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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보호회사 (143)화 (143/194)

외계인

다음날은 평일이었다. 집이 없는 이연우는 조사반 건물에서 머물렀기에 아침 일찍부터 자기 자리로 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 보안 등급이 높아졌다고 했나?’

아침의 햇빛이 비치는 사무실에 이연우가 컴퓨터를 딸깍이는 소리만 들린다.

회사 시스템에 들어가니, 명왕성의 오염 관련한 모든 조치와 대응이 한눈에 보였다. 가장 최신 문서부터 최초의 발견까지.

‘천문대 직원들은 잘 살 것 같고.’

멀쩡한 직원은 다른 부서로 발령될 예정이고, 이상개체가 된 자들은 적당한 부서에 격리된 모양이다.

별 보기를 좋아하는, 망원경 같은 개체가 된 직원은 우주 관측하는 곳으로 간다거나.

‘위성무기는 운석 낙하로 처리됐고. 거짓 정보 유포되고, 그냥저냥 보고 넘어가는 뉴스가 됐고.’

안개가 지구에 출현한 것 치고는 결말이 좋게 나왔다.

이연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마우스를 딸깍였다. 조금 더 과거의 문서로 돌아가 명왕성의 안개의 연구기록을 본다. 의문이 있었다.

‘관측하면 나타나는 안개가 왜 명왕성에 나타났지?’

기나긴 탐사기록과 실험기록과 대응조치.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키워드만 훑어보던 이연우는, 마침내 원하던 정보를 찾았다.

“회사 때문이잖아….”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명왕성과 지구에 떨어진 외계운석.

회사는 외계 이상개체 대응 절차를 따라 지구의 운석은 봉인하고, 명왕성으로 탐사선을 보냈다.

명왕성에서 운석의 기원을 찾다가, 별의 폭발에서 살아남은 안개 조금을 관측했고, 안개가 명왕성에 소환되었다고.

탐사 부대는 빠르게 특성을 보고했고, 회사는 노이즈를 걸어 명왕성을 관측하지 못하게 막았다. 오염이 퍼지지 못하게 가끔 폭발물을 보내고.

이연우는 문득 혀를 찼다.

“사고뭉치가 따로 없네.”

조사했다가 명왕성 날려 먹고. 천문대 연구원은 안내사항 전달받지 못하고, 자기 업무와 관계없이 탐구심과 호기심으로 명왕성을 관측하려 하고.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그만큼 사고도 많이 치는 느낌이다.

어찌 되었든 잠깐 흥미 삼아 본 기록이다. 이연우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보았다.

‘오염. 자의식. 어떻게 해야 할까.’

비록 천문대가 날아갔지만, 얻은 건 많다. 오염되어 생존하기 충분한 감각과 힘을 휘둘러도 보고, 미래에 도달할 경지를 체험했으니까.

무엇보다 주사위의 부작용. 잃어버린 자아와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파도.

‘솔직히 이상개체가 되는 건 상관없어. 그런데 내가 나로 있어야지. 힘에 휘둘리는 것도 약점이 될 거고.’

딱딱딱, 손톱 끝으로 책상을 두드린다. 이연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여러 방법이 스쳐 갔다.

‘자의식을 유지할 가능성을 계속 쥐고 있나? 아냐, 무리야.’

잠깐은 괜찮지만, 길게 보면 결국 자아를 잃어버린다. 바닷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것과 같다.

이연우가 고개를 내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주사위의 오염이 폭주하는 그 당시, 대항하듯 일어났던 오염.

그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간자격증?”

위 개체는 인간입니다. 그렇게 쓰여 있던 그것도 이상개체라면, 그래서 인간으로 고정하는 오염이 일어난다면.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인데….”

그때 똑같이 오염이 폭주했다. 그리고 그 당시 보았던 미래에서는, 결국 주사위의 오염이 우세했다.

“아, 머리.”

이연우는 머리가 아파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벌써 피곤해진 이연우의 머리는 집중을 잃어버렸고, 잡다한 생각이나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 우연히 떠오르는 아이디어. 거품처럼 올라왔다 꺼지는 발상 중 빛나는 것이 있다.

‘생존본능 같은 것도 이상異常인가?’

이연우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 내리친다.

“아. 오.”

입에서 이상한 깨달음이 섞인 감탄이 나왔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듯하다. 그간 나타났던 능력은 단순히 위기 상황 앞에서 괴력이 발휘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바퀴벌레가 위기감을 느끼면 아이큐가 340까지 오른다는 괴담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하면 죽는 집에서는 집의 공격까지 감지하고 지우개로 받아치지 않았나.

‘이게 맞으면 오히려 좋아.’

주사위보다 안전하고 적합하다. 취향이나 성격에도 맞고, 감당 못할 힘도 아닐 것이다.

이연우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굴까지 붉게 물들인 그는 텅 빈 사무실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이 순간, 이연우가 회사원으로서 쌓아온 경험과 그가 보아 왔던 기밀정보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닫혀 있던 인식의 한계를 열었다.

새로운 길.

“꼭 주사위일 필요는 없잖아. 전능하거나 강력할 필요도 없어. 살아남으면 충분해.”

중얼중얼 혼잣말을 쏟아내던 이연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생존본능이 이상異常이면. 생존본능으로 위험레벨 6에 오르면.”

주사위, 황금만능주의, 협회장 같은 것이 보여준 그 힘. 세계를 뜻대로 움직이고, 미래를 고정하는 그 힘을 생존본능으로 얻는다면.

어수선하게 움직이던 이연우가 제자리에 멈춰 서고는, 꿈꾸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거지. 죽지 않는 존재. 위험한 현실은 멀어지고, 무조건 살아남는 미래로 향하는 존재.”

