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58)화 (158/194)

외전 : 멸망주의자 이연우

1.

거대한 세상이다. 거인이 사는 거대한 집이고, 창문이다.

와장창 깨진 유리창 앞에서 멸망주의자 이연우는 멍하니 서 있다가, 상황을 파악했다.

‘꿈.’

꿈일 수밖에 없다. 거인의 세상에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다. 단델리온을 도와 창문을 깬 그때다.

창문 너머에서 찬 바람이 불어왔다. 떨어지는 달빛은 은은하게 빛났고, 깨진 창틀의 유리 가루가 별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창틀 아래에서 별보다 빛나는 것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금발. 인종을 알아볼 수 없는 혼혈의 외모. 거인의 집에서 애완인간으로 살던 단델리온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야. 너 진짜 탈출 안 해?”

이때 자신이 뭐라고 답했더라.

망설였을 것이다. 거인의 집에 남아 귀환 주사위를 돌릴지, 아니면 그녀를 따라 나가 인간의 도시를 찾을지.

그 망설임 끝에….

꿈속의 이연우가 말했다.

“아냐. 나도 탈출하자. 인간의 도시를 찾아봐야겠어. 그게 확실할 거 같아.”

단델리온이 활짝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이연우는 그 손을 잡았다.

“넌 약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내가 길에서 오래 살았거든. 너 정도는 충분히 책임질 수 있어.”

“아니, 일단 손부터 놔봐. 줄 정도는 나도 타고 내려갈 수 있어.”

“그 체력으로?”

“뭐라는 거야.”

그렇게 투닥대는 두 사람을, 꿈을 보는 이연우는 가만히 관조하였다.

그리고, 꿈이 흘렀다. 그의 기억을 재생하듯 빠르게, 주마등처럼.

2.

많은 일을 겪었다.

야생으로, 거인의 길거리로 나가 수많은 위험을 겪었다. 자그마한 벌레나 고양이 따위조차 괴수와 같이 거대하였고, 거인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거대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지나치게 작아, 모든 것이 위험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 위험을 헤쳐 나갔다. 때로는 이연우가 단델리온을 구했고, 때로는 단델리온이 이연우를 구했다.

서로를 구한 그 횟수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생명이 섞인 듯했다. 한 명이 아프면 다른 사람도 아팠다.

흘러가던 꿈이 문득 멈췄다.

“아, 겨우 도망쳤네. 미친 쥐새끼.”

“팔 괜찮아?”

흉포한 쥐를 피해 나뭇잎 아래에 숨은 이연우가 작게 물었다.

쥐가 휘두른 발톱에 스쳐, 단델리온의 팔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단델리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는 뭐. 저번에 훔친 꿀도 조금 있잖아. 그거 바르면 낫겠지. 그보다, 원래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쥐가 진짜 작다며?”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지며, 이연우는 자신이 인간의 세상에서 왔으며, 주사위를 지녔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그 후로 단델리온은 호기심과 희망으로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지곤 했었다.

“인간이 거인 크기라고 생각하면 돼.”

이연우는 단델리온의 상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음이 아파, 손가락을 꾸물대며 고민했다.

‘주사위로 회복을. 안 돼. 너무 위험해. 실패하면 죽을 거야.’

단델리온은 그런 이연우를 보다가, 문득 물었다.

“너 귀환하는 주사위는 안 굴려? 요즘도 실패만 나오나?”

“아. 응. 꽝만 나오네.”

거짓말이다. 귀환 판정을 안 굴린 지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차마 단델리온을 혼자 두고 돌아갈 수는 없었으며, 그렇다고 단델리온과 함께 돌아가자니 대실패 판정이 지나치게 무서워서.

그 거짓말은 단델리온도 알아차렸고, 단델리온이 고개를 픽 돌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꽝이 그렇게 나와.”

“뭐래. 주사위도 없는 게 뭘 알아.”

“아, 진짜!”

멸망주의자 이연우는 흐릿하게 빛나는 기억을 보았다. 한때는 기억이 고통이 되어 심장을 찔렀으나, 이제는 무덤덤하다.

그리고, 다시 기억이 흐른다.

3.

인간의 도시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어쩌면 중간부터는 목적을 잃었을지도 모르나, 그들은 인간의 도시를 찾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진실에 닿았다.

“인간의 도시는 없구나….”

“다 망했네….”

두 사람은 폐허 앞에서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인간의 도시는 없다. 있더라도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인간의 도시는, 인간 세상의 구원은, 길거리를 떠도는 길인간과 사육당하는 애완인간이 만든 희망 섞인 전설이라고.

어떤 인간은 전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행동했지만, 인간의 도시까지 만들었지만, 거인의 인간 구제에 당해 모두 망가졌다고.

