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77)화 (17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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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버그 클럽의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강대한 압력이 몰려든다. 이연우를 찌부러뜨릴 기세로, 망치가 되어 떨어지는 압력.

예상했던 일이다. 이연우는 하늘을 올려보며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널 도와서 황금만능주의의 영역에 구멍 뚫어줬잖아. 난 네 아군이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애초에 세상 입장에서 보면, 이연우는 바퀴벌레 같은 것이었다. 죽이고 싶은 만큼 끔찍하게 징그러운데, 슈슈슉 도망 다녀 건드릴 수 없는 해충.

콰아아, 강대한 압력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떨어졌다. 공간이 휘고, 일대의 낙엽이며 먼지 따위가 소용돌이친다.

휙-!

이연우가 몰아치는 바람 속으로 주사위를 내던지는 시늉을 했다.

‘설득할 가능성.’

확률을 헤아리는 감각으로 가능성 높은 판정을 골랐다. 생존본능이 실패와 대실패를 지우고, 꽝과 성공과 대성공 사이에서 주사위가 구른다.

데구르르-

성공!

생존본능으로 사기 쳐서 얻은 무난한 성공. 주사위가 살짝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도, 결과에는 문제가 없다.

세상을 일그러뜨리던 압력이 휘리릭 풀려났다. 이연우의 논리에 ‘설득’당했다. 압력이 단순한 돌풍이 되었고, 이연우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렇지. 이거지. 앞으로도 잘하자.”

이연우가 쾌활하게 웃었다. 숨쉬기가 편하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온몸을 비틀어가며 맞서던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쾌적함.

물론 단기적인 설득이라 세상도 곧 정신을 차리겠지만, 그거야 그때마다 주사위를 굴리면 된다. 설득해도 되고, 인지를 벗어나도 되고, 약화해도 되고, 속여도 된다.

‘아니, 잠깐만. 이러면.’

안전이 찾아왔다. 주변에 잠복하던 위험이 사라졌다. 뚜벅뚜벅 걷던 이연우의 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은근히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와 기민했던 신경이 느려졌다.

이연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세상 굳이 바꿀 필요 있나? 차라리 지금 세상 지키는 것도 괜찮지 않나?”

세상이 부르르 떨었다. 어쩐지 하늘이 노을로 물든 듯 노랗게 질렸다.

“와.”

특이한 기상현상에 이연우는 짧게 감탄하다가도, 얼른 정신을 차렸다. 머리에서 논리가 전개되었다.

‘뭘 하든 안전하면 편리함을 위해 움직여도 괜찮지.’

시도해서 잃을 건 없다. 그러면 편한 세상을 위해 움직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실패해도 목숨 정도는 간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이연우가 핸드폰을 들었다. 다음 협상 상대를 향한 전화였다.

“예, 이상보호회사 이연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6레벨로서 예술가 협회장과 세상을 바꾸는 일을-. 예? 아, 이사가 대리로 나온다고요? 영역 바깥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말이죠?”

약속이 잡혔다.

그리고, 그 통화는 회사의 정보부가 전부 감청했고, 이사에게 전달되었다.

***

이사회는 몇 날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식사조차 회의 중에 이뤄졌으며, 화장실이나 수면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강행군 끝에 이사들은 갈피를 잡았다.

“그러면 대충 틀은 잡힌 걸로 하고, 각자 알아서 프로젝트 진행합시다.”

인류보호라는 거대한 목적 아래에서 이사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세우고 각자 움직이기로 했다.

가능성 있는 회사원을 포섭해 인류보호 부서를 비밀리에 만들기, 이상집단에 사보타주하기, 평범한 총탄 양산 계획, 반전된 안전조치를 다시 되돌릴 계획, 세계 개변 장치 재건 등등.

무엇보다 불안요소인 이연우 제거하기.

그렇게 회의가 끝날 즈음, 이연우 담당 이사가 들려온 소식을 전했다. 어딘가 미묘한 표정으로.

“음. 이연우가 골드버그 클럽 본진에 타격을 입혔다는데.”

“…왜요?”

얼른 씻고 푹 잘 생각을 하던 이사들이 충혈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상친화적인 세상을 꿈꾸고, 실제로 그 꿈을 이루려고 움직이는, 인류보호회사의 잠재적인 적.

현시점에서 가장 불안한 요소가 왜 도움 되는 짓을?

