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마크 정이 없는 사람처럼 구석에 기대 서 있고, 연구원이 눈을 반짝이며 이연우를 본다.
이연우는 주사위를 찾다가, 문득 눈을 떴다. 그리고는 얼른 권총을 쥐었다. 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대성공 나오면 제가 바로 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아무래도 결과는 자네가 가장 먼저 알 테니까.”
평범한 총탄은 이연우가 쥐고 있는 편이 낫다. 대성공하여 위험한 이상개체가 만들어지면 바로 알아채고, 가장 신속하게 파괴할 수 있으니까.
“좋은 데이터가 모이면 좋겠어.”
연구원이 긴장하고 흥분하여 땀을 흘렸다. 꽉 쥔 주먹이 미끌거린다.
이연우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손수건을 향해 총을 겨눴다.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렸다.
‘사고 대비 확실하고. 대성공 나오면 쏘면 되고. 좋아, 주사위. 이 손수건이 이상개체일 가능성을 굴려줘.’
눈을 감아 어두운 시야. 주사위가 보인다.
주사위는 힘겹게 뛰어올랐다. 그 기세가 약했으며 높이가 낮았다. 꼭 보이지 않는 힘이 주사위를 짓누르는 듯이.
데구륵-
몇 번 구르지 못한 주사위가 결과를 내보였다.
꽝!
이연우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떴다.
“꽝 나왔습니다.”
“계속 굴리게.”
연구원의 재촉에 이연우는 거듭 주사위를 굴렸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꽝, 꽝, 꽝, 실패나 성공조차 나오지 않고 같은 결과가 열 번 넘게 반복되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주사위의 움직임 자체가 이상했다.
‘이건….’
이연우가 허공을 보았다. 억지로 감각을 일으켜 세상을 느꼈다. 문득 이연우가 답답한 한숨을 뱉었다.
‘안전조치인가? 뭔가 가능성이 닫힌 느낌인데.’
사고를 억제하는 힘? 주사위의 무작위한 성질을 억누르는 힘이 일대에 깔린 느낌이다.
사이즈가 작은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호흡이 답답하다.
이연우가 숨을 몰아쉬며 목덜미나 허리춤을 끌어당기고 있자니, 연구원이 초조하게 질문했다.
“문제가 있나?”
“아뇨.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이연우의 눈에 오기가 서렸다. 회사의 안전조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포기할 수 없다. 이런 것에 주사위가 막히면 비슷한 위험을 마주했을 때 주사위가 무력해지니까.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회사의 안전조치를 가상의 적으로 가정한 이연우가 눈을 감고 손바닥을 활짝 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안개에 당해 오염되었을 당시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그때의 감각. 확률적인 가능성을 헤아리고, 원하는 가능성을 건져 올리던 감각.
‘아냐. 이게 아니야. 이것보다는.’
가능성을 풀어놓아 닫힌 미래를 여는 느낌이 더 정확하다.
이연우가 주먹을 느슨하게 쥐었다. 손바닥 안에 주사위가 담겨 있는 느낌으로. 그리고는 냅다 손을 휘둘렀다. 야구공을 던지듯, 주사위를 벽에 던지듯.
이연우는 직감했다.
‘됐다.’
주사위가 힘차게 굴렀다. 평소처럼 펄쩍 뛰었으며, 기세 좋게 몸을 던졌다.
데구르르-
주사위가 춤추며, 대실패, 실패, 꽝, 성공, 대성공, 5갈래의 가능성이 꿈틀거린다. 단단한 벽이 되어 주사위를 막던 세계가 흔들렸다.
다음 순간 보다 강한 힘이 주사위를 짓누르지만, 이미 결과가 나온 뒤였다.
실패!
이연우가 눈을 떴다. 얼굴에는 기쁜 빛이 서렸으며, 목소리도 경쾌했다.
“실패했습니다.”
결과가 실패일 뿐이지만, 실험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이연우의 능력이 한층 상승하기도 했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에 실험실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연구원은 핸드폰으로 관측값을 확인하고는 히죽 웃었다. 확신이 들었다. 이 실험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데이터만 충분히 뽑으면 된다.
연구원이 손수건에 실패 스티커를 붙이며 말했다.
“좋아, 좋아. 그러면 손수건은 그대로 두고 다른 것을 계속 굴려주게.”
“예. 이번에는 볼펜을 굴리겠습니다.”
이연우가 다시 주먹을 편하게 쥐었다.
‘약간 훈련이나 운동 같은 느낌이야.’
손을 휘두름에 따라 다시 한 번 주사위가 굴렀고, 그렇게 실험이 계속되었다. 주사위가 멈추지 않고 굴렀다.