주사위? 필요 없다. 자아가 오염되기나 하고, 실패나 대실패로 위험이나 안겨주는 애물단지 아닌가.

‘오히려 생존본능으로 6레벨에 오르면 내가 위험할 가능성은 멀어질 테니까, 내게 유리한 결과만 나올 거야. 도구로 쓰면 충분해.’

이연우는 미래의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오히려 더 적합한 길.

그 순간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고 반장이 출근했다. 반장은 성큼성큼 걸어오다가, 이연우를 보고는 멈춰 섰다.

혼자 흥분해서 제자리에서 펄쩍 뛰고, 서성이고, 히죽 웃고 있는 이연우.

반장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음. 그래. 혼자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그, 좋은 일이 있어서. …강의는 어떠셨습니까?”

이연우는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말을 돌렸고, 반장은 두툼한 패딩을 벗었다.

“별거 있나. 그냥 이야기만 2시간 풀다 왔는데.”

이어 유지유도 출근하며 이상조사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

이연우는 멍하니 컴퓨터 바탕화면을 보았다.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다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생존본능으로 어떻게 위험레벨 6에 오르지? 될 수는 있나? 주사위의 힘을 빌려야 하나?’

이럴 때는 역시 주사위만큼 믿음직한 친구가 없다. 기적을 일으키는 최후의 한 수, 목숨을 지켜 주는 든든한 비장의 무기.

주사위로 생존본능이 위험레벨 6일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6은 불가능한 느낌이긴 한데. 되면 좋겠다. …주사위, 빗물, 자격증, 본능 전부 6레벨까지 올리면 무적 아닐까. 아, 그게 되면 예술가 협회나 클럽부터 양산했겠네.’

그렇게 넋을 잃고 있으니, 유지유가 갑자기 어, 의문 섞인 소리를 내었다.

“이거 연우 씨 이야기 아니에요?”

“예?”

이연우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유지유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회사 인트라넷에 연우 씨 이야기 있는데. 아니, 어제 의뢰 가서 뭘 한 거예요?”

“부서 하나 날아가긴 했는데….”

이연우는 볼을 긁적이며, 인트라넷에 들어갔다. 유지유가 말한 글이 바로 보였다.

너희는 도박근절센터에 의뢰하지 마라, 밤하늘 좋아하는 직원이 그 센터와 합동으로 실험했는데, 그날 부서 사라졌다….

부서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폐허만 남아, 기삿거리 찾는 기자들이 승냥이처럼 돌아다니고, 멀쩡한 직원들은 다 발령대기 중이라고.

이연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제가 트리거는 맞았는데. 그래도 회사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그 말. 부정하지 않고 변명하는 말을 보니, 과장 섞인 글이 아닌 모양이다. 유지유가 슬그머니 의자를 밀어, 이연우로부터 멀어졌다.

“…진짜로 폐허만 남았어요?”

“그, 위험물질이 유출돼서 폭격 같은 걸 해서.”

유지유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반장을 보았다.

반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안한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우리 사무실도 터지는 거 아닌가?’

이연우가 날려 먹은 게 한둘인가? 심문받으러 갔더니 클럽의 스파이한테 털렸고, 정보부 갔더니 지우개 든 멸망주의자가 쳐들어오고, 잘 살던 원룸 건물하고 쉘터도 날아가고.

이쯤이면 사무실이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하다.

반장이 급하게 말했다.

“보안 직원. 우리 건물에 이상장비도 있는데, 보안 직원 요청할까?”

조사원은 출장이 주 업무고 건물에 중요정보나 이상개체도 없어, 보안요원을 따로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장비가 보급되어 요청할 조건은 충족했다.

유지유가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을 거 같아요. …연우 씨, 빨리 다음 의뢰 골라요! 센터 연 첫 달인데 열심히 일해야죠!”

그 의도가 투명했다. 어차피 터지는 폭탄이면 바깥에 둔다. 위험은 남한테 넘긴다.

참 조사원다운 사고방식에 이연우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래봤자 집 구할 때까지는 여기서 먹고 자는데.’

이연우는 유지유의 말을 듣는 것처럼 도박근절센터의 의뢰 목록을 보았다.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하루 사이에 의뢰 목록이 줄어들었다. 천문대 사고를 들었는지, 여러 부서가 의뢰를 취소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새로 들어온 의뢰가 있다. 여전히 주사위 도박을 원하는 사람. 혹은 메시지처럼 보내진 것.

- 당신 마음속에는 멸망주의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요. 당신은 어지간한 멸망주의자보다 더 많은 피해를 일으켰어요. 이제 마음은 그만 속이고, 회사의 속박을 벗어나, 진짜 멸망주의자가 되십시오.

멸망주의자의 스카우트.

‘무슨 미친 소리야!’

이연우는 기겁하며 곧장 거절을 눌렀고, 그에게 필요한 보상을 찾아 목록을 뒤적였다.

‘오염에 저항해 자아를 지키는 방법은 못 구하겠지. 구해두면 좋은데. 주사위가 확실하니까.’

그러다 문득 흥미를 끄는 의뢰를 보았다. 새로 들어온 의뢰였는데, 축복 받은 아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주사위 실험 요청]

- 주사위의 위험성을 통제할 수 있다면 혁신 아닐까요? 안전하게 온갖 실험에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행운의 축복을 받은 아이가 곁에 있으면 불운한 결과는 안 나오지 않을까요?

그 후로도 글이 길게 이어졌다.

우리 연구원들에게 주사위는 실험에 사용할 도구이니 그것부터 잘 써먹을 방법을 찾기로 했다 등등.

하지만 이연우는 순수하게 축복 받은 아이에게 흥미를 가졌다. 주사위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저런 개체가 옆에 있으면 사건사고가 안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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