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테러가 대략 마무리되었다.
과거를 관측하는 기기나 기억을 데이터로 바꾸는 기기를 이용한 회사원들은 재빠르게 물러났고, 그 데이터를 회사원에게 공개했다.
멸망주의자의 극악무도한 범죄. 이 생생한 자료는 지금 시점에 유리하게 쓸 수 있다.
마크 정이 조사반 사무실에 찾아와, 대뜸 말했다.
“일이 잘 풀렸습니다. 멸망주의자가 자기 혼자 넘어진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잘 풀려?”
반장은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적지 않은 사람이 죽었다. 아무리 조사원이 열심히 구조하고 응급처치를 해도, 타이밍을 놓치거나 구조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으니까.
이연우 또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마크 정을 보았다.
‘역시 본사 사람이라 인성이…. 저래 놓고 내 인성 의심하는 건 좀 그러네.’
마크 정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실수하긴 했다. 그는 얼른 변명하듯 말했다.
“그게 아니라. 요즘 멸망주의자가 이상한 선동을 뿌리지 않았습니까.”
인류가 멸종하면 이상異常이 사라진다. 우주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숭고한 희생을 치러야한다.
과거 최초의 멸망주의자가 탄생했던 그 구닥다리 이론이 다시 세상에 나오며, 회사원을 흔든 것이다.
몇몇 회사원은 진지하게 그것을 믿고 멸망주의자로 전향하려는 징조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멸망주의자의 민낯을 보여준다면, 회사원들도 허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이론이 설령 진실이어도 저딴 놈들과 움직이기는 좀 그렇지 않나.
“오직 광기로만 움직이는 멸망주의자의 행태는 훌륭한 프로파간다가 되어 회사원의 정신 무장을 돕지 않겠습니까?”
“그건 모르겠고. 할 일 있으면 빨리 마치고 가라. 조사반 사무실에 본사 사람이 왜 있어.”
기분이 나빠진 반장이 투덜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마크 정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포상이나 상여금 말하기는 애매해.’
조사반은 재빠르게 대처하여 많은 사람을 살렸고, 또한 멸망주의자를 산 채로 붙잡기까지 했다. 그 보상을 축하하려 했지만, 괜히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면 호통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이연우 씨.”
그래서 얼른 이연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본사의 의뢰입니다.”
“의뢰요?”
이연우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머리에서는 온갖 생각이 스쳤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이걸 어떻게 거절하지?’
본사의 의뢰면 그 스케일이 장난 아닐 텐데. 아마 위험한 일일 텐데.
잠깐 고민하다가 말한다.
“특수조사원 일입니까? 아니면 주사위?”
“주사위입니다. 아, 위험한 일은 진짜 아닙니다. 위험해도 바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마크 정의 장담에 이연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믿을 수가 없어서.
“이걸 제 입으로 말하기도 이상한데, 사고 터지지 않겠습니까?”
뭐만 하면 폭탄처럼 펑펑 터지던데,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안전한 일도 위험한 일로 변할 정도로 운이 안 좋은 게 자신인데.
하지만 마크 정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어떤 사고를 일으켜도 괜찮거든요.”
그만큼 중요한 의뢰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연우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
“이연우 님, 당신을 본사로 초대합니다.”
왜냐면, 본사였으니까.
그 말은 조사반에 전부 들렸고, 마크 정이 초대하듯 뻗은 손을 모두가 보았다. 반장과 유지유가 관심을 보였다.
“본사로? 본사가 진짜 있나? 거점 없이 사람이랑 시스템을 흩어 놓았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언니가 그건 거짓 정보고, 진짜는 자기도 모른다고 말했어요.”
비밀로 꽁꽁 둘러싸인 본사.
그 본사의 인간인 마크 정이 씩 웃었으나, 곧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연우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본사? 갑자기 자기를 부른다고?
“저 격리하려는 건 아니죠?”
사랑의 묘약에 당했는데도 사람을 죽인 걸 보고는 위험 요소로 판단한 게 아닐까? 괜히 소름이 돋은 이연우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주변을 보았다.
‘도망쳐야 하나? 본사는 좀, 무서운데.’
이상한 위기감이 든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 팔을 마구 비비는 이연우 때문에, 마크 정은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손을 저었다.
“아니. 이연우 님을 왜 격리합니까. 회사의 폭탄, 아니, 정예요원을 왜.”
괜히 잘못되면 회사도 무시 못 할 피해를 입을 텐데. 거기다 격리를 한다면 이렇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었다.
마크 정은 회사가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이연우 격리 계획을 떠올렸다.
‘안전 쉘터만 제공하고 보호해주면 알아서 거기 틀어박힐 인간인데. 굳이 격리하겠다고 본사까지 부를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그 격리 계획을 말할 수는 없었고, 마크 정은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이연우 님. 본사입니다. 고위 인사와 중요 자원이 모여 있는 본사인데, 이연우 님 하나도 감당 못 하겠습니까?”
“그건 그런데….”
이연우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고민이 깊다.
마크 정은 초조하게 기다렸고, 한참을 고민하던 이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의뢰 맡겠습니다.”
뭔가 느낌이 안 좋긴 한데, 자신이 아무리 운이 안 좋아도 본사는 대응할 능력이 있을 것이다. 만약 어차피 터질 사고라면 차라리 본사에서 터지는 것이 낫다.
‘정말 아무 사고 안 나면 본사에 자리 달라고 해야지.’
생각해보면 본사만큼 안전한 장소도 없을 듯하다.
