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84)화 (184/194)

리메이크

세계 개변 부서에는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기도 했고, 엉엉 울며 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했다.

“장치, 장치가!”

“설계도까지 사라졌어! 안 돼, 안 돼!”

한순간에 부서의 핵심이, 그들이 피와 땀을 쏟아가며 완성한 장치가 없던 것으로 되었다. 심지어 눈앞에서 보았다.

강렬한 정신적 고통이 주사위의 설득조차 이겨냈다. 연구원들이 하나둘 이연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광기에 가까운 빛이 번들거렸다.

“뭐, 뭘 한 거야! 이 못된 놈아!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애초에 넌 누구야!”

“이연우! 이연우잖아! 이 부서파괴자가 왜 온 거야!”

욕을 하는 연구원. 누군가는 얼른 이사한테 보고하고, 누군가는 보안직원을 호출한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이연우가 슬금슬금 물러나며 진지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금방 고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되돌리겠습니다.”

“하지 마!”

이연우를 직접 안내했던 직원이 절규했다. 여기서 더 실패하면 어떤 사고가 날지 짐작이 갔다. 그들 머릿속의 기억마저 지워버려, 세계 개변 장치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겠지.

아니, 어쩌면 장치의 핵심이 되는 이상개체 연필마저-

‘아니, 연필은 지금 멀쩡한가?’

그 순간 연구원이 몸을 퍼드득 떨어가며 장치의 잔해로 몸을 던졌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연필이 사라지면 세계 개변 장치를 다시는 만들 수 없다.

강철 파편이 옷을 찢고, 피부를 긁어 붉은 상처를 내도, 연구원은 미친 사람처럼 손을 허우적거리며 파편 사이를 헤엄쳤다.

“빨리 찾아! 그거, 그거!”

다른 연구원들도 연달아 몸을 일으켰다. 맨손으로 파편을 옮겨서, 날카롭고 거친 파편이 손바닥 피부를 찢었다.

그때 쾅, 문이 거칠게 열리고 무장한 보안요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곧바로 이연우를 향해 무기를 겨눴고.

이연우는 주먹을 쥐었다.

‘클럽 빌딩이 있는 도시로.’

데구르르-

성공!

이동은 잘못되면 죽는다. 생존본능이 실패와 대실패를 지웠다. 무난한 성공이 나왔다.

이연우의 시야가 변했다.

***

얼마 전에 왔던 도시다. 태양이 떨어진 듯, 도시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연우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보았다.

“세상이….”

이상異常을 배척하는 세상이 발악하듯 황금만능주의의 영역을 내리찍었다. 그 힘은 강대했지만, 어딘가 기세가 약했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장하는 지옥과 예술의 전당 안에서 바깥으로 영향력을 흩뿌린 협회장과 황금만능주의가 행사한 권능. 그 모든 것이 세상을 약화하고 있다.

심지어 이연우가 걸어놨던 ‘설득’조차 여전히 세상을 속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내가 평범한 공간을 만들어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잠시 머리를 긁적인 이연우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회장이 있는 클럽 빌딩.

눈부시게 빛나는 빌딩을 바라보며, 이연우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목적. 원래 세상으로 되돌리기. 그에 필요한 것들. 그가 해야 할 것. 세계 개변 장치를 수리, 아니, 재건하는 것은 첫걸음일 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가 개변 전에 마지막으로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주사위. 내가 살 길을 만들어. …내가 간섭해서 이상보호회사가 됐지.’

자신이 간섭할 수 있다면, 다른 6레벨도 가능하다. 6레벨마다 서로 다른 세상을 꿈꿀 테니, 그 간섭을 막아야 한다.

거기에 회사도 있었다.

‘평범한 세상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세계 개변보다 연관된 상황이 더 어렵다. 얽힌 존재가 너무나 많았으며, 그 매듭은 지독하게 꼬여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회사의 싱크탱크가 모여서 한참을 회의해야 갈피가 잡힐까?

고민에 빠진 이연우가 흔들흔들 걸어갔다. 좀처럼 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 걸음이 느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회장이 이연우의 방문을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히 길었다. 이연우의 앞으로 황금빛이 모여들며 회장의 형상을 만들었다.

- 뭡니까? 왜 여기 왔습니까? 이럴 시간에 회사로 가서 공격해야지 않습니까? 아니면 악마숭배자나.

회장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일단 동맹은 확실하다. 이상異常을 말살하려는 회사를 이연우가 용납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연우는 폭탄이라 적진에 던져야지, 본진에 두면 안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깐 채 고민하던 이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설득을 위해 일단 아무 말이나 뱉으려고 했으나, 곧 입이 꾹 다물렸다.

‘내가 설득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야.’

말솜씨와 논리로 승부하면 진다. 세상을 바꾸려고 찾아갔을 당시 이미 겪어보지 않았나.

그 순간 생각이 번뜩였다.

‘내가 왜 복잡하게 설득하고 이성적으로 상대하려고 했지? 그 누구야. 옛날에 어떤 왕이 매듭은 자르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문제를 없애면 더 이상 풀 필요가 없다. 아니면 칼 들고 매듭을 협박해 스스로 풀리게 만들거나.

회장이 불길함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이연우가 손을 뻗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지우개를 든 멸망주의자. 그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주사위. 지구가 폭발할 가능성.”

