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60)화 (160/194)

본사

“이상개체를 만들라고요?”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크 정을 부지런히 쫓아가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가능은 한데,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단순하게 볼펜이나 가방이나 손수건이나, 위험하지 않은 물건을 대상으로 실험할 계획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그래도 대성공이라도 나오면….”

마크 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연우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대실패가 나오면 평범한 총탄 비슷한 것이 나오겠지만, 대성공이 나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었다. 물건이 이상異常일 가능성이 어디까지 극대화될지 모른다.

그 위험성을 잘 알 텐데도, 마크 정은 자신 있게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본사는 종말방어장치 몇 개로 지켜지고 있어서요. 정확히는 세계를 지키고 있지만, 본사는 더 강도 높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본사를 보호하는 종말방어장치.

이연우가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마크 정을 보았다.

“고장 난 시계 같은 거 말입니까? 시간을 멈추는?”

“그건 비상장치일 뿐이죠. 제가 알기로는 항상 가동하고 있는 장치가 둘 있습니다. 안전조치 001과 002.”

보안소대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주차장에 두 사람의 발소리와 목소리가 나직하게 가라앉았다.

마크 정은 말했다.

“안전조치 001. 이상異常으로 인한 사고를 억제하기 위해 세상을 기울이는 장치입니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일수록 강하게 작용하죠.”

폐가나 사람 없는 음산한 지역이 괴담의 주 무대가 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지역은 안전조치가 약해서.

이연우는 의문을 품었다.

“그런 것 치고는 세상에 사고가 꽤 많은데요.”

인간자격시험만 해도 시험장에 툭툭 튀어나올 테고, 지렁이 교단도 멀쩡하게 도심 한복판에서 활동했다. 자신만 해도 온갖 사건사고에 휘말렸고.

마크 정은 순간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회사가 세상을 기울인 결과가 그것입니다. 만약 안전조치 001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혼란이 펼쳐질 겁니다.”

마치 머나먼 과거처럼. 신화와 전설이 지상을 거닐고, 문명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살아남기 급급했던 시대처럼.

지금도 여전히 이상異常을 원천 차단하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나 역사로만 남은 그 시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인간만의 문명을 세웠으며, 인간의 사회가 지구를 지배하지 않나.

이연우는 마음을 놓으며 조금 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회사가 인정은 있구나.’

평화를 유지하고 세상을 보호하는 걸 보니,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는 아닌 거 같다. 어디까지나 최후의 결단을 내릴 뿐이지, 근간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느낌.

하지만 그 안도는, 이어지는 마크 정의 말에 산산이 조각났다.

“그리고 회사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무기요?”

이연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무기? 인류를 보호하는 장치가?

“방패로 공격을 막으면 방어구고, 방패로 후려치면 무기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안전조치 001은 홍수를 막는 댐인데, 그 댐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하면 어떨까요?”

“…예?”

마크 정은 웃음기를 섞어 유쾌하게 말했지만, 이연우는 멍하니 귀를 의심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찾아 걷는 중이다. 마침 천장의 조명이 희미한 길을 걸었기에, 마크 정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골드버그 클럽, 예술가, 악마숭배자…. 전부 인간과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친구들이죠.”

클럽은 도시가 필요하다. 예술가는 관객이 필요하며, 악마는 숭배자가 필요하다.

회사보다 지킬 것이 많다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회사는 언제든지 지구를 포기할 수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제 손으로 지구를 터트릴 준비도 되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의 세상을 버릴 수 없는 그들은 회사와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회사가 그런 질서를 만들었으니까요.”

애초에 인간이 근간이 아닌 집단은 회사가 용납하지 않았다. 마법사도 고향 별인 지구를 아꼈으며, 멸망주의자조차 과거 회사에서 갈라져 나온 조직이었다.

지금의 세계는 회사가 만든 질서 위에 존재했다. 그 질서야말로 회사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며 더듬더듬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놈들이 열받게 만들면 다 같이 죽자고 협박한다고? 아니, 그 협박이 통하는 놈들만 살려놨다고?’

자부심이나 허세가 섞인 느낌이지만, 진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미친 것 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회사 무서워…. 회사 소속이라 다행이지.’

이연우는 단편적으로 생각을 이어가다가 곧 생각을 포기했다.

어쨌든 자기는 회사의 고급 인력이니까, 대충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아, 저기 엘리베이터가 보이는군요.”

앞서 걷던 마크 정이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직원용이라고 쓰여 있는 엘리베이터는 평범한 엘리베이터와 똑같이 생겼다.

호출 버튼이 하나일 뿐이다.

꾹, 마크 정이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가 부지런히 이동한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이연우가 문득 물었다.

“그러면 안전조치 002는 뭡니까?”

“운명이나 예지 계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생존하는 미래를 고정한다는 느낌인데, 사실 정확한 건 저도 잘….”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왔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실험실 좌표가.”

마크 정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뭘 확인하더니, 키보드 같은 화면을 신중하게 눌렀다. 층을 표시하는 버튼 대신, 키보드로 일련번호를 입력하는 식이었다.

