저도 궤도를 그리며 다가온 별의 중력에 끌려갔다.

동물이 죽어 자연의 순환에 들어가듯, 우주를 거닐며 별을 먹던 이상개체는 별로 돌아갔다.

이연우는 새삼 압도되었고, 두려움을 느꼈다.

‘천문학적인 이상개체. 그 개체마저 일부에 불과한 우주.’

한없이 넓은 우주 앞에서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먼지가 자신인 듯했다. 진정으로 무한한 우주다. 자신은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게 의미가-

‘아니. 그건 아니지.’

이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우주가 어떻든 사는 게 중요하지.

“지구는 안전합니까?”

“안전한 편이죠. 근처 우주에 감당할 수 없는 이상개체도 없고. 위험한 게 있어도, 회사나 다른 집단이 손잡고 지구를 지키잖아요.”

다시 말해, 지구에 악영향을 끼칠 만한 우주적인 이상개체는 없다는 말이다.

이연우는 긴장을 조금 풀었다. 추위에 굳었던 몸이 이완되며 의자에 늘어졌다.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명왕성의 안개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관측 자체가 안 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래서 이번 관측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뭔지, 명왕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연구원이 걱정스럽게 말했고,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창밖을 보았다.

한적한 평야에 노을이 지고 있다. 별을 볼 시간이 조금씩 다가왔다.

***

명왕성을 관측하기 좋은 시간은 자정이라,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이연우는 천문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취미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새로 만든 취미. 회사 인트라넷 커뮤니티. 회사원들이 익명으로 잡담을 나누는 사이트에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

툭, 툭툭-

이연우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핸드폰으로 타자를 쉴 새 없이 눌렀고, 장문의 글이 완성되었다.

‘보안규정에 걸릴 만한 건 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정보부가 보고 있다는 경고도 있었고, 또 신원을 파악당하지 않도록 적당히 비틀어서 경험담을 썼다.

입사 첫날 테이저 건 맞은 썰, 골드버그 클럽 털어먹은 썰, 호기심에 나태의 악마 소환했다가 죽을 뻔한 썰, 정보부에 끌려가 심문 받은 썰, 지우개 든 멸망주의자가 대머리였던 썰.

반응은 한결같았다.

관심사원 아니냐, 뭘 하면 첫날부터 테이저 건을 맞냐, 나태의 악마를 집에서 왜 소환하냐, 심문 끌려갈 일을 저지른 거냐….

그렇게 글을 쓰고, 반응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되었다.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올라갑시다! 지금부터가 관측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눈을 반짝이는 연구원은 까만 옷을 입었는데, 낮의 부스스했던 느낌은 없고 열정을 지닌 연구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별처럼 눈을 반짝이는 연구원이 들떠서 안절부절못했기에, 이연우는 곧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바로 가면 됩니까?”

“예! 빨리 오십시오!”

연구원이 경쾌하게 앞서 나갔다. 휴게실을 나가, 계단을 타고 올라, 천문대의 끝에 다다랐다.

이연우는 호기심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그란 돔이 천장으로 있는 관측실은 등대의 꼭대기 같은 느낌이었다. 희미한 조명이 들어온 관측실의 중앙에는 복잡한 기계장치나 대포 같은 천체망원경이 있었다.

연구원은 바쁘게 돌아다니며 기계 장치를 조작했다. 그가 신나게 말했다.

“마침 잘 됐습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거든요. 구름도 안 끼었고, 별 보기 좋은 날입니다. 벌써 운이 좋은 게 관측에 성공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좋다고 연발하는 연구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연우는 문득 깨달았다.

‘…구름 꼈으면 날씨 좋아질 때까지 여기서 대기해야 했나?’

진짜 조사도 안 하고 대충 고른 느낌이다. 이연우는 앞으로는 기초 정보라도 조사한 뒤 의뢰를 받기로 마음먹었고.

관측 준비가 끝났다. 관측실에 생명이 돌아오는 듯했다.

우우웅-!

복잡한 기계 장치에 전원이 들어오고, 몇 대의 컴퓨터 모니터에 심장박동 같은 그래프와 사진이 그려지고, 돔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천장이 열렸다. 틈새로 겨울의 찬 바람이 불어왔으며, 새까만 하늘이 펼쳐졌다. 별이 쏟아질 듯 빛나는 밤하늘.

“자, 준비합시다.”

천체망원경이 홀로 움직였다. 열린 밤하늘을 향해, 명왕성이 있을 자리로 눈을 돌렸다.

연구원은 짝짝 박수를 쳐, 이연우를 불렀다. 그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보이시나요?”

“보이는데, 이게 뭔지는….”

하얀 점이 잔뜩 찍혀 있는 화면. 천체망원경이 찍는 명왕성인 듯했다.

“명왕성이랑 별들입니까?”

“아뇨. 노이즈입니다. 그 안개 때문에 정확한 관측이 안 됩니다. 확대해보겠습니다.”

연구원은 마우스 휠을 돌렸고, 천체망원경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노이즈가 더 심해졌죠? 이게 단순한 천체망원경이 아니라 고도의 과학기술과 이상장비가 탑재된 물건인데도, 안개의 노이즈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 앞에 몸을 숙이고 있던 연구원이 몸을 폈다. 몸을 돌린 연구원은 이연우를 희망으로 보았다.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해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정신 한편의 주사위를 부른다.

‘주사위. 안개의 노이즈를 뚫고 관측할 가능성.’

데구르르-

실패!

“아….”

치지직, 노이즈가 더 심해졌다. 엉망이 된 화면 때문에 연구원은 안타까워 발을 굴렀고, 이연우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실패에 리스크가 딱히 없네. 대실패가 나와도 감당 못 하지는 않겠어. 그럼 계속 굴려야지.’

위험을 못 느꼈기 때문인지 여러 감각은 잠잠했다. 이연우는 순수하게 주사위를 굴렸고, 결과가 계속해서 나왔다.

꽝, 실패, 꽝, 꽝, 그리고 성공.

“아아아!”

갑자기 괴성이 터졌다. 연구원이 펄쩍 뛰어오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됐습니다! 관측에 성공했습니다! 저 명왕성이, 오염의 안개가 보입니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격했다. 찢어지고, 갈라지고, 뒤집히고, 노이즈가 끼고.

뭔가 잘못됐다. 이연우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연구원의 목소리만 문제가 아니었다.

겨울의 건조한 공기로 가득 찬 관측실인데, 끈적하고 습한 수분이 느껴진다.

연구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안개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오염! ██! █████”

듣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목소리.

이연우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가 지닌 이상개체가, 이상개체에 오염된 부분이 펄펄 끓고 있다.

“아니!”

이연우가 다급하게 눈을 떴다. 그는 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관측실.

안개 속에서 연구원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더 이상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다. 눈동자가 길게 빠져나오고, 척추가 하늘을 향해 휘어, 하늘을 향해 머리와 눈을 곧추세웠다.

그들은 안개를 관측했다. 안개도 그들을 보았다. 안개가 이곳에 왔다.

‘왜 이렇게 된 건데!’

이연우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주사위를 불렀다. 그리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감각이….”

폭증한 오염도. 그는 어느 때보다 선명한 감각을, 손에 잡히는 가능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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