그들은 한참 동안 폐허에 있었다.

해가 지고, 하나로 뭉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어지다 못해 밤의 어둠에 섞일 때까지.

이연우가 말했다.

“나랑 같이 귀환할래? 주사위가 대실패해도, 너랑 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단델리온이 고개를 돌렸다. 꼭 붙어 있었기에 단델리온의 코가 볼을 스쳤으며, 반짝이는 눈에는 이연우가 가득 담겼다.

“그건 꽝만 나온다며, 바보야. 차라리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이연우의 눈에도 단델리온이 담겼다. 머리도 단델리온으로 꽉 찼다. 차마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단델리온은 별처럼 빛났다. 희망의 빛을 끝없이 내뿜었다.

“우리가 인간의 도시를 만들자. 네가 주사위로 그 회사? 거기에 연락해서 도움을 받고!”

“어?”

“우리가 전설을 현실로 만들자고! 이 도시를 만들었던 사람처럼!”

이연우는 거절하지 못했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단데리온이 활짝 웃으며 이연우를 끌어안았다. 밤의 한기가 사람의 체온에 녹았다.

이연우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꼭 위기를 마주했을 때처럼.

‘사, 사.’

이연우는 손을 떨었다. 그리고 그 손을 뻗어, 단델리온을 마주 안았다.

‘사랑하는구나. 단델리온을.’

처음 심장이 뛰었을 때는 헷갈렸다. 단델리온이 이상한 질병에 걸리거나, 잠재적인 위험을 품었다고.

하지만 그 경험은 반복되었고, 이연우는 자기 감정을 알아챘다. 이연우가 단델리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 우리 같이 도시를 만들자.”

그렇게 그들은 도시를 재건했다.

빛나는 기억이 빠르게 흐른다. 멸망주의자 이연우는 그 기억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잊지 않도록, 몇 번이나 되새겼다.

수백 번을 반복했던 작업이기에 멸망주의자 이연우는 그 앞에서 기다리는 미래 또한 선명하게 알았다.

희망은 스러지기 마련이다.

4.

도시가 불탄다. 단델리온과 이연우가 공을 들여 재건한 도시에 불과 죽음이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거인이었다.

도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무섭게 찾아온 자들.

외래종 관리국. 거인 세계의 인류보호회사 같은 조직.

“빨리 소각해!”

“인간종은 뭉쳐두면 안 된다! 이 외래종은 우리와 동등한 문명을 건설할 능력이 있어! 지배권을 두고 다투기 싫으면 동정심 같은 건 버리고 죽여!”

두 사람의 결실인 도시가 무너진다.

하지만 이연우도, 단델리온도 도시를 살필 여력이 없다.

불타는 골목 구석에 숨은 이연우는 주저앉아 손을 떨며 단델리온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안 돼. 안 돼. 이렇게 죽으면 안 돼.”

무슨 파편에 맞았다. 큼직한 돌 파편이 내장 깊이 파고들었다.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쓰러진 채 이연우의 무릎 위에 안긴 단델리온은 창백한 얼굴을 살짝 들었다.

미약한 숨소리에 말이 섞였다.

“아쉽다…. 회사가 도와줬으면 모두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주사위로 연락한 회사는 매몰차게 지원을 거절했다. 이차원의 인간을 도울 여력이 없다고. 무슨 이상기후? 예정된 재난 때문에 대피하기 바쁘다고.

이연우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려, 어떤 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주사위를 불렀다.

‘주사위! 회복, 재생, 상처 제거, 상처 분담, 빌어먹을! 뭐든 굴려!’

실패가 무섭지만, 가만히 두면 죽는 상황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때였다. 단델리온이 손을 뻗어 이연우의 볼을 잡았다. 그 체온이 두려웠다. 얼음처럼 차가워서.

단델리온이 말했다.

“됐어. 난 곧 죽을 거야. 실패하면 유언 남길 시간도 없을걸?”

“그래도-”

“그 주사위 꽝만 나온다며. 그러니까 성공할 기회는 나한테 쓰지 마. 너 돌아가는 데 써. 인간 세상에서 왔잖아. 돌아가야지.”

“하지만-”

그리고, 단델리온의 손이 툭 떨어졌다.

이연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단델리온은 마지막 숨결로 말했다.

“나 대신 인간 세상을 실컷 즐겨줘.”

그걸로 끝이었다. 숨이 멈췄다. 체온이 얼음보다 차갑게 식어갔다.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단델리온. 그 시체의 형상이 머리에 깊이 새겨진다.

하지만 그 최후를 지킬 여유도 없었다. 인간의 도시를 파괴한 거인이 다가오고 있다. 쿵쿵, 건물을 때려 부수고 불을 지르면서.