***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연우가 노력해도 꽝이 많이 나왔으며, 이런저런 실험재료가 많기도 했다. 볼펜, 플라스틱 병, 캔, 물, 커피, 이어폰, A4 용지, 쓰레기 등등….
거의 3시간 가까이 실험하자, 재료가 전부 소진됐다. 실패나 성공의 스티커가 붙은 잡동사니가 테이블 위에 질서정연하게 묶여 있었다.
“실험은 끝입니까?”
이연우가 피곤한 목소리로 묻자, 연구원이 후다닥 실험실을 벗어났다.
“아니!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아! 조금만 기다리게! 빨리 가져올 테니까!”
쾅, 닫힌 문 너머로 빠르게 달음박질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연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때, 그림자처럼 인기척 없이 기다리던 마크 정이 질문했다.
“피곤하십니까?”
“아뇨.”
이연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빗물이 신체적인 피로는 전부 해소했다. 단지 불안할 뿐이었다. 가슴 위로 손을 올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심장이 뜁니다. 꼭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기분인데.”
처음에는 괜찮았다. 위기감은 약했고, 은은한 위기감도 본사의 존재 자체 때문 같았고.
하지만 실험이 반복될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실험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생존본능이 경종을 울렸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연우가 손바닥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마크 정도 진지하게 경계했다.
“이곳은 본사라 위험이 없는데, 위기감을 느낀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의문을 품은 채 서로를 잠깐 마주 봤다. 조사원의 직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연우가 초조하게 손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본사가 공격받는 건 아닙니까?”
“공격받았으면 바로 경보 울렸습니다. 그리고 몰락한 멸망주의자는 능력이 없고, 다른 집단은 동기가 없습니다. 차라리 멸망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고 여기는 편이 나을 텐데.”
마크 정은 빠르게 핸드폰을 두드려 정보를 확인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세상은 안전합니다.”
이연우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는 문제가 없다. 그러면 생존본능일까?’
사랑의 묘약을 썼던 인간이 위기감을 안겨주었듯,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는 건 아닐까?
‘오염이 진행되면 감각이 변이하지. 혹시 생존본능이 진화해 시간 너머의 위험까지 감지하는 걸까?’
이연우가 답답해 죽으려고 했다. 위험을 감지하는 건 좋다. 좋은데.
‘위기감만 느끼면 뭐 하냐고. 뭐가 위험한지 알 수 없는데.’
습격? 멸망 시나리오? 아니면 실험이 잘못되나? 주사위가 사고 치나? 위험의 원인에 따라 할 일이 달라지는데, 원인을 모르면 마음의 준비만 할 뿐 아닌가.
“마음의 준비는 필요가 없는데.”
이연우가 푸념했다. 생존주의자로서 마음이야 항상 준비됐으며, 장비도 최선으로 갖추고 있단 말이다.
반면 마크 정은 신중하게 이사한테 연락했다. 짧게 문자를 몇 번 쓴다. 답장은 바로 돌아왔다.
“이사님은 계속 실험하라고 하십니다. 큰 문제 하나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큰 문제면 어느 수준을 말하는 겁니까?”
“멸망 시나리오나 위험레벨 6의 습격 정도?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마크 정의 장담에 이연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인을 모르니, 어차피 뭘 더 준비할 상황도 아니다.
‘일단 여기서 버티자. 무슨 사고가 터지든 본사잖아. 당장 내 앞에 평범한 총탄도 있고.’
그쯤에서 연구원이 돌아왔다.
“여기 실험재료 잔뜩 가져왔네! 계속하지!”
연구원이 내민 상자. 상자 안에는 밀웜이 잔뜩 뭉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연구원은 밀웜 한 마리를 테이블 위에 놓았고, 이연우는 물끄러미 밀웜을 내려보았다.
“그럼 굴리겠습니다.”
손을 쥐고 강하게 던진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났다. 안전조치 001이 말했던 3시간이. 주사위를 짓누르던 힘이 순간 약해졌다.
주사위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 높이가 평소보다 훨씬 높았고, 감정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자신을 억압하던 것에 대한 짜증이나 분노 같은 것.
데구르르르르르-
주사위가 미친 듯이 굴렀다. 이연우에게 강렬한 위기감이 닥쳐왔다.
‘대성공? 이래서 불안했구나!’
생각은 찰나에 스쳤고,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평범한 총탄이 격발되어 밀웜을 향해 날아갔다.
탕-!
총탄이 밀웜의 꼬리 부분을 때리고 테이블에 박혔다. 밀웜의 머리가 팍 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주사위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뒤늦게 주사위의 결과가 나왔다.
대성공!
