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모든 사고는 찰나에 일어난다.
“어, 어, 어? 아니, 출력이 이러면, 잠깐-”
미완성의 장치가 폭주하여 가벼운 실험이 세계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고.
“회사는 뭘 하는 겁니까! 갑자기 왜 발작을, 빌어먹을! 미리 바친 황금을 전부 소진해 방어하겠습니다! 부족하다고? 일단 바친 황금으로 최대한 방어-”
준비가 부족하여 조금밖에 막지 못할 수도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변해도 날 사랑하겠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일단 믿을게.”
“숭배자! 빨리 숭배자, 아니, 늦었-”
자의로, 혹은 타의로 방관하여 사고에 손을 쓰지 못할 수도 있었다.
“뭐야? 뭔데? 왜 불안한데? 또 뭔데! 주사위!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막아! 아니, 내가 살 길을 만들어!”
데구르르-
또한 불확정 요소가 사고에 끼어들어.
성공!
사고를 뒤틀어버릴 수도 있다.
세계가 개변됐다. 세상도 회사의 본질도 바뀌었다. 실험이 성공하였으나 성공이 의미 없는 세상으로.
***
밤새 뒤척이다 언제 잠드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이연우가 눈을 떴을 때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새벽빛이 드리웠는데, 그 빛은 기나긴 시간이 지났을 때 특유의 고색창연한 빛을 품고 있어, 이연우는 무심코 인간이 이미 멸종한 건 아닐까, 태양이 멀어진 게 아닐까, 쓸모없는 걱정을 두서없이 떠올렸다.
하지만 허황한 상상은 현실의 고통 앞에서 밀려나는 법이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이연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짙은 신음을 흘렸다.
“아, 머리. 머리 아파.”
고통은 단순히 육체에만 찾아오지 않아, 마치 이 세상이 이연우라는 존재를 거부하듯이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가시가 돋은 벽으로 밀어내어 존재의 상실을 일으켰다.
“내가, 내가 누구지? 뭐 하고 있었지? 왜 위험하단 느낌이 들지?”
희미한 기억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연우는 황망한 표정을 짓다가도,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주변에 널린 잡동사니 사이에서 자격증을 쥐었다.
그것은 A4 용지로 어설프게 만든 인간자격증이었는데, 그걸 내려보는 순간 생존본능이 비명을 지르고, 주사위가 가능성을 풀어놓으며 세상의 배척을 밀어냈다.
이연우의 눈에 빛이 맺혔다.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연우. 4번째 공무원 시험에서 인간자격시험을 마주치고, 회사에 입사했지. 회사의 이름은.’
이상보호회사.
세상으로부터 이상異常을 보호하라.
세상이 배척하는 이상異常도 존재할 권리가 있다며 이상異常을 보호하는 회사.
그리고 자신은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배척하는 세상에 대적하는 6레벨이 되어, 이상보호회사의 정예요원 취급을 받고 있다.
맞나?
다음 순간, 이연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맞아? 좀, 좀, 이상한데.”
이연우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타다닥 두드리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나온 삶의 기억이 멀쩡했지만,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맥락이 안 맞는다.
‘몸 비틀어가며 6레벨이 됐는데. 왜 6레벨이 됐지? 살아남으려고 그런 거잖아.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6레벨 되면 불리한데.’
이 세상은 이상異常을 싫어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세상은 더 강하게 이상異常을 배척했고, 6레벨쯤 되면 매 순간 세상과 맞서 싸워야 세상에 남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도 그랬다.
“으.”
이연우가 답답한 숨을 토했다. 중력이 몇 배로 강해지거나 깊은 심해에 빠진 것처럼, 세상이 꽉 조여들었다.
생존본능이 몸을 비틀고, 주사위가 가능성을 풀어놓으며, 인간자격증이 평범한 인간이라고 호소하여, 그나마 수월하게 버티고 있다.
이런 이상異常 차별하는 못된 세상에서는 차라리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게 나을 것인데.
‘…아닌가?’
이 정도 수준의 힘이면 세상과 싸우더라도 더 살아남기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그러려고 인간자격증을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이연우는 계속해서 드는 의문과 그럭저럭 합리적인 현실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뭐지.”
머리를 벅벅 긁고 있자니, 대충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도박근절센터를 만들었다고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무실로 출근해 이상구조반의 사람들에게는 얼굴도 비추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이연우가 위화감은 미뤄두고, 이상구조반으로 출근했다.
갑자기 세상에 튀어나온 이상개체를 찾아 구조하는 부서로.
“안녕하십니까.”