데구르르-

주사위가 구른다. 생존본능이 성공과 대성공을 지웠으나, 꽝과 실패와 대실패의 가능성이 꿈틀거렸다. 관련된 감각이 없으면 뭐가 뭔지 모를 확률의 실타래.

찰나, 회장이 기겁했다. 그는 뭘 더 생각하지 못하고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 막으세요!

황금빛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발광하며 이연우를 휘감는다. 꿈틀거리던 확률의 실타래가 살충제를 맞은 벌레처럼 움츠러들었다.

한창 구르던 주사위가 멈췄다. 취소당했다. 잠깐 침묵이 스쳤다.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를 보았다.

“….”

- …뭡니까? 미쳤습니까? 갑자기 지구 폭발?

회장이 먼저 말했다. 그는 소모된 황금을 가늠하며, 정신을 차렸다. 지구 폭발을 막은 것치고는 소모된 황금이 굉장히 적다. 애초부터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회장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 장난인가? 지금 이런 장난을 칠 때입니까?

“장난 아닌데. 여긴 내 세상이 아니잖아. 개변된 세상. 내 기억도, 삶도 다시 쓰였지. 내 진짜 삶과 인연은 오직 개변 전의 세상에만 있다고.”

이연우는 느릿하게 다시 손을 폈다. 회장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집중됐다. 이연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세상은 멸망해야지. 사람부터 지울까? 주사위. 사람을 죽이는 병이 전 세계에 전파될 가능성.”

- 취소.

황금빛이 다시 번쩍였다. 이번에는 소모된 황금이 꽤 많았다. 지구 폭발과 달리 진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는 말이다.

회장의 표정이 굳었다.

- 진심입니까?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고? 아니, 아니겠죠. 아닌가?

회장은 두통이 몰려와 머리를 꾹꾹 눌렀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뭐 하는 인간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 세상을 바꾸자고 찾아오고, 악마숭배자랑은 뭘 했는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멸망? 혹시 인격이 단수가 아니십니까? 막 주사위 굴려서 나온 결과대로 인격이 바뀝니까?

그나마 합리적인 가능성은 주사위에 오염당해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이연우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말했잖아. 이런 세상은 멸망해야 한다고.”

회장은 가만히 이연우를 보다가, 천천히 상황을 인식했다. 단순한 협상 기법이다. 먼저 강하게 나가고, 다음에 진짜를 요구하는 기법.

비싸게 팔겠다고 말했다가 천천히 가격을 조정하는 느낌.

- 원하는 게 따로 있군요. 말해보세요. 이런 한심한 협박은 그만두고.

“음.”

속내를 들킨 이연우가 어설픈 연기는 그만두고,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다소 부끄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원래 세상으로 되돌리는 게 목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래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어서요.”

- 도대체 그게 뭔. 인류보호회사가 이상말살을 원하는데 그게 왜 이상적입니까.

“그것도 문제긴 한데, 그건 나름대로 대책을 준비했습니다.”

이연우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만든 평범한 영역. 이걸 회사한테 당근으로 주고 이런 멸망전을 채찍으로 삼아 협상한다.

“회사의 방침은 공격이 아니라 보호지 않습니까. 거기에 호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게 된다고, 아니, 된다고 칩시다. 그런데 제가 그걸 왜 동의해야 합니까?

회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쟁은 유리하게 흘렀고, 클럽은 톤 단위의 황금을 조달했다.

지금 세상에서 회사를 무너뜨리면 끝인데, 굳이 회사가 있는 개변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이유가 있나?

이연우도 클럽의 입장을 바꿀 자신은 없었다. 그는 자신 없이 말했다.

“동의까진 아니고, 세계 개변 장치만 고쳐주고, 다시 되돌리는 거에 간섭만 안 해주면 되는데.”

- 그러니까, 그걸 내가 왜. 아니, 됐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당신을 방해할 겁니다.

결국 회장이 지금 세계를 고집했다.

이연우가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였다. 짙은 한숨이 나왔다.

“아. 이게 안 되네.”

회장이 도왔으면 지금 바로 세계 개변 장치가 고쳐졌을 텐데. 칼 들고 협박해도 매듭이 혼자 풀리지 않으니, 남은 방법은 칼로 매듭을 내리치는 것뿐이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당신부터 치워야지.”

황금만능주의는 회장이 아니다. 회장을 죽이면 자신도 쓸 수 있다. 확실함을 따지면 오히려 이쪽이 나았다.

“주사위. 회장이 심장마비로 죽을 가능성.”

회장을 죽이고 황금만능주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동시에 회장의 형상도 황금빛으로 빛났다. 공격은 공격으로 받아친다.

- 이연우의 심장을 멈춰주십시오.

주사위가 구른 후 결과를 내고, 소원을 들은 황금만능주의가 황금을 소모하여 강제력을 행사한다. 한순간에 공격이 서로를 찔렀다.

쿵. 두 사람의 심장이 동시에 멈췄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회장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다가 보험이 작동하여 회복했고, 이연우는 그냥 생존본능이 심장이 다시 뛰는 미래로 인도했다.

잠시나마 죽음을 체험한 두 6레벨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 좋습니다. 황금만능주의와 주사위. 어느 쪽이 더 전능한지 해봅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다시 되돌린 세상에는 당신도 멀쩡히 살아있을 겁니다.”

직후, 주사위가 실타래를 풀어놓으며 미친 듯이 구르기 시작했고, 황금만능주의가 황금을 끝도 없이 먹어 치우며 현실을 뒤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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