“lab_007. 됐다.”

마침내 좌표를 입력한 마크 정이 장난을 섞어 말했다.

“본사에도 괴담이 있더군요. 존재하지 않는 좌표를 입력하면 이상한 공간에 도착한다고요.”

“…괴담 맞습니까?”

이연우는 괜히 불안해하며, 마크 정의 핸드폰 화면과 엘리베이터에 입력한 좌표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괴담이 아닌 것 같다.

마크 정이 어깨를 으쓱였다.

“엘리베이터 관리 부서랑 상부에서는 사고는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하는데. 경험담이나 고장 기록이 실제로 존재하긴 합니다.”

“그건 괴담이 아니라, 사고를 사고로 안 치는 거 아닙니까.”

이연우는 엘리베이터 화면을 힐끔대며 몸을 좌우로 서성였다.

고장 난 측정기처럼 알파벳이며 숫자가 끊임없이 변동하는 좌표 화면이 어지럽다.

다행히, 그들은 문제없이 실험실에 도착했다. 깔끔하게 열린 문 너머로 실험실이 보였다.

***

[프로젝트 : 평범한 세상]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통화를 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는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두었는데도, 핸드폰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 이연우인지 뭔지, 그거 빨리 내쫓으세요! 본사 지역에 부하가 걸렸으니까, 사고 터지기 전에!

안전조치 001을 담당하는 사람의 전화였다. 이연우가 도착하기 무섭게 001이 기울인 세계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축복 받은 아이의 행운이 중화되듯 말이다.

연구원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고 터져도 괜찮게 최고 경계 태세 들어갔지 않나. 지금 거의 전시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을 텐데?”

- 그 사고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할 거 아닙니까!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애초에 사고가 터지면 어때서? 이번 실험만 잘 되면 회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연구원이 짜증스럽게 무어라 몇 마디 내뱉으려고 할 때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두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마크 정과 이연우.

이연우를 본 연구원의 눈에 광채가 맺혔다. 연구원은 빠르게 몇 마디를 내뱉었다.

“실험 중단하고 싶으면 이사회 쪽으로 연락하시오. 그럼 끊겠소.”

- 3시간! 3시간 안에 끝내세요! 그 시간이 지나면-

뚝, 통화를 끊었다. 연구원이 즐겁게 웃으며 서둘러 이연우를 향해 걸었다. 소중한 실험 도구가 왔다.

지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연우가 연구원을 보았다. 연구원이 두 손을 활짝 폈다.

“고대기술복원 연구소에 온 것을 환영하네!”

연구원은 그대로 이연우를 끌어안으려 했고, 이연우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연구원을 밀어냈다.

“예, 조사원 이연우입니다. 의뢰, 바로 합시다.”

“열의가 있어 좋군! 그러면 바로 실험실로 가지!”

이연우에게 밀쳐진 연구원은 개의치 않고 이연우와 마크 정을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진짜 단순하게 테이블 하나만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볼펜이나 손수건 따위의 자그마한 소품이 있고, 장전된 권총이 하나 있었다.

이연우는 그 권총을 알아봤다. 눈이 크게 떠졌다. 전에 본 총이었으니까.

“…평범한 총탄?”

“대성공을 대비해 준비한 무기지. 그러니 마음껏 굴려도 되네. 대성공하면 바로 저걸로 쏴버릴 거니까.”

이연우에게 평범한 총탄으로 인한 위기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이러면 뭐 괜찮지.’

자세히 보면 볼펜 따위의 실험 재료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와이어나 접착제 따위로.

진짜 문제가 생기면 저 총으로 쏴서 파괴하면 된다.

연구원이 마지막으로 실험 재료를 점검하며, 위장된 실험 목적을 말했다.

“먼 고대의 지구에는 이상개체가 널려 있었다고 하지. 당연히 그로 인한 오염도 심각했지만 지금 지구는 깨끗해. 왜인지 아나?”

이연우는 적당히 말을 맞췄다.

“오염을 제거하는 고대기술이 있었습니까?”

연구소 이름을 보고 대충 때려 맞춘 답에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트 테크놀로지야. 그래서 오늘의 목표는 사실 두 가지라네. 성공하여 이상개체로 변하는 것을 관찰해, 이상발생 원리를 분석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실패를 분석하는 것이겠군요.”

이연우가 어렴풋이 추측했다.

이 물건이 이상개체일 가능성. 그 가능성이 실패하면 이상개체가 아닐 가능성이 구현될 테니, 그걸 분석할 생각이라고.

‘이러면 실패하든 성공하든 상관이 없네?’

이연우가 작게 감탄했다.

연구원은 씩 웃었다. 진짜 목적을 말하지 않았다. 진짜 목적은 기밀 중의 기밀이었으니까.

‘이번 실험에서 충분한 데이터를 얻으면, 평범한 세상도 꿈은 아니겠지.’

점검을 마친 연구원이 몸을 돌렸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지. 아무거나 편한 대로 굴리게.”

이연우가 눈을 감았다. 정신 한편의 주사위가 보인다. 그가 주사위를 불렀고, 실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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