담당 이사가 사진을 공유했다. 산산이 조각난 건물의 사진과 몇 초 뒤 멀쩡한 건물을 중심으로 황금빛과 세상이 힘을 겨루는 사진, 이연우가 도망치듯 영역을 벗어나는 사진.

“황금 좀 소모했겠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협력하러 간 거 아닙니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눈을 비비며 사진을 의심하던 이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직후, 기억이 떠올랐다. 개변된 세상에서 이연우가 저질렀던 사고.

이상적대적인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회사의 동맹, 멸망주의자를 멸망시킨 자. 동맹을 망가뜨린 회사의 사고뭉치.

이사들이 뒤늦게 깨달음의 탄성을 토했다. 우리가 사실 인류보호회사라는 충격에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졌다.

“생각해보면, 6레벨 멸망주의자 둘을 다 죽인 인간이죠.”

이상異常을 말살하는 기후를 손을 잡고 막기 위해 지우개를 만난 이연우가 발작했다. 지우개를 든 멸망주의자가 죽었다. 복수하겠다며 찾아온 무인도 이연우 손에 죽었다.

이사들이 이연우 담당 이사를 보았다.

“굳이 제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만히 두면 다른 집단들 다 물고 다닐 텐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협회장이나 숭배자랑 손을 잡기라도 하면, 진짜 이상친화적인 세상이 만들어질 텐데.”

걱정 섞인 말에 이사들이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체력이 다할 정도로 지쳤기 때문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걱정은 일리가 있습니다만, 조금 더 지켜봅시다. 이연우가 하는 일 중 제대로 성공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폭탄입니다. 뭘 만들기는 힘들어요.”

담당 이사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당장 예술가 쪽이랑 대화하러 간다는데-”

“그러면 예술가도 피해만 볼 확률이 높아요.”

대충 말을 뱉은 이사들이 하나둘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잠을 극단적으로 줄여가며 회의를 진행했다.

평범한 사람인 그들의 체력이 끝을 보였다. 누군가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일단 회의는 그만합시다. 다들 프로젝트 기획한 뒤 만나자고요. 피곤해서 죽겠네.”

그와 동시에 이사들이 부지런히 마우스를 눌렀다. 따따따딸깍! 회의를 닫는 버튼을 열광적으로 눌러, 벗어났다.

순식간에 까맣게 꺼진 카메라 화면들. 홀로 남은 이연우 담당 이사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맞나? …나도 졸려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군. 일단 쉬어야겠어.”

딸깍!

이사회가 종료되었다. 모두 쉬러 갔으니, 몇 시간의 공백이었다.

***

이연우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예술가 협회의 이사가 얼른 근처에 준비한 장소로 들어갔다. 아틀리에라고 해야 하나. 깎다 만 돌먼지 따위가 풀풀 날아다니는 공방.

안쪽에서 조각칼을 들고 대리석을 노려보던 예술가가 퍼뜩 일어났다.

“이연우?”

“조각가?”

좋지 않은 인연이 있는 상대다. 지우개를 얻겠다고 이연우의 쉘터를 끔찍한 이상개체로 만든 상대.

그들은 잠시 어색하게 서로를 마주 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대충 네모난 돌조각을 밀고, 그 위에 앉은 이연우가 말했다.

“예, 뭐. 과거 일은 지나가게 둡시다. 지금 할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음, 협회장님이 주신 편지부터 드리겠소.”

조각가가 부스럭부스럭 하얀 편지 봉투를 건넸다. 이연우는 봉투를 뜯으며 궁금하다는 듯 질문했다.

“협회장님은 못 나오십니까?”

“…당연히 못 나오지.”

무엇이지? 자기는 자유롭다고 자랑하는 것인가? 조각가가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사랑과 증오가 종이 한 장 차이인지, 전당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세상이 협회장님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더이다.”

“…그러면 영역은 어떻게 만듭니까?”

이연우가 편지를 펼치다 말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죽으면 영역도 못 만드는데? 처음부터 영역을 가질 리는 없는데?

조각가가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미쳤지. 갑자기 후회하면서 되살리는데, 그래 놓고 또 죽이고. 어쨌든 죽고 부활하는 과정을 셀 수 없이 겪으면서 예술의 전당을 만드셨소. 그러니 예술의 전당에 올 생각은 마시오.”

클럽 빌딩이 터졌다는 중대한 소식은 곧장 파악되었고, 이연우는 방문 금지 대상이 되었다.

협회장이 고통을 겪으며 구축한 영역이고, 예술 작품을 보호하는 최후의 박물관이다.

