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42)화 (142/194)

외계인

천문대가 이상공간으로 변한다.

별빛이 쏟아지고, 달빛이 환하게 내리비치는, 안개로 가득한 관측실.

이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형이상학적인 감각이 촉수처럼 뻗어나가, 관측실을 선명하게 인지했다.

‘느껴져.’

천체망원경이 이상개체가 되었다. 별을 보는 망원경이 아니라, 보아서는 안 되는 우주의 공포를 보는 망원경으로 변했다.

연구원 또한 그랬다. 오염된 0.4퍼센트의 유전자가 폭주하고, 평범한 인간의 몸이 안개에 침습되어 이상개체로 뒤틀렸다.

“——-”

척추와 목이 곡선을 그리며 뒤로 꺾이고, 툭 튀어나온 눈은 망원경이 되어 하늘을 향해 뻗었다. 또한 입에서는 생물의 소리 대신 별의 소리 같은 것이 전자파처럼 흘러나왔다.

인간이 이상개체가 되었다.

‘이 감각은.’

반면 이미 이상개체에 오염된 이연우는 감각에 더 깊이 매몰되었다.

평온하게 박동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밀어닥치는 정보를 해석했다.

이상異常으로 인해 무질서하고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세계. 혼란에 가까울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미래.

주사위는 확률로서 가능성을 조작했고, 오염된 이연우는 확률적인 가능성을 느끼고 결과를 이끌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 확률이 높은 미래, 구현될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감지했다.

오염의 안개가 짙게 낀 미래들.

“…위험레벨 6?”

모든 미래가 이상오염을 향해 수렴했다. 무한한 가능성이 좁아졌다. 모든 것이 이상異常으로 변화하는 미래로.

관측실이 우주 공간과 연결되거나, 우주 괴물이 나타나거나, 조금씩 확장하는 공간으로 변하는 미래가 보인다.

마치 협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세계처럼, 오염을 향해 기울어진 현실과 미래.

하지만 그 후의 미래 역시, 하나의 결말을 향해 치달았다.

‘아니. 위험레벨 6은 아니야. 이건 절대적이지 않잖아.’

이연우가 슬쩍 눈을 떴다. 눈동자 안에서는 언뜻 주사위의 형상이 비치는 듯했는데, 곧 주사위의 형상이 무너지더니, 기생충 무리처럼 뭉쳐 있는 확률의 실타래가 되어 꿈틀거렸다.

이연우는 기이한 어조로 말했다.

“회사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구나.”

안개와 이상오염으로 가득한 미래는, 결국 회사의 손에 정화되는 것으로 결말지어졌다.

위성병기가 내리꽂히고, 폭격기가 지상에 불꽃을 피우고, 미사일이 날아오고, 심하면 핵폭탄이 떨어진다.

순수한 과학과 물리력의 폭력이 안개의 취약점이었을까.

안개가 지구에 번지는 미래가 없었다. 마치 인류의 생존이 운명인 것처럼.

그 순간 이연우는 무심코 생각했다.

‘재미없어.’

정해진 미래. 고정된 가능성. 정말 재미없다. 좀 더 혼란하고, 의외의 사건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어야 즐겁다.

이연우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확률의 실타래가 꿈틀거렸다. 닫힌 미래를 활짝 열 것이다.

‘오늘 멀쩡한 지구가 내일 멸망할 수도 있고, 앞으로 걸어도 무작위로 이동하고, 시간은 과거로 흐르기도 하고 반복하기도 하고, 그래야 재밌지 않겠어?’

그 순간이었다.

당장이라도 가능성을 풀어놓으려는 손이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재미? 재미?”

일정하게 쿵쿵거리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빗물의 활력이 끝도 없이 솟아오르며 전신을 휘돌았고, 생존본능이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비명을 내질렀으며, 인간성이 대항하듯 강화되었다.

상반되는 오염이 충돌했다. 그 기적적인 균형 속에서, 이연우가 정신을 차렸다.

‘오염!’

주사위의 오염이다. 자아까지 주사위에 가깝게 끌려갔다. 무작위와 가능성을 좋아하는 성질.

오한이 느껴졌다. 겨울의 추위가 새삼 뼈저리게 다가오고, 이연우는 그제야 문제를 깨달았다.

‘나는 이 힘을 감당할 수 없어.’

오염만이 문제가 아니다.

무한에 가깝게 쏟아지는 미래의 가능성. 이연우는 그저 정보의 파도에 휩쓸려 보이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제야 간신히 자신의 미래를 찾았다.

주사위에 완전히 침식되어 자의식을 잃고 혼란을 퍼트리는 이상개체가 된 자신. 오염에 저항하다가 회사의 폭격을 맞고 죽는 자신.

혹은 안개에 더 오염되어, 빗물과 주사위조차 변이된 미래.

멀쩡하게 살아가는 미래가 없다.

“안 돼!”

이연우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미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미래를 헤매던 정신이 현실로 번쩍 돌아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해, 생각해, 빨리 생각해.’

아니, 생각은 필요가 없었다. 힘이 강한데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지금 손에 쥐어진 힘은 안개와 비등하거나 더 강했고, 사실 그가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아니, 안개는 내가 없앨 필요 없어. 그건 회사가 해야지. 나는 오염만 되돌리면 돼.’

이연우가 두 손을 들었다. 이 순간 위험레벨 6으로서의 힘이 전력으로 펼쳐졌다.