고개 숙인 석상처럼 단델리온을 보던 이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거인이 보였다. 무너지는 도시가 보였다. 죽어버린 단델리온의 시체가 무겁게 무릎을 짓누른다.

“….”

머리가 텅 빈 듯도 하고,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찬 듯도 하다.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로 치달았다.

복수.

단델리온을 죽인 거인과 세상을 향한 복수.

이연우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이딴 세상은.”

그 목소리에는 어떤 온기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차갑게 벼려진 복수의 칼날이 선뜩한 날을 세웠다.

“멸망해야지.”

데구르르-

주사위가 구르고.

멸망주의자 이연우는 잠에서 깼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5.

세상이 엉망이다.

멸망주의자의 집회가 열리던 섬에는 시체와 파괴의 흔적이 가득했다. 잡초 하나 남기지 못하고 암석의 섬으로 돌아간 섬. 공간이 깨지고, 지워지고, 독가스가 넘치는 섬.

가까스로 눈을 뜬 이연우는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으스러진 손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꿈이 아니라 주마등이었네.”

몸이 성한 곳이 없다. 깊은 고통이 전류가 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내장부터 팔다리와 얼굴까지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멸망주의자와 멸망전을 벌였으니까.

이연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절뚝이며 일어난 이연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멸망주의자는 물론이고, 흡연자, 전자세계의 유령, 무인, 렙틸리언 보스, 안경까지 전부 시체가 되어 누워 있다. 전부 그의 손에 죽었다.

죽임당하기 전에 죽였다.

그때였다. 시체 중 하나가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떴다. 무인이었다. 무인은 이연우를 보더니, 욕설을 내뱉었다.

“너, 뭐냐. 지구 멸망시키겠다며. 회사에 복수하겠다며. 왜 이상기후 해결책을 공개하려는 건데.”

“….”

그게 문제였다.

평행세계의 이연우에게 이상기후의 해결책을 들은 그가 그 해결책을 공개하려고 해서.

가만히 두면 멸망할 세상을 구하려는 이연우를 멸망주의자들은 공격하려고 했고, 이연우는 공격받기 전에 집회로 쳐들어갔다.

이연우는 가만히 무인을 내려봤다. 한때의 동료이자 지금의 적.

그가 적에게 말했다.

“내가 지구 멸망시키겠다고 했잖아. 이딴 병신 같은 이상기후가 아니라, 내가, 내 손으로 멸망시키겠다고.”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건 자신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차원의 인간을 포기한 회사를 향한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이뤄야 했다.

무인이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개새끼. 그런 멋진 이유면 말을 해야지. 그러면 우리도 같이 했을 거 아냐.”

“아니.”

이연우가 눈을 돌렸다. 그는 비척비척 걸으며 전리품을 수집했다. 멸망주의자가 지닌 이상개체 하나하나가 자신의 힘이다.

그러면서 흘러가듯 말했다.

“내 손에 멸망해야 한다고. 너희들 손이 아니라, 오직 내 손에.”

지구의 멸망은 오직 자신의 권리니까.

그리고 멸망의 권리자인 자신은 아직 지구를 멸망시킬지 결론을 내리지 못해서.

단델리온의 유언이 머리를 스쳤다.

이 세상을 실컷 즐기라는 유언. 그 유언이 유일한 족쇄가 되어 발을 붙잡았다. 이연우를 갈림길 앞에 멈춰 세웠다.

회사에 복수하기 위해, 단델리온은 보지 못할 이 세상을 멸망시키느냐.

단델리온이 꿈꾸던 세상을 지키느냐.

이연우는 매일 갈등했고, 갈림길 앞에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 자리에 멈춰서 누구도 자신보다 앞서 걷지 못하게 붙잡아 넘어뜨렸다.

‘내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는 누구도 지구를 멸망시킬 수 없어.’

무인은 그런 이연우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 잘났다. …어쩌면 나도 그런 정신을 가졌으면, 6레벨에 오를 수 있었을까.”

저런 비대한 자아가 있었다면, 되든 안 되든 들이박을 광기가 있었다면, 세상과 싸워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회광반조처럼 최후의 생명력을 불태운 무인이 손을 들었다. 애매하게 지워져 어설픈 주먹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하늘을 때렸다.

하늘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파란 하늘이 하얗게 질리다가 까맣게 물들고, 끝내는 먹구름이 모여들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쏴아아-

비가 내렸다. 멸망주의자의 시체 위로 빗방울이 쏟아졌다.

“세상, 별거 아니네.”

세상을 때려 울린 무인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연우는 비에 흠뻑 젖은 채 그를 내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멸망주의자의 모든 유산을 지닌 자가 멸망과 보호 사이에서 흔들거리며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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