“어, 연우야. 왔냐?”
“형, 왔어요….”
반장은 평범하게 인사했고, 최재민은 골골골 앓는 안색으로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부모를 감별하는 이상개체로 세상의 박해를 받아 항상 아픈 최재민은 부러운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기침이 콜록콜록 나왔다.
“형. 저도 6레벨 오를 수 있을까요? 사는 게 너무 힘든데.”
비슷하게 고통받던 이연우는 어느 날 갑자기 6레벨이 되어 세상의 폭력에 맞서고 있었다. 저 평범한 사람처럼 멀쩡한 기색이 너무 부럽다.
이연우는 갑갑한 숨을 내뱉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글쎄. 힘들지 않을까.”
매일매일 아픈 최재민이 안쓰럽긴 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부모감별이 6레벨에 오를 수 있나? 막 세상의 부모를 감별해 욕하면서 맞서나?’
상상이 안 된다. 이연우는 고개를 돌려 책상에 엎어져 자는 유지유를 보았다.
“지유 선배는….”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하대요.”
그렇게 이상구조반의 하루가 시작되었고.
이연우는 멍하니 의자에 늘어져 생각에 잠겼다.
숨쉬기도 불편한 세상.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 긴장을 놓으면 죽거나 추방당하는 세상. 이건 너무, 너무 위험하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뭔가 이상한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질척하게 달라붙는 이질감과 위화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개연성이 박살 난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네.’
곰곰이 생각할수록 의문은 미궁에 빠져들었다. 실타래는 풀리지 않았고, 두통이 쿡쿡 두뇌를 쑤셨다.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모르겠다.
결국, 이연우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세상이 문제야.’
위험한 빛이 눈동자에 스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세상이 문제면 세상을 고치면 된다. 농부가 멧돼지나 달팽이 따위의 해수를 처리하듯,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을 고치면 끝이다.
자신이 살기 안전한 세상으로.
애초에 이상보호회사가 꿈꾸는 이상한 세상이 자신의 의도와 취합하지 않나.
이연우가 마크 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접니다.”
-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그, 회사가 이상한 세상을 꿈꾸지 않습니까. 제가 돕고 싶어서요. 지금 사는 건 너무 답답하네요.”
그러자 짙은 한숨이 돌아왔다. 마크 정이 침울하게 말했다.
- 회사에서 이번에 시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진행해서 장치만 망가졌다고 합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잔뜩 섞인 목소리에 이연우도 한탄했다.
“아….”
이러면 한참 기다려야 할 텐데. 잠깐 침묵이 이어졌고, 곧 가벼운 작별 인사와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 도움이 필요하면 이연우 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예.”
이연우는 멍하니 핸드폰을 내려봤다.
‘회사가 실패했으면….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주사위가 6레벨로 오르면 가능할까? 황금만능주의나 협회장하고 손을 잡으면?’
자신을 위협하는 이딴 세상은 용납할 수 없다.
그때였다.
삐빅, 임무가 내려왔다. 반장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더니, 기지개를 쭉 켰다.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업무 내려왔다. 갑자기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며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슨 이상개체 나타난 것 같아.”
유지유가 부스스 일어났다.
“빨리 구조해야겠네요.”
나약한 이상개체가 픽 쓰러져 죽기 전에 구조해야 한다. 그게 그들이 할 일이다.
이연우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도 돕겠습니다.”
“…네가?”
반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구조는 관심 없고, 자기 생존에만 관심 있던 애가 갑자기?
이연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 산책 느낌으로 나가고 싶어서요.”
사실이었다. 갑자기 던져진 문제 때문에 머리가 탁하다. 잠깐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싶었다.
유지유가 주섬주섬 외투를 주워들었다. 그녀는 툭 이연우의 어깨를 쳤다.
“그럼 같이 갔다 올게요. 정보는 메신저로 보내주세요.”
“어, 그래. 음, 갔다 와라. 연우는 위험해 보인다고 막 파괴하지 말고.”
반장은 떨떠름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끙끙 앓는 최재민을 보았다. 나서고 싶은데 차마 나서지 못하는 느낌.
결국 반장이 몇 마디 했다.
“너는 그냥 쉬어, 인마. 이상개체 포획하면 걔네 부모 감별해서 다른 개체 있는지만 확인해도 충분해.”
“그래도 좀 미안해서요.”
그런 대화를 뒤로 하고 유지유와 이연우가 구조반 사무실을 떠났다.
***
강을 건너는 대교의 아래다. 인적이 드물고, 잡초와 갈대 따위가 무성하며, 대교의 그림자가 드리운 강변.