‘그건 좀, 예상치 못한 사고였는데. 그래도 사고 조심한다는 걸 뭐라 할 수 없지.’

이연우는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편지를 펼쳤다. 프린터로 인쇄한 듯, 메일에 가까운 형식의 글.

그 첫 줄. 이연우의 머리가 멈췄다.

-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자고? 나는 환영이야.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그 후로는 언제 할 거냐, 뭘 어떻게 할 거냐, 스토커에 시달리는 기분이다, 이 세상은 진짜 너무하다, 투덜대는 글이 이어졌고, 이연우는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

“원래…?”

이연우가 중얼거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퍼뜩 고개를 들어 조각가를 보지만, 조각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기색이다.

신기하게 이연우를 보던 조각가가 움찔했다.

“뭐, 뭐요? 혹시 협회장님이 나쁜 말이라도 썼나? 그건 협회장님이 그, 사회성이 떨어져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시오. 그분이 어디 사람과 제대로 대화를 한 적이-”

“그게 아니라. 지금 협회장하고 연락됩니까?”

불똥이라도 튈까 두려워하던 조각가가 얼른 핸드폰을 꺼냈다.

“통화는 무리지만 텍스트로는 가능하오. 바로 연결하겠소.”

핸드폰이 건네졌다. 이연우는 신중하게 문자를 작성했다.

- 원래라는 말이 뭡니까?

- 너 조금 머리가 안 좋구나. 단어 뜻도 모르고.

- 아니. 원래 세상이 뭐냐는 말입니다.

이연우가 답답함에 투다다 핸드폰을 두드리자, 답장이 천천히 돌아온다.

- 몰라? 이 세상은 개변됐어. 세상이 내게 고백했지. 원래는 이상異常을 허용했지만, 인류보호회사가 못된 장치를 써서 자신을 고쳐 썼다고.

‘개변? 인류보호회사?’

이연우가 눈을 크게 떴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몰아쳤다. 심장이 쿵쿵 뛰고, 두뇌 안에서 스파크가 점멸한다.

‘마크 정은 회사가 이상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다고 했지. 장치만 망가졌다고.’

아니다. 성공했다.

세상은 이상異常을 적대하게끔 변했다. 이상보호회사는 원래 인류보호회사였다. 그 회사가 꿈꾸는 세상은 이상한 세상이 아니라, 이상異常의 위협으로부터 인류가 안전한 세상이다.

식은땀이 맺힌다. 이연우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회사가 개변을 모를까? 협회장이 알았는데, 실험을 주도한 회사가?’

만약 고위층이나 일부 부서만이라도 안다면.

그들은 무엇을 할까. 지금 세상을 유지할 것이고, 어쩌면 이상異常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장 6레벨 이상개체의 암살부터 실행할지 모른다.

6레벨만 없으면 이상집단과 이상異常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으니까.

귓가에서 사이렌이 들려왔다. 환청이었다. 상상의 위험 앞에서 세상이 붉게 물드는 듯했다.

이연우가 손끝을 떨었다.

‘나도 위험해.’

생존할 뿐인 소소한 이상異常은 넘어가도, 주사위는 인류보호회사가 파괴대상으로 보기 충분하다.

애초에, 뭣도 모르고 이상친화적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돌아다녔다. 기껏 이상적대적인 세상을 만든 인류보호회사의 사람이 보면.

‘암살! 암살당할지도 몰라!’

끔찍한 상상이다.

이연우가 경련하듯 몸을 팔딱이며 일어났고, 자세를 낮춘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틀리에는 물론이고, 문밖의 거리,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과 자동차와 건너편의 건물까지 전부 의심스럽다.

‘그래, 평범한 총탄이 있었지! 이상한 세상을 꿈꾸는 놈들이 무슨 평범한 총탄을 만들어!’

평범한 총탄은 개변에도 영향받지 않아 그대로 남은 것이나, 그걸 모르는 이연우는 확신을 가졌다.

조각가가 깜짝 놀라 따라서 일어났다.

“무, 무슨 일-”

“말 좀 전해주세요! 당신처럼 회사도 알 거라고! 회사가 무엇을 할지 생각하라고! 그리고, 제발 혼자만 알지 말고 클럽이나 숭배자 쪽에도 공유하라고!”

내던지듯 핸드폰을 돌려준 이연우는 곧바로 주머니를 뒤져 자기 핸드폰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내 핸드폰도 감청당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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