한 손은 활짝 펼쳤다. 가능성이 풀려나며 안개가 좁힌 미래와 충돌했다. 안개가 꿈틀거리며 물러나는 듯했다. 관측실이 이상개체로 변하는 속도가 더뎌졌다.

이연우가 이상개체로 변하는 미래 또한 움츠러들었다.

그 상태에서 이연우는 다른 가능성 두 개를 쥐었다. 하나는 오염 폭주 억제. 다른 하나는 이동. 그가 관측실에서 사라졌다.

***

“일어나세요!”

이연우는 마크 정이 머무는 호텔 방으로 이동했다. 마크 정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 어. 무슨 일입니까?”

잠에 취한 상태인데도 마크 정은 명민하게 반응했다.

이연우는 짧게 설명했다. 명왕성의 안개를 관측했다가, 지구로 불러왔다고. 천문대가 오염되었다고.

마크 정은 잠이 싹 달아난 표정으로 입을 멍하니 벌렸다.

“명왕성의 안개…. 위험레벨 5인 그거 말입니까? 그거 관측 못 하게 필터 걸어놨을 텐데요? 아, 주사위. 아니, 그래도.”

혼자 중얼거리던 마크 정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두드려 정보를 찾아보더니,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 부서는 그 외계인이랑 외계물질 봉인하는 부서인데. 보안등급이 어긋났네요. 관측하면 안 된다고 안내가 안 됐습니다.”

그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의뢰 검열은, 아.”

이연우의 성격을 분석하기 위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도 이연우가 잘 대처하리라고 여겼고.

회사는 몸집이 큰 만큼 자잘한 실수가 많은데, 이런저런 요인이 겹쳐서 생긴 사고다.

그 태연한 목소리에 이연우가 손을 흔들었다.

“어쨌든 빨리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연우가 힐긋 보니, 명왕성의 안개에 무기 사용 요청을 쓰고 있다.

“순수한 물리력에 약해서. 그냥 미사일 몇 개 쏘면 끝날 겁니다. 위성병기 떨어뜨리거나. 됐습니다. 위성병기 떨어뜨린다네요.”

본사의 이사한테 곧바로 올린 요청이 승낙되었다. 마크 정이 충혈된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따로 관측하지 않고, 천문대의 좌표로 쏠 것이다.

그가 창문 밖을 보았고, 이연우도 도시의 밝은 밤하늘을 보았다.

희미한 별빛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직선을 그리며, 안개가 있는 천문대를 향해.

이연우가 문득 손을 저었다. 천문대에 있는 직원들. 안개에 닿지 않은 자들을 멀리 이동시켰다.

하나의 이상개체로 변해 되돌릴 수 없는 자들은.

‘격리실로 이동시키자. 실험에 시달리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가 보았던 격리실들로 나눠서 옮겼다. 나무 인간이 사는 격리실이나, 문법 나치 로봇이 있던 격리실이나,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던 격리실로.

안개는 관측으로 이동했으니까, 문제가 없다.

한동안 밤하늘을 보던 마크 정은 깨달았다는 듯,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 님도 안개에 오염되지 않습니까?”

“일단 억누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러면 협회장급이시죠? 그래도 그거 빨리 되돌려야 합니다. 가만히 두면 완전히 이상개체로 변하고, 또 주사위도 변이할 겁니다.”

이연우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건 맞았다. 하지만 시간은 남았고, 이연우는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 기회에 허세 부려놓자.’

예술가 협회장이나 황금만능주의. 그들한테 지금의 힘을 보여주면 확실히 앞으로 헛짓은 안 할 테니까.

이연우가 눈을 감고 확률을 헤아렸다. 협회장과 황금만능주의를 찾아서.

그리고, 퍼뜩 눈을 떴다.

황금빛으로 빛나며 접근을 거절하는 황금만능주의. 평소에 황금을 바쳐 준비한 방어태세.

‘이걸 굳이 뚫으면 황금 손해 입히는 건데. 포기하자.’

시선을 돌린다.

봉인된 파편 속에서 문득 눈을 뜨더니, 탐내는 눈으로 이연우를 보는 협회장. 시선이 마주쳤다. 매혹될 가능성을 쳐낸 이연우의 귀에 목소리가 들렸다.

- 걸작. 나와 함께 예술의 전당으로-

그녀가 말했다. 세계가 움직인다. 이연우를 그곳으로 부르기 위해.

이연우는 기겁하며 가능성을 구현해 막아냈고,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지구 곳곳에 드물게 도사린 이상개체 몇 개. 회사 소유도 있고, 봉인된 것도 있고, 집단이 숨긴 것도 있고.

그 순간 이연우는 생각했다. 천문대의 연구원이 한 말이 떠올랐다.

‘우주가 자연적인 방어막이라고?’

저 안개조차 막아낼 수 있는, 신화에 가까운 그것들. 이상문명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것들이 널려 있는 지구.

‘지구로부터 다른 별을 지켜주는 건 아닐까? 지구가 제일 위험한데?’

이연우는 갑자기 손에 쥔 힘을 놓기 싫어졌지만, 자아를 잃어버리기는 싫어 오염도를 되돌렸다.

주사위를 비롯한 전부가 돌아갔다. 안개와 접촉하기 전보다 조금 더 오염된 상태로. 아직은 준비가 안 됐으니까.

힘이 사라져 무기력에 빠지기도 잠시. 이연우가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오염되어도 자아를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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