강가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여기입니까?”
“으음. 맞아요. 이 근처에서 낚시하거나 노숙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며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네요.”
유지유가 핸드폰 화면을 툭툭 두드리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는 애써 기운차게 말했다.
“자, 빨리 구조하러 가요! 감기 걸려서 죽거나, 어디 부딪쳐서 파괴되기 전에요!”
“…만약 진짜 이상개체면 인식왜곡 효과가 있을 테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이연우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자신이야 멀쩡하겠지만, 유지유는 조금 취약하지 않나.
유지유는 눈을 흘겼다.
“저도 알거든요. 저번에 지렁이 겪고 얼마나 부끄러웠는데요. 이번에는 정신 무장 단단히 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자신의 안위 하나보다 이상개체의 구조가 더 중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끄러운 꼴을 다시는 보이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무장했다.
이연우는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저 둘이 잡초와 갈대를 스스스 헤집으며 일대를 돌아다녔고.
곧 두꺼운 다리 기둥 아래에서 이상개체를 만났다.
반들반들한 회색 피부, 큰 머리, 커다랗게 새까만 눈, 볼록 나온 배와 길게 늘어진 팔.
무슨 외계인처럼 생긴 이상개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중얼거렸다.
“난 인간인데, 왜 날 밀어내. 못된 세상, 못된 세상.”
찾았다. 크게 고생하지 않고 곧바로 찾았다. 분명 좋은 일이었으나, 이연우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기분 나빠.’
생각이 빙빙 돈다. 저것은 인간이다. 나는 저것과 다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이상한 삼단논법이 머리를 채운다.
이연우가 대충 고개를 저어 생각을 밀어냈다.
“내가 인간이지. 자격증도 있는데.”
간섭이 그대로 날아갔다.
하지만 유지유는 달랐다.
“연우 씨!”
갑자기 이연우의 팔뚝을 붙잡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저는 사실 인간이 아니었어요! 이상개체였던 거죠!”
“선배님….”
이연우는 말을 잃고 잠깐 유지유를 바라봤다. 아니, 정신 무장했다면서.
이연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저는 구조 작업 마무리하겠습니다.”
“구조요? 저분은 사람이잖아요! 절 회사에 데려가서 보호해야죠!”
“그게, 어,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연우가 힘겹게 유지유를 떨쳐냈다. 이상개체에 제대로 당한 유지유는 혼자 신나서 방방 뛰어다녔다.
“이제 일 안 하고 적당히 보호받으면서 살면 돼요! 너무 좋지 않아요?”
이연우는 애써 모른 척하며 외계인 같은 이상개체에게 다가갔다. 단호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상보호회사에서 나왔습니다. 당신 같은 이상개체를 보호하는 회사인데, 같이 갑시다.”
외계인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연우를 올려봤다.
“아니에요. 저는 당신과 달리 사람이에요. 그런 이상한 게 아니라서 괜찮아요.”
“아니, 당신 이상개체 맞습니다. 세상이 당신 적대하는 거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건 세상이 못된 거예요. 어떻게 평범한 사람인 저를, 흑.”
외계인이 네 손가락뿐인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연우는 답답해 죽으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구조하겠다니까 이렇게 거절을 해? 결국 이연우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보세요.”
“뭘-”
철푸덕, 손을 내린 외계인이 멍하니 종잇조각을 보았다. 이연우의 인간자격증.
손가락이 희미하게 떨리고, 눈꺼풀이 경련한다. 하지만 이연우는 그런 기색은 모르고, 계속해서 설득했다.
“나는 인간입니다. 당신은 저와 다르죠? 그럼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회사 따라오십시오.”
“당신이…. 인간? 그럼, 그럼 나는?”
외계인이 벌벌 떨며 말한다. 이연우가 그만 받아들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아니죠. 회사는 당신 같은 존재를 위해 있는 기관이니까 안심하고-”
그 순간이었다. 이연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철퍽!
외계인이 녹아내렸다. 회색 진흙으로. 외계인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한 순간, 세상의 압력이 외계인을 짓뭉갰다.
“어, 어? 아니, 구조? 어?”
황당한 상황에 넋을 잃은 이연우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세상이 문제야.”
잠깐 방심하고 경계를 놓는다고 이상개체를 이 모양으로 만드는 세상.
회색 진흙만 남긴 외계인을 보며 이연우는 슬픔을 느꼈다. 자신도 긴장을 놓으면 저렇게 될지 모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상을 바꿔야 해.’
이연우가 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