그 말에 마크 정은 안도하며, 짧게 말했다.
“그러면 본사가 준비되는 대로 모시겠습니다.”
“언제 출발하는지.”
“준비가 언제 끝날지는 저도 몰라서….”
두 사람은 잠시 멀뚱멀뚱 서로를 보다가, 재빠르게 인사를 마쳤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마크 정이 후다닥 떠난다.
반장과 유지유는 늦은 오후의 졸음도 이겨내고 눈을 빛냈다. 정작 이연우는 침착하건만, 두 사람은 생생한 호기심을 보였다.
“본사는 한국지사에서도 가본 사람은 드물 텐데.”
“어쩌면 기록이나 기억이 안 남을지도 몰라요. 보안 조치가 장난 아니라서,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흔적 자체가 안 남는 걸지도.”
본사는 유령 같았다. 존재는 하는데, 본사의 사람이나 자원은 분명히 세상에 나돌아다니는데, 정작 그 본사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본사의 직원도 알지 못했다.
반장이 책상을 딱딱 두드리며 말했다.
“본사 사람을 납치해도 정보를 못 얻는다고 하지. 아마 안전조치나 보안조치가 있을 거 같은데.”
회사의 최첨단기술과 엄중한 보안 절차가 보호하는 본사.
기억은 물론이요, 영혼에까지 뭔가 잠금이 걸려 있을지도 몰랐다.
이연우가 순간 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지켜지는 곳이면 진짜 안전한 느낌인데? 최후의 쉘터보다 튼튼한 거 아니야? 좀 끌리는데.’
그렇게 이연우는 기대를 품고 마크 정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고, 그날이 왔다. 이연우가 본사로 가는 날이.
***
“이연우 님은 본사 소속 특수조사원이시니, 보안 절차가 많이 간소화되었습니다.”
“보안 절차요?”
이른 새벽부터 찾아온 마크 정은 본사의 준비가 끝났다며 이연우를 끌고 어딘가로 갔다. 이연우가 탄 마크 정의 차가 한참을 달린다.
마크 정은 느긋하게 운전대를 돌리며 말했다.
“원래는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심문에 가깝게 조사한 뒤에 모시거든요.”
확실히 그런 것은 없었다. 이연우는 편안하게 조수석에 앉아 창가를 보았다. 차는 평범한 도로를 달려, 출근하는 다른 사람과 섞여 움직인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움직여도 됩니까? 작정하고 추적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이는데.”
“그건 괜찮습니다.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이미 보안 절차가 진행 중이거든요. 본사로 어떻게 가는지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마크 정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저도 모르거든요. 그냥 본사에 방문하겠다고 연락하고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도착해 있습니다.”
이연우는 입을 꾹 다물고 상상에 잠겼다.
‘어떤 원리지? 무슨 이상개체를 쓰나?’
주사위를 마음대로 다루는 수준에 오르면, 비슷하게 가능할 것 같긴 하다. 손님이 이 시간에 이곳에 도착했을 가능성을 구현하는 느낌으로.
과연 비슷했다.
문득 이연우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세상이 움직이는 감각이 돌연 찾아왔다.
‘이건.’
예술가 협회장이 세상을 움직이거나, 자신이 가능성을 구현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도착한 주차장.
주차장은 굉장히 높고 넓어, 주차 자리 중간중간에 몇 차선 도로가 깔려 있었다.
높은 천장에는 하얀 전등이 일렬로 박혀 빛나고 있었으며, 그 아래로는 온갖 차량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마크 정이 주차할 자리를 찾아 빙빙 도는 동안, 이연우는 차량의 번호판을 보았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번호판이었다.
이연우는 괜히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여기가 본사.’
벌써 뭔가 공기가 다른 느낌이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것 같기도 하고, 지독하게 위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본사면 이래야지.’
은은한 위기감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본사니까. 병력이나 온갖 이상개체가 위기에 반응하여 즉시 움직일 태세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이연우는 손에 땀을 쥐며 주차장을 보았다.
부우웅-
본사가 넓은지 오토바이를 탄 보안요원들이 바쁘게 순찰을 돌아다닌다. 소대 하나가 지나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소대가 주차장을 맴돌았다.
그 무장과 경계가 대단했다.
‘와. 고작 주차장인데 저렇게 순찰한다고?’
사실은 이연우가 방문하여 경계 태세가 극도로 높아진 것이었으나, 그걸 모르는 이연우는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그렇게 이연우가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을 때, 마크 정이 문득 투덜거렸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군요. 주차장 확장해달라고 그렇게 건의를 했는데….”
알 수 없는 공간에 온갖 기술과 이상개체를 이용해 지어진 본사. 그 공간은 제한되었고, 확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1시간 넘게 주차장을 빙빙 돌다가, 빠져나가는 차를 간신히 발견해 빈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차에서 내린 마크 정이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주차장 저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연우 님. 늦었지만 본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바로 실험실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실험입니까? 본사 도착하면 말해주겠다면서요.”
주차장을 빙빙 도는 동안 본사에 대한 신비감이나 위압감이 싹 사라졌다. 이연우는 퉁명스럽게 물었고, 마크 정은 간단하게 말했다.
“이상異常 발생 실험입니다. 저도 어떤 부서가 요청한지는 모릅니다. 최고 기밀 같더군요. 그래도 요청서를 보긴 했는데.”
설명을 덧붙인다.
“이상異常 발생 원리를 분석해보겠다는 취지 같습니다. 주사위로 몇몇 평범한 물건을 이상개체로 만들어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