가능성이 구현된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짓뭉개져 머리만 남은 밀웜이 이상개체일 가능성.
이연우가 숨을 몰아쉬었다. 생존본능이 경종을 땡땡 울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대성공인가?”
“예. 그래서 바로 쐈는데.”
연구원과 마크 정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평범한 총탄을 쐈지 않나. 오히려 연구원은 아쉬워했다.
“총탄을 썼으니 실험은 이제 그만해야겠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의는 좋지만, 이 이상의 실험은 너무 위험-”
“그게 아니라. 지금.”
이연우는 말끝을 늘어뜨리며 정신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얼굴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위험해.’
그때였다.
실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있던 마크 정이 방구석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떨린다.
“저기, 연구원님? 이연우 님? 저기, 저기.”
“저기 뭐-. …저게 뭐지?”
연구원의 당황한 목소리와 눈빛.
이연우 또한 재빠르게 그곳을 보았다.
갈색의 곰팡이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아니, 곰팡이가 아니다.
“밀웜?”
튀어 나간 밀웜의 머리가 곰팡이처럼 피었다. 평범한 총탄에 당해 없어진 몸과 상처는 그대로지만, 계속해서 분열하고 있다.
밀웜의 머리가 갈색 물감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1에서 2, 2에서 4, 4에서 8. 짧은 순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분열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무한히 분열하는 밀웜의 머리.
연구원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거 멸망 시나리오 수준의 위험개체 아닌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끝없이 증식하여 지구를 채울 테니까.
마크 정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사한테 보고하여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저것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예! 지금 멸망 시나리오 수준의 이상개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긴급조치를-”
한편 이연우는 펄쩍 뛰며 가스 토치를 꺼냈다.
“뭘 기다립니까! 불로 태우면 지금 싹 다 처리할 수 있는데!”
“평범한 총탄에 맞고도 살았는데, 단순한 불로 죽일 수 있겠나? 차라리 회사에 맡기고 우리는 대피하는 게-”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조명이 깜빡였다. 그러더니 어디에 숨어 있던 비상등이 붉은빛을 내뿜었다. 다급한 방송이 터져 나온다.
- 6레벨 위험 경보 발령! 6레벨 위험 경보 발령! 비상 격리 조치 작동 중!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한 방송 사이로, 마크 정의 황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무인이 갑자기 본사로 쳐들어왔다고요? 예? 무인이 6레벨에 오른 거 같다고요?”
그 목소리를 들은 이연우는 가스 토치를 다시 에코백에 넣었다. 이미 밀웜의 머리가 어마어마하게 증식했다. 격리된 공간에서 큰불을 질렀다가는 자신도 위험하다.
이연우가 냉정하게 말했다.
“대피소는 안전합니까? 저거 분열해도 괜찮냐는 말입니다.”
“확실하네.”
“갑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실험실 근처의 방으로 갔다.
평범한 방으로. 모든 이상異常이 존재할 수 없는 방으로.
연구원과 마크 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이연우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는 다급하게 문을 막았다.
생존본능이 꺼졌다. 빗물의 활력도 없어졌다. 주사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 상실감과 고통은 지독한 불안으로 다가왔다.
“여긴 어딥니까? 왜, 왜.”
“아, 평범한 방이네. 평범한 총탄 같은 건데, 이곳 안에서는 이상현상이 일어나지 않지. 나가면 돌아오긴 하지만-”
이연우의 머리에서 번개가 튀었다.
‘여기에 갇히면 그대로 격리당하는 거잖아.’
심장이 쿵 떨어졌다. 평소라면 회사의 힘에 감탄하고 조금 경계하고 말겠지만, 지금은 사고를 크게 쳤으니까.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한다.
‘내가 무슨 사고를 쳤지? 멸망 시나리오를 일으킬 수준의 이상개체를 만들었지.’
이상異常을 만드는 이상異常. 그것도 끔찍한 이상개체를 만들 수 있는 존재. 회사가 자신을 용납할까? 회사원이라고 좋게 넘어갈 수준을 넘었는데?
거기다 생존주의자의 성향을 지나치게 잘 보여줬다. 나 하나 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
‘격리는 상관없어. 그런데 사살하려고 한다면.’
최악의 경우, 사고가 수습되고 평범한 방의 문이 열린 순간 특전대가 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잠재적인 위험성은 그 정도였으니까.
이연우가 결심했다. 그가 문밖으로 나갔다. 힘이 돌아온다.
“저는 따로 도망치겠습니다.”
“아니, 이연우 님.”
쾅!
이연우가 문을 닫았다.
멸망 시나리오 수준의 이상개체와 6레벨 멸망주의자와 이연우의 탈주가